누군가가 톡톡 건드리는 느낌에 뒤돌아보니 역시나...
"Hi!"
서로 제대로된 인사도 안 하는 팍팍한 올림픽 선수 대기실에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헤- 하고 웃으며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녀석은 그 녀석뿐이겠지. Hi, Hello, 你好까지... 베이징 올림픽 때는 어디서 한국어를 배운건지 들은건지 '안녕하세요.'라고 어눌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여기저기 나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녀석을 무시할 정도로 못되먹진 못해서 항상 나도 같은 말로 손을 살짝 들어주면 혼자 얼굴이 빨개진다. 어느날은 나한테 와서
"My Park! How about condition?"
이렇게 묻는데... 솔직히 당황했다. 내가 남자한테 나의 박이라고 듣다니... 난 제대로 여자친구도 한 번 못사귀어 봤는데 말이다. 대답 없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더 가까이 와서 중국어로 중얼중얼 거린다. 그냥 적당히 굿이라고 하니까 웃는 모습이... 꽤나 여자들을 울렸겠다 싶었다.
그 후로 부터는 호칭도 그냥 그러려니 넘어간다. 이미 쑨양은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도 유명하다. 내 뒤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걸로 말이다. 400m 예선때는 큰 중국국기를 들고와서는 내가 했던 세러머니를 따라하듯 망토처럼 걸쳤다. 쑨양이 나에게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말하는데, 솔직히 못알아듣겠다. 그냥 대충 알아들었다는 듯이 웃어주니 나보다 더 활짝 웃고는 코치한테 끌려간다.
예선에선 나의 대한 판정에 더 화를 냈다.
"Park, Are you okay?"
너무 당황스러워서 날 붙잡지도 못하고 뒤에서 묻는 녀석을 냅두고 밖으로 나갔다. 나의 판정에 대한 판정이 나올때까지 그 시간은 4년보다 길었다. 나의 대한 판정이 번복되고, 그새 굳어있었을 몸을 풀러 갔을 땐 이미 쑨양은 수영장 안에 있었다.
"My Park!"
아까는 이유없이 미워보였던 녀석이 지금은 귀여워보인다. 좀 크긴 하지만. 결과는 2등, 은메달이다. 솔직히 만족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메달을 땋다는데 의의를 둬야지... 시상식 위에 나란히 섰다. 쑨양은 나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메달을 입에 물고 내 어깨를 감싼다. 뭘 이렇게 떠는지 내 어깨에까지 느껴진다. 그 큰 국기를 아까처럼 걸치고서 사진을 찍는데... 나만 날 따라했다고 느끼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역주행을 하더니 관중석에 꽃다발을 던진다. 아, 진짜 귀여워 죽겠네. 귀여운게 귀여운짓하니까 귀여워 죽겠어, 정말.
"쑨양."
"응?"
"귀엽다."
하면서 엉덩이를 툭툭 처주니 얼굴이 빨개져서는 살짝 멈춰있는다. 그게 또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