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준희? "
" .... "
" 맞네, 시준희. 오랜만이다. "
" .. 어. "
" 자퇴하지 말 걸 그랬다. 너 살아있는 거 알았다면. "
" .... "
" ㅋㅋ 장난이야. "
그 애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만 확실한 건 그 애와 나는 이미 지나버린 인연이었다. 철없던 때 잠깐 사귄 건데. 언제 적 얘기라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해오는 나의 구연인은 이렇게 편의점 앞에서 초라하게 마주쳤다. 원수는 외나무다리 앞에서 만난다더니. 그게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 저 애는 나의 구연인 이자 원수였다. 김정우가 보고 싶었다. 이럴 때마다 도와줬는데.
거방진 허우대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말했다. " 김정우 좋아하면서 지랄. " 친하지도 않는 애가 뭘 안 답시고 껴드는 게 뭐 같았다. 대답을 못 하고 궁싯거리자 이름도 모르는 저 애는 뭉짜를 부렸다. " 네 눈빛 존나 이상해. " " 누가 봐도 김정우한테 흑심 품고 있는 눈빛이라고. "
첫사랑은 시무룩
김정우
동스청 이동혁
" 정우 있어? "
" 아.. 잠시만. "
뭐지? 우리 학교에 저런 애가 있었나. 내 어깨를 잡고 느닷없이 김정우를 찾는 아이는 키가 컸다. 나도 어디서 작다는 소리 듣지 않는데 김정우만큼 커 보였다. 교복 마이를 입고 있었지만 명찰은 없었다. 질 나쁜 애 같지는 않은데.
" 김정우 누가 너 찾아. "
문 밖을 보더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가는 김정우다. 몇 번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에게로 오더니 하는 말은 황당했다.
" 체육복 있지? "
" 갑자기? "
" 미안, 쟤가 빌려달라는데 나 김여린 빌려줬잖아. "
" .... "
" 한 번만 빌려주라. 매점 가서 쫄쫄이 사줄게. "
또 김여린. 한숨을 쉬고 가방을 열었다. 질투도 감정 소모가 너무 들었다. 그래서 그냥 김여린의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김정우는 내가 쫄쫄이에 넘어간 줄 알겠지만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 근데 이게 저 친구한테 맞을까? " 내 말에 김정우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 좀 짧아도 괜찮겠지. "
체육복을 빌려주고 앞에 앉은 친구랑 마저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콕 찔렀다. " 헐.. " 친구의 벙찐 표정은 더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대체 누구길래. 고개를 돌리자 머쓱한 표정을 짓고 서있는 아까 그 애가 서있었다. 아까 바로 체육복 빌려주지 않았나? 뭐지. 너무 짧아서 돌려주러 왔나 생각하기도 전에 그 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 고마워. "
" 어? 어. "
저 말하려고 온 건가 싶었지만 그 애는 대답을 듣자 바로 교실 밖으로 나갔다. 친구가 번갈아서 쳐다보다가 나를 향해 말했다. " 쟤 이름 동스청이야. " 그래서 뭐.
중국에서 온 아이. 그게 동스청이었다. 잘생기고 키도 커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김여린과 같은 반이었고, 그 말의 뜻은 옆 반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몰랐던 이유는 내 유일한 남사친이 김정우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애초에 동스청 자체가 예체능 계열이라 학교를 잘 안 나온단다. 예체능인 애가 체육복도 안 가지고 다니나 싶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다. 그럼에도 예체능 반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다.
나에게 체육복을 건네는 김정우를 빤히 쳐다봤다. 내 시선을 알고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뭔진 모르겠지만 자리에 앉은 김정우는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언제 나 모르게 저런 애랑 친구 먹었지? 김정우가 평소에도 인싸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을 알고 있었는데 또 나만 모르는 비밀이 생겼단 게 당연하면서도 서운했다. 선 긋는 거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김정우에게선 페브리즈 향이 났다. 왠지 모르게 은은하게 페브리즈 향이 났다. 샴푸 뭐 쓰냐고 물어보는 애들도 종종 있었다. 김정우는 굳이 대답해주지 않고 웃으며 무마했다. 편의점에 하나씩 있는 페브리즈를 사서 따라 뿌려보기도 했다. 김정우가 알면 경계하려나. 그런데 그렇게 서라도 닮고 싶었다. 아무리 뿌려도 같은 향은 나지 않았다. 그 뒤로 남은 페브리즈는 동생 줬다. 차라리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문득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상대를 향한 설렘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존경과 동경은 헷갈릴 수 있을지라도 좋아함이라는 단어가 동경에 빗대지는 못했다.
그냥 문득 그런 걸 느낄 때가 있었다. 바다 갔을 때 찍은 사진 속 김정우가 김여린을 보며 웃고 있는 장면이 대부분이라는걸. 그리고 그걸 찍은 건 내 몫이었다는걸. 비참하다가도 체념할 때가 있는가 하면 그냥 문득 부정하다가도 인정해버리는 때가 있었다. 확실한 공통점은 아픔을 겪고 나서야 찾아왔다.
" 오늘은 명찰 달았네. "
동스청과 두 번째 만남이었다. 저번에 없던 명찰이 이번엔 제자리에 달려있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이었다. 동스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아, 어색하다.
" 양궁 한다며? 이시영한테 들었어. "
" 응. 맞아. "
" 대회도 서? "
" 다음 달에. "
" 오, 구경 가도 돼? "
" 다른 지역에서 하는데. 올 거면 정우랑 와. "
" .. 너무 멀다. 생각해 볼게. "
김정우가 화장실 간 사이에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질문을 나만 던지니까 더 그렇게 느껴졌다. 대화가 끊기고 고개를 숙였다. " 근데. " 속으로 김정우를 원망하는데 얼마 안 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적어도 오늘 동스청이 내게 건네는 첫마디였다.
" 이름이 뭐야? "
" .... "
그래. 체육복도 빌려줬는데 이름 모를 수도 있지. 명찰을 안 볼 수도 있지. 예의상 물어본 걸 수도 있지. 근데 이때까지 계속 같이 있었으면서 첫마디가 저런 질문인 게 솔직히 황당했다. 아, 아니지. 원래 초면인 사이끼리 알면서도 이름을 물어보는 건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렇네.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전공부터 물어 본 내가 이상한 거였다.
" 시준희. "
" 아아, 준희. 시준희. 잘 어울린다. "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저 멀리서 걸어오는 김정우의 모습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거리를 넓혔다. 이상하게 김정우에게 동스청과 조금 아주 조금이었지만 가까워진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다고 조금의 여지를 남겨도 김정우는 모르겠지만. 내가 바보다.
" 싫어한다. 안 한다. 싫어한다. 안 한다. "
" 뭐하냐. "
" 꽃잎점. "
" 엥? 뭐야.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
" 아니, 그냥 누가 나 싫어하는 거 같아서.. "
" 개소리야. 이해 되게 말해줄래? "
얼마 전부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누가 날 싫어하고 있는 거 같다. 이유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실제로 한 학년 후배 애가 나보고 당차게 한 마디 하고 내려갔다.
" 선배 이시영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요. "
무슨 삼류소설에나 나올 거 같은 대사를 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진 후배는 명찰을 보여줄 새도 없어서 이름도 모른다. 확실한 건 후배라는 것 밖에 없었다. 근데 아주 자연스럽게 내 친구의 이름을 그냥 말한 것. 누나도 아니고 선배도 아니고 그냥 석자 이름이었다. 어라? 그러면
" 내가 아니라 널 싫어하는 거 같은데? "
" 준희야. 나 이해력 딸리는 거 알잖니. "
친구가 조금 활발하긴 해도 어디 가서 미움 살 애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쁨 받으면 받았지. 그래서 더 이상했다. 뜬금없이 친하게 지내지 말라니. 확실한 건 남친은 아니다. 지 동생 생각난다고 연하는 절대 만나지 않는 애였으니까.
" 아니, 나보고 너랑 놀지 말래. "
" ..? "
" 너 이름. 이시영이잖아. "
"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니.. "
" 응. 놀지 말래. "
" 많이 더워..? 아니면 추운 건가? 왜 자꾸 두서없이 말하고 그래. 네가 애야? "
더 말하기 귀찮아서 이시영에게 반쯤 잎이 떨어져 나간 꽃을 전해주고 일어났다. 운동장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해가 나를 가만 안 둔다. 사실 그냥 핑계고 교실로 들어가려고 뒤를 돌았다. 그 순간이었다.
" 어..? 쟤다! "
바로 앞을 지나가는 애를 가리키면서 이시영을 쳤다.
" 쟤야. 너 싫어하는 애. "
편하게 말하려고 싫어하는 애라고 확신해서 말해버렸다. 그런데 이시영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 엥. 이동혁 말하는 거야? "
" 너 알아? "
" 당연하지. 호적 메이트를 모르면 안 되지. "
" ?? 아, 동생..? "
그 누나의 그 동생이라고. 패기 넘치게 같이 놀지 말라고 하던 그 아이가 이시영의 동생이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꽃을 뺏었다. 저 집안엔 핵인싸의 핏줄이 흐르나 보다.
" 나는 바보다. 아니다. 바보다. 아니다. "
안녕하세요! 이번 편은 오늘 뮤비 나온 기념으로.. 총총
근데 2화밖에 안됬는데 정우 분량이 왜 이럴까요. 제가 썼는데 모르겠네요. 과거의 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썼을까요.. ㅎㅎㅎㅎㅎ^^
그럼 저는 다시 갑니다! 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