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가 내게 떡볶이를 사줬다. 소소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이상한 건 부담스럽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꿈속에서 김정우를 만난 것이었다.
꿈은 반대라더니. 중학생 때가 생각났다.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서 분식집으로 이끌던 때. 그리고 어떻게든 오래 있고 싶어서 극구 사양하는 김정우를 집 앞까지 데려다줬을 때. 꿈에서 깨어나면 그게 생각났다.
첫사랑은 시무룩
김정우
동스청 이동혁
네가 좋아하는 음식. 네가 좋아하는 노래. 네가 좋아하는 풍경. 네가 좋아하는 상황. 그냥 네가 좋아하는 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거.
어떻게 하면 널 안 좋아할 수 있어. 방법만 알 수 있다면 그거라도 할 텐데. 또 실패야.
" 김정우. "
" 엉? 왜. "
" .. 아냐. 하던 거 해. "
" 뭐야. 왜 각 잡아. "
" 확실하게 하자. "
너 김여린 좋아해?
던졌다. 내가 던졌고 김정우는 퍼즐 조각을 내려놨다. 모서리 끝 부분 이었다.
눈이 그치고 허전하고 딱딱했던 땅은 다량의 눈 덕에 폭신폭신해졌다. 밖에 나가 눈으로 장난을 치던 애들도 있었고, 춥다며 교실에 틀어박혀 담요로 싸맨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우린 후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김정우, 이시영, 나. 그리고 김여린이었다. 김여린과 내가 인사를 하게 된 원인이 이시영이었던 것처럼 김정우가 김여린과 친해지게 된 빌미를 만든 것도 이시영이었다.
" 어? 나 알아. 김여린! 맞지? "
" 엥 맞췄어. 나도 너 알아. "
" 이름! 이름 대봐. "
" 김정우잖아 ㅋㅋㅋㅋ "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게 실수였을까. 아니다. 그건 아니야. 내 영향은 그렇게 크게 미치지 않기 때문에 아니다. 그럼 눈이 내리던 날 김정우 시야를 막지 않아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게 따지면 처음부터 눈이 내린 게 잘못이 된다. 그냥 원래 둘은 만날 상황이었어.
죽어도 운명이니 인연이니 이런 단어를 내뱉지 않는 건 내 오기였다.
" 번호 좀. "
" 시영이한테 받아^^ "
" 와~ 섭섭하다.. "
" ㅋㅋㅋㅋ 누가 보면 10년 친군줄. "
정작 그 이상의 친구는 나인데. 기분이 착잡해졌지만 티는 낼 수 없었다. 너무 찌질해서. 왜 이렇게 자기 비하만 늘어가는 건지. 또 그런 내가 싫었다.
동스청은 부쩍 우리 반에 자주 찾아왔다. 이시영은 초반엔 볼 때마다 놀라 하며 내 팔뚝을 쳤지만 점점 갈수록 말을 걸기 시작했다. " 응. " 예상외로 덤덤한 반응이었지만 이시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저 친화력 어쩔 거야.
" 시준희. 너 나한테 속이는 거 없지? "
"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
" 너 동스청이랑 뭐 있는 거 아니야~..? "
" 이번엔 신박했다. 인정. "
" 야 장난 아니거든??? 쟤 너 말에만 길게 반응해주잖아요. "
" 네가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라곤 생각 안 해봤니? "
저저 망상 렌즈. 언제 빠질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김정우랑 나랑 엮어서 난리더니 이번에는 동스청이다.
무엇보다 항상 틀렸다. 아니.. 김정우는... 뭐 반쯤? 은 맞았다고 인정해 주겠다. 아예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다만, 김정우가 아니라 나였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웃긴 건 이시영도 모른다.
처음엔 김정우가 굳이 부정하지도 않았던 거 같다.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고, 부정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줬으니까. 오로지 친구 사이라는걸. 그리고 그날의 김정우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라는 문장을 믿는 아이였다.
" 아니, 시준희랑은 우정이지. "
" 아무 사이 아냐~. "
근데 왜 지금은 그렇게 부정을 잘하세요.
" 선배! 안녕하세요~. "
" 혹시 우리 반이 너희 반이니? "
" 선배 왜 제 인사 안 받아주세요? 혀기 똑땅해 ㅠ "
" 저 새끼가 또 무시하네. "
이시영이 발로 차는 시늉을 하자 앓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피하는 이동혁이었다. 닿지도 않았는데 저러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싶었다. 김정우가 우리를 번갈아 보다 어느새 친해졌냐며 한마디 던졌다. 이동혁은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 형보단 친해. " 하며 받아쳤다. 김정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 동스청은? "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동스청이 안 보였다. 평소엔 잘만 보이더니. 김정우가 또 한 번 멀뚱이다 말했다. " 스청이 연습 갔지. 근데 걔랑은 또 어떻게 알아..? " 너는 진짜 나한테 관심이 없구나.
" 너보다 친해. "
그래서 나도 홧김에 해버린 말이었다. 김정우가 아까 이동혁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 아, 삐졌어? 주늬 삐져써? 웅? "
이럴 때마다 항상 애교로 무마하려고 했다. 내 약점을 너무 잘 알아.
" 아!.. 어... "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닐지 모른다. 헥헥 대던 개는 우리를 헤치려고가 아니라 우리가 반가워서 쫓아왔던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린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움직이지 못했다.
" 김.. 김정우..!! 같이... "
왈! 왈!!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주저앉은 나를 발견하고 개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김정우가 돌아보던 때였다.
" 시준희! 잘 따라오라니까..! "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김정우가 채 손이 닿기 바로 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 몸을 잡아먹을 듯 컸던 개가 날 덮쳤다. 덮침과 동시에 김정우의 손이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무서웠다. 그런데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었던 거 같다.
왈!
" 이 개 착해..? "
" 어라?.. 자세히 보니까 귀엽다. "
그렇게 큰 개를 요즘에 풀어놓는다면 욕을 배부르게 먹겠지만 그날은 뭔가 달랐다. 김정우도 같이 쪼그려 앉아서 개를 쓰다듬었다. 힐끗 곁눈질로 김정우를 쳐다봤다. 두근.
잡힌 손을 놓지 않은 상태였다. 두근.
" 이름 지어주자! "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던 김정우는 고작 10살이던 나에게 찾아온 첫사랑이었다.
참고로 정우와 준희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릴 적부터 친구였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