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백현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반장이였던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던 그와 나는 이렇게 급속도록 친해질 줄을 꿈에도 몰랐다. 변백현의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넘치다 못해 흐를 정도였다. 그만큼 변백현은 붙임성이 좋았고, 쾌활했다. 그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도 지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변백현을 볼 때마다 무언가 기분이 묘했다. 대체 왜?
ㅡ도경수!
ㅡ...
ㅡ야, 자냐?
ㅡ...
ㅡ변백! 경수자는데?
고1부터 고3. 그러니깐 열 일곱부터 시작된 나의 묘한 감정이 스물스물 열 아홉이 된 내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잠들듯 말듯한 몽롱한 상태에서 장난끼 어린 박찬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이상한 짓을 하려고 저렇게 부르나 싶어서 아무말 없이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ㅡ진짜 자?
ㅡ...
ㅡ진짜 자나보네.
가까이에서 변백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유모를 두근거림이 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살짝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본건지 보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다. 에어컨 뒤라 서늘했던 내 등 위로 무언가가 덮어졌고, 기분좋은 그의 향이 내 코를 간지럽혔다.
ㅡ뭐냐. 변백현. 도경수랑 사귀냐?
ㅡ미친놈.
ㅡ존나 담요도 덮어주고 백현아빠 납셨네. 백현아빠.
아직 교실을 나가지 않았던 모양인지 박찬열의 장난끼 어린 소리가 귀에 꽂혔다. 백현아빠. 백현아빠. 어감이 좋았다. 늘 이렇게 날 챙겨주는 변백현은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던 그 날부터 내게 백현아빠가 되어 있었다.
백현아빠01
ㅡ덥다.
땀을 뻘뻘 흘리던 백현이 말없이 길을 걷던 경수에게 손으로 부채질을 해보였다. 안 덥냐? 라고 묻는 백현의 말에 졸라 더워. 라고 인상을 한껏 찌푸린 경수가 대답했다. 그렇게 길을 걷던 백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또 왜? 라고 묻는 경수의 말에 백현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서는 가게를 가리켰다. 왜? 라고 묻기도 전에 백현이 말했다.
ㅡ아이스크림 사줄까?
ㅡ저기 우유아이스크림밖에 없잖아.
딱 봐도 허름한 듯한 가게였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가는 길. 백현과 경수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그렇게 집을 향해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아직 여름이 시작도 되지 않은 5월이였는데 강렬한 햇볕이 이들을 내리찌기 시작했다.
ㅡ편식하면 안좋아.
ㅡ내 마음이거든?
ㅡ우리 경수. 키크려면 우유 많이 먹어야 한다?
이게 진짜 미쳤나싶어서 경수가 백현을 노려보았다. 그런 경수가 재밌다는 듯이 눈꼬리를 휘어가며 웃던 백현이 이내 경수의 머리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ㅡ이게 우리 경수를 향한 백현아빠의 마음이랄까?
미친놈. 경수가 주먹을 꽈악 쥐며 욕설을 내뱉었다. 너 이리와봐. 내가 키가지고 뭐라고 하지 말자고 했지? 주먹을 쥐며 다가오는 경수를 보며 다시 한번 웃던 백현이 앞서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3cm가 무슨 그 유별이라고 변백현은 늘 도경수에게 어린 아이 취급을 했다. 박찬열의 그 말 한마디 이후로 가끔씩 어린아이 취급을 하며 경수의 머리를 쓰담으며 하던 말. 백현아빠. 그놈의 백현아빠는 무슨!! 키도 고작 3cm밖에 차이 안나는게. 결국 빠르게 뛰어가는 백현을 잡지 못한 경수가 그 자리에 섰다.
미쳤다. 도경수가 정말 미친게 틀림이 없었다. 얄밉게 저리 뛰어가는 변백현을 보며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는 심장부근을 붙잡았다. 또 왜이러지. 제발 좀 멈춰라.
ㅡ야! 왜그래?
아무말없이 자리에 서서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대고 서 있는 경수가 걱정이 된 듯, 심각한 표정을 하고 다가오는 백현이였다. 대답없는 경수를 보며 경수보다 더 심각한 표정을 짓던 백현이 경수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경수의 심장이 더욱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자신도 모르게 숙였던 고개를 치켜올리던 경수가 백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ㅡ죽었다, 변백현.
* * * * *
ㅡ이렇게까지 모여야 되냐. 그냥 죽도록 생일빵때리면 되잖아.
귀찮다는 듯 안경을 치켜 올리는 찬열이 우리를 급 소집한 종대에게 쓴 소리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종대는 사뭇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ㅡ박찬열. 너 오늘 변백현생일인거 알고 있었어?
ㅡ아니.
ㅡ그럼 닥치고 돈이나 내.
이내 종대가 문자의 내용대로 쓰여져 있던 '지참금 만원'을 강탈하듯이 찬열에게 빼앗아갔다. 무서운 종대의 눈빛이 찬열의 옆에서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준면에게로 향했다. 말 없이 종대에게 만원을 내미는 준면의 모습에 흡족하다는 듯 돈을 받아 든 종대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경수에게로 향했다.
ㅡ야, 도경수!
ㅡ응?
말 없이 손을 내미는 종대였다. 주머니에서 꼬깃한 만원을 종대의 손 바닥 위에 척- 하고 돈을 올렸다. '그럼 점심시간에 변백현 붙잡고 있어.' 라고 말을 하며 만원짜리 세장을 흔들어보이며 교실 안으로 재빠르게 들어가는 김종대였다. 그 뒤를 이어서 찬열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준면과 함께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뒤따라서 교실 뒷 문에 잠깐 선 경수가 백현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백현은 자리에 없었다. 워낙 잘 돌아다니는 백현인지라 어디에 갔으려니 생각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경수의 발걸음을 누군가의 목소리가 멈추게 했다.
ㅡ경수형!
종인이였다. 경수와 같은 보컬학원을 다니는 아이로서 얼굴이 까매서 학원사람들이 모두들 깜종이라고 불렀다. 종인에게 무슨 일이냐며 묻는 경수에게 종인이 씨익 웃더니 티켓 두장을 내밀었다.
ㅡ형! 저 다음주에 공연해요.
ㅡ공연?
ㅡ제가 나름 메인이니깐 형은 꼭 와야 해요! 알죠?
ㅡ우와. 김선생님도 노래하셔?
ㅡ김선생님이 중요한게 아니에요, 형. 꼭 저보러 와요. 혼자오기 그럴까봐 티켓 한장 더 줄게요.
꼭 와요, 형! 이라고 외치면서 종인이 하얀 경수의 손에 티켓 두 장을 꽈악 쥐어 주었다. 꼭 오라며 재차 묻는 종인에게 알겠다며 종인이 붙잡고 있는 경수의 손을 살며시 풀었다. 꽃도 사갈게. 라고 말하는 경수의 말에 신이 난 종인이 눈가에 주름까지 잡히면서 웃어보였다.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종인이 종이 치는 소리에 '그럼 그때 뵈요, 형!' 이라고 살갑게 웃으면서 다른 쪽 복도를 향해 내려갔다. 애같은 종인의 모습이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모습까지 확인한 경수가 고개를 돌렸다.
ㅡ...
이유없이 따갑게 느껴지는 눈빛과 어리둥절한 경수의 눈빛이 맞닿았다. 말 없이 경수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는 백현이였다.
ㅡ..왜그래?
왜 그러냐는 경수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던 백현이 다시 경수를 쳐다보았다. 내가 뭐 잘못했나 싶어서 어리둥절한 경수가 백현의 눈치를 보았다. 진짜 갑자기 왜 저러는거지. 이유없는 초조함이 경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 * * * *
프롤로그와는 많이 다른 백도의 모습입니당..ㅎㅎ아무래도 7년전이니깐 음 그러니깐요..!
제목의 백현아빠라는 뜻은 다양한 뜻이 있어요. 위에 나온 것처럼 백현이가 경수에게 외치는 말이 될 수도 있구요.
또 다른 건 차차 풀어가야될것같네요..ㅎㅎㅎ :)
댓글 써주신 분들 감사해요!!ㅎㅎㅎㅎ여러분 짱짱걸! 백도는 더 짱짱맨!와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