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 the sun
10
종현과 함께 원래 살았던 곳으로 내려간 태민은 준면이 알려준 장소로 가기위해 몇분을 더 걸었다. 그제서야 묘들이 가득찬 묘지가 보이고 종현의 손을 꼭 잡아 힘을 빼지않는 그는 천천히 자신을 키워주고 사랑해주었던 그들이 뭍힌 장소로 갔다.
“엄마…아빠…….”
왜 이제서야 이 단어를 말할수가 있게된걸까. 함께한 19년동안 엄마라고, 아빠라고 한것은 이상하게도 손에 꼽을만큼이나 적었다. 왜 그랬는지. 왜 그땐 그렇게나 철이없었는지. 왜 이제서야 후회를 하는지. 결국은 다시는 울지않겠다도 속으로 다짐했건만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고개를 떨군다. 용서해주세요. 종현이 태민의 어깨를 감싸쥐자 눈물을 소매 끝으로 닦아낸 태민이 웃어보였다.
뒤늦게 들은거지만 할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한다. 진기가 죽인것인지는 알 수없으나 태민은 그렇다고 진기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냥 원망하고싶지가 않았다. 다행히도 태민의 어미 뱃속에 있던 아이는 태민덕분에 살아났지만 태민은 그 아이에 대해서 딱히 좋은 마음은 들지않았다.
“괜찮아?”
“…괜찮은데 왜 종현씨가 울것같은표정이에요”
종현의 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를 태민이 손가락으로 훑어내렸다. 차갑다. 인간이라고 생각조차 하기 힘든 모든 것은 이미 미의 기준을 뛰어넘어 한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종현은 그랬다.
“니가 울면 나도 힘들어”
“미안해요 이제 정말 안울께요”
“근데 참는거 보는건 더 힘들어.”
“……미안해요 다.”
고개를 양옆으로 살짝 저어보이던 종현이 태민을 보며 잔잔하게 웃어보였다. 다시는 놓지고 싶지않은 내 사람. 문득 아무렇게나 난 푸른 새싹을 만진 종현이 곧 손길이 닿은곳마다 변색이되고 시들어버린 것을 보며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것을 본 태민은 종현의 표정을 살피더니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푸른 새싹을 조심히 뽑아냈다. 그리고 종현에게 건네자 종현은 그것을 받지않고 씁쓸하게 웃어보일뿐이다. 태민이 한번 더 건네보자 그제서야 받아들자 새싹은 또 다시 시들어져버렸다.
“이상하지?”
“아뇨, 예뻐요.”
“다 시들었는데도?”
“네, 예뻐요.”
그것또한 당신의 흔적이니까. 종현과 태민은 손을 잡고 유유히 걸어갔다. 엄마,아빠 염치없겠지만 김종현을 도와주세요. 난 괜찮으니까 제발 종현씨를 안아주세요. 그리고…우리 종인이를…
***
종인과 함께 태민이 살던 곳으로 간 탑은 놓고간 물건들을 뒤지던 중 옷가지를 잡아들더니 이내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어보이고 종인에게 던지자 그것을 잡아들은 종인이 탑이 왜 그러하는지를 알면서도 여전히 표정이 굳은채 마음에 안드는듯 팔짱을 끼고 그를 노려본다.
“벌써 멀리까지도 갔군, 그럼 난 먼저 가도록하지.”
아무런 소리도 안내고 한순간의 사라진 모습을 쳐다보던 종인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태민의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아직까지도 태민의 냄새로 가득찼다.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유일하게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던 유일한 곳이었다.
태민아. 이태민. 언제나 이름을 부르곤 하면 왜? 하면서 고운 목소리를 내주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내 이름을 속삭여주고 웃어주었던 니가. 이제는 없다. 종인은 죽이고 싶었다. 민호를. 종현을. 탑을. 모든것을 다 부숴놓고만 싶었다. 그만큼 감정이 극에 달했고,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나면 또 울고있었다.
우리는 왜 안되는걸까. 사실 기억도 잘 나지않는 과거지만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었고 바랬는지는 안다. 언제나 니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알고있다.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김종현이 아닌 최민호가 아닌 김준면이 아닌 나를 택할수는 없는걸까.
난 항상 니 뒤에서 이렇게 너를 바라보며 앞을 나아가는데 왜 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걸까. 태민아. 이태민. 이태민. 너는. 나를.
「렌, 미안해…미안해……나는. 난……안될것같아…제이가 필요해….」
아니, 나는 너를 사랑할수 없다. 너도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해서는 안된다.
「렌…우리는……안되는거알잖아….」
듣기싫어.
「…우리는…」
말하지마. 그런거 말하지마.
「쌍둥이잖아.」
제발 내게서 더 멀어지지마…….
「유일하게 피가 섞인……쌍둥이잖아 우린…….」
제발 나를 더이상 죽이지말아줘. 몇천년을 너만 보면서 살았던 나를…제발 더는 죽이지말아줘.
종인의 성인식이 가까워지고있었다. 그와 동시에 종인을 감싸고있던 벽들이 무너지고 가슴 속 깊게 비밀스럽게 숨겨두었던 진실이 불꽃놀이처럼 심장에서 터져버린다. 그 파편때문에 갈갈히 상처를 입어 뜨거웠다. 종인은 이미 알고있었을지도 모른다. 태민이 먼저 자신을 만난것도 이번에도 태민과 우정을 나눈것도 모두 예견된일이었고, 결국은 누군가의 손에서 또다시 놀아났음을.
그리고 그것은 종현과 태민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군가의 손에서 여전히 놀아나고 있다.
*
민석이 정성스레 차린 밥상이었건만 태민은 여전히 별로 입맛이 없는듯 눈치만 보며 밥알을 세고있었다. 원래 밥을 먹지 않는 종현이었지만 태민이 이곳에 있는 한 싫어도 적응을해야했기에 종현또한 밥에 익숙하기 위해서인지 조금이라도 먹는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이내 몇번 씹어보더니 표정을 굳히고는 바닥에 뱉어버렸다.
“맛 없나보다……태민님 보고싶어도 하루종일 준비한건데…….”
금새 울상을 지어보이는 민석에 태민이 어색하게 웃으며 크게 한숟갈 퍼서 입안에 밀어넣었고 그걸 본 백현이 불안한지 물이 가득 든 물컵을 준다.
“태민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저 아까부터 좀 신경쓰여서 그런데요……잘 알겠는데 님은 좀…그렇지않나요? 나이도 비슷해보이는데….”
“저희같은것들이 어떻게 태민님께 이름을 부르겠어요! 당치도 않아요!”
“아……네…근데 좀 어색해서요….”
“야 그냥 반말해! 태민이가 반말하래도 지랄이네!”
밥을 먹다말고 숟가락을 든 채 반말을 하라며 소리를 지르는 크리스에 종현이 코를 막더니 인상을 크게 찡그렸다.
“넌 무슨 밥을 먹고있냐”
“그럼 안먹냐?! 뭐라도 좀 먹고살아야지! 야 너도 한 두세번만 먹어봐라- 생각보다 맛있어.”
“역겹기만 하던데”
“뭐?! 안먹을꺼면 나 줘!! 이런 농부의 은혜도 모르는 썩을놈의 새끼!”
“뭐라는거야…….”
종현의 밥그릇을 뺏어간 크리스가 우적 우적 퍼먹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웃어버리는 태민덕분에 조금 화기가 돌았다. 루한과 세훈은 애기를 돌보면서 밥을 먹고, 또 애기에게 시선을 쏟고. 그리고는 태민에게 건네보인다.
“아…….”
얼결에 받아들은 태민이 어색하게 안아들었고 오히려 종현이 능숙하게 아기를 안아드는 자세를 고쳐주었고 그제서야 태민이 조금은 안정적이게 아기를 안았다. 귀엽다. 그쵸? 종현이 웃으면서 아기의 냄새를 맡는다. 으- 신생아 냄새. 기분좋은듯 찡긋거리는 콧잔등에 태민도 덩달아 향을 맡고는 웃어보인다.
“확실히 애기한테는 냄새가 있나봐요. 너무 기분좋아요”
태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종현이 이내 태민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는 킁킁 거리더니 웃어보인다. 니 냄새가 더 좋은데. 조금 당황한 듯 놀란얼굴이었던 태민이 이내 종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킁킁거렸다.
“당신도 냄새 좋네요.”
서로 마주보며 웃는데 어디선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제서야 지금 둘만 있는것이 아니란것을 깨닳은 종현과 태민이 당황해하다가 이내 얼굴을 숙이고 작게 키득였다.
“신혼부부가 따로없네! 여기가 무슨 신혼여행장이냐?!”
크리스가 억지로 종현을 밀치고는 태민의 옆자리에 앉았고 종현이 정색을 하며 뭐야? 비켜 하자 크리스가 되려 인상을 쓴다.
“너만 이태민을 독차지하는건 아니지 아니지.”
“지랄말고 비켜”
“태민아 나랑도 하자 킁킁놀이.”
“이 새끼가 진짜”
“킁킁- 킁킁-”
둘을 보고만 있는 그들의 얼굴에도 기분 좋은 웃음이 번진다. 비롯소 찾았다. 평화. 안정감. 태민이 있어야만 감도는 행복. 준면이 태민의 웃는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이 얼마가지않은 자그만한 행복을 부디 지켜줘 태민아.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 사소한 행복이 생에서는 마지막 행복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
*
“뭐? 하루아침 사이에 그게 말이되?”
“아무래도 김준면이 얘기를 꺼낸 모양입니다.”
신경이 제대로 거슬린듯 와인잔이 깨져버렸고 타오는 고개를 숙였다.
“탑님께서도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태민님의 현재위치는 그들의 저택이라고 보고드리라고 하십니다.”
“…김종인의 성인식 준비는 끝났나”
“예, 찬열이 계속해서 교신한 결과 어느정도 자각과 함께 렌을 끌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이대로라면 태민님보다 먼저 렌이 깨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남은건 키에군.”
민호의 낯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이내 단호하게 말한다.
“이진기를 봉인시키도록.”
“…….”
이해가 가지않는 듯 쳐다보는 타오에 민호가 엹게 웃어보였다.
“이제 필요없는 장기짝은 버리면 그만이야. 먼저 부숴져버리면 재미가 없거든.”
“……예.”
“김기범은 알아서 잘 묶어놓고있어, 곧 필요한 날이 올테니까.”
“예.”
타오가 방을 나가자 기다렸다는듯 들어온 종인에 민호가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알약을 건넸고 딱딱하게 굳은 턱에 종인이 민호를 지나쳐서 왕좌에 앉았다. 민호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종인은 입꼬리를 올려보이며 딱딱하게 웃는다.
“원래 내 자리아닌가?”
“……아아, 환영합니다. 렌.”
고개를 숙여보이는 민호에 종인이 손짓을 해보였다.
『진기님을 봉인했습니다.』
민호의 정갈하게 뻗은 검은색의 눈썹이 이상하다는듯 꿈틀거리더니 이내 골치아픈듯 이마를 짚었다.
『이진기가 가만히 있던가?』
『예,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던것처럼 행동하셨습니다.』
또 무슨 짓거리를 꾸미고 있는거지. 민호는 이미 태민의 부모를 그렇게 자신의 부모처럼 찢어죽인 진기에게 기분이 단단히 상해있었다. 일단 그런 명령을 내린적도 없었고 그렇게 갑자기 이태민을 내치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냥 제이가 깨어나자 지 멋대로 흥분을 하고 멋대로 행동을 해버린 진기에 상황이 조금은 꼬여버려서 오히려 진기를 죽일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이진기가 대체 무슨 꿍꿍이지. 분명 탑이 있으니 섣불리 태민을 봉인하지는 못할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봉인을 시켰던것인데 아무런 발악도 하지않고 너무 쉽게 나와주시니 오히려 당황스럽다.
『탑의 위치를 알아보도록.』
『예.』
종인은 피곤한듯 눈을 감아보이더니 이내 머리가 아픈듯 찡긋거렸다.
“최민호, 키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싶은가”
“렌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겁니까.”
“조금있으면 내가 이 몸을 전부 침식할테지…그전에, 죽여야 할 놈이 있다.”
“…제가 그 놈을 죽인다면 키에가 어디에 봉인되어있는지 알려주시는겁니까?”
“그러지.”
민호가 종인의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알려주십시오, 렌이시여 당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를.”
“…김준면. 그 신의 개새끼를 죽여라. 내 앞에서.”
민호는 조금 더 깊게 고개를 조아렸다.
“예.”
*
루한과 민석과 마당에서 놀던 중 꽃을 따기위해 앞만 보고 걷기만 하던 태민이 이내 너무도 깊숙히 산이 있는 쪽으로 들어온것을 깨닳고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뛰어간 태민이 본것은 한 남자로. 굴러떨어진듯 여기저기 찢기고 다쳐서 괴로움에 신음을 하며 쓰러져있었다. 놀란 태민이 그곳으로 가자 남자는 신음을 토해내며 살려달라고 외쳤고 태민은 자동적으로 빛을 뿜어내며 그 남자를 치료하다가 이내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맙습니다…….”
뭐지? 대체 뭐야 지금 이 살기? 태민은 진심으로 어쩌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이 사람은 부상을 입은 그저 인간에 불과했다. 애써 고개를 저으며 치료를 하는데 남자가 그 빛을 보며 놀라는 낌새 없이 태민을 멀뚱히 바라본다.
“저, 이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
“아니, 제 생명의 은인이신데 언젠간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아…저는…이태민입니다.”
남자가 시원하게 이를 들어내며 웃어보였으나 그 웃음에는 무언가 조롱이 담겨있었다.
“저는 최승현입니다.”
“……저기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적있나요?”
종현과 그 사람들. 모두들 만났을때와 같이 나는 이 사람을 알고있다는 느낌이 강했기에 태민은 더욱 불안했다.
“인연인가보죠, 태민씨.”
상처가 다 나은 승현이 감사를 표한다며 건넨것은 반지였다. 검붉은 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반지의 보석은 아름다웠다.
“여전히 아름다운 룬이여, 나중에 또 만나길.”
네? 살짝 멍청하게 구는 태민의 뺨에 입을 맞추고 사라진 승현. 그리고 그제서야 태민은 머릿속이 아파왔다. 무언가 지금. 만나서는 안될사람은 만난 기분과도 같았다. 그럴리가 없는데. 보석을 손가락에 낀 태민이 이리 저리 보석의 빛을 보며 웃어보였다. 예쁘네. 다른 손가락에 낀 파란 보석의 반지가 빛이 난다.
하와 |
승현아...탑아........무서워........민호는 더 무서워....종인이도 장난아니게 무서워........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팬픽이라던 말이 떠올랐다.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