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남자
밀어 달라고?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옆집 남자를 쳐다봤다. 그러나 옆집 남자는 빨리 밀어달라며 발까지 동동거리고 있었다. 이번엔 진짜 하지말아야지 했는데 옆집 남자 얼굴을 보니 이미 울음보가 터질랑 말랑 거리고 있길래 아 저 남자 울면 그게 더 골치 아프겠구나라고 판단하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끌고 옆집 남자가 앉아있는 그네 뒤편으로 가 섰다. 옆집 남자는 언제 울상이였냐는 식으로 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었다. 옆집 남자에 등을 살짝 밀어주자 그네가 앞으로 올라갔다 다시 뒤로 내려왔다. 한번 더 밀어주자 조금 더 멀리 그네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옆집 남자는 어린 아이마냥 소리까지 지르며 더 높이 밀어달라고 난리도 아니다.
" 우와! 더, 더! 세훈아 더, 더! "
이렇게 더 밀었다가는 그네가 한바퀴 빙 돌아서 뚝 떨어질것만 같은데 얼마나 더 밀어달라는건지 그리고 존댓말이 편하다고 하더니 술 먹었다고 반말이네 옆집 남자. 술 먹고 하는말은 본심이라던데 그럼 나한테 반말쓰고 싶었다는거네? 정말 알다가도 모르는게 사람 속이라고 몇번 마주치고 얘기했던 옆집 남자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였다. 있는 힘껏 그네를 밀어주고 뒤로 한 발자국 떨어졌다. 얼마나 세게 밀었는지 밀어주는거 하나했다고 숨이 가빠졌다. 이 남자랑 있다보면 체력소모가 심하단 말이지. 저번에는 업어주고 오늘은 걸어오고 밀어주고 체력소모가 굉장했다. 나는 교복 와이셔츠를 팔랑이며 더위를 식혔다. 얼마지나지 않아 그네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금새 제자리에 멈추었다. 옆집 남자는 모래 위로 발을 동동거리다가 뒤를 돌아 나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뭐지? 멋졌다는거야?
" 완전 재밌어!! "
" 그쪽이 얘에요? 달밤에 이게 뭐에요 "
" 재미없어? 난 완전 신나는데! "
" 그럼 그쪽 혼자 신나게 노세요 나는 집 갈테니까 "
신나서 방방 거리고 있는 옆집 남자를 뒤로 하고 나는 뒤를 돌아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왜 자꾸 짜증나게 옆집 남자랑 엮이는 건지 그리고 그때마다 속이 울렁거리고 미슥거리는게 저 남자랑 나는 악연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놀이터에서 놀고(?) 나오니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해졌고 골목에는 낡은 가로등만이 반짝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길을 밝혀주는게 아니라 저 자신도 살려고 희미한 빛만 가지고 있는 것일뿐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는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혼자 골목길을 걷다가 뒤를 한번 돌아봤다. 예상대로라면 옆집 남자가 같이가자고 뛰어와야하는건데 내가 걸어온 골목길은 어둠만 가득했지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성인이고 남자인데 제 집 하나 못찾아오겠어 하는 생각을 하고 묵묵히 집까지 걸어왔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래,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보고 들어가자. 왜? 술취했으니까. 그냥 술취했으니까. 나는 나 스스로 단정지으며 집 앞 현관문에 서서 옆집 남자가 걸어 올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옆집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슬슬 몹쓸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어디 술취해서 꼬장 부리고 있는건 아닌지 아니면 지나가던 깡패한테 술주정해서 맞고 있는건 아닌지 온갖 상상이란 상상은 다 했다. 결국 나는 옆집 남자와 헤어진 놀이터로 다시 뛰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뛰어왔건만 옆집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네에도 뺑뺑이에도 미끄럼틀에도 어디에도 남자는 없었다. 뭐야 집에 갔어? 나는 괜한 짓을 했구나 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놀이터로 빠져 나가려고 했다.
" 오세훈 "
그 사람이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찾으려고 고개를 돌렸으나 어두워서 그런지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다시 한번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확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갤 돌렸다. 거기서 놀이터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는 옆집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옆집 남자 앞에 섰다.
" 여기서 뭐해요? 집 안갈꺼에요? "
옆집 남자는 내 물음에도 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옆집 남자에 어깨를 흔들었지만 옆집 남자는 좀처럼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나는 옆집 남자 앞에 쪼그려 앉아 옆집 남자를 흔들었다. 그제서야 옆집 남자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옆집 남자에 눈은 정확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씨, 또 속이 울렁거려서 토기가 밀려왔다. 인상을 찌푸리고 저를 바라보자 옆집 남자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술취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한 표정이여서 놀랬다.
" 집에 안가냐구요 "
" 오세훈 "
그가 처음으로 내게 반말을 했다. 물론, 아까 술김에 내게 반말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맨정신으로 보이는 상태에서 나에게 반말을 했다는게 놀라웠다. 무엇보다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옆집 남자이기에 나는 한순간 쫄았다. 그래도 어른인데 내가 너무 버릇없게 굴었나? 아님 내가 본인 싫어하는거 알았나? 너무 티났나?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옆집 남자가 다음 말을 할 때 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옆집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더니 점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고 무슨 시츄레이션인건지 옆집 남자가 점점 다가올수록 울렁거림도 점점 심해졌고 알수없는 묘한 느낌이 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근, 심장이 놀란건지 몇번 두근거리다 코 앞까지 다가온 옆집 남자의 얼굴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코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멈춘 옆집 남자의 얼굴에 도대체 어디로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옆집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옆집 남자에 눈을 바라보며 시선을 마췄다. 옆집 남자는 그 자세로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뗐고 그 말을 한 뒤 바로 내 얼굴을 스치고 어깨위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 너 왜 내 이름은 안불러줘? "
다음 날, 옆집 남자를 만났을 때 옆집 남자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얼굴 표정과 평상시와 같은 말투와 행동으로 나를 만났다. 그날 밤 나는 쓰러진 옆집 남자를 집까지 바래다 준 뒤 늦은 밤에 집으로 겨우 들어올수 있었다. 알수없는 울렁거림과 묘한 느낌에 나는 제대로 잠을 잘수도 없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 만난 옆집 남자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했다. 마치 나혼자 다른 세계에 갔다온 것 같은 느낌이였다. 어쩜 저렇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날수가 있지? 것도 자신이 한 일인데?
" 세훈 학생! 좋은 아침? "
작가 |
암호닉 받습니다. 이 글은 완결 후 메일링 할 예정입니다. 세준 이미지를 만들어주실 분을 찾습니다. 어떤 이미지던 상관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