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선배가 자꾸 밥을 산다_5. 둘리가 계속 되면 호이!
W. 사라질사람
반성문이 또 쌓였다. 이번엔 정구기를 두고 밥을 혼자 먹고 토꼈다는 이유였다.
솔직히..까먹었고, 선배가 없길래 이틈에 집에 가자는 속셈이었기에, 내가 백번 잘못했다.
근데..분명 소리내어 읽겠다고 했잖아..왜.. 또 써야해..? 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안뜬다. 눈에 태양이 안보인다. 나는 이대로 죽는건가..?
-정구기 집 여주집이랑 짱 가까오~빤낭와앙~>〈
"..응..빨리 갈게.."
-뚝
이상하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싶다. 왜지?
어제는 정구기와 한바탕 밥파티와 술파티를 벌였다. 의외로 나와 정구기를 은근 술을 잘마셨고, 둘다 제정신으로 파할 수 있었다.
다만 규칙이 생겼다.
01. 정구기와 점심을 못먹을 때면 치즈라면 두개 사주기(정구기한테>〈)
02. 또 정구기 두고 가버리면 다음달에 있을 축제 +당신의 장기를 뽐내주세요. 에 나가서 정구기 자랑100개 외치기.
+정구기 콩나물국 백번 끓여주기.
(이 종이 여주 냉장고에 붙이고 인증사진 보내기~>〈)
...찰칵
조용히 집에와서 자취하기에 딱 좋은 아담하고 저렴한 냉장고에 붙였고, 사진을 찍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이럴려고 내가..대학에 왔을까
하지만 나는 친구라곤 정구기 밖에 없는걸..꾹꾹 종이를 붙이는 스티커를 누른다.
-좌악____
...찢어졌다.
내 미래일까
알바만 했던 주말을 지나 오지 않았으면 좋을 월요일이 찾아왔다. 오티주가 지났기에 수업을 들으려 노트와 필기구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4월, 꽃이 만개하듯 학교로 들어가는 골목마다 커플들이 즐비한다. 그 누구도 청춘을 꺾을 수 없듯이
나도 저들을 꺾을 수 없다. 그저
-꺄~~자갸 어기 쩜 봐봐~
_모..요러케??
-아아앙 너무 예쁘당 울 쟈기>〈
"아..쩜 지나가겠습니다."
길 좀 비켜줬으면 한다.
-모야..자기 찍구있는데..매너없게,,
_..아냥! 괜찮앙>〈
...아니다 나는 매너가 없지 않다. 수업시간까지 뛰어야 할 시간이 없다
-zzzzzzzing_____
010-xxxx-xxxx
정구기(미영씨 아님)
-야!! 왜 안와!! 교수님 오셨어!!빨리와 너 급한일 갔다구 해둘게 빨리!!
"어..고마.ㅇ."
-뚝
고맙다. 정구가
"큼큼! 여주 학생 어서 앉으세요."
"..네..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그럼!"
"..예?"
"자..어디까지 출석 불렀죠?"
쎄하다. 나는 김 씨이기에 출석번호가 앞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에 늦을 것 같으면 뒷번호인 정구기가 둘러대 줬는데,
저번에는
'교수님!! 여주가 글쎄 너무너무 급한 마음에 신발을 깜박 안신고 나왔다지 모에여? 지금 아마 보건실에서 발 치료하고 슬리퍼 신고 오고있을거에여!!'
'교순님 교순님!! 여주가 너무 급한마음에 요기 앞 계단에서 굴렀지 모에여? 지금 아마 네발로 기어와서 늦는걸거에요!! 넓은 아량으로 품어주세여ㅠㅠ'
였고 그 다음은..._중략
그럼..이번에는 뭐지..? 뭔데 다들 나를 애잔하게 보지..궁금해서 옆에 수업을 듣고 있는 정국이를 툭툭 쳤다.
"정구가 이번에는 뭐라고 말했어?(소근소근)"
"사실은"
"(두근)"
"너어 치질수술한지 이주일 됐는데, 거기 실밥이 아주 조금 튀어 나와소 고거 보건실에서 약바르구 왔다구 했짛ㅎ(소근소근)"
"..아.."
"ㅎ흫 잘해찌?(소근소근)"
"..응..잘했다..고마워"
"이런칭구가 어딨냐 나한테 잘해~>〈(소근..소..)"
"..응..잘할게.."
그래서 청부업체 필리핀이 잘하던가..
-그 날 여주의 네이버 검색기록에는 '필리핀 살인', '필리핀 청부업체' 가 찍혀 있었다.
정구기가 모처럼 약속이 있다며 점심을 혼자먹으라고 했다.
정말 정구기 말대로 혼자 먹고싶다. 하지만
"잠깐만, 나 이것만 정리하고 금방 끝나."
"녜."
학식 내 앞에는 선배가 있었다. 오늘은 카레라이스 정식! 역시 선배가 메뉴를 골랐다.
하지만 정말 정말 맛있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과제 정리가 끝났는지 선배는 밥을 먹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먹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매콤한 카레를 먹으니 절로 기분이 풀어졌다.
"어머~ 석진아~!!"
"아,..석희였나..? 안녕"
"진짜 오랜만이다~ 이번에 복학한거야?"
"응, 너는 조교일 하는건가?"
"응~ 아휴..힘들어 죽겠어"
"많이 힘들긴 하겠다. 우리과가 괜히 공학과가 아니잖아, 기계들 보는것만으로도 벅찰텐데."
"엉~~맞아ㅠㅠ진짜 내 힘듦알아주는건 석진이 너 밖에 없다 정말.."
"에이~뭘~ 다른 후배들이랑 동기들도 조교 힘든건 알고있지~"
여자는 석진선배의 어깨를 친근하게 잡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선배얼굴을 보았다.
어, 웃네. 그때는 기분 나빠보이더니. 역시 여자친구랑 문제가 있는건가? 싶었다.
그러다 이야기가 끝이난건지 여자분은 다음에 보자며 우리를 지나갔고, 그때 선배의 표정은
언제 웃었냐는 듯이 표정을 싹 지웠고, 어깨를 그때와 같이 탈탈 털어냈다.
실수가 아니다. 선배는 여자친구와 저 조교님께 악의를 표하고 있다.
왜? 그렇게 앞에서는 웃었고,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왜 그런거지?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선배는 한참이나 어깨를 털어냈고,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나를 바라봤다.
"내가 왜이러는지 궁금해?"
"..네 조금은요."
"나도 궁금해"
"..네?"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도"
"..."
"궁금하다고"
선배는 당장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궁금하다고 그러다가 우리는 아무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뒤에 반정도 남은 카레를 누구라할것없이 모두 버리고 인사 한마디 없이 식당을 떠났다.
마지막 선배가 궁금하다며 물어올때 그때의 표정을 정말이지 잊을 수 없다. 남의 인생사에 궁금한것도 궁금할것도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상하게 궁금하다....왜일까
-석진의 이야기-
2015년 3월 2일 월요일 오전 10:08분
석진은 신학기를 맞이하여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이유는 이른 오후에 있을 개강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늘 입던 교복을 벗어 던지고서 나서는 집, 그리고 낯선 학교 등교길은 괜한 설렘을 가져다 주기 마련이다.
석진도 괜한 들뜸과 설렘이 가득한 발걸음으로 학교 정문에 들어섰고,
-찰칵
사진도 찍었다.
'축 15학번, 케드에 지지말자!"_라는 현수막을 찍었다.
학교와 집은 꽤나멀었고, 그렇기에 자취방도 알아보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날이 좋았다. 초봄인데도 불구하고 온화한 기온과 이른시기에 피어 빛나고 있던 개나리와
바쁜듯 여유로워 보이던 학생들까지, 석진은 새로운 설렘에 기대가 자신도 모르게 부풀었고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강당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참여했던 개강식은 즐거웠고, 이전 오티때 개인적인 이유로 참여하지 못해 동기 사귀기가 힘들었을 자신에게 꽤 그럴듯한 동기도 생겼다.
그렇게 빠르고 따사롭게 3월이 지나갔고, 과제와 시험으로 얼룩진 4월이 서서히 다가왔다. 일은 늘 그렇게 서서히 조용히 다가온다.
그 전의 행복을 다 덮겠다는 듯이.
"야 석진아, 혹시..이것만 해줄 수 있어?"
"..석진아앙..나 오늘 못할것같은데ㅜㅜ대신 해줄 수 있어?"
"..미안해ㅠㅠ내가 진짜 발표를 못하는 체질이라서..ㅜㅜ진짜 미안"
"어!!맞아..깜박했다!!..미안해ㅠㅠ내가 대신 맛있는거 사줄게.."
"그럴 수 도 있지 뭐, 내가 할게"
석진은 지쳐갔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은 늘 '을'이면서 '갑'이었다.
조별과제를 할 때 똑 부러지고 성적을 중요시 여겼던 석진은 늘 열심히 하려 했고,
그에 부응하듯이 해내는 과제물은 늘 A+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석진의 거부 못하는 성격과, 배려심 깊은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같다.
이에 석진은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싶어졌고, 앞에서는 웃으며 과제나 일을 했던 '을'이었지만 뒤에서는 교수님께 바로 자신의 불공평을 말하는 '갑'이 되었다.
또한 묘하게 사람의 꼼수가 눈에 가득 들어왔고, 석진의 외모와 부를 이용하여 자신을 과시하는 여성을 많이 알아차렸다.
아마 그게 3학년 초, 영장이 나왔을때였나.
본격적으로 모든 인간을 혐오하게 되었고,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석진은 가면 갈 수록 자신을 웃는 가면에 숨기는 일은 쉬워졌고, 남을 엿먹이는 것은 대범해졌다.
석진은 늘 이런일들을 '공평' 이라고 생각했고, 믿었다.
그리고 이제껏 들킨적이 없었다.
그런데 걸렸다 가면을 벗은 그 짧은 순간을.
'쟤를 어떻게 구워 삶지'
_둘리가 계속되면 호이!
_권리가 계속되면 그게 호의인줄 안다.
그래서 정구기는 뭐한다고
"핫시 여쥬가 써준 고 어디에 붙였도라! 냉장고에 없던뎅!!"(그날 취했던거 마즘, 아무튼 취했었음)
-정구기의 약속, 집에 가서 여쥬 반성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