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마지막 시즌입니다. 아직 시즌 1을 안보셨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 시즌 1을 먼저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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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hmello(마시멜로), Anne-Marie(앤 마리)-FRIENDS
괴물들과의 기막힌 동거 Ⅲ 20 (完)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후회로 남았다.
그때 그 아이를 못 본 체 했더라면.
그때 그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그때 삶을 포기했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텐데..
#96 시간이 더 흘러
무의미한 시간이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는 무의미한 시간 속 나는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애들 싸우는 거 말리고, 웃고, 떠들고. 딱히 무엇 하나 기억에 남은 것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루였다.
“아아아!!! 순영님!!!!!!!!”
“아 왜!!!! 뭐!!!!”
“박력분을 사오라니까 중력분을 사오시면 어떡하냐고요!!!!!”
“그 가루가 이 가루지!!!!!! 다 같은 가루 아니냐?!!!!!”
“아!! 완전 다른 거라고요!!”
“다시 사오면 되잖아!!! 거 더럽게 떽떽거리네!!!!!”
우리가 충분히 익숙해진 찬이는 순영이에게 역정을 내더니 씩씩대며 나간 순영이를 확인하곤 평온해진다. 보통 익숙해진 게 아닌 거지... 찬이의 머리를 쓸어주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컵은 간편하게 능력으로 가져와 식탁에 내려놓고 물을 따르는데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준 준휘가 말했다.
“이제 12월 말인데 슬슬 인간 찾아가야지.”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맨날 별 생각 없이 지내니까 모르지.”
“마녀님한테 말 좀 예쁘게 해요.”
“저건 언제 저렇게 머리가 큰 건지. 권순영이 애를 여럿 망쳤지.”
준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엇! 그럼 핸드폰 켜도 되겠다. 혹시라도 추적이 될까봐 약 2년 넘게 꺼져있던 폰이었다. 재빠르게 방으로 들어가 책상 서랍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켜 보았다. 혹시 안 켜질까 봐 불안했으나 금방 전원이 들어왔다. 켜지는 동안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려니 명호가 물이 담긴 컵을 들고 열린 문 밖에서 노크를 했다.
“아이고, 따라 놓고 잊어먹었네.”
“와, 무슨 알림이 이렇게 많이 와요?”
“내가 예상해 보건데 최승철의 욕이 담긴 문자가 8할일 거야.”
미친 듯한 알람 후 드디어 핸드폰이 잠잠해졌다. 명호가 건네주는 물컵을 받아 마시며 문자함에 들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최승철에게서 99개가 넘는 문자가 와있었다. 정한이나 지수에게도 문자가 와 있었는데 지수에게는 딱 한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그렇기에 내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수 먼저 확인해봐야지.
[슬슬 나타날 때 되지 않았어? 원우가 너 가만 안 두겠대]
와... 이거, 진짜 지수가 보낸 게 맞나...? 홍지수 확실해? 날짜를 살펴보니 그제 보낸 거였다. 그래도 옛정이 무섭긴 한가보네. 지수가 내 걱정을 다 해주고. 최승철에게서 온 문자는 미리보기에 찾아 죽일 거라는 내용이었으므로 대충 확인만 하고 정한이 문자를 확인했다. 걱정된다는 내용이 반인 문자들의 마지막은 지수와 비슷했다. 원우가 너 죽이겠대. 뭐, 모르는 건 아니었으니. 이제 슬슬 아가 찾아가야지.
#97 두근두근
오랜만에 수정구슬을 이용해 아가를 찾아보았다. 사무실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는 아가가 보였다. 오, 진짜 회사 다니고 있었네. 으으! 우리 아가 너무 잘 컸어. 괜히 뿌듯한 마음에 발걸음에 흥이 들어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에서 차키를 챙겨드니 순영이가 돌아본다. 눈 마주친 김에 순영이 데리고 가야지.
“같이 가자 순영아!”
“어디가게?”
“아가 데리러! 갈래?”
“당연하지. 누가 하는 부탁인데.”
일어서는 순영이에게 팔짱을 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금방 오겠노라고. 아이들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잠깐만. 신발 다시 신자.”
순영이가 갑자기 멈춰서며 말했다. 그제야 밑을 내려다보니 신발끈이 풀려 있었다. 빨리 가고 싶은데... 어차피 차에 가서 묶으면 되기도 하고.
“괜찮아. 그냥 가자. 빨리빨리.”
“아니야. 넘어져.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네가 다치는 거 싫어. 내가 악마라서 그런 거 같잖아.”
“흐음, 알았어. 내가 묶, 으려고 했는데 이미 묶어주고 있네...”
“나 신발끈 잘 묶어.”
순영이가 신중하게 신발끈을 묶어주었다. 난 그런 순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 묶자마자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을 잡은 순영이가 힘을 줘 일어났다. 아, 만지지 말랬지. 또 뭐라 할 순영이를 기다렸으나 순영이는 그저 웃으며 차가 있는 방향으로 손을 끌었다.
“왜 뭐라고 안 해?”
“이게 야옹이의 애정표현이라면 그것마저 받으려고.”
“다른 것도 할 줄 알아.”
“알아. 내가 감당을 못해. 만약 해줄 거면 해준다고 말 좀 해줄래?”
“장난은~”
맑게도 웃은 순영이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나도 웃어주며 조수석에 올라타니 문을 닫아준다. 차 앞쪽으로 돌아온 순영이가 운전석 문을 열며 들어와 시동을 걸었다.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순영이의 마음이 참 고맙다. 그런 순영이를 가만히 보았다. 한 손으론 핸들을 한 손으론 기어를 잡은 순영이가 나를 돌아본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봐?”
“순영아, 새삼 느끼지만 고마워.”
“...낯간지러워. 그런 말 할 거면 사랑한다고 해.”
“그건 당연한 거니까.”
“아 뭐야, 하여튼 쥐락펴락.”
호탕하게 웃은 순영이는 내 쪽으로 다가와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아참, 또 까먹었었네. 머쓱하게 웃는 날 확인한 순영이가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별장을 빠져나와 한적한 도로가 이어진다. 그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순영이가 한숨 자도 된다고 말한다.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아가 만나는데 우린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겠지. 뭐가 어찌됐든 일단은 설레서 잠이 오지 않는다.
#98 아가야!
아가가 일하는 회사 앞에서 아가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언제 끝나려나. 이미 갔으면 어떡하지? 다시 수정구슬을 작동했다. 아직 회사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아가를 보니 화가 난다. 지금 어?! 말단이라고 막 굴리는 거야!?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우리 아가가 어떤 아가인데 이렇게 굴리냐고!! 아! 못 참겠어!
“순영아 쳐들어가자!”
“그래, 그래. 가자.”
결국 순영이와 함께 회사 내부로 들어갔다. 무슨 회사에 안내데스크도 없어. 어디로 가야할까... 어디로 가면 아가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는데 순영이가 앞을 막아선다. 왜? 빼꼼 나와 보니 아가가 이상한 포즈로 멈춰 있었다.
“아가!!!”
“어우 목청 뭐야... 놀라게 하려고 했는데 순영...씨 때문에 망했네요.”
“호칭 뭐야. 내가 네 친구냐?”
“아니 그럼 여기서 그쪽이 뭔지 불러드려요? 여기 회사 사람들도 많은데.”
“아가 너무 오랜만이다, 그치? 잘 지냈어? 회사가 막 굴리지? 너 막 엄청 빠르게 움직이던데!”
“아, 퇴근준비 하고 있던 건데... 저 퇴근에 누구보다 진심이라서요.”
아, 그런 거였니? 역시 우리 아가 제 살 궁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지! 잘 컸어. 대견한 아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으려니 아가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근데 무슨 일이세요? 아직 13년 정도 남지 않았나?”
“아... 아가, 나 좀 살려줘.”
“또 어디서 뭔 사고를 친 거예요?! 내가 못살아 아주.”
“아니, 전원우가 날 죽일 거래... 정한이랑 지수가 돌아가며 문자를 보냈더라고... 나랑 최승철 만나러 가자. 어때?”
“...으씨, 오랜만에 이름 들으니까 울컥하네... 저 일단 회사, 음, 그럼 3일 뒤 주말에 가요. 연말이라 연차를 이미 다 써버려서...”
“히히. 그래. 그러자.”
오랜만에 만나는 아가는 달라져 있었다. 조금 더 의연해져 있었고 우리에게 거리낌이 없었다. 우리가 없을 때 아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답을 찾은 걸까...?
#99 재회
약속했던 3일 후 아가와 함께 최승철 집으로 향하고 있다. 운전은 순영이가 해줬다. 어쨌든 최승철 집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 혼자 보내는 건 죽어도 안 된다며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다. 아가는 뒷좌석에 앉아있다. 눈미러로 확인해 본 아가는 자신의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창밖을 보는 것을 반복했다. 오랜만에 최승철을 만나러 가는 거라 아가도 꽤나 심란한 모양이었다. 뒤를 돌아 아가를 보며 물었다.
“아가, 최승철 보러 가는 게... 걱정이 많이 돼?”
“흠... 네. 더 잘생겨졌으면 어떡하죠? 저 안 그래도 최뱀파 얼굴을 많이 좋아하긴 했는데...”
“아, 그 걱정이었구나.”
“야옹이 생각보다 쟤가 더 강해.”
“그런 것 같네.”
나오는 웃음을 흘리며 앞을 보았다. 거의 다 와 가는데, 긴장은 내가 되네. 후... 숨을 크게 내쉬는데 아가가 내 어깨를 톡톡 친다. 그런 아가에게서 핸드폰이 전해져 왔다. 응? 영문을 몰라 아가를 보니 번호 달란다.
“뭐야~ 번호 따는 거야? 나 쉬운 여자 아닌데~”
“아 싫음 말고요.”
“으음, 줄게. 줄게. 아가 많이 야박해졌네.”
“저 회사 다니면서 늘은 게 있는데, 단호해지는 법이에요. 사무팀 애들이 뭐만 했다 하면 갈구거든요.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대처해야 그쪽도 주춤해요.”
“오... 아가 아주 전문가가 다 됐네.”
“그럼요. 프로페셔널하죠.”
거만하게 다리를 꼬는 아가를 보며 웃다가 번호를 입력하고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그대로 받아서 저장을 마친 아가는 또 창밖을 내다본다. 이 와중에 최승철 집이 저 멀리 보인다. 여기를 내 발로 직접 왔다. 미쳤지... 미치고도 남은 거지. 마당에 들어선 순영이가 기막히게 대충 주차해놓은 차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주차 한 번 개똥같이도 해놨네.”
흠, 이거 홍지수 차 같은데 주차를 정말 기이하게도 해놨네. 아, 긴장이라도 풀 겸 지수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내 번호로 전화를 걸면 다 알 테니까, 아가 폰을 좀 빌려야겠다.
“아가, 핸드폰 좀 빌려줄래?”
“여기요. 근데 뭐하게요?”
“장난전화 좀 해볼까 하고.”
“제 폰으로요?”
“응. 다 왔으니까 아가는 마음의 준비를 좀 하고 있어 봐. 난 지수한테 장난이나 쳐야지~”
누구한테 하는 전화인지 알게 된 아가는 등받이에 편하게 기댔다. 내 핸드폰에서 홍지수 번호를 찾아 아가의 폰에 입력한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길어질 줄 알았던 연결음은 금방 멎었고 홍지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1230 차주분 맞으신가요?”
‘예, 맞는데요.’
“아~ 그럼 차 좀 빼주시겠어요?”
‘네? 차를 빼달라고요?’
“네. 제가 지금 주차를 하려고 하는데 영 자리가 안 나네요.”
‘아니 차를 뺄 일이 없는데,’
전화는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어리둥절해 보이던 지수 목소리가 계속 생각나 흐흫 웃고 있는데 순영이가 그새를 못 참고 클락션을 울렸다.
“승질 좀 죽이자 순영아. 릴렉스 하는 법을,”
“야옹이가 딴 남자 생각하면서 웃는데 내가 어떻게 침착해질까?”
“으음,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지. 내가 조금 더 순영이 생각만 하도록 노력을 해볼게.”
“아, 뭐야. 누구 앞에서 염장을 지르는 거죠?”
아가의 잔뜩 좁힌 미간에 웃음이 나왔다. 순간 아가의 눈빛이 변한다. 아가의 시선을 따라 가니 애들이 보였다. 다 모여 있네. 모임이었나. 재밌게, 사네. 먼저 내린다는 순영이를 저지하고 나오지 말라 일렀다. 마지못해 끄덕이는 고개를 확인한 후 차문을 열고 내렸다. 나와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최승철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너 내 눈에 띄면 가만 안둔다고 했지."
"곧 새해잖아~ 새해 선물 가져왔지!"
"...미쳤어?"
"안타깝게도 내가 이젠 미치지 않기로 해서 미치진 않았어."
그래. 아가의 영생을 위해 반쯤 미쳐 살던 나였지만 이제 난 다 이루었으니까. 뒷좌석으로 가 문을 열었다. 조수석에 바짝 기대있는 아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기껏해야 우리 집 식구들만 있는 줄 알았죠...! 어쩐지 홍천사님께 장난전화를 하더라니...”
“무슨 상관이니~ 이제 다 어울려 지낼 텐데. 일단 어서 나와.”
“아, 잠시만!”
“으음, 시간 더 끌면 안 돼. 아가 내 수명이 지금 1시간 정도 남았을 거야.”
“아이 진짜! 알았어요. 나갈게요.”
마지못해 아가가 차에서 내렸다. 모두가 모여 있는 지금 이 상황이 머쓱한 지 아가가 쭈뼛대며 말했다.
"아니 난 동거남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왜 다 있어요, 사람 민망하게...”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기늑대의 표정이 잔뜩 의아함을 담았다. 난 그런 아기 늑대보다 최승철의 표정이 더 궁금했기에 조금 더 멀리 있던 그를 보았다. 굳은 표정 그대로 눈에 눈물만 차오른다. 곧 그가 아주 빠른 속도로 내 앞에 섰다. 물론 그 전에 순영이가 내 앞을 막아섰다. 그게 너무 순식간이라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데 아가가 나와 순영이를 자신의 뒤로 세우며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최승철님. 반가워요.”
“...진짜라고...?”
“음, 진짠데... 어떻게 증명하지...? 아니 근데 내가 나라는 거에 대한 증명이 필요해요?”
“...아니. 필요 없어. 어디 아픈 곳은? 마녀가 또 허튼 짓 했어? 무사해? 괜찮아?”
“질문 좀 하나씩 해요. 전 다 괜찮아요. 마녀님이 배려해준 덕에 평범한 회사에서 외삼촌께 효도하면서 잘 지냈고요. 최승철님은요? 아픈 곳 없어요? 살 많이 빠진 거 같은데...”
“...아픈 거, 방금 다 나았어.”
최승철이 아가를 끌어안는다.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듯 아주 꽉 끌어안는다. 그래, 너도 많이 고생했으니까 이 정도로 끝내야지.
“우린 가자, 순영아.”
“어디를 가. 나랑 얘기 좀 해.”
정한이었다. 괜히 시간 끌다 큰일 날지도 몰라 망설이는데 지수까지 나섰다. 정한이 옆에 서서 나를 보며 묻는다.
“원우가 너 죽일지도 모른다니까 왜 아무런 말도 없이 여기로 나타난 건데? 진짜, 죽고 싶어서 온 거야...?”
“살려고 왔지~ 아가 데려왔잖아.”
“그게 더 이상 하잖아. 네가 죽인 애를!!”
“네가 봤니? 내가 아가를 죽이는 걸 직접 봤어? 보나마나 최승철에게 들었겠지.”
“네가 말을 안 해주니까 그렇지. 내가 몇 번이고 물어봤잖아. 근데 네가,”
“맞아. 내가 말을 안 해줬지. 모든 게 내 이기심이었어. 난 최승철이 나와 똑같은 고통을 맛보길 바랐거든.”
아가를 안은 그대로 나를 보는 눈이 날카로워진다. 그렇게 나를 째려보는 최승철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괴로웠니? 지난 3년간 넌 충분히 괴로웠겠지. 이로써 내 모든 복수는 끝났어. 내가 이루고 싶은 것도 다 이루었고. 그러니까 우리 이제 그만 엮이자.”
“누가 하고 싶은 말을...!”
악마의 손을 빌릴 정도로 절박했는데... 그런 나의 이야기는, 그저 나쁜 아이의 짓궂은 장난이 되었다. 악마의 손을 빌렸기에 못될 수밖에 없었던 건데. 이미 난 이 아이에게 모든 걸 기대고 있었으니까. 결국 이렇게 내 탓이어야 하는 상황이 넌더리가 날 정도로 싫어 순영이의 손을 잡았다. 그런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순영이에 힘을 얻어 말했다.
“뭐, 우린 영생을 사니까 언젠가 다시 만나서 이야기 하자. 아가야. 우리, 꼭 다시 보자.”
아가에게 인사를 건네고 지수와 정한이를 지나쳐 차에 탔다. 차를 둘러 운전석에 탄 순영이는 빠르게 그곳을 나와 주었다. 절박한 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난 그걸로 다 됐다.
#100 결말
집으로 돌아왔다. 어디서 난 건지 생일케이크에 달려있는 작은 폭죽을 터뜨려주는 찬이와 명호였다. 떨어진 잔해들을 주워 내 어깨에 올린 준휘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때론 담담한 그 말이 더 크게 와 닿는다. 주책맞게 눈물이 고였다. 간신히 울음을 삼키며 나 또한 담담하게 말했다.
“너도 고생했어, 준아. 이제 우리 우리를 위해 살자.”
고개를 끄덕인 준휘가 내 어깨를 토닥인다. 그게 너무 어색해서 웃음이 났다. 나의 웃음에 분위기가 풀어지니 찬이가 웃으며 말했다.
“마녀님 울다가 웃었대요! 큰일났네~”
“찬이도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저야 마녀님 덕을 본 거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우리 명호도 고생 많았어.”
“그래, 이왕이면 재밌는 걸로 찾아.”
“네. 많이 재밌으면 마녀님께 추천해드릴게요. 같이 해요.”
따뜻한 아이들의 덕담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순영이와 눈이 마주쳤다. 두 눈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어?! 놀라서 순영이에게 다가가 얼굴을 감쌌다. 순영이는 그저 내 허리를 감싸더니 그대로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어정쩡해진 자세 탓에 일단은 순영이의 등을 토닥이며 아이들에게 잠깐 방에 들어가 있으라 눈짓을 줬다. 다행히 바로 알아들은 아이들이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순영이 등을 쓸어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까지 버텨줘서 너무 고마워, 00야.”
아, 나의 불안을 이 아이도 알았나보다. 그동안 속으로 전전긍긍했나보네. 다 끝났으니 이제 조금은 솔직해져도 될 것 같다.
“응. 버티느라 많이 힘들었는데, 내 옆에 순영이가 있어줘서 계속 버틸 수 있었어.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나 좋아해줘서 고마워, 순영아.”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난 너 뿐이야. 그러니까 이제 나만 봐줘.”
“으이구. 알았어. 이제 딱 순영이만 볼게.”
“진짜지? 윤정한도 싫고 문준휘도 싫어.”
“에헤이. 친구는 사귈 수 있게 해줘야지.”
“나만 본다며!”
파묻었던 고개를 바짝 들고 나를 본다. 마주친 눈에 순영이가 먼저 눈을 피한다. 그런 순영이의 볼을 감싸며 짧게 입을 맞췄다. 놀라서 나를 보는 순영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너만 본다고.”
“...씨이, 너무 좋아.”
이제 더는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마음껏 표현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긋난 관계는 차차 나아지겠지. 지금의 난 당장 내 앞에서 맑게 웃고 있는 이 아이를 위해 살고 싶다.
천 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지속되던 내 오랜 권태는 이렇게 끝이 났다.
#에필로그
설이었다. 아가를 보기 위한 핑계를 생각하던 중 가장 그럴싸한 핑계를 위해 약 한 달을 더 기다렸다. 신정부터 구정까지 한 달이나 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으나 그래도 뭐, 두 달 아닌 게 어디야. 덕분에 집 나간 아기늑대를 찾으며 아가와 드라이브도 마음껏 했다.
집 나간 아기늑대 찾기를 끝내고 최승철의 집으로 돌아왔다. 차가 멈추자마자 아가가 차에서 내려 자신의 몸을 더듬거렸다. 난 혹여 문제가 있는 줄 알고 아가를 살펴보다 차에서 내렸다. 괜찮냐고 물으려는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아가가 순영이를 보았다. 나도 그런 아가의 시선을 따라 순영이를 보니 아가의 선물을 내려주고 있었다. 말 안 해도 척척 해내는 순영이가 기특하다. 흐뭇하게 순영이를 보다 앞을 보는데 어느새 최승철이 아가를 등지고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곧 아가를 돌아보며 이것저것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무사해? 괜찮아?"
"승철이 넌 너무 아가를 과보호해서 탈이야."
"...너니까 그렇지. 죽여 버린다고 했어."
흠, 언제 들어도 살벌한 말이다. 최승철이라면 충분히 날 죽이고도 남지. 난 그저 그런 마음이지만 순영이는 아닌가보다. 선물을 마저 내리다 말고 내 옆에 서며 말했다.
"말조심하길. 듣던 악마 고까운데."
"어허, 권순영. 엉아랑 누나랑 말씀 나누시는데 끼는 거 아니야. 아무튼 아가야 이거 다 새해 선물이야."
"...뭘 이런 걸 다."
"아가도 남자한테 좀 이뻐 보이고 싶을 거 아니야? 내가 아주 흡족한 걸로 골라왔으니까 꾸미고 그래. 그럼 난 가볼게."
"...뭔 꿍꿍이야."
"같이 살았던 옛 정이란다. 아참. 우리 아가 설거지시키기만 해. 지켜보고 있어, 최승철. 청소도 그만 시켜. 내가 우리 아가 그러라고 놔준 줄 아니?! 너! 청소랑 빨래, 설거지 잘해! 알겠어!?"
"우리 한솔님 건들지 마요!!!"
"이래서 자식 같이 키워봤자 소용이 없는 거야. 가자, 순영아. 피곤하다.”
그깟 좀비가 뭐라고, 아가는 나보다 좀비를 더 좋아하고... 손을 저으며 대충 인사하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으려니 순영이도 운전석에 올라탔다. 고개를 들어 아가를 보았다. 최승철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너의 결론이 그거라면 난 또 존중할 수밖에...
기분전환 좀 할 겸 순영이와 드라이브를 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잠깐만, 이 차... 홍지수차인데? 집 마당에 주차되어 있는 홍지수 차에 깜짝 놀라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윷판에 둘러 앉아 있는 정한이와 지훈이, 찬이, 승관이었다. 이게... 우리 집에... 이게...?
“어, 왔어?”
“뭐, 지...? 뭘까? 너희 집 착각 했니?”
어깨를 으쓱인 정한이가 명절 아니냐며 심심하면 도우란다. 정한이가 턱짓으로 가리킨 부엌에 가보니 명호와 지수가 전을 부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웃음이 먼저 터졌다. 나의 웃음소리에 명호가 나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마녀님 살려주세요. 기름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요.”
“잘 어울린다, 명호야~ 우리 명호도 요리에 소질이....”
차마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명호가 만든 새카만 전들이 쟁반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음, 우리 명호는 요리 시키면 안 되겠다. 정한이한테 요리를 맡기기 위해 정한이를 부르며 돌아보았다. 부른 건 정한이었지만 눈이 마주친 건 준휘였다. 아, 우리 준휘 불편하겠다.
“준아, 잠깐 나갔다올까?”
“아니야. 이런 적 처음이잖아. 마녀는 즐겨.”
“그렇지만, 준이 네가...”
“재밌어. 저기서 이찬 돈 잃는 거 보는 게.”
“아 그러게 준휘님 저 좀 도와달라고요!! 이 집안 순 사기꾼들만 있는 거 같다고요!”
“사기꾼이라니? 네가 자꾸 욕심을 내니까 우리가 앞으로 가지 못하게 먹을 수밖에 없는 거지. 윷놀이 처음 해보니?”
“아니 그러면서 자기들끼리는 서로 봐주는 건 무슨... 하... 아냐, 말해봤자 똑같아. 마녀님 죄송해요... 저 벌써 5만원 째 잃고 있어요....”
“아냐, 찬아. 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돈은 많으니까 걱정 말고 백만 원도 더 잃으면 내가 그땐 윤정한을 때려줄게.”
“음, 99만원까지만 따야겠다.”
얄밉게도 웃는 정한이다. 아니, 그래서 진짜 왜들 온 거래? 오랜만에 복작거리니 좋긴 한데... 정말 명절이라고 온 거야? 때마침 아기늑대가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아기늑대의 손목을 잡으니 아기늑대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보았다. 아이고, 갑자기 잡아서 놀랐나보다.
“앗, 미안.”
“어... 아니에요. 무슨 일이세요?”
“아기늑대야, 잠깐 나 좀 볼까?”
“네...!”
손목을 잡은 채 내 방으로 들어왔다. 손을 놓고 방문을 닫으니 아기 늑대가 내 소매를 다시 잡았다. 뭐지...? 곧 아기늑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에게 사과했다.
“그때 언니 나쁘다고 한 거, 죄송해요...”
“응? 나 나쁘다고 했었나?? 괜찮아. 나 금방 잊어~”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요... 생각해보니 전, 언니 편에 선 적이 없는 거 같아요... 눈에 보이는 것만 봤어요...”
“괜찮아. 내가 그렇게 보이길 바란 거야. 난 악마와 손을 잡았고 그렇기에 나쁠 수밖에 없던 거지.”
“왜, 우리랑 손을 안 잡았어요...? 우린 천사가 있는데...”
“복수를 위해선 천사의 선한 마음이 필요가 없어. 알량할 뿐이지. 난 복수가 하고 싶었고 그것엔 악마가 재격인 건 당연하잖아. 지금은 복수도 했고 꿈도 이뤘으니 여한은 없어.”
“그동안, 언니는 혼자였잖아요.”
“내가 왜 혼자였을까~? 순영이도 있고, 준휘도 있고, 명호도 있고, 찬이도 있잖아~ 괜찮아, 괜찮아. 이제는 모든 게 다 괜찮아. 정 그렇게 미안하면 아기늑대도 때 되면 안부전화 해주고, 정한이랑 가끔 놀러오고 그래. 난 그거면 충분해.”
입술까지 깨물며 잘 참아내던 아기늑대는 끝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들린 울음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지훈이였다.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서 아기늑대를 안아 천천히 등을 토닥인다. 익숙해 보이는 그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며 지훈이를 흘겼다. 나와 마주친 눈에 화들짝 놀라며 슬금슬금 눈을 피한다. 그 모습이 웃겨서 웃고 있는데 정한이가 들어와선 버럭 화를 낸다.
“넌 또 뭔 말을 해서 우리 공주를 울려?! 그래놓고 웃어?!”
“내가 뭔 말을 했다 그래!!!”
“마녀언니한테, 뭐라, 하지 마요..!”
“그것 봐! 아기늑대도 내 편이구만!!!”
“자식새끼 키워봤자 소용없는 거지... 그렇지...”
“그 맘 내가 잘 알아... 우리 아가는 그 좀비밖에 없더라...”
결국 정한이랑 공감대만 형성했다. 물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며 순영이가 말했다.
“다 되도 윤정한은 안 된다고 했어.”
그래, 우리 순영이가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사이지... 내가 이해해야지 어쩌겠어.
문득,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정한이네 식구들이 보였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그땐 최승철네 식구들도 섞여있겠지...? 작은 바람을 가지고 거실로 나가니 홍지수가 나에게 전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먹어 봐. 맛있어.”
이제는 진짜 모든 게 다 괜찮다.
***
와아아아아ㅏ아아아아ㅏ아아아아아ㅏㅇ
괴기동이... 드디어... 완결 났네요...
시원섭섭한 이 기분....
나만 그런 거 아니죠8ㅁ8
진짜 찐으로 끝나버렸다...
시즌 3까지 다 끝났어8ㅁ8
결국 괴기동은 모두에게 해피엔딩으로 끝났네요.
햅쀠엔딩~ 햅ㅂ쀠엔딩~
큰 주제를 후회로 잡았으나
끝까지 후회로 끝내긴 싫었어요.
약 400년간의 질긴 후회의 끝은 또 다른 행복이었으면 했거든요.
결국 모두가 제 각기의 행복을 찾았으니
앞으로 그들은 서로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겠죠?
시즌 3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참 많았어요.
각자의 과거도 다루고 싶었고,
마녀의 후회도 다루고 싶었고,
순영이와의 사랑도 다루고 싶었고,
뭐 기타 등등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20편안에 다 담지 못해 넘어간 부분이 참 많아요.
다 넣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텍파에 넣을 예정입니다.
넣을 예정이라는 건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
결론은 조금 걸린다는 거죸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뭐 그렇지...
그래도 15편까지는 완성해놨으니
5편만 더 하면 됩니다... 아마...?
*텍파 공지*
텍파는 언제나 그렇듯
따로 이메일 받을 글을 올려놓을 게요.
암호닉이 있으신 분들은 그곳에다가 이메일을 적어주시면
완성하는 즉시 수정알림 보내드리고 텍파도 보내드리겠습니다^0^/
지금까지 괴물들과의 기막힌 동거를 사랑해주신 독자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0^/
성장통, 유한성, 유레이드, 호시탐탐, 0917, 후아유, 봄유, 루미너스, 아몬드봉봉, 뿌랑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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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암호닉 분들을 끝으로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