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동안의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던 올림픽이 끝났다.
다른 종목의 경기가 여럿 남아있을 터였지만 제 경기가 끝이 난 것으로 느껴지는 안도감과 편안함과 함께 1500m..비록 주종목은 아니지만 메달 하나 따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에 괜히 속이 메스껍고 머리는 어지러워졌다.
경기 예선 첫 날부터 실격이라 판정되었던 때의 미칠듯한 압박감과 실격이 아니라고 재판정 되었을 때의 안도감과 그 후 따낸 은메달로 느낀 자기 위로적 느낌이 다분한 만족감과 실격판정에 자신을 위로해줬던 쑨양이라는 녀석과의 공동 은메달 수상 때의 떨떠름함과 만족감, 그리고 지금 느끼고 있는 자책감이 온 전신을 휩싸며 자신을 공격하는 듯 했다.
그 순간에 울려오는 청아한 벨소리에 애써 몸을 일으켜 나가보면 고개를 들어야만 비로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그, 쑨양이 서있었다.
얄밉다.
제 앞에서 둥그렇게 눈을 뜨고 사람 얼굴을 뚫어져러 쳐다보는 얼굴의 주인이 참 얄미웠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새카만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대는 모습도 제 오랜 우상에게 자랑이라도 하고팠는지 목에 달고 온 두개의 금매달과 그 속에 유독 제 빛을 잃은 듯한 은메달도 그것들을 바라보며 괜스레 자격지심이 생겨나는 제 자신도 모든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역시나 "My Park?" 하는, 혼자 얼마나 불러댔는지 다른 발음은 죄다 어눌했던 주제에 또렷한 발음을 자랑하는 착해빠진 목소리였다.
4년에 한번인 올림픽에서의 금메달, 거기다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이 사내가 왜 제 앞에 서있는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안에 있는 대사는 영어예요!
(뭐야? 무슨 일이야?)
치밀어오르는 욕지기와 구토감을 애써 참아내고 쥐어짜듯 내뱉은 목소리는 다소 차가웠다. 그 목소리에 당황한듯 (어...음...My Park, 어디 아파요?) 라고 물어오는 그였다.
(아니, 괜찮아. 무슨 일인데?)
(아..저..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 온건데...아프면 내일 올까? 아니면 저녁때?)
(괜찮다니까. 할 말 있으면 들어와서 해.)
문 손잡이를 잡고 버티고 서 있는 것이 힘이 들어 '들어 와라.' 한마디를 건네자 달짝한 사탕을 하나 건네받은 아이마냥 얼굴에 화색이 돈다. 고작 두살이라는 나이차이가 사람을 이렇게 귀엽게 만드나 싶어 튀어나온 피식하는 실소에 눈 앞의 사내는 그새 눈을 둥글게 뜨고 나를 빤히 바라본다.
(My Park.)
그답지 않게 다소 경직된 빛을 띄는 목소리에 빤히 바라보면 그새 어색해하며 눈길을 피한다.
(왜 계속 불러? 할 말 있다며.)
(아..할 말이라는게..그게, 음, 말해도..괜찮아?)
(말하러 온거잖아. 새삼스럽게 괜찮아는 뭐야? 말해.) 다소 웃음기를 띄고 되묻는다.
(나.....머리......)
(머리가 왜? 아프다고?)
(아니! 나..머리 한번만....쓰다듬어...달라..고..)
(네 머리를 나보고 쓰다듬어 달라고?)
저보다 15cm가 크다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진정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달라 했는가를 의심하며 되묻자 그새 그 머리를 까닥까닥 위아래로 흔들어댄다.
(내가..왜?)
퉁명스러운 물음이 아니였다. 정말 단순하고 순수한 의문이였다. 저가 대체 왜 저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어줘야 한다는 건가.
(나..금메달..땄으니까, 그러니까! 우상한테..칭찬..받고 싶어.)
긴장한듯 더듬더듬 뱉어내는 이유에 저도 모르게 혀끝을 착 친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앉아있는 강아지상의 소년같은 사내는 정녕 은메달도 동메달도 따내지 못한 저에게 칭찬이 듣고 싶어서 았다는 건가. 뭔가 뒤통수를 확 치고 지나간듯한 어이없음에 계속 자신을 짓누르던 이상한 감정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고 헛웃음만 맴돈다.
그러고는 친절한 웃음을 입에 가득 베어물고 (그게 뭐 어렵다고 그러냐?) 살가운 한마디를 내뱉았다.
(어?! 정말? 정말 해주는 거야??)
긴장의 뜻을 가득 담고 데굴데굴 굴려지던 새카만 눈동자가 격양된 목소리와 함께 커졌다.
의자에서 슥 일어나 손을 뻗어 머리로 다가갔다.
크게 울리는 침 삼키는 소리에 괜스레 같이 긴장되었다.
손가락 끝에 처음으로 닿여오던 머리카락의 느낌은 그저 부드러웠다. 손 가득 번져오는 그 머리카락과 그의 부드러움에 기분이 좋아졌다.
(계속 쓰다듬어줘?)
그 질문에 (응..응, 조금만..) 이라며 양 볼을 붉게 물들인다.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같은 모습에 보드라운 머리칼 사이를 더욱 열심히 손으로 헤집고 다녔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지나가는 새카만 보드라운 머리카락들에 이내 흐릿해지려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부드럽게 손으로 머리를 톡톡 친다.
(이제 가야지? 감독님이랑 코치님한테 칭찬받아야 되잖아.)
싱긋 웃으며 문쪽으로 이끌자 후다닥 몸을 움직여 (저..저녁때!! 그 때 다시 올게!!)를 외치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