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쪽팔림을 감수하기 위해 뒤집어써썬 이불을 내팽겨치고 일어난지 몇시간째. 할일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침대 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그 때 제 머리 속을 스친 생각이 있었으니, 바로 쑨양이 외치고 사라졌던 (저녁 때 다시 올게요!!) 였다.
젠장! 대체 왜 그걸 이제서야 생각해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눈치없이 어벙한 쑨양이라는 사내가 방에서 한 번 쫓겨났다고 저녁 때 오지 않을 리가 없다. 결국은 저녁 때 그의 얼굴을 또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명이 어색할거다. 쑨양은 제 혼자 생글생글 웃으며 좋아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입장은 달랐다. 불과 몇시간 전 자신이 추태를 부린 남자와 단둘이 있을 순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단둘이...? 그래. 단둘이만 아니면 어느정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친한 선수들 중 마음놓고 같이 있을 만한 사람이 떠오르질 않느다. 아직도 경기가 남아있는 선수들이 태반이었다. 결국 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현재 모든 경기가 끝난 선수들 중 자신과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아! 하는 감탄과 함께 벌떡 일어섰다. 200m 금메달의 주인공이었던 아넬이 있다. 셋이 함께 있을 핑계로도 수영이 있다.
"근데...말이 안 통하면 어떡하지?"
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말이 안 통하면 어떠랴. 사람에게는 그리고 저에게는 언어보다 위대한 손짓 발짓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쑨양이 오자마자 아넬에게 달려가는 것은 좀..많이 웃길지도 모른다. 결국 아넬을 지금 자신의 숙소로 데려와야 겠다는 생각으로 벌떡 일어섰다.
망설임 따윈 없다. 당당하게 벨을 누르고 (나야! 박태환.)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곧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문이 열리자 마자 보이는 건 얼굴이 아니라 가슴팍이니 쑨양이고 아넬이고 어찌된게 전부 저보다 큰 인간들 밖에 없는지 자연스레 얼굴이 찡그려 진다.
(Park! 무슨 일이야?) 젠장. 넌 프랑스 인인데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하니.
(심심하지?! 내 숙소가서 같이 놀자) 또 한번 젠장이다. 제가 생각해도 병신같다. 다짜고짜 찾아와 하는 말이 이게 뭔가하는 생각과 자신의 언어 능력에 자괴감이 들었다.
(아..그래.) 비웃었다. 긍정의 대답을 표하긴 했지만 방금 분명 입을 올리고 웃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였다. 현재 시각 6시 30분. 언젠진 모르겠지만 쑨양이 말한 저녁이 되기 전에 아넬을 제 숙소로 데려갈 수 있어서 그나마 안도감이 들었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데려오긴 데려왔는데 할 말이 없었다. 더군다나 할 일도 없었다,
(저기..Park. 뭐 하려고 데리고 온거야?)
할 말이 없었다. 말 그대로 대꾸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땐...
(자자! 같이! 경기하고 연습하고 피곤했을 거니까 같이 자자! 손잡고! 같이! 어..그러니까) 앞 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말을 내뱉으며 아넬을 올려다 봤다. 제길,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듯 입가 근처가 움찔거린다. 이내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침대에 드러눕는다.
"혼자 자기 무서워서 불렀어? 아하하, 귀엽네" 어라..프랑스어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두번 세번 평소의 습관대로. 침대에 누워 손을 내미는 아넬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다. 이 자식, 진짜로 손 잡고 잘 생각인가 보다. 별수 있으랴. 먼저 손잡고 자자고 한 것은 자신이었으니. 푹신한 이불 위에 누웠는데 자신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영 불편한 상대 옆에 그것도 사내랑 손을 잡은채로도 솔솔 잠이 잘 오는 것을 보아 말이다.
어느새 잠든 태환을 바라보는 아넬의 입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다짜고짜 찾아와 같이 놀자고 하더니 숙소에서는 손잡고 같이 자잔다. 장난인 줄 알았더니 진짜로 잔다. 잠버릇인지 입술을 우물 거리는 것을 도통 멈출 기미가 안보였다. 결국 자신도 눈을 감았다. 옆에서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사내를 자장가 삼아 손을 꼭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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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9시다. 이제 슬슬 태환에게로 갈 시각이었다.
7시부터 "이 정도면 저녁인가? 아닌가?'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하던 제가 9시가 되어서야 결심을 내리고 벌떡 일어섰다. 가본 적은 한 번 밖에 없지만 머리 속에 지나치게 잘 입력되어 있는 태환의 숙소로 향했다.
꽤나 먼 거리에 만나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밥을 먹기에는 늦은 시각이다. 결국 술로 결정하고 어느새 도착한 태환의 숙소 문손잡이를 잡았다. 태환은 생각보다 조심성이 없는 성격이었나 보다. 이번에도 역시 철컥거리는 소리 대신 바닥과 가볍게 마찰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Park. Park.) 조심히 이름을 부르며 안으로 다가섰더니 눈 앞에 보아는 해괴한 광경은 몇 시간 전까지 자신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잠에 빠져있던 사내가 아넬이라는 작자의 품에 파묻혀 정신없이 자는 모습이었다. 대체 이 남자에게 경계심이라는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이 남자는 정말이지 모든 선수들을 제 남자로 만들겠다는건가. 툭-하고 애써 붙잡더 인내심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그를 억세게 잡아 끌었다. 그의 몸이 가볍게 따라올라온다.
(Park!) 가볍게 외치자 슬그머니 눈을 뜬다. 저를 화나게 만들어놓고 잠이 퍽이나 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젠장. 온갖 질투의 마음을 다 담아 화내려 했는데 화낼 수가 없다.
손으로 눈을 부비적 부비적 비비더니 입으로 "푸흐흐흐...." 하는 웃음을 내뱉고는 (쑨양이다....) 한마디 후에 다시금 자기 품에 폭 안겨오는 모습에 얼굴은 달아오르고 화내고 말리라. 다짐했던 꾹 다물고 있던 입이 금새 풀어지며 결국은 바보같이 웃음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10분후에는 태환과 아넬을 제정신을 차리게 해 원래 목적이었던 술자리에 데리고 가야 겠다..
*사담*
오늘도 약간? 양이 길어진 것 같아요!
이제 슬슬 박태환 선수의 수다운 모습이 나오려고 합니다ㅋㅋㅋ몇화간 달달모드다가 몇화간 또 진지진지 모드일 것 같아요!
아참, 그리고 전 절대 박태환 선수를 죽이지 않아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