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빚쟁이들을 위하여 (^^)
임신 VER
1번 차학연
「우와, 애기 움직인다.」
임신 반개월에 접어들자 슬슬 뱃속에서 아기의 태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벌써 잔뜩 부른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귀를 대었다가, 말을 걸었다가, 사랑이 듬뿍
지금도 이런데 아이를 낳으면 얼마다 더 예뻐 해주려는지, 저절로 웃음이 난다
「오빠는 딸이었음 좋겠어, 아님 아들이었음 좋겠어?」
「글쎄? 그냥 너 닮았음 좋겠다.」
「맞아, 아빠 닮으면 까매서.」
「뭐? 야.」
「장난이야, 장난.」
배를 만져주는 손길을 받다가 장난 좀 쳤더니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며 밉지않게 흘긴다
입술에 가볍게 쪽, 뽀뽀를 했다 떨어지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정수리에 닿는 부드러운 오빠의 뺨에 눈이 감긴다
「책 읽어줄까?」
「우리 아가, 아빠가 책 읽어준대!」
「기다려봐.」
고개를 끄덕이며 배에 대고 속닥속닥, 아빠 좋은 사람이다 그치?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동화책을 한 권 집어든 오빠가 제 다리에 책을 올리고 읽기 시작한다
사랑이 듬뿍담긴 나른한 목소리에 하품이 난다
「잘까?」
「미안해.」
「뭐가 미안해? 얼른 누워.」
목과 허리를 아프지 않게 받쳐주며 몸을 천천히 누인 오빠가 배를 토닥이다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가만히 그 손길을 받으며 오빠의 손위로 내 손을 겹쳤다 따뜻한 손이 마주잡힌다
그만 자라며 눈꺼풀을 내려주는 오빠 때문에 결국 눈을 감았다 이제야 뱃속에 아기도 편안한지 태동이 점점 작아진다
이마와 배에 가볍게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잘 자, 애기도 애기 엄마도.」
2번 정택운
임신 반개월에 접어들자 입덧도 심해지고 손발이 퉁퉁 부었다
오빠가 밤새도록 간호해주고 보살펴 줬는데도 몸이 아프고 힘들어 눈물이 났다
밥도 겨우겨우 넘어가고, 오늘도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부은 손발을 주무르던 오빠가 물었다
「먹고 싶은 건 없어?」
「음, 아! 애기가 과일 먹고 싶대.」
「과일?」
고개를 끄덕거리자 오빠가 알았다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뒤로 넘겨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른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오빠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곧 쟁반에 사과와 딸기, 수박, 오렌지, 등등 철이 아닌 과일을 한 가득 담아온다
「어, 어디서 났어?」
「그냥 먹고 싶다길래.」
「고마워.」
대답없이 입가에 미소를 띈 오빠가 사과를 하나 집어들고 칼질을 시작한다
내 임신 사실을 안 오빠는 그 날 이후로 모든 가사는 자기가 하려했다
그래서 저렇게 능숙하게 과일도 깎고, 다듬고 벌써 예비 아빠가 다 됐다
「아, 해.」
「우와, 맛있다.」
매끄럽게 깎인 사과를 입 안으로 넣어준 오빠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두어개 씩 받아 먹으니 오빠가 쟁반을 치우고 묻는다
「배는 이제 안 아파?」
「오빠가 준 과일 먹으니까 다 나았어.」
「잘 했어.」
내 배를 살며시 붙잡고 귀를 대보았다가, 쓰다듬었다가, 손으로 만져보고
그러더니 안 아프게 딱밤을 먹이고는 속삭인다
「아들,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얼른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