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순애보? 디제이!
W. 부재불명
하루는 분명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제형이 눈에 띄게 연락하는 빈도가 줄었으며, 적당히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하던 대화는 영어로만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제형이 사랑하는 이모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분명히 이상했다. 하루에게 화가 났거나 감정이 상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진작에 언질을 줬을 제형이라 이번처럼 언질 없이 이루어지는 냉전은 하루를 매우 답답하게 만들었다. 가장 최근 제형을 만난 영현에게 이유를 캐물었지만 영현 또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되려 하루에게 이유를 묻고는 했다. 하루를 족히 넘길 정도로 연락이 없는 제형이 걱정돼 하루는 무작정 제형의 오피스텔로 걸음을 옮기며 전화를 걸었다. 들려야 할 목소리는 안 들리고 제형이 간혹 흥얼거렸던 노래만 계속해서 이어졌다.
제형의 핸드폰에 부재중 목록이 열 개 정도 쌓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제 집처럼 들락날락한 덕에 비밀번호 또한 알고 있었지만 동의 없이 문을 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초인종을 두어번 눌러댔다. 제형이라면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 때까지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초인종을 더 누른다거나, 노크를 한다거나, 재촉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하지 않고 열리기만을 바라며 문이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띠리링, 경쾌한 도어락 소리가 들리고 멀끔한 차림에 제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의 걱정들이 무색할 정도의 깔끔한 모습에 할 말을 잃어 가만히 서서 제형을 살피고 있었을까, 한숨 소리와 함께 닫히는 문틈 사이로 무작정 몸을 우겨 넣었다. 제형의 뒤로 보이는 오피스텔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옷가지와 맥주캔들, 특출나게 깔끔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정신 사나운 건 못 참는 제형이 이렇게까지 집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하루를 더욱 더 화나게 만들었다.
"What the hell is going on?"
"..."
"I've been wating for all day."
"So what?"
"huh, Is that it?"
처음엔 걱정으로 시작된 말이었지만 제형에겐 그렇게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꽤나 날이 선 말투가 하루에게 다가섰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하고 싶었던 말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할 말을 잃은 하루는 제형의 오피스텔을 떠났다.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더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기도 했고, 그렇게 있는다고 해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오피스텔을 나온 후엔 당장이라도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연락처들을 뒤졌지만 근 몇 달을 제형과 떨어지지 않고 지냈으니, 당장 연락한다고 나올 정도의 친분이 있는 사람은 그나마도 영현이 다였다. 차에 올라타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차에서만큼은 담배 냄새를 맡고 싶지 않다던 제형의 말이 생각나 고민하던 하루는 영현에게 전화를 걸며 불을 붙였다.
제형과는 처음부터 그리 돈독했던 사이는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부모님들끼리 친해서 간혹 얼굴을 보던 사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맞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인정하기 싫게도 제형이 하루의 백마탄 왕자였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적 하루의 가족이 제형의 옆집으로 이사 온 이후로 하루에게 당혹스럽거나 위험한 일이 생길 때 가장 먼저 나타났던 것은 바쁜 부모님이 아닌 제형이었고, 타국에서 보내는 일상에 외로워할 때에도 하루의 옆을 계속 지켰던 것 또한 제형이었다. 워낙 자주 붙어다니던 둘을 오해하던 시선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둘에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에게 제형은 가족 그 이상의 존재였고, 제형에게 하루는 아는 동생 그 이상의 존재였기 때문에.
영현은 당혹스러웠다. 선약이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에 하루를 내치기엔 너무나도 마음이 쓰였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빠져나가자니 오해받기 좋은 상황이라 결국엔 의도치 않게 원필의 앞에 하루를 데려오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물론 셋이서만 있었다면 영현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생각이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리엔 도운도 있었기 때문에 정말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원필은 하루가 도착한 이후 눈에 띄게 술을 마시는 속도가 늘었고, 원필의 홈메이트인 도운은 그런 원필을 기겁하며 말려댔다. 하루는 누가 보기에도 무리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쉬지 않고 소주를 마셔대고 있었다.
"너 이제 그만 먹어."
"아, 왜요. 나 아직 더 마실 수 있어."
원필은 분명히 본인의 주량을 넘겼을 터인데 혀 한번 꼬이지도 않고 계속해서 하루에게 말을 걸어댔다. 영양가 없는 대화들은 열기를 조금씩 식히기에는 충분했고, 속도를 맞추겠다며 무리한 도운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일어나자 시끄럽던 술집도 어느샌가 꽤나 조용해져 있었다. 온갖 것들을 다 떨어트리면서 움직이는 도운이 걱정돼 영현이 같이 화장실로 떠나고 자리엔 하루와 원필 둘만이 남았다. 원필에겐 지금이 꿈만 같았다. 물론 교제 중인 사람이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보기만 해도 좋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일까, 조용한 술집에 테이블엔 단둘이, 오롯이 내 말에만 집중하는 저 모습들이 원필에겐 꿈과도 같은 설렘을 안겨 주었다. 실없는 농담들로 가득한 말들 뿐이었지만 제 말에 웃고, 공감해 주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원필은 분명하게도 마음이 가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눈길과 마음이 가는 자신이 답답했다. 영현과 도운이 자리로 돌아오고 하루가 담배를 피우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따라가겠다며 일어났을까, 영현에 의해서 그 행동은 저지되었다.
"필아, 선 지켜."
영현의 말에 원필은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아, 나 지금 선 넘고 있었구나. 이윽고 이어진 이렇게 된 거 그냥 자리를 파하자는 영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도운을 챙겨 일어났다. 계산을 끝마치고 인사불성이 된 도운을 잠시 가게 앞에 앉혀두었다. 주변 멀지 않은 곳에서 영현과 하루가 담배를 피우며 도운을 봐주겠다는 말을 듣고나서야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운의 몫만 사려던 숙취해소제를 네 개나 샀다. 대화 도중 술을 마시면 꼭 메로나를 먹어야 한다고 했던 하루를 생각해 메로나도 손에 쥐었다. 거리가 꽤 되는 터라 혹여나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원필은 바삐 걸음을 옮겼다. 밤이라 그런지 여름치고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술집이 위치한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필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 진짜 제형 오빠 없으면 못 살아... 오빠, 나 진짜 어떡해?"
"하루야, 일단 진정해 봐. 어?"
"What should I do now? I, I..."
어두운 곳이었지만 멀리 있는 원필이 알 수 있을 정도로 하루는 떨고 있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벌벌 떨며 울고 있는 하루를 뒤로 하고 원필은 도운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다 녹아 흐물거리는 메로나는 술집 옆 쓰레기통에 버렸다. 영현에게 먼저 들어가겠다는 문자를 남긴 원필은 도운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택시가 자꾸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울컥거리는 감정들이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선을 넘으려 들었지만 계속해서 참아내야만 했다. 잔뜩 약해진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의 비참함을 지니고 사랑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형, 나 토할 것 같, 욱..."
"인마, 형 지금 센치해지고 있다고. 토하지 마. 내려, 내려!"
하루는 잔뜩 부은 눈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멀끔하게 씻고 잠든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아, 나 너무 부지런해. 물론 말과는 다르게 시계는 어느새 네 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당분간은 클럽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말에 영현이 붙잡으려고 했지만 어제의 일 이후로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줄 수 있다며 말을 바꿨다. 오랜만에 드라이브나 가야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씻고 준비했는데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 출발하면 밤바다 정도는 거뜬히 볼 수 있겠다 싶어 차키를 챙겨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밤바다를 보러 가는 건 제형과 했었던 일이지만 제형이 없다고 해서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차에 타서 듣던 노래들도 다 제형과 제 취향에 맞춘 노래들이라 재미없다고 생각하던 라디오를 틀었다.
"무슨, 뭐, 연인이랑 이별한 것 같네."
백미러를 보며 앞머리를 정리하던 하루가 머쓱하게 웃어댔다. 신호를 기다리며 걷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을까, 꽤나 익숙한 얼굴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머리스타일이나 평소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원필이 분명했다. 잔뜩 피곤한 모습에 원필이 근처 카페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차를 돌려 카페 근처에 주차했다. 제형과 있을 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충동적인 일이었지만 하루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익숙한 도운이 맞이인사를 건네다 의외인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운 씨, 여기서 알바해요?"
"아, 어, 네, 뭐..."
"저희 집이랑 되게 가까운데 나는 왜 몰랐지?"
이전 만남이 있었음에도 어색해하는 도운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까지 낯가리는 사람은 처음이라 생소한 반응이었기도 했고, 귀까지 새빨개지는데 어떻게 서비스직을 하는지 신기하기도 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석에서 안경을 쓴 원필이 잔뜩 헝클어진 머리로 노트북을 한껏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커피를 받아 원필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집중하는 모습에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엔 잠깐 쉬고 있는 건지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본인의 앞자리에 사람이 앉자 당황한 건지 원필은 바로 고개를 돌렸고, 이어 눈이 마주쳤다.
"어제 잘 들어갔어요?"
"하루 씨? 여긴 어떻게..."
"아, 원필 씨가 들어오는 거 보고 따라서 들어왔어요!"
네? 잔뜩 당황한 원필의 말이 이어졌지만 하루는 아랑곳않고 할 말을 이어갔다.
"혹시 지금 시간 있으세요?"
"아, 있긴 한데... 왜요?"
"저랑 지금 바다 가실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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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저 정말 오랜만이져...
몸이 안 좋아서 입원을 하게 됐는데 크게 아픈 건 아니라 글은 계속 쓸 수 있었어요
근데 제가 적어 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나서 ㅠㅠ 적어 뒀던 것들에 살만 붙여서 급하게 올리게 됐어요
어떻게든 빨리 오고 싶어서 급하게 쓴 터라 글이 오늘도 많이 부족해요
하지만 입원하면서 도운이가 메인인 글은 하나 뚝딱 적었으니까 그건 금방 빠르게 올리도록 할게요
늦게 와서 죄송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