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로망, 클리셰
W. 백빠
변백현; 미인계? 로비스트!
이름은 OOO, 나이 27세. 뭐, 니네들도 알다시피 미모의 국제 무기 로비스트다. 지금은 서울에 들어와있지만 주로 활동 지역은 홍콩과 이탈리아 쪽이고. 자, 내가 왜 갑자기 이 여자 이야기를 꺼내느냐. 그제 자동차 폭파로 사망한 3급 요원 김현철, 김현철이의 여자친구가 바로 그녀다. 물론 그녀는 김현철이말고도 수많은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리고 폭파한 차 내부에서 이게 나왔다. 다이아 귀걸이 한쪽. 유일한 증거물이지. 이건 김현철이 바로 OOO, 그녀에게 선물해 준 귀걸이로 밝혀졌다. 우리는! 누가 김현철이 차를 폭파시켰는가! 따위엔 관심 없다. 우리는 폭파 직전 김현철이 차에서 사라진 USB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알겠나?
" 네, 알겠습니다! "
모두들 팀장의 말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가운데, 딱…, 딱…, 백현은 심각한 얼굴로 볼펜을 입에 문 채 앞니로 딱딱 튕겨냈다. 아까부터 열나게 설명하던 팀장님은 안중에도 없고, 혼자 어떤 생각에 골몰하느라 여념이 없는 백현이다. 어제 저녁, 중고나라에서 17만원짜리 닥터드레 헤드폰을 거래했는데 입금하자마자 판매자 새끼가 잠수를 탄 덕분이었다. 국정원 요원이 중고나라에서 사기를 당했다. 변백현의 눈에선 살기…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씨팔, 빌어먹을 애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조져버릴거야. 국정원 고위 간부가 뒈져서 국가 기밀이 나돌아 다니든 말든 백현은 지금 제 주머니에서 17만원이라는 피같은 돈이 엄한 애새끼한테 갔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 …저 새끼는 또 왜 저래. 야, 변백현. "
" …. "
" 변백현! "
백현은 제 이름을 부르는 팀장의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어떻게 하면 그 새끼를 찾아 엿을 맥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팀장은 책상만 응시하며 볼펜만 딱딱 거리는 백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야, 저 새끼 왜 저러는지 아는 사람 없냐? "
" 중고나라에서 사기 당했대요. 십칠만원. "
옆 동료가 친절하게도 백현이 어떤 위급한 상황에 쳐해있는지 말해주었고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병신새끼… 하고 중얼거렸다. 옆 동료가 백현의 팔을 툭툭 치며 뒷통수까지 한대 때리자 그제서야 백현이 고개를 돌려 동료를 바라본다. 동료는 속삭인다. 정신차려, 미친놈아. 팀장은 조금 정신을 차린 백현을 바라보다 엄포하듯 말한다.
" 자, 이번 임무는 변백현이 하기로 한다. 다들 박수! "
백현이 양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팀장을 바라본다. 아니, 무슨 뚱딴지 같은 개소리야. 지금까지 딴 생각하느라 회의 내용이 뭐였는지도 모르는 와중에, 나더러 뭘 하라고? 백현이 저 말입니까? 하고 되묻는다.
" 그럼 여기 변백현이 니 말고 또 있냐? "
" 저 뭔지도 모르는데. "
" 자랑이다, 개간놈아. 좀 들으라고, 딴 생각 작작하고! "
백현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채로 아까부터 켜있었던 큰 프로젝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꽤 예쁘장한 여자의 얼굴이 이따시만하게 떠있고, 그 옆으로는 그 여자의 상세 정보가 주르륵 써있다. 백현은 아까 17만원씹새끼에 집중할 때에 간간히 들었던 단어들을 조합해 상황을 분석해본다.
" …그러니까, 저 여자가 가져간 것 같은 USB를 찾아내라? "
" 가져간 것 같은, 이 아니라 가져갔어. "
" 그건 심증이지, 물증이 없잖습니까. "
" 이게 물증이라고, 이게. "
" 그게 카섹하다 떨어진거면 어떡할건데요. 연인이였다면서요, 둘이.
귀걸이 한쪽이 든 지퍼백을 흔들어보였던 팀장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다. 대체 왜 저 개새끼는 한번에 말을 알아듣는 법이 없을까. 지금 우리가 그걸 몰라? 귀걸이 한쪽이 물증으론 부족하다는거 우리가 모르냐고! 증거 될 만한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일단 그 여자를 파보자는거 아냐! 팀장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이었고 동료들이 달라붙어 팀장님, 참으세요. 저 자식 저러는거 하루이틀이에요? 하며 팀장을 진정시킨다. 팀장은 라마즈 호흡법으로(후하후하) 터질 것 같은 횡경막을 꾹꾹 누르며 긴 막대기를 집어들고 프로젝터 화면을 가르킨다.
" 지금부터 플랜을 설명한다. 변백현, 잘 들어. 두번 설명하게 하지 말고. "
다음화면으로 넘어가는 프로젝터.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의 위치, 방의 구도, 일정 등이 이어진다. 모레 이탈리아 행 출국이 잡혀있는데 도통 호텔 밖을 나가지 않는 그녀 덕분에 청소부로 잠입하는 건 불가능. 내일 마침 김현철이와 안면이 있는 검찰 측 지인이 그녀의 호텔에 온다는 정보를 접수했으므로 지인과 있을 때 룸서비스로 잠입해 도청장치와 카메라를 놓고 온다. 검찰 측 지인과의 대화에서 USB 행방의 아주 작은 단서라도 나온다면 즉시 압수수색. 뭐. 뻔한 플랜이었다. 이젠 식상할 정도. 설명이 끝났는데도 심드렁한 얼굴인 백현에, 팀장은 화를 꾸욱 눌러 담으며 말했다.
" 애들아, 누가 변백현 저 새끼 잘 알아들었나 물어봐라. "
" 예, 존나게 잘 알아들었습니다. "
" 그런데 왜 표정이 그따구야? "
" 근데 그걸 제가 왜 해야됩니까. "
저는 USB 구하는 것보다 제 17만원 구하는게 조금 더 급해서말입니다. 안그래도 그 사기꾼을 어떻게 족쳐야할지 머리 아파죽겠는데. 백현의 말에 팀장은, 변백현이 우리 팀에 처음 들어왔던 그 날의 장면이 머릿 속에 생생히 되살아난다. 수석- 이라는 말에 혹해 우리 팀으로 보내달라 인사과에 울고불고 떼썼던 자신이 이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왜 그랬지 내가. 바보. 바보. 빠가야로. 저딴 새끼인 줄 알았더라면… 그러나 변백현을 강제이전 시키거나 해고할 수는 없었다. 우리 팀의 능률을 180%나 상승시킨 영웅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일 존나게 잘하는 개망나니- 랄까. 팀장은 한숨을 한번 내쉬곤 친절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 애원했다.
" 니가 성공률이 제일 높아서 그러세요. 제발 해주시겠어요, 변백현님? "
" 저번 마피아건도 제가 했는데 이번엔 다른 애 좀 시킵시다, 팀장님. "
" 이번 건 변백현 니가 꼬옥 해줬으면 해서요. 팀장 주제에 감히 백현님에게 부탁합니다. 네? "
" 제 십칠만원 찾아주시면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
…저 씨바럼이. 여기가 무슨 은행이냐? 뭔 십칠만원을 찾아? 그러니까 저 새끼 말은 중고나라 사기범을 찾아달라 이 소린데…. 시팔, 여기가 흥신소도 아니고. 하지만 팀장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대답할 뿐이었다. 콜. 변백현은 씨익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 저도 콜. 형아가 돈 벌어와서 완벽히 조져줄게, 십칠만원 개새꺄.
" 아아. 변백현, 들리나? "
[ 응. ]
" 반말하지마라, 뒤진다. "
[ 쉿. ]
화면을 바라보며 헤드폰 테스트를 해보던 팀장이 갑자기 헤드폰을 벗고는 바닥에 쿵! 발길질을 했다. 저 어린 노무 개자식! 그러나 팀장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함께 헤드폰을 쓰고 화면을 보고 있던 한요원은 눈깔에 하트를 뿅뿅 달고 중얼댄다. 아, 백현이 웨이터복 죽인다아-♥ …얼씨구, 지 상사가 지금 옆에서 열불이 나는지 화병이 나는지 상관 없다 이거지? 팀장이 한요원을 배신감에 찬 얼굴로 바라보는데, 뒤에서 빠르게 노트북질을 하던 박요원이 팀장의 등을 쿡쿡 찌른다.
" 팀장님, 변백현 중고나라 사기범 찾았어요. "
" 벌써? 존나 빠르네. "
" 근데 11살 남자애에요. 처벌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
푸하하학!!! 작은 봉고차는 팀장의 쪼개는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새끼, 꼬시다, 꼬셔! 그때 한요원이 시계를 한번 보더니 헤드폰에 달린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변백현 대기. 십분 전. 그 말에 팀장도 급히 헤드셋을 끼곤 화면 앞을 보고 앉는다. 여유로운 변백현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
" 8분 전. "
[ 그냥 들어갈 때 말해. 존나 쓸데없어. ]
" …. "
한요원이 입을 꾹 다문다. 말 뽄새 하곤. 어쩜 저리 싸가지 없게 하시는지. 변백현은 와인병에 단 초소형 카메라와 쟁반 밑에 단 도청 장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대망의 1분 전. 한요원은 초 시계가 00을 나타내자마자 말했다. 변백현, 지금.
변백현이 룸서비스 카트를 끌곤 1702호 앞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룸서비스입니다. 그러자 OOO,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며 문을 열어준다. 하얀색의 가운 차림이었다.
" 야, 와인병 카메라 화면 띄워. 도청 연결 시작하고. "
" 네. "
화면이 전환된다. 아직 카트 위에 덮어진 천 때문에 화면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생생히 들린다. 그녀와 변백현의 대화소리.
[ 여기 테이블 위에 놔주세요. ]
[ 네. ]
그제서야 천이 열린다. 화면이 몇 번 흔들리더니, 안정적으로 보이는 호텔 내부. 변백현이 와인병을 그녀가 앉아있는 쪽으로 돌렸는지 화면이 돌아가며 그녀의 코 아래부터 배꼽 위까지가 화면에 가득 찬다. 쟁반이 테이블에 놓였는지 헤드폰에서 시끄러운 마찰음 소리가 난다. 저 새끼, 저거 일부러 세게 놨지.
[ 새우관자구이랑 레드 와인. 맞으시죠? ]
[ 응, 맞아요. 고마워요. ]
하지만 아직 지인은 오지 않은건지 변백현과 그녀 외에는 다른 목소리가 없다. 변백현은 오늘도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나오는데, …제기랄. 화면 위로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담기더니 카메라를 정확히 응시하는 그녀다. 와인병에 쓰여있는 글자에 맞춰서, 제일 비싼 초소형 렌즈를 붙였는데 빌어먹을. 순간 봉고차에 앉아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셋은 숨이 헉, 하고 멎는다. 카메라를 들킨걸까? 들킨걸까? 들킨걸까? 그녀는 카메라를 빤히 응시하더니, 갑자기 카트를 끌고 나가려는 변백현을 부른다.
[ 저기요. ]
[ 네? ]
…씨이발, 좆됐다. 팀장은 급하게 헤드폰에 대고 속삭인다. 야, 들킨 것 같다. 무조건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 알았어? 변백현은 귓가에서 흘러나오는 팀장의 말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한다. 잠깐 이리와볼래요? 백현이 그녀 옆에 다가가자 그녀가 와인병을 가르킨다. 정확히는, 와인병 상표 글자 위 붙어있는 초소형 카메라를 가르킨다. 백현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렇게 빨리 걸려보기는 거의 처음인데. 그녀가 백현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 이거 이름 어떻게 읽어요? ]
[ …네? ]
[ 이거, 와인 이름이요. ]
…. 미친…. 존나…. 누군가 심장을 꽉 잡아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었다가 확 풀어버린 기분이다. 변백현도, 봉고차 셋도 다 같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변백현은 가까이 다가가 와인이름을 본다.
[ 음, 산… 페드로. ]
[ 아, 산 페드로. 고마워요. 가봐요. ]
백현이 웃으며 고개를 꾸벅, 그리곤 다시 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가 계속 카메라를 응시한다. 글자를 보는건지, 카메라를 보는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일단 백현이 여기 봉고차로 돌아오는 걸 기다리자, 싶었는데 또 다시 그녀가 백현을 불러세운다. 씨바, 또 뭐야…!
[ 저기요. ]
[ …네? ]
[ 뭐, 잊은거 없어요? ]
[ …. ]
[ 팁 안 받았잖아요, 팁. ]
…아, 팁. 팀장은 그녀의 밀당 기술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내 심장을 이렇게까지 쫄깃하게 만든 여자는 처음이군. 이래서 남자친구가 그리도 많은거구만. 그녀는 다시한번 백현에게 손을 까딱까딱 해보인다. 백현은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갔고, 그녀는 지갑에서 오만원을 꺼내 백현에게 내밀었다. 이걸 받아야되나, 말아야되나 백현은 고민하다 그래도 돈인데 받긴 받아야지 싶어 그녀에 손에 있는 돈을 공손히 가져가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장난을 치듯 손을 살짝 뒤로 뺀다. …? 뭐하세요? 변백현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웃으며 반대편 의자를 가르킨다.
[ 이거 받고 싶으면 잠깐 앉아봐요. ]
[ …제가요? ]
[ 응. 오늘 여기로 오기로 했던 친구가 갑자기 아파서 못 온다네. 나 좀 놀아주고 가요. ]
[ …. ]
팀장이 씨벌… 중얼거린다. 갑자기 그 친구새낀 왜 아프고 지랄이야, 지랄이! 팀장이 헤드폰에 대고 속삭였다. 야, 변백현. 얼른 현장 철수해라. 볼 것도 없다. 검찰 쪽 친구 안오면 오늘 한 일들 다 허사야. 그냥 대충 말하고 얼른 나와.
[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요. ] 고개를 꾸벅 숙여 말하는 백현에, 그녀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새우를 썰며 다시 한번 백현을 멈춰 세운다.
[ 이거 먹을 때까지만 놀아줘, 자기. 나 금방 먹어. ]
[ 바빠요. 죄송합니다. ]
[ 뭐 때문에 바쁜데? ]
[ …. ]
그녀가 끈질기게도 백현을 붙잡는다. 그녀가 다시 한번 카메라를 응시한다. 아니, 와인의 상표인가. 그녀가 잘라진 새우를 입 안에 쏙 넣고는 웃으며 나이프로 와인을 톡톡 두드린다. 그것도… 정확히 카메라 렌즈를. 자극에 민감한 초소형 카메라. 화면이 깨지면서 이내 검은색이 되어버린다. 봉고차의 세 요원은 오로지 귀에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뭐가 그렇게 바쁘냐구, 국정원 오빠. ]
…. 팀장이 고개를 푹 수그린다. 동시에 한요원도. 그리고 박요원도. 곧 이어 지지직거리며 쟁반에 붙어있는 도청장치 또한 끊겨버린다. 한요원은 서둘러 변백현의 인이어 쪽으로 연결했지만…
[ 이것도 다 보여, 자기. ]
그 또한 지지직거리며 연결이 끊겨버린다. 팀장은 헤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진다. 그 후의 일은 변백현에게 맡길 수 밖에…. 잘 대처해라, 백현아. 그리고 십칠만원십새끼는 우리가 알아서 잘 타이를게. 부모님한테도 잘 말해두고. 그럼.. 수고해. 팀장은 어느새 운전석에 가 핸들을 잡고 있는 박요원에게 말했다. 애들아, 가자.
그녀가 백현의 귀에 끼워져있는 작은 인이어를 거칠게 빼내 바닥에 던져선 슬리퍼를 신은 발로 한 번에 부셔버린다. 다들 워낙 초소형이라 잘도 부서지는구만. 그녀는 백현을 웃으면서 바라보고 물었다. 오빠, 우리 와인 마실까? 백현은 어차피 들킨거, 뻔뻔하게 나가자 싶어 흔쾌히 승락했다. 그래, 좋아.
둥근 테이블을 마주보고 앉은 둘. 백현은 와인을 입에 머금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꿍꿍인거야, 대체. 그녀 또한 와인으로 입술을 축이며 백현을 한번 바라본다. …들켜놓고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다니. 꽤나 웃기는 놈이네. 그녀는 아까 나이프로 부신, 와인병에 붙어져있는 초소형 카메라의 잔해들을 포크로 더 잘게 부수며 말했다.
" 나 좀 섭섭하네. 국정원이 나를 이정도로 밖에 안봤다니. 모를 줄 알았던거야? "
" 그러게. 너무 그쪽을 쉽게 봤나봐. "
" 궁금한게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물어봤어야지. 비겁해. "
그녀는 나이프를 테이블에 놓더니, 길다란 생머리를 한쪽으로 넘겼다. 하얀 가운을 걸친 뽀얀 피부, 매끄러운 목선, 부드럽게 떨어지는 턱선에 빠알간 입술까지. 백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라본 그녀가 백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한다.
" 자기가 궁금해하는 거 말해줄까? "
" 내가 궁금해하는게 뭔데. "
그녀가 입모양으로 속삭이듯 말한다. 유, 에스, 비. 이렇게 빨리, 그것도 그녀가 먼저 USB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던 백현이 놀란 눈치를 꾹 숨기곤 작게 웃어버렸다. 그녀 또한 해맑게 웃어보이며 묻는다. 맞지? 자기가 궁금해하는거? 백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몸을 백현 쪽으로 더 기울여 소곤소곤 말한다.
" 그거 나한테 없어. "
" …뭐? 없어? "
" 응. 그렇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일어나 테라스 쪽으로 간다. 통 유리로 되어있는 테라스 쪽 야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백현은 USB의 행방을 알고있다는 그녀의 나름 충격적인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의 뒤로 따라간다.
" 유에스비가 어디있는지 안다고? "
" 응, 난 다 알아. 누가 김현철 차를 폭파시켰는지도 알고, 유에스비가 어딨는지도 알고, 그리고 당신이… "
" …. "
" 변백현이라는 것까지 난 다 알아. "
순간 백현은 등 뒤에 소름이 돋아났다. 무서운 여자다. 생긴 건 청순하게 생겨선 속알머리는 메두사 같은 여자. 그때 그녀가 백현의 몸 쪽으로 더 붙어서며 백현을 올려다보았다. 은은한 비누향이 백현의 코 끝을 스치고, 그는 다른 의미로 또 한번 등 뒤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녀는 백현의 몸에 기대다싶이 서선 그의 눈을 마주보며 그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 여긴 우리 둘 뿐이야. 듣는 사람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어. "
" …. "
" 자기한테 내가 아는 전부를 다 가르켜줄게. "
" …. "
" 그러니까, 나랑 거래하자. "
그녀가 손가락으로 백현의 목선을 따라 내려 슥, 쓸었다. 척추가 빳빳해져왔다. 거래, 라는 말에 가만히 그녀를 말 없이 바라보니, 어때? 하고 묻는 그녀다.
" 글쎄. 거래가 뭔지 들어봐야겠는데. "
" 어려운 거 아니야, 되게 쉬워. "
" 그러니까 뭐냐고. "
그녀가 백현의 눈을 바로 보며 말한다. 내 브로커가 되줘. …뭐? 백현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고위 간부들 명단이라도 내놓으라는 소리야? 백현은 실소를 내뱉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일부러 이 상황을 연출했을 것 같다는 생각. USB에 혈안이 되어있을 국정원, 국정원에도 일말의 라인이 있어야할 것 같은 그녀, 국정원에서 알아서 찾아오게 만들고 싶은…. 검찰 측 지인이 온다는 정보는 다름 아닌 그녀가 뿌린 것이 아닐까. 백현은 실소를 터트리며 그녀를 제 몸에서 떼어내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 와인을 한입에 들이켰다.
" 어때, 응? 그정도면 꽤 괜찮은 거래 아니야? "
" 미안한데 사람 잘못 봤다. 난 그다지 솔깃하지가 않네. "
그녀가 백현의 쪽으로 다가와 물었지만 깔끔히 거절의 멘트를 날린 백현. 여유롭게 백현은 의자에 앉았고, 그녀 역시 테이블 쪽으로 느긋히 다가와 와인잔을 들어 입술을 한번 축인다. 비웃는 듯, 혹은 실소인 듯 작게 웃으며 백현을 바라본다. 아, 지조 있는 남자… 뭐 이런 컨셉인건가. 그녀는 흐응, 콧소리를 내며 와인잔을 내려놓는다.
" 자기가 뭔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
그녀가 백현의 무릎 위에 가볍게 앉는다. 그녀는 백현의 무릎 위에 앉아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긴 그녀의 머리가 백현의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간질간질.
" 자기 나 무기 많이 파는 건 알지? "
" 알지. 워낙 미인계로 밀어붙이시니까. "
" 으응, 난 사실 미인계가 아니야. "
미인계로 자자한 그녀가 으응, 고개를 젓곤 자긴 미인계가 아니라며 백현의 목을 껴안은 채 속삭인다. 그러더니 백현의 귀를 살짝 이로 앙, 문다. 그리고 살살 혀로 야하게 쓸어올린다. 귀에 닿는 그녀의 혀.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
" 미인계가 아니라… "
" …. "
" 색계야, 오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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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Criminal
사랑하는 독자분들 오랜만이에여...☆ㅠ^ㅠ 다들 잘 지냈어요? 날 잊은건 아니겠져... 나 없는 글잡 즐겁지 않았다고 말해줘요....
사실 작가는 입시로 바쁘답니다...(눈물) 그러므로 번외는 언제 나올지 모른다ㅋ0ㅋ
다음 글이 올 때까지 밥 잘먹구 잘 놀구 잘자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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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닉 안바다여ㅠㅠㅠㅠ구치만 닉넴처럼 사용하시는건 가능! 항상 와주시는것도 가능! 날 사랑해주시는 것도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