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들린다
W. odod
07
자기가 운전하겠다는 석진씨를 뒤로하고 내가 운전석에 탔다. 오랜만에 운전도 하고싶었다며 운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내가 운전석에 탔다. 조수석에는 석진씨가 앉았고 출발하는 동시에 창문 틈 사이에 바람을 느꼈다.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면 조심스레 웃는 석진씨였다. 원래 내 차를 타려고 했으나 딱 봐도 비싸보이는 외제차는 안된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다른 차를 탔다. 이내 잔잔한 팝송이 흘러나오면 아는 노래라 흥얼거리고 있었을까. 그나저나 마트는 왜 가는거에요? 라는 석진씨의 말에 대답했다. 뭐 필요한 거 사고 요리할 거 살려고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매번 받기만 해서 미안해서요. 오늘은 제가 요리할테니까 다 같이 모여서 먹어요. 싱긋 웃으며 말하면 석진씨는 내 미소따라 웃어줬다. 근데 진짜 바람 많이 분다. 여름이어도 시원하네요. 석진씨가 등록한 주소로 내비게이션 따라가면 꽤나 큰 마트에 도착했다. 야외주차장에서 주차 동시에 벨트 풀고 나왔다. 오늘따라 바람이 거셌다. 푹 눌러쓴 벙거지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 손으로 꽉 붙잡고 있었다. 실내로 들어가면 상쾌한 에어컨바람이 느껴졌고 꽤나 사람이 많아 흠칫했다. 이렇게까지 사람 많을 줄이야. 사람 많네요. 중얼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면 걱정스러운 듯 내게 다가와 무릎을 굽혀 내 눈과 마주했다. 여기 근처에 호텔이나 펜션 많고 마트가 여기 하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주말이라 사람이 더 많네.
" 여주야, 괜찮겠어? "
석진씨의 말에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식은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내가 오자고 했고 석진씨한테 민폐를 끼치고싶지않았다. 미리 약도 먹고 왔으니 괜찮을거라며 카트를 끌어당겼다. 내가 밀게요. 라며 석진씨는 카트의 손잡이를 잡아 내 곁에 바짝 붙었다. 또 고개를 숙여 내게 속삭였다. 붙어서 가면 괜찮아지려나. 중얼거리며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는 석진씨였다.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괜찮아져 베시시 웃었다. 고마워요. 석진씨. 내 말에 역시 부끄러운 듯 웃으며 뭐 살거냐며 두리번거렸다. 난 조심스레 그의 옆에 붙어 카트 손잡이 잡은 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그의 팔소매 끝자락을 잡았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거지. 멍하니 고개 숙이다가 올려다보면 석진씨와 또 눈 마주했다. 이렇게 가면 편해? 그의 말에 얼떨결에 끄덕이면 그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카트를 밀었다. 한바퀴 돌면서 이것저것 사고 갈비찜이랑 된장찌개 할 요리 재료를 사러 식품코너에 가서 구경하며 카트에 담았다. 오랜만에 사람 많은 곳에 왔지만 석진씨와 함께여서 그럴까. 오히려 편안했다. 전에 약 먹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 사람과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더욱 들었다. 한바퀴 다 돌면서 살 거 다 샀을 때 눈에 보이는 무언가. 폭죽이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석진씨를 보며 폭죽을 가르켰다. 석진씨는 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더니 하고싶어요? 라며 웃었다. 힘차게 고개 끄덕이면 석진씨는 여러 개의 폭죽을 사 카트에 담았다. 대신, 오늘 말고 다음에. 알겠죠? 그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계산하고 봉투에 담아 나왔다. 나오면 핑크빛으로 펼쳐있는 노을 하늘. 핑크빛이라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장 본 봉투를 뒷좌석에 넣고 이번엔 석진씨가 운전한다길래 조수석에 앉았다. 석진씨는 차 시동 걸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여주씨, 잠시만요. 까먹고 뭐 안 산거 있어서요. 라며 차 밖으로 나가 다시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중요한 건가보다. 대수롭지않게 생각하며 창문 밖 하늘을 보는데 핑크빛 하늘이 너무 이뻐서 조심스레 밖에 나와 휴대폰을 들어 찍었다. 구름 한 점도 없는 하늘이 마치 날 위로 하는 것 같았다. 찍고서 오랜만에 인스타그램 들어가면 쌓여있는 다이렉트와 수 많은 댓글들. 볼까말까하다가 결국 봐버렸다. 여러 나라의 말로 달린 댓글 중에 눈에 띄는 댓글. '언니 너무 보고싶어요', '여주씨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돌아올거죠?', '이 댓글 보고 있다면 생존신고라도 해줘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었다. 그래, 그래도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마음이 놓였다. 올릴까 망설였던 나는 굳게 마음 먹고 아까 찍은 하늘을 찍어 올렸다. 나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 위로받고 가요.라는 짤막한 문구와 함께 올렸을까. 순간 낯선 목소리로 저기요. 라며 부르는 누군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 손으로 얼굴 가린 채 눈만 빼꼼 보면 낯선 남자 두 명이 서있었다.
" 친구랑 놀러온거에요? "
" ... "
" 아,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친구랑 놀러온 것 같아서 저희도 놀러왔거든요. "
웃음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난 천천히 뒷걸음쳤다. 그들은 손사레치며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같이 놀 생각은 없냐며 물었다. 진정했던 가슴이 또 다시 콩닥거리고 환청이 들릴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 좀 보여줘요. 아까 옆모습 보니까 예쁘시던데 그 배우 닮았는데 누구더라. 라며 자기들끼리 히히덕거리며 나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기분 나빴다. 근데 감히 나설 수가 없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아이, 그러지말고 잠깐 놀아요? 네? 라며 무턱대고 내 팔을 낚아채는 남자. 고개를 숙이는 순간 바닥에는 다른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내 손을 잡는 누군가. 고개를 살짝 들면 익숙한 등과 익숙한 향기가 났다. 석진씨였다. 뭐, 볼일 있어요? 앙칼진 목소리로 그 남자들에게 말하면 남자들은 당황한 듯 했다. 뭐야. 남자친구 있었네. 그럼 말을 하든가. 투덜거리며 제 갈 길을 가는 그들. 석진씨는 화가 난 듯 인상을 쓰며 차로 향해 걸어가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줬다. 재빨리 차 안에 타고 뒤따라 석진씨도 운전석에 앉았다.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어요? 걱정스러우면서도 아직 화가 난 듯 혀를 쯧 차는 그였다.
" .. 괜찮아요. 석진씨가 와줘서. "
" ... "
" 진짜 괜찮아요. "
정말 괜찮다며 석진씨를 다독였다. 내 말에 한시름 놓은 듯 한숨을 살짝 뱉었다. 석진씨 무릎 위에는 무언가 올려져있었다. 어, 맛있어보여서 계속 보고 있었던 치즈케이크인데?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석진씨는 케이크를 보더니 머쓱거리며 등을 돌리며 뒷좌석에 놔뒀다. 케이크 먹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요. 안사면 내가 후회할 것 같았어요. 말끝을 흐트리며 차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갑자기 민망스러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안사도되는데. 그래도 고마워요. 내 말에 그는 장난스레 웃었다. 케이크에 아주 레이저를 쏘던데. 먹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사실 먹고싶었어요. 어떻게 석진씨가 딱 사주네. 진짜 볼수록 매력있다니까. 장난스레 웃으면 그 때 신호가 바뀌고 차가 멈췄다. 창 밖을 바라보는데 나를 부르는 석진씨의 목소리에 석진씨를 바라봤다. 그 말 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 석진씨 매력 있다고요.
" 놀리지마요.. 진짜. "
왜 진심인데요? 싱긋 웃으며 석진씨는 내게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신호가 바뀌고 출발했다. 진짠데 매력이 너무 흘러넘쳐. 그래서 다른 여자들 홀리고 다니잖아요. 내 말에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건. 먼저 와서, 아니 근데 이거 내 잘못이에요? 억울한 듯 말하면 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못이에요. 너무 잘생긴 죄. 내 농담에 푸흡하며 웃는 석진씨였다. 잘생기면 뭐해요. 누가 안넘어오는데. 의미모를 표정지으며 운전하는 그의 말에 난 뜨끔했다. 이거 분명히 나한테 말하는거 맞지? 모르는 척 창밖을 바라보면 그 순간 노래가 흘러나왔다. 차 안 노래와 어두워질 저녁하늘. 그리고 점점 바다가 보였고 거센 바람덕분인지 파도도 거칠었다. 근데 내가 매력 있다면서. 라며 입술을 삐죽 나온 채 내게 묻는 그. 응 매력있지. 왜요? 석진씨는 나를 힐끗 바라봤다. 언제부터인지 귀 빨개진 채로. 조금은 서운한 듯 투덜거리는 그였다.
" 그럼 넘어올 때 됐지 않나. "
바다가 들린다
끙끙거리며 봉투 들고 석진씨와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웬일로 거실에 다 모여있었다. 그리고 나처럼 벙거지모자 쓴 뒤통수가 보였다. 우리 인기척에 뒤돌아보면 나를 발견하고 베시시 웃으며 누나아아. 라며 달려와 나를 와락 안는 내 동생 태형이었다. 덕분에 봉투는 힘없이 떨어졌다. 너무 놀라 어버버거리고 있었는데 나 놀러온다고 했잖아. 여기 좋다. 라며 웃는 태형이었다. 야, 너 연락도 없이 미쳤어? 내 말에 미안한 듯 머쓱거리며 웃더니 미안해. 이제 투어 끝나서 그럴 시간 없었어. 나 아침부터 기차타고 5시간 넘게 달렸는데 도착하자마자 길 잃었다니까? 피곤해죽는 줄 알았다며 내게 안아 부비거리는 녀석이었다. 소파에 누워있던 호석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야, 너네 벙거지모자 쓰니까 누가봐도 남매야. 남매. 라며 기가 찬다며 혀를 쯧 찼다. 지민은 대박, BTS 뷔다. 라며 감탄했다. 태형은 이제서야 석진씨를 발견했는지 내게 누구냐며 속삭였다. 여기 사장님이야. 그 말에 태형은 활짝 웃으며 석진씨한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시작됐다. 김스치면 인연. 팬들이 기막히게 잘 지은 별명 중 하나였다. 어쩜 처음보는 사람한테 잘 웃으며 다가갈까. 태형은 웃으며 석진씨와 악수를 했다.
" 안녕하세요. 김여주 누나 김태형입니다. 그리고 BTS 뷔이기도 하고요! "
" .. 아, 네. 안녕하세요. "
" 저보다 형인 것 같은 것 같은데 형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
태형의 급작스러운 친화력에 석진씨는 떨떠름했다. 형, 미리 연락드리고 왔어야했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여서요. 정말 죄송한데 방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반짝이는 눈빛으로 두 손 모아 석진씨를 바라봤다. 이대로 가다간 석진씨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 태형의 목덜미를 잡았다. 야. 너 내 방에서 자. 짐은? 태형은 거실 소파 가운데 있는 캐리어를 가르켰다. 석진씨는 손사레치더니 아니야. 방 넉넉해. 괜찮아. 라며 내게 웃었다. 태형씨라고 했나요? 2층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짐 챙겨오세요. 석진씨의 말에 태형은 신이 난 듯 웃으며 짐 가지러갔다. 얼른 석진씨의 팔을 붙잡았다. 진짜 죄송해요.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정말 괜찮다며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나중에 밥 먹고 알죠? 라며 웃으며 짐 챙긴 태형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난 멍때리다가 겨우 정신차리고는 부엌으로 가 테이블 위에 봉투를 올렸다. 아까 차에 내릴 때 석진씨가 나를 붙잡고는 여주씨랑 같이 가고 싶은 곳 있는데 같이 가요. 라며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무렇지 않는 척하지만 무척 궁금했다. 어느새 지민과 정국은 쪼르르 달려와 부엌에 들어왔다. 누나 뭐하게요? 궁금한 듯 내게 묻는 정국이었다.
" 오늘은 내가 요리해줄려고! "
싱긋 웃으며 앞치마를 하면 지민은 기대 찬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뭐 도와줄 건 없어요? 그의 말에 얼른 소파에 앉으라고 등을 밀었다. 호석도 궁금한 듯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며 구경했다. 근데 웬 케이크? 누구 생일이야? 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내 생일이었나? 호석은 장난스레 웃으며 묻는데 나도 따라 웃었다. 야, 네 생일 아직 멀었잖아. 뭐. 꼭 기념일때만 먹으라는 법은 없잖아. 석진씨가 사준 케이크 상자를 조심히 들어 냉장고 안에 넣었다. 밥 먹고 같이 먹으면 되겠다. 일단 내 방으로 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풀어헤친 머리를 포니테일로 꽉 묶었다. 다시 내려오면 아까보다 시끌벅적한 거실. 어느새 내려온 태형은 친화력을 과시하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태형이랑 지민이 동갑인데 어쩐지 둘이 같이 앉아 있더라. 식자재를 정리하며 요리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찍이 혼자 지내다보니 요리를 많이 해봤으니. 뉴욕 생활할 때도 한국 음식이 그리워 한식당에 가기도 했지만 가격이 꽤나 비싼 탓에 생전 처음으로 요리를 했었다. 처음 한거 떡볶이였지. 엄청 맛없었는데. 추억에 젖으면서 칼질을 해댔다. 어느새 내 옆에 온 석진씨는 도와줄 거 없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 얼른 가서 놀고 있어요. "
" 그래도.. "
" 쓰읍, 이제부터 주방에 오기만 해봐. "
마치 아이를 달래 듯 석진씨를 주방으로 내보냈다. 석진씨는 하는 수 없이 애들 있는 곳으로 갔다. 고기 손질하고 소스를 만들어 갈비찜을 요리하다가 된장찌개 맛 살짝 봤다. 괜찮네. 고개를 끄덕이고는 숟가락을 놓는데 그 숟가락을 잡는 누군가. 태형이었다. 태형은 숟가락을 들어 된장찌개 맛을 봤다. 어때? 역시 맛있네. 라며 씨익 웃으며 내게 달라붙었다. 아이, 요리 중이잖아. 신경질 내면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묻는다.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 태형의 말에 멈칫하고는 시끌벅적한 거실을 바라봤다. 거실 소파에 앉아모여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응. 나 이런 생활 처음 해봐. 내 말에 태형은 다행이라며 웃더니 잘됐다. 나도 요즘 지쳤는데 마침 누나가 여기 있고 그래서 한 번은 와봤는데 바다 있는건 괜찮네. 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태형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학창시절에 주위 남자들보다 뛰어난 외모 때문인지 우리 학교에서 회사사람들이 기다리며 태형에게 명함을 주거나 제발 한 번만이라도 와달라며 애원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 괜찮은 회사 들어가서 몇년간의 연습생 생활. 그리고 데뷔. 데뷔하고 점점 성장하더니 이제는 해외까지 알려지는 유명한 가수가 됐다. 난 그런 태형이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태형은 덤덤했다. 더더 올라가고싶었기에. 난 이름 알리는 모델이 되고 배우로도 성공했을 때 그땐 태형의 가수생활은 좋았기보다는 애매했다. 더 더 유명해져야되는데. 매일 말 끝마다 말했다. 어느 날 새벽 스케줄 끝나고 매니저 차 타고 이동하는데 태형에게 전화왔었다. 술 먹었는지 누나아아. 거리며 발음이 뭉개지질않나. 술을 좋아하고 술버릇도 전화해서 나 괴롭히는 거라서 평소처럼 받아줬는데 갑자기 흐느끼는 그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면 아무 말없이 울기만했다. 너무 울어서 말할 때도 숨을 헐떡이며 말했던 그.
- 내가, 성공, 했어야, 했는데 끄윽, 누나만 고생, 하는거 싫어.. 진짜…
- ...
- 미안해. 정말…
그 날 나는 차 안에서 하루종일 울었다. 아니, 집에가서도 울었다. 다음날 눈이 퉁퉁 부어서 대표님이 얘 누구냐고 할 정도로 말이다. 태형도 그 날 얼굴 부어서 팬들 걱정 많이 했었지. 이제는 꽤나 행복해보이는 것 같았다. 밥 다 됐다는 밥솥 알람이 울리고 정신차려 확인했다. 태형은 수저셋팅을 하며 반찬을 놓았다. 갈비찜을 중간에 올려놓고 된장찌개를 사람 수대로 그릇에 담았다. 이제 애들 부르려고 했는데 냄새때문에 엉기적거리며 오고있었다. 정국은 냄새는 합격이라며 의자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의자에 앉아 수저를 들어 각각 한입씩 했을까. 갑자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들 반응을 보는데 지민은 활짝 웃더니 내게 따봉을 날렸다. 누나, 대박. 완전 맛있어요! 하아, 다행이네. 오랜만에 요리해서 간 안맞을까봐 걱정했어. 윤기작가님도 괜찮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호석은 야, 이렇게 다같이 먹는 것도 오랜만이다? 호탕하게 웃으며 먹었다. 석진씨도 아무말 없이 오물거리며 먹는데 나와 눈마주쳤을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 맛있어..요? "
맛있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입모양으로 내게만 보이게 말하며 다시 밥을 먹는 그였다. 맛있다는 그의 말에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호석은 아차하더니 태형은 한식 오랜만에 먹겠다? 라며 물어보면 태형은 아, 당연하죠. 진짜 너무 먹고싶었다고요. 라며 마구마구 먹기 시작했다.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지민은 궁금한 듯 태형에게 물었다. 어느새 말 놓기로 한건지 반말을 쓰는 지민. 근데 태형아 너 그러면 해외투어 어느나라 돌고 온거야? 태형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가져와 오물거리며 먹었다. 한 12개? 15개 나라 돌고 왔나. 마지막은 미국이었고. 미국은 전지역 다 돌고왔다. 태형의 말에 기겁하는 그들이었다. 지민은 대단하다며 혀를 쯧 찼다. 태형은 아무렇지 않은 듯 뭐, 내가 좋아서 하는거니까. 라며 밥을 크게 떠서 입에 와앙 넣었다. 윤기작가님도 궁금한 듯 태형에게 질문했다. 그럼 지금은 휴가에요?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휴가도 일주일정도인가. 근데 여기는 이틀이나 3일 있다가 가려고요. 가서 또 준비할 것도 있으니까. 여긴 누나 볼 겸 온거고요.
" 뭐야. 대표님이 1주일 밖에 안줬어? "
" 응, 근데 어쩔 수 없어. 우리 다음 앨범 준비해야되서. "
정국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바쁘게 사시네요. 라면 태형은 젓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젖혔다. 뭐. 그래도 여기 있으니까 좋네요. 라며 씨익 웃었다. 어느새 우린 밥을 다 먹어가고 냉장고에 케이크 꺼내서 나눠먹었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설거지할 사람 가위바위보하자는 호석의 말에 난 손사레쳤다. 됐어. 내가 할게. 내가 하는게 편해. 라며 애들을 보냈다. 지민은 태형에게 같이 게임하자며 권유했고 태형은 흔쾌히 좋다며 지민 뒤를 쪼르르 따라가 거실 소파에 앉아서 조이스틱을 꺼냈다. 정국도 할 거라며 달려갔지만 바로 호석에게 잡혔다. 무슨 소리야. 일 가야지. 전정국. 호석의 단호한 한마디에 정국은 한숨을 쉬더니 힘 없이 호석을 따라갔다. 피식 웃으며 설거지하려고 물을 틀어놓는데 옆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석진씨가 있었다. 내가 하겠다고 하면 또 뭐라할 것 같고 그러니까 같이 해요. 그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네, 그래요. 그럼 내가 거품 할게요. 담당을 나누고 나란히 서서 설거지하는데 힐끗 고개를 돌리면 물로 열심히 헹구는 그의 옆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아려오고 간지러웠다. 나 이거 뭔지 알아. 아는데. 조금은 부끄럽네. 몽글한 이 기분. 나도 느껴봤다. 설거지를 다하고서는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내게 오더니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주차장 쪽으로 나와요. 기다리고 있을게. 라며 내 머리를 쓰담고는 가버렸다. 진짜 김석진. 여자 홀리는 재주가 있다니까. 쓰담은 내 머리 위로 석진씨의 온기가 느껴졌다. 서둘러 내 방으로 올라가 따뜻한 외투를 입고 나와 후다닥 거실을 지나면 나를 부르는 태형이. 현란하게 조이스틱을 만지며 게임화면만 주시했다. 누나, 서준이형이 죽기 전에 카톡 답 하래. 아, 나 연락 많이 밀렸는데. 투덜거리며 신발을 신는데 지민은 의아스러운 듯 나를 불렀다. 근데 누나 어디가요? 당황해서 눈만 꿈뻑거리다가 버벅거렸다. 어어, 어디 좀 갔다올게! 얼버무리며 문을 쾅 닫고 주차장으로 가면 아까 차 탔던 운전석에 석진씨가 앉았다. 나도 조수석 문을 열어 앉으면 석진씨는 나를 반겼다.
" 근데 어디 가는거에요? "
" 가면 알아요. "
웃음을 보이며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어디 가는 걸까. 콩닥거리는 내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게 설레는 일 줄이야. 순간 멈칫했다. 나 뭐라고 했냐. 설렌다고? 뭐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저어 창밖을 바라보면 깊은 밤하늘이 보였다. 조금 멀지 않는 곳에 도착하면 바다에서 제일 끝자락. 등대가 있는 곳이었다. 두리번거리면서 걷고 있는데 석진씨는 내 어깨를 붙잡더니 여주씨. 딱 뒤돌아서 5분만 기다려줄래요? 라길래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았다. 절대 뒤돌면 안돼요. 라는 순간 우당탕 소리나서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뭐에요? 무서운 마음에 물었는데 석진씨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계속 그렇게 있으라고 계속 내게 말을 걸어왔다. 도대체 뭐길래. 뒤에서 둔탁한 소리도 나고 우당탕거리며 뭐에 부딪쳤는지 신음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아 뭔데. 걱정되게. 코를 훌쩍이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젠 정적이 흘렀다. 이제 뒤돌아봐도돼요. 그의 말에 천천히 뒤돌아보면 석진씨는 뿌듯한 미소로 제 차를 가르켰다. 우리가 타고 왔던 그 차 트렁크 문이 열려있었고 뒤에 있던 의자를 다 눕히고는 개조된 테이블과 자그마한 매트리스 위에 보들보들한 매트가 깔려있었고 자동차 천장에는 미니 전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난 감탄하며 얼굴을 내밀어 구경했다. 대박. 어쩐지 트렁크에 짐이 왜 많다했어. 캠핑 즐겨하는 배우동료들도 이런 식으로 꾸민다고 사진은 본 적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신기하고 되게 이뻤다. 제가 낚시 좋아해서 낚시 기다릴 때 여기 안에서 기다리고 그래요. 석진씨는 나를 이끌고 차 안으로 들어가 앉혔다. 앉으면 내 눈 앞에는 밤바다가 펼쳐있었다. 턱 막혀왔던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추울까봐 담요도 덮어주고 언제 사왔는지 테이블 위에는 캔맥주 두 병이 있었다. 나를 위해서 자기의 삶 부분을 보여준 그의 마음이 너무 이뻤다. 석진씨는 제 무릎을 안으며 바다를 바라봤다.
" 석진씨는 정말 내게 좋은 추억만 만들어주네요. "
" ... "
" 덕분에 잊지 않을 추억이 될 거 같아요. "
삭막하고 힘든 나날이었던 내 삶은 어떤 이로 인해 변화가 생겼다. 흔하디 흔한 추억도 없던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고 소중한 인연들도 만나게 해줬다. 그게 이 사람이라니. 눈물 날 것만 같았다. 7년 전에 인연이 계속 되고 싶은 그의 어린 마음과 나를 위한 그 행동들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웃으며 석진씨를 바라보면 그도 나를 바라봤다. 우린 그렇게 마주했다. 바다에 비춰지는 달 사이에 우리는 마주했고 나는 조용히 웃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석진씨, 혹시 그 말 기억해? 내가 연예게 복귀해도 내 옆에 있어줄거라는 질문에 당신이 그랬잖아요. 내가 허락만 해준다면. 내 말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는 그를 바라봤다. 허락해주면 진짜 내 옆에 있을거에요? 내 말에 석진씨는 무언가 턱 막혀왔는지 가만히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응, 여주씨가 허락만 해준다면요. "
" .. 언제부터였어요? "
의미스러운 내 말을 들은 석진씨는 곧바로 알아채더니 귀가 곧 빨개졌다. 7년 전 뉴욕에서 처음 만났던 날. 그 이후에 계속 생각났어. 수업들을 때도 친구들이랑 놀 때도 그냥 항상 너였어. 뒤늦게 깨달았더라. 그게 내가 첫 눈에 반했다는 것임을. 그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7년. 내가 너무 기다리게 했네. 조금은 미안하네요. 이름이라도 알려주고 갈 걸 그랬어. 내 말에 그는 장난스레 투덜거렸다. 그러니까요. 이름도 모르고 답답해 미칠 뻔 했잖아. 잊을만하면 생각나고 또 잊을만하면 TV에 나오고. 혹여나 못만나면 어떡하나. 무서웠어요. 그래도 그 7년은 괜찮았어.
" 너를 기다린 시간도 내 청춘의 일부였으니까. "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온 사람이 무려 7년이나 기다린 사람이 괜찮다며 웃었다. 그 시간마저도 내 청춘의 일부였다고. 말하는 그가 내 가슴을 더더욱 아련하게 만들었다. 첫만남 때 기억 못했던 것이 더더욱 미안했다. 그는 쑥쓰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순간 진동음이 울려 내 휴대폰인가 확인하면 발신자가 강준오빠였다. 석진씨도 힐끗 보더니 배우 서강준 말하는거에요? 라며 살짝 놀란 듯 했다. 그리고 여주씨 전 남자친구이기도 하고. 말끝을 흐트리며 씁쓸하게 웃는 그였다. 전화.. 받을거죠? 받아야겠죠? 석진씨는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다른 마음으로는 안받았으면 하는 마음인지 표정에서 드러나있었다.
" .. 받아아죠. "
" 아.. 받아야지. 얼른 받아요. "
" 근데 딱봐도 전화와서 나 보고싶다고 못잊었다고 그럴 것 같은데. 어쩌면 좋을까요 석진씨. "
어떻게 말할까. 석진씨에게 물었다. 당황하더니 손가락으로 제 자신을 가르켰다. 저요? 응. 석진씨가 알려줘요. 석진씨는 어쩔 줄 몰라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그럴까? 그 뭐지. 내가 허락만 해준다면 내 옆에 있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낫겠다. 그쵸? 내 말에 석진씨는 놀란 듯 천천히 내 손등을 쓸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뒤집었다. 지금은 그렇고 나중에 말하는 게 낫겠다. 그러니까 제 옆에 있어줄거죠? 내 말에 석진씨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뭐에요. 왜 대답 안해요. 투덜거리면 석진씨는 급한 마음에 내 손을 꽉 잡았다. 여주씨 옆에 있고 싶어요. 그래도 되요?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이 내 옆에 있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난 두 팔을 벌렸다. 얼른 와요. 석진씨는 기다렸다는 듯 내 품에 들어와 와락 안았다. 역시 대형견같아. 등을 토닥이면 석진씨는 더욱 내 품 안으로 파고들어 얼굴을 제 어깨 위에 올렸다. 석진씨의 숨길이 느껴 간질거렸다. 내 품에서 살짝 벗어나더니 이마를 맞댔을까. 뽀뽀 해도돼요? 그의 말에 난 장난스레 웃으며 먼저 다가가 그의 입에 가볍게 뽀뽀했다. 어떡해. 너무 좋아. 중얼거리며 내게 쪽쪽거리며 뽀뽀를 여러번 했다. 아오, 입술 닳겠다. 닳겠어. 그만하라고하면 코, 뺨, 이마, 턱, 눈 여러번 뽀뽀를 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봤다. 베시시 웃으며 그에게 안겨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 석진씨의 남은 청춘은 내가 가질래요. "
" ... "
" 내가 석진씨의 남은 청춘 할래. "
석진씨는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말해뭐해. 말끝을 흐트렸다. 여주야. 나 진짜 너 너무 좋아해. 7년 전도 지금도. 7년동안 헤메이고 있던 내 짝사랑이 끝났어. 그러니까
" 내 청춘, 네가 가져가. 전부. "
작가의 말 |
청포도 / 핫초코 / 민트슈가
여러분 안녕하세오.. 오랜만입니다. 정말 죄송해요 ㅠㅠ 많이 늦었죠.. 분량 빵빵하게 들고왔으니 너무 미워하지말아주세요!!! 드디어 이뤄졌다.. 후... 이제 꽁냥거릴 시간이야 애들아 !! 아, 저 또 소재 다른거 하나 생각 났는데.. 여기서 적을 지 다른 사이트에서 적을 지 고민 중입니다..! 원래 거기서도 해보고 싶었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만약에 다른 웹에서 계속 빙의글 적을 생각인거면 아마 다른 글도 다 옮기지않을까 싶어요. 근데 제게 편한건 여기다보니까.. 일단 고민은 해볼게요! ㅎㅎ 다들 오늘도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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