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지만 괜찮아
w.1억
"내가 입원을 한 게 왜 너 때문이고, 왜 너 때문에 전학을 갔다고 생각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여태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봐. 5년 동안 그렇게 오해를 했을까봐.
"…아님 됐어."
"절대 너 때문에 아픈 적도 없고, 도망친 적도 없어."
"……."
"왜 멋대로 그렇게 생각을 한 거야, 도대체."
나도 화라는 걸 낼 줄 안다. 소리치는 거 말고.
나도 나름대로 내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타입이라, 이럴 땐 속이 시원하긴 하다.
근데 너를 만나서 얘기하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답답한 일이다.
"비를 맞아서 감기에 걸렸던 거고, 전학은.. 아빠 일 때문에 그런 거야."
분명 아닌데. 너 때문에 도망친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상황 설명을 하는 걸까.
뭐라도 들킨 것 마냥 말이다.
근데 너는 왜 나를 그렇게 봐?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딱 봐도 너는 내게 미안해 하는 것 같았으니까.
너 때문에 도망친 게 아니라고 하는데도 넌 왜 나를 동정하 듯 바라보는 걸까.
"아는 척 안 했으면 좋겠어."
"이그리. 그 때는 내가.."
"그 때."
"……"
"그 때 애기도 안 했으면 좋겠어. 난 5년 전 그 때 얘기 하는 게 제일 싫어. 끔찍해."
"…술 많이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야?"
"……."
내 말을 무시하고 말을 거는 네가 불편해서 가려고 움직였을까, 네가 내 손목을 잡았다.
"이그리 나랑 얘기 좀 해."
"뭔 얘기."
"5년만에 엉뚱한 곳에서 이렇게 만나는 게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말했잖아."
"……."
"끔찍하다고."
"……."
나한테 항상 차갑던, 네가.
항상 말을 걸어도 무시하던 네가.
5년만에 우연히 만난 내가 신기해서 말을 걸었던 거였을까.
네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너도 변했구나. 나도 변했듯이 말이다.
마침 술집에서 나온 정대리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데려다줄게 그리야. 너도 갈 거지?"
"아, 네!.."
대충 정대리가 재욱이에게 고개짓으로 인사를 하자, 재욱이도 고갤 숙인다.
"별로 안 마신 것 같은데 얼굴 되게 빨개, 너."
"…그래서 잘 안 마셔요. 마시면 많이 아파서 몸이.. 그래서 잘 안 마셨어요."
"그래.. 넌 마시지 말아야겠다. 소희도 같은 여자라구~ 막 너 강제로 안 마시게 하네 ㅎㅎ."
"원래 막 강제로 마시게 해요?"
"응. 소희한테 잘못 걸리면 안 된다니까.. 아침까지 술 마시다가 골로 갈 뻔 했어."
"술 잘 마시는 거 보면 신기해요.. 멋있고. 그리고 일단.. 한주임님이 존재 자체가 막.."
"소희가 멋있긴 하지. 걸크러쉬 그런 거."
"…맞아요,맞아요."
"소희도 너 엄청 귀여워해. 막 베이비 베이비 이러잖아."
"아, 베이비... 그거 정말.."
"……."
"부끄럽고.. 그래요.."
"ㅎㅎ아무래도 그렇겠지? 나같아도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해."
"…하하."
"근데 이재욱 그 친구랑은 원래 알던 사이야?"
"네? 아니요.. 그냥 뭐 물어보길래.."
"아~ 그렇지? 둘이 밖에서 얘기 하는 거 보고 또 안에서 둘이 얼마나 엮던지.. 유치해 죽겠다니까."
"…아."
"둘이 동갑이잖아. 친하게 지내봐. 두팀이 자주 자주 모이거든."
대충 네.. 하고 고갤 끄덕이면, 정대리는 웃으며 나를 힐끔 본다.
다음 날.. 회사를 마치고 챙겨왔던 우산을 들고 퇴근을 하려고 하자, 한주임이 내게 와서 묻는다.
"비도 안 오는데 무슨 우산이야?? 무슨 하는 짓마다 귀여웡."
"…아, 우산을 빌린 거라서요..!"
"아, 진짜? 아, 오늘 혹시 시간 있어?"
"오늘.. 네, 왜요?"
"나랑 저녁 먹자."
"저녁이요?"
처음으로 누군가 나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다.
항상 아픈 나를 보면 사람들은 피하기 바빴는데.
"어.. 저녁.. 제가 들릴 곳이 있어서요.."
"그럼... 갔다와! 네일 좀 받고 있을게."
"네..!"
아마 내가 아픈 걸 모르고 잘해주는 거겠지.. 싶었지만. 차라리 이게 편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다 이룬 것만 같았다.
"인턴~ 나랑 밥 먹을래?"
"아니 내가 먼저 먹자고 했잖아요???"
"마음에 드는 사람 고르면 돼. 그리씨^^."
둘은 또 싸운다. 툭 하면 싸우고 틱틱 거려서 그게 뭔가 부럽기도 하고 예뻐보였다.
"두분.. 사겨요?"
내 말에
"아니!?!?!?"
"아니!!!??!?!"
둘 다 똑같이 대답하는 게 더 웃겼다.
"그치 둘이 사귀는 것 같지?"
"…어..네..ㅎㅎ."
"ㅎㅎ 저녁 맛있게 먹어. 먼저 간다."
정대리가 손을 흔들기에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 정대리가 웃으며 사무실에서 빠져나간다.
그럼 저도.. 이만.. 하고 웃으며 나가면 한주임이 '이따봐~!'하며 손을 흔들고.. 서주임은 '가라!'한다.
마침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정대리에게 다가가 자연스레 옆에 서면, 정대리가 내게 말한다.
"근데 너 웃을 때 이미지 확 바뀐다?"
"…네?"
"그냥 그렇다고 ㅎㅎ."
마침 사무실에서 나온 재욱은 엘레베이터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해인과 그리를 보고선 발걸음을 멈췄다.
"……."
"야 왜 문을 가리고 서있어? 나갈 수가 없잖아아."
"……"
재욱이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겨 비상구로 향하면, 도현이 '어디 가냐!?'하며 당황한 듯 재욱을 따라간다.
그리가 카페에 들어서면 효섭이 바닥 청소를 하다가 그리를 보며 웃는다.
그럼 효섭이 빗자루를 벽에 세워두고선 그리의 뒤에 서서 말한다.
"뭐예요? 매일 온다더니 어제 안 오고."
"…어제는 회식이 있었어요!"
"뭐.. 회식은 인정."
"이거 우산.."
"아, 우산 꽂이!"
"아,네.."
또 카페는 닫았고, 둘은 앉아있다.
핫초코를 마시던 그리가 카페 인테리어를 보며 혼자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리가 아!..하자, 효섭이 응? 하고 그리를 본다.
"내일 무슨 아침에 등산을 한대요."
"회사에서요?"
"네!.."
"…어? 그럼 어떡해요? 무리해서 가는 것 보다 그냥 하루 쉬는 게 낫지 않나?"
"…아, 숨차게만 안 걸으면 될 것 같아서요!"
"…그래요? 나도 따라갈까?"
"네??"
"확! 나도 지나가는 등산인 1 해가지고 자연스럽게 옆에 걸을게요."
"말도 안 돼요 ㅎ.."
"말이 왜 안 돼요? 나, 진짜 한다면 하는데."
"…일 하셔야죠!"
"카페요? 아, 이까이꺼! 그냥..!"
"ㅎㅎㅎㅎ."
"나는 그리씨가 무리 안 했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막 너무 여리여리하고 그래서 툭! 치면 날라갈 것 같고오."
"네에!? ㅋㅋㅋ."
"웃으니까 진짜 예뻐요."
"……."
"우리 엄마 빼고 예쁜 사람 본 적이 없는데. 진짜 신기하네."
"…진짜요?"
"진짜겠어요?"
"…아."
"ㅋ 농담인데. 진짜예요!!"
"또 농담이잖아요."
"진짜예요."
효섭이 진짜라며 웃자, 그리가 못 믿겠다는 듯 고갤 저었고, 효섭이 소리내어 웃는다.
"근데 회사가 바로 옆인데.. 점심시간에도 들러요."
"아, 그러기엔.. 저희 그.. 팀분들이 있어서요."
"밥 먹고 커피 한잔 안 하나?"
"…안 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친구가 카페 한다고, 가자고 해봐요. 그리씨가."
"…그럴까요?"
"응. 그럼 되죠!"
"……."
"난 진짜 자주 보고 싶은데. 또 회식이고, 약속이고~ 하면서 안 올 것 같아서 점심이라도 보려구."
"……."
효섭이 커피를 마시며 그리를 보고 웃자, 그리고 효섭을 향해 웃어주었다.
"…어, 뭐 묻었다."
"……?"
"인사 잘 한다~"
"…!?"
뭔가 이 사람이랑 있으면 따듯해지고.. 편하고.
"…아, 진짜 귀여워."
설레기도 한다.
5년 전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 적이 없던 나는 이제서야 또 생각이 들었다.
이제 누군가를 좋아해도 되는 걸까?
너는 5년 전 그 때의 다음 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네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선생님은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네가 가고 며칠이 지나서야 선생님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그리 건강상태가 악화가 돼서 입원을 했어. 그리고 그리는 전학을 가게 됐다.'
'…….'
네 빈자리를 보면 기분이 이상했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학교엔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이그리 이재욱한테 고백한 날에 비맞으면서 집 갔잖아. 그 때 갑자기 쓰러져서 구급차 타고 갔다니까? 내가 봤어..
나 이그리랑 집 방향 같잖아.'
'헐 진짜..? 이그리도 참.. 불쌍하다. 근데 이그리도 예쁘고 착하고 괜찮았는데.. 애들이 너무 부려먹긴했어.
잘나가는 애들이 막 무시하고 놀리는데. 이재욱 마저도 무시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나 때문에 아파서 입원하고, 나 때문에 전학까지 간 너로 인해서.
그런 소문이 진짜라고 생각을 했다. 모두 다 그렇게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너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다. 그치만 너는 번호도 바뀌었고..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야 이그리한테 모진 말 했다며? 그냥 알겠다 하고 또 무시하고 말지 .. 왜 그랬냐?'
'…….'
나의 친한 친구는 네가 가고 몇개월이 지나서도 계속 네 얘기를 했다.
네가 불쌍하다며.. 전학간 게 아니라 쓰러지고 큰 수술한 거 아니냐고 말이다.
나도 안다. 나는 너한테 상처를 준 죄인이니까. 그래서 더 잘 안다. 너에게 사과를 해야 된다는 걸.
그리고 너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차마 하지 못 했던 말도 꼭 해야 하는데.. 너를 만날 방법이 없어서 그러지 못 한다는 게. 제일 괴로웠다.
"…야 너는 핸드폰 케이스 뒤에 단풍잎을 왜 끼고 댕기냐??"
"그냥요."
"나 줘라."
"아,직접 주워서 끼세요."
"매정한 넘. 아니.. 참나! 그래! 내가 가을 될 때까지 기다린다! 이 놈아."
그래도 난 너를 잊지 않고 살았다.
'이거! 가져!'
'뭔데.'
'단풍잎이지 뭐야.'
별 것도 아닌 선물을 주면서 별 거인 것 처럼 웃는 너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