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뭐든 마음먹기에 달렸나보다. 얼마전 서럽게 울어댔던 것이 마음의 고름을 짜냈던 계기가 되엇던 것 같다. 그 뒤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주위에서 제발 좀 쉬라고 애원할정도로.
하면할수록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숨이 가쁘고 팔이 아파도, 꼭 다시한번 경기하고 싶다고 말하던 쑨의 얼굴이 떠올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슬럼프를 지난건지, 기록은 점점 단축되어갔다. 그에 따라 코치님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고, 자신감도 생겼다. 이제 스스로 페이스 코절을 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1500m는 장거리레이스이기 때문에, 나보다 체력과 체격조건이 좋은 서양 선수들에게는 더욱 유리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1500m 예선.
난 3조라서 1,2선수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쑨은 4조라고 한다. 그는 필시 잘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은 되지 않는다.
벌써 2조 선수들이 1300m를 통과한다. 그리고 곧 다가올 3조의 차례. 현재 이탈리아, 영국, 폴란드 선수가 기록에서 1위부터 3위까지를 차지하고있다. 1위의 기록이 14분 50초 12. 내 최고기록보다 약간 앞선다.
어찌되었든, 최선을 다해보자. 다시한번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스타트대에 올라선다. 얼핏, 쑨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정말 스타트실수따윈 하지말아야한다. 또 어이없게 실격처리되는 꼴은 내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다.
하나...둘...속으로 숫자를 센다.
그리고... 출발!!!!!!!!!!!!!
얼른 물속으로 뛰어들어 잠영을 한다. 스타트부터 잠영거리까지의 속도가 그 선수의 페이스를 좌우한다고해도 말이아니다. 잠영 후 바로 자유형으로 연결시키는 그 구간에서 쳐져버리면, 자신감을 잃고 흔들려버리기 십상이다.
다행히도 난 거기에대해선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일단은 매끄러운 스타트.
우리조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사람은 내 바로 옆 레인의 캐나다 선수, 코코레인이다. 그는 원래부터 매우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선수이기에, 애초에 처음부터 제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선, 그에게서 너무 뒤쳐지지만은 않게 붙어있다가 거기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할 생각이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생겼다.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선수였던 중국의 다이준 선수가 초반부터 1위로 치고 나갔다.
뭐지?저렇게 처음부터 스퍼트를 내는 이유가 뭐야?
아니면, 원래부터 저 정도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가?
아니다. 내가 아는한, 저 정도의 스피드를 내고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사람은 쑨양 뿐이다.
흔들리면 안되. 알잖아, 흔들리는 순간 끝이라는거.
당황하지 말아야한다. 더 이상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투자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다행히도 코코레인과의 거리는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1초정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마지막에 역전도 가능할 지 모른다.
300m....400m...........
다이준 선수가 슬슬 쳐지기 시작한다.
역시, 그는 와일드카드를 내건 것이었다.
1500m경기는 그 시간이 길기 때문에, 중간에 어떤식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야되기 때문에 그날의 컨디션과 판단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다이준 선수는 너무 스스로를 믿었나보다.
끝이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우선 선두를 차지해두면 조금이라도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체력이 버텨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에게도 그런 선택은 모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를 동정하기보다는, 내 눈앞의 상황을 읽는것이 더 급급하다.
아쉬운건 아쉬운거고, 경기는 경기다.
다이준 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쑨과의 약속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쁠 뿐이었다.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페이스를 유지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코코레인이 1위로 올라감에 따라 나도 2위로 알라가게 되었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지, 물을 가르고 나아가는 느낌이 유난히 매끄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력이 점점 떨어져가는게 느껴졌다. 머리는 똑같은 속도로 팔을 뻗는다고 생각해도, 몸은 아니었다. 팔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750m.
연습 때도 항상 그랬다 딱 1500m의 중간인 이 구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 구간에서 잠시 힘을 놓아버리면, 기록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져버렸다.
그 정도도 못버티나고 묻는다면,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한 번 해보라고.
정말 미칠 것 같다. 여기서 그만두면 안될까,라는 생각이 온통 머리를 잠식한다. 아무리 해도 속도는 올라가지 않고, 중반부에 스퍼트를 내는 선수들이 치고나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감은 땅바닥으로 추락한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난 이번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옆레인의 코코레인 선수를 볼때마다 그 위에 쑨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사흘 전 그의 나직한 위로가, 등을 토닥여주던 부드러운 손길이 생각났다. 함께 수영하자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와 진심이 담긴 눈빛이 날 포기 할 수 없게 만든다.
다시 한번 이를 악 물었다.
허무하게 예선에서 떨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점점 기록이 떨어진다면, 결선에는 올라갈 수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코코레인과 2초정도 차이가 벌어졌다. 게다가, 내가 잠시 속도를 내지 못한 사이에 3레인의 미국선구 코너 제거가 따라왔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1위를 노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2위. 2위를 노리는 거다. 어차피 순위보다는 기록이 중요한 경기다.
체격적으로 나보다 우월한 미국선수는 금새 날 따라잡앗다.
이제는 2위 다툼이다. 눈을 부릅떴다.
여기서 밀릴 순 없어
1200m, 1250m....
제거선수와 나는 거의 같은 속도로 반환점을 돌았다.
1350m.
이제 체력은 더이상 믿을 것이 못되었다. 체력이 달리는 난, 이제 믿을게 정신력밖에 없다.
질 수 없어. 널 응원해주는 사람을 생각해봐. 넌 할 수 있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좀 더 날 믿자.
그리고 1400m!!!!!!!!!
이제는 더 이상 낙관할 수 없다. 여기서 치고나가지 못하면, 난 3위를 하게 될 것이다.
눈에 뵈는게 없다.
체력은 거의 바닥상태. 700m에서 800m까지의 100m는 길지만, 마지막 구간의 100m는 너무도 짧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마지막에 스퍼트를 내는데, 그것은 제거 선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 뒤로 난 그를 신경 쓸 수 없었다.
오로지 몸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생각마저도 버린, 말 그대로 무념무상의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는데만 집중했다.
제발...제발.....!!!!!!!!!!!!!
40m.......30m....
조금만...더..............!!!!!!!!!!!!!!!!!!!!!!!!!!!!!!!!!!!!!!!!!!!!!!!!!!!!!!!!!
네~ 박태환선수!!!!!!!!아슬아슬하게 2위로 들어왔습니다!!!!!!!!!기록은 14분 56초 89! 저번의 기록보다는 확실히 떨어지지만, 결선진출에 대한 희망은 보입니다!!!아주 잘해줬어요, 박태환선수!!!!!!!!!!
하아...하아..................
하얘졌던 시야가 돌아왔다.
It was a nice game, Park.(멋진 경기였어, 박.)
제거 선수가 내 손을 잡으며 환한 미소로 내 2위를 축하해 준다.
그제서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Thanks.(고마워)
멍한 정신으로 물밖으로 나오자, 코치님이 득달같이 달려와 수건을 씌워준다.
잘했어.
그 한마디에 모든 걱정, 위로, 칭찬이 들어있었다.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이제 내 경기는 끝났다. 역시, 1500m는 너무 힘들다.
하지만, 난 쑨의 경기를 봐야한다. 역시, 그는 초반부터 폭발적인 스피드로 선두를 차지하더니, 4개의 조를 통틀어 1위로 결선에 올랐다.
그는 물에서 머리를 들자마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꼬리를 잔뜩 올려 웃었다.
역시, 이긴 자의 여유인가.....
다른선수가 그랬으면 되게 얄미웠을텐데, 그가 그러고 있으니까 그냥 동네 꼬맹이의 개구진 웃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복병은 쑨의 조의 3,4,5위였다. 특히 3위는 이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내 기록과 매우 비슷하게 들어올 것이로 예상된다. 만약, 글들이 나보다 빨리 들어온다면, 나는 결선에 올라갈 수 없다.
정말 해선 안될 짓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들이 못하기를 빌어본다. 난 이번결선을 놓칠 수가 없다.
3위 선수가 점점 마지막을 향해 달려온다.
53...54............55.......
네!!!! 미국의 겜멜선수 59초 대로 결국 박태환선수가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됐다!!!!!!!!!!!!!!!!!!!!!!!!!!
결선진출이 확정되자, 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락커룸으로 가려고 몸을 돌리자, 쑨양은 1위답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물에서 나와 내 뒤를 따른다.
그리고, 3일 전과 같은자리에서, 전혀 다른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다시한번 환한 웃음을 지어줬다.
고마워.....그리고...
.......오늘은, 그의 웃음이 내 가슴에 용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심어버린 것 같다.
--------------------------------------------------------------------------------------------------------------
벌써 두자리수에 접어들었어요ㅎ
넷북으로 쓰고있어서 그런가, 컴퓨터가 버벅거려서 지금 겨우 올리고 있는 중이랍니다ㅎ
이번 편은 1500m예선전을 통째로 집어넣어봤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가슴졸이며 봤던 경기라 아직도 그 장면들이 눈에 생생하네요ㅠㅠㅠㅠㅠㅠ
그럼, 다음편에서 뵐게요^^ 좋은 밤 되세요~
대한민국 축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