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어릴 적 무심결에 본 누드화보 같았다.
바보같던 내 호기심,그리고 후에 몰려오는 구역질.
넌 그랬다.
평범한 척 속은 그렇지 않았고,나를 바보천치로 만들었다.
너도,그랬다.
**06**
"듣던대로내."
"..어떻게.."
"어떻게?어떻게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야."
"...."
"니가 김종인 동생이란게 중요한 거지."
박찬열이라는 그는 멍하게 올려다보는 나를 쳐다보며 웃다가 내 볼을 손으로 한번 쓸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그와 내가 남매인 것은,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였다.옆집에 사는 김준면이 안다면 알까,그렇다고 김준면이 그런 걸 얘기하고 다닐 성격도,취미도 없었다.온 몸에 피가 식는 느낌이였다.아무렇지도 않던 머리가 다시 지끈댔다.그가 지나간 길로 몸을 돌려 바라봤다.찬열은 계단에서 내려온 그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웃어보였다.그 때 조례종이 울리기 시작했고,찬열은 어깨동무를 한 뒤로 고갤 돌려 멍하게 서있는 날 바라보며,웃었다.
****
그 이후로 오전 수업에는 하나도 집중을 할수없었다.정확히 말하면 못했다.아무렇지도 않게 날 대하는 준면과,나와 그의 사이를 아는 찬열,그리고 알수없는 행동의 그.어느하나 나를 편히 해주는 것이 없었다.오늘은 오전에 중요한 과목이 다 몰려있었는데,집중도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냈다.오전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어느순간 점심시간 종이 쳤고,반애들이 하나둘씩 급식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밥 안 먹어?"
"...."
시계를 바라보다 잠이나 자야겠다 싶어 밥 먹으러 가자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책상 위에 그대로 엎어졌다.반애들이 차츰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교실이 점차 조용해졌다.조용한 느낌에 눈을 감았건만,머리 위로 아까 마주쳤던 박찬열의 목소리가 들렸다.잠에 들진 않았지만,일부로 자는 척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는 대답이 없는 나에 다시 발걸음을 돌린 듯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가 나가고 서서히 머리 속이 편해지면서 잠이 오기 시작했다.잠에 빠져들랑말랑 한 그 때에 빈 교실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점심시간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었기때문에 반애들은 아닌 것 같았다.신경을 끄고 다시 잠에 들려했다.근데 발소리가 점점 내게 가까워졌고,내 책상 위로 무언가가 올려지는 소리가 났다.내 앞으로 다가왔던 누군가는 다시 발을 돌려 교실을 나가는 듯 했다.근데,내 책상 앞 언저리에 남은 향에서.그의 향이 났다.눈이 번쩍 뜨여 몸을 일으켰다.햇빛이 들어 오고 있는 교실엔 아무도 없었고,내 책상 위엔 내가 항상 먹던 초코우유가 놓여있었다.
****
결국은 그 초코우유를 먹지 않은 채 사물함에 넣어버렸다.오전수업에는 머리만 아픈 그 셋을 생각하다가,오후수업에는 초코우유를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한숨만 수어차례 뱉으면서 노트아래 빈공간에는 볼펜으로 썼던 글씨를 엉망진창으로 덮으며 지워버렸다.그일까.노트 빈 공간에 다시 그의 이름을 적었다.그는 아니겠지 했다.내가 초코우유를 먹는지도 모를 것이다.그저,관심있는건 내 몸일테니까.준면일까.그의 이름을 지워버린 옆에 준면의 이름을 적었다.그는 더더욱 아닐 것 같았다.억지로라도 날 데리고 급식실을 갔으면 갔을 사람이다.누가 놓고 간 것이지,어렴풋이 남았던 그 향은 누가 놓고 간 것인지.온 머리가 복잡했다.
지끈대는 머리에 일부로 꾀병을 부려 야자를 뺐다.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학교에서 나와서 아직 해가 다 지기 전이였다.치마주머니에서 이어폰을 빼서 귀에 꽂으려던 찰나,뒤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일부로 무시하고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으려 했다.근데 뒤에서 다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내 이름이 아닌,김종인 동생으로.그 소리에 놀라 뒤를 쳐다보니 찬열이 헥헥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김종인 동생!야자 째?"
"...."
"나쁜 아이네.오빠도 쨌는데,나랑 놀래?"
싫다고 해도 왠지 놀자고 계속 할것만 같은 느낌에 어찌할 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그는 그런 내 모습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놀아준다는거지?가자,하며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그를 보면 물어봐야지,해서 생각해두었던 모든 말이 지우개로 지운듯 생각이 나지 않았다.내 손목을 잡고 먼저 성큼성큼 가는 그의 뒷통수를 보니 아까 김종인에게 어깨동무를 하던 그가 생각이 났다.그리고 뒤를 돌아 나를 보며 웃던 그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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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은 내게 친절했다.석식을 안 먹은 내게 자신이 직접 밥을 사기도 했고,하도 빨빨대며 돌아다니는 그에 지친 나를 위해 카페에 가서 음료수를 사주기도,노래방에 가서는 노래도 안한 채 멀뚱히 앉아있는 나를 대신해 한 시간 내내 노래를 하다 목이 나가기도 했다.노래방을 끝으로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 두개를 사서 먹었다.이제 집에 가야한다고 말한 내게 그는 쪽쪽빨던 아이스크림을 입에서 빼고는 데려다 준다 말을 했다.우리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그는 끊임없이 말을 했고,나는 그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말이 없었다.
"초코우유는 잘 먹었어?"
"아...그거 선배가 놓고 간거에요?"
"어?...어."
앞만 보며 말하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고민한 시간도 아깝게,그 초코우유는 찬열이 놓고 간 것이였다.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나도 모르겠는데,그냥 기분이 이상했다.먹지도 않고 사물함에 넣어놓은 탓에 잘 먹었냐는 그의 질문엔 대답을 할 수 없었다.그래서 일부로 다른 질문을 했다.그의 마지막 대답에 그냥 고개만 끄덕이곤 바닥을 바라봤다.가로등불빛에 비춰져 아스팔트 도로 위 늘러붙은 껌딱지가 보였다.그는 그 이후로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시시콜콜한 이야길 하기 시작했다.그의 말에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여줬다.
"근데 날 왜 자꾸 김종인 동생이라 불러요?내 이름 모르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넌 ㅇㅇㅇ이기도 한데,김종인 동생이잖아."
"...."
"난 이게 더 편해.김종인 동생."
계속 말만 하던 그에게 되려 내가 물었다.그러자 그는 자신이 말하던 얘기를 멈추고 내 말을 들었다.왜 자꾸 이름을 부르지 않냐는 내 질문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김종인 동생,김종인.김종인..그는 마치 내 머릿속에 그를 새기기라도 하려는 듯 자꾸만 내게 그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였다.그는 그런 날 바라보다 이내 끊겼던 얘길 다시 하기 시작했고,나는 집 앞에 거의 도착해가는 듯해 바닥만 보고 걷던 고개를 들었다.앞을 바라본 나는 순간 옆에서 말을 해대는 찬열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가로등 옆 대문 앞에 그가 앉아있었다.
"...야,ㅇㅇㅇ."
"..."
"야,화내지마.내가 니 동생 하루 빌린거야."
"넌 가만히 있고,ㅇㅇㅇ 넌 들어가."
"...네."
가만히 있으라는 그의 말에 찬열은 입을 삐죽 내밀곤 어깨를 으쓱였다.그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대문 앞에 서있는 그를 지나쳐 문을 열었다.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내 뒤로 찬열이 잘들어가라며 말을 했고,나는 그저 대문을 세게 닫을 뿐이였다.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그리고,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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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분량 갠춘하다!!
신난다!!!!
ㅎㅎㅎㅎㅎ
근데 과연 초코우유는 박찬열이 놓고 간거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