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반복
(고정브금임니당)
런던에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이 멕시코전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어제 왔을텐데 일정이 약간 꼬이는 바람에 축구 대표팀이 하루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공항에서 이용대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용대를 본 일은 좋은 일이나, 이걸로 컨디션이 꼬인다면 그건 더 안될 일이다. 국가대표로써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니,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도착했을 때 런던은 낮이었다. 몇시간을 비행기로 날아와도 똑같이 낮이라니 허무한 감이 없진 않았다. 리그를 뛸 때에도 한국에서 스코틀랜드로 날아가기 까지도 가장 힘든 것이 시차 적응인데, 영국 리그에서 뛴다고 시차적응이 쉽냐고 묻는다면 천만에 말씀이다.
"넌 셀틱에서 뛰느라 시차적응 많이 해봤겠네. 익숙하냐?"
이런 놈들이 꼭 하나씩은 있을 줄 알았다.
"어휴, 구자철 병신아."
힘들어하는 구자철을 두고 빠르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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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전은 0:0으로 끝나버렸다. 아쉽고, 또 미련이 남는 경기였지만 경기장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해서 죽으려는 표정으로 선수촌에 오니 드문드문하게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보였다. 정신이 딱 트여서 혹시 이용대 선수는 없을까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와중에 근처에 있던 구자철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녀석이 기분 나쁘게 풉 하고 웃었다.
"뭐야, 왜 웃어."
"너 혹시 이용대선수 찾냐?"
"뭐?"
헐 어떻게 알았지.
"아, 완전 어이 없다. 너 진짜 좋아해?"
구자철이 이렇게까지 환하게 웃는 건 평생에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아마 그냥 놀리는게 재밌어서 그런 거겠지. 나쁜놈.
"아서라, 쓸데 없는 소리 말고."
"맞는거 같은데, 기성용!"
"아 뭐라는거야, 남자를 왜 좋아해!"
"기성용 선수!"
"맞아, 기성용 선수! 엌?"
투닥거리면서 놀고 있으니 저 멀리서 누군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나를 놀리던 구자철은 그를 보고 놀랐고, 나 역시 그를 보고 눈이 나도 모르게 동그랗게 뜨인 것이 느껴졌다. 이럴수가, 이용대가 나를 찾아왔다.
"아, 아, 안녕하세요, 이용대 선수!"
"네, 안녕하세요. 구자철 선수."
"햐아, 저 아시네요?"
"당연하죠,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축구 굉장히 좋아합니다. 독일 리그도 많이 봐요."
"이야, 바쁘실텐데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네요."
"뭘요, 저보다 구자철 선수가 더 바쁘실 것 같은데."
"예? 아니, 하핫. 그렇지도 않을거에요. 성용이한테 볼일 있으신거에요?"
"아, 네. 얘기를 좀 하고싶어서요."
"아, 자리 피해드리겠습니다."
"그러실 것 까진 없는데… 감사합니다."
"하하, 그럼 다음에 뵈요. 얘기 하고 와라."
저놈에 입방정은. 자철이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나뿐인건가? 이용대는 그런거 못느끼나? 그를 한참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용대는 구자철을 뒤쫓던 눈을 나에게로 돌렸다. 나도모르게 흠칫하고 놀라버렸다. 으아 꼴사나워…….
이용대는 그런 나를 보고 그 특유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찾아본 그의 사진은 각도가 평행 아니면 밑이었다. 그도 한국에서는 키가 큰편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게 생각났다. 이렇게 위에서 그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키가 180이랬나? 11센치의 키차이가 이렇게 좋은 것인줄 미처 몰랐다. 날 올려다보는 시선이 나쁘지 않았다.
"혹시 저한테 연락 하신적 있으셔요?"
이용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난 빠른 89지만 89는 89인데 한살 어린 나에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는 그가 너무 귀여워보였다. …음?
"네? 아, 네…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이용대를 쳐다보니 정말 귀여워보였다. 같은 남자에게 무슨 이런 생각을 하는가 속으로 탓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까이서 다시 보니 정말 잘생겼다. 이 남자, 남자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했었나? 누굴까, 인기투표에서 이용대를 찍은 사람은.
"죄송해요. 제가 전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다시 사면서 번호를 바꾼거라, 연락을 못 드렸어요.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요. 사정이 있으셨다니… 그것도 모르고 혹시 싫어하시는 건가 맘졸였네요."
"네?"
으아, 괜한 소리를 했다. 뜨끔해서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해댔다.
"괜찮으시면 번호 주시겠어요?"
"네? 네!"
목소리가 너무 컸나보다. 신나서 나도 모르게 정말 활기차게 대답했다. 이용대는 그런 내 모습에 움찔하더니 웃어보였다. 강아지 같은 눈매에 애교살이 두드러져 보였다. 쓰다듬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내 손이 그의 머리 위로 가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라 너무 놀라서 헉 소리를 내며 손을 내렸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아, 기성용 이 미친놈, 무슨 짓을 한거지?
그의 표정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하지만 그는 또 한번 웃어보이더니 자기 핸드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받아들며 내 번호를 눌렀다. 번호를 누르는 내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알 수 있었다. 번호를 누르면서 계속 실수하고 다른 번호를 눌러서 눌렀다 지웠다 눌렀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이용대는 그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느껴져서 더욱 긴장했다.
번호를 누르는 몇 초 동안이 몇 분이 지나간 것 처럼 길게 느껴졌다. 번호를 맞게 쳤나 확인하고 그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그럼 전화 걸게요."
이용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가방 안에서 진동이 느껴져서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가방을 뒤적였다. 별거 들지도 않은 가방 안에서 얼마나 깊이 들어가 있는지 핸드폰은 잘 나오지 않았다. 신호가 몇번 울리고 그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나서 핸드폰을 찾아 꺼내었다.
부재중통화 1
으아아 이용대 번호다…!
"용대, 빨리 와라!"
"어, 형!"
뒤에서 누군가 이용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용대는 또 나에게 웃어보이며 촬영이 있어서요, 나중에 뵈요. 하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에게로 뛰어갔다. 그는 정재성 선수였다. 이용대의 기사를 찾아보는 데 매번 같이 나오는 그의 파트너. 둘이서 세계 1위. 새삼스레 그가 부러워졌다. 쩝. 입맛을 다시고는 핸드폰을 꾹꾹 눌러대며 건물을 향해 들어갔다.
이용대 선수
좀 밋밋한가? 뭐라고 저장하지? 자판을 여러번 두드렸다. 이용대. 용대. 용대씨. 이용대 씨.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아, 뭐라고 할까…
이용대 선수♥
…음?…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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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쥐고 걸어가던 나는 그 자리에 쭈구려 앉아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다들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지나가겠지? 아, 그래도 좋다. 이용대 번호라니…. 행복을 반끽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손에서 핸드폰을 쏙 빼갔다. 화내면서 고개를 들려고 했는데 내 눈에 보이는 건 구자철이었다.
"아, 내놔!"
"야, 크하, 기성용! 으하하하하하!"
"아, 줘! 내놔!"
"이게 뭐야, 뭐라고 저장한거야, 너!"
입에 귀에 걸려가지고 웃는 구자철이었다. 오늘 저놈을 꼭 때리고 자야겠다.
"야, 너 얼굴 대박 빨개!! 홍당무야, 기당무야, 기당무!"
"아, 쫌!!!!"
죽어라 그를 쫓아 달려갔다. 두 축구선수가 쫓고 쫓기는 달리기를 하고 있으니 우릴 알아보는 다른 선수들의 이목을 받았다.
그런 건 상관 없었다. 눈에 띄던 말던 지금 저놈을 잡아서 때리는게 급선무였다. 구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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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성용이 ㅠㅠㅠㅠㅠ
접점도 떡밥도 별로 없어서 쓰는데 고역을 느끼지만
어쩌겠어요 잘생긴 애들 둘 잇는게 얼마나 신나는데;;♥
얘네는 접점이 없는게 매력이라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