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은 한꺼번에 듣기를 추천드립니다♡)
건너편 건물, 1학년 교실.
"야, 병신아. 야, 야"
"아 하지마 ..."
"내가 뭘 했는데 미친놈아. 야, 여기 좀 보지?"
잠시 선생님이 나간 사이에 주위 남자아이들이 한 아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졸지에 한 가운데에 몰린 남자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만 푹 숙인다. 주동자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아이가 그 아이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린다. 의자에서 넘어져 떨어진 애를 보며 재밌다는듯 자기들끼리 큭큭 대며 웃는다. 그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는 다른 여자애들은 물론, 다른 남자애들까지 착잡하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너네 지금 뭐하는거야!"
"아씨, 한참 재밌었는데."
얼마 안있어 선생님이 들어오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 아이 곁으로 떨어져 저들 자리에 앉는다. 나가 떨어진 남자아이는 옷을 툭툭 털며 익숙하게 자리에 앉는다. 늘, 늘 있는 일이라 몸도 마음도 무너질대로 무너진 상태였다.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 말고, 신고를 해. 그러면 이제 쟤네 너 못건들여."
"... 괜찮아, 난."
"너 바보야?"
도저히 못봐주겠었는지, 옆에 앉아있던 여자애의 말에 그저 무표정을 지킨다. 신고, 신고라. 신고 하라는 얘기에 하마터면 헛웃음을 칠 뻔 했다. 여러번 해봤다. 선생님한테도, 상담 선생님한테도. 그런데 웬 걸, 신고를 해도 먹히지가 않았다. 저 주동자 놈의 아버지가 이 학교에 너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사장이라나, 뭐라나. 그에 반해 우리 집은, ... 형편없었다. 부모님도 안계셨고, 있는 사람이라곤 할머니 한 분 뿐인데.
남자아이는 한숨조차 내지 않았다. 한숨 뱉어봤자 뭐하려고. 이미 미어터진 마음이 진정되는 것도 아닌데. 삶에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살아봤자 나아질게 없었다.
"......"
그 때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그 새끼들이 뒤에 있더라도 한기가 돌아 으스스하거나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근데, 지금은 뭔가 차갑고 ... 으스스했다.
".... 으, 윽..."
"... 야, 너 왜그래."
마치 몸에 무언가 들어간 것 마냥 숨을 짧게 들이마쉬며, 잡고 있던 샤프를 놓치는 것에 옆에 앉은 짝꿍이 놀라며 옆을 보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고개를 세차게 젓는데,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냥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2학년 교실, 서월의 반.
그룹 워크 참 좋아하는 학교 때문에, 오늘도 역시 교과서 문제를 다 같이 풀고 있다. 공부에는 별 뜻이 없던 터라, 답을 대충 휘갈겨 쓰곤 건물로 인해 꽉 막혀 있는 옆 건물을 바라보았다. 3학년 교실 쪽은 막고 있는 건물 없이 운동장이 훤히 보이는데, 2학년 교실만 1학년 건물로 인해 어두컴컴했다. 바람도 안불고, 환풍도 안되고. 최악 중에 최악.
맘 같아서는 이 건물을 부서버리고 싶다, 하며 미간을 좁히고 있는데 활짝 열린 창문으로 냉랭한 바람이 앞머리에 닿아 흩날렸다. 아까도 말했듯이, 여긴 바람도 안불고, 환풍도 안되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의 교실이다. 더군다나 낮인데, 냉랭한 바람이 부는 건, 뭔가 이상한데.
"... 뭐지."
자꾸만 반대쪽 건물을 가리려는 커튼을 묶어버리곤 건너편 건물의 교실을 유심히 살폈다. 그 바람이 어디서 분걸까, 하며 한참 찾다 어느 한 교실에서 눈길이 멈췄다. 다른 교실들의 커튼은 바람이 안부는데, 그 쪽 교실에서 뒷 쪽 커튼만 유난히 바람이 부는게 역시. 사신한테 도와줄 거리가 생겼단 사실에 미소부터 지어진다.
"찾았다."
악귀.
"오늘은 머리 좀 식힐 겸, 교과서에 있는 시 말고 다른 시를 준비해봤다."
"아 뭐예요, 쌤. 머리 식히려면 그냥 수업을 쉬어야...!"
"시끄럽고, 나눠주는 프린트나 잘 받아."
그러게. 머리 식히기 위해서는 그냥 수업을 쉬어야 하는 것을. 뒤로 건네지는 프린트를 받아 무슨 시인가, 하고 제목부터 읽었다. 제목은, 은방울꽃.
"... 참나, 은방울꽃."
제목을 보자마자 스쳐지나가는 기억들에 온 몸의 기운이 싹 빠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기억나는 그 이름, 혜선.
"....."
어느 하루는 잊어보려 별 난리를 친 적도 있었다. 그 이름, 그 장소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싶지가 않아서. 자꾸만 떠오르는 그 기억들이 너무나 괴로워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무뎌지겠지 했지만, 절대 그러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지금까지도 그녀와 관련된 것들을 보고 듣다보면 그대로 눈을 감게 돼버리니까.
"이 시는 선생님이 약 30년 전, 대학생 때 쓴 시다."
"오 그럼 쌤 지금 나이가 ..."
"구준회 너 자꾸 태클건다? 여튼간에. 이 시를 왜 쓰게 됐냐면, 너네 영주각이라고 아니?"
"아뇨, 모르는데요."
영주각이라는 말에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모를 리가 있나, 그 영주각을.
당연히 모르겠지. 하며 선생님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한 200년 전에 영주각이라는 되게 큰 기방이 하나 있었어.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조선 최고의 기녀들만 모인 곳이라고해. 뭐 영주각은 대충 이런 곳이였고. 그 영주각에 기녀가 하나 있었어. 혜선이라는 기녀였는데, 그 너네 말로 차도녀라고 하지? 차도녀. 혜선이가 딱 그랬대. 그래서 오는 손님들도 혜선이를 좋아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가 없었다하더라고. 성격이 그렇다보니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도 말도 제대로 못하고 떠나보내기도 했었대."
"그런데 그 어느날, 혜선이가 보이지 않는 사람하고 사랑에 빠진거야."
"귀신이랑 사랑에 빠진건가?"
"....."
옆에서 성이름이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순간 몸이 움찔했다. 저 얘기가 어디서부터 흘러나온건진 알 수 없지만, 너무도 정확한 얘기들에 손에 쥔 프린트를 더 꼭 쥐게되었다. 그 수백년 동안 그 얘기를 꺼냈던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와 내 얘기를 처음으로 남에 의해 듣는거라 머릿속이 복잡해져갔다. 너무, 너무 오래된 얘기인데 여전히 생생하다는것이 또 다시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이 귀신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 기녀 눈에만 보였던거지. 혜선이 이제 그 사람에게 고백을 하려고 꽃밭에서 어떤 꽃을 딸까 한참 고민하다가, 이 시 제목처럼 은방울꽃을 한가득 모았어. 그리고 그 사람에게 건넸는데,"
'그 은방울꽃말이 순애에요.'
'... 고민 많이 했는데, 그나마 가장 제 마음 같아서요.'
'... ... 나리. 저 일찍 죽던, 나중에 죽던간에 상관은 없는데요.'
'지금 나리를 좋아하...'
한 글자, 한 글자. 토씨 하나 안틀리고 다 기억하고 있다. 그 날 은방울꽃을 건네며 내게 했던 말들, 그 눈빛, 그 목소리, 그 떨리던 손길까지.
"그래서 쌤이 그 얘기를 듣고, 시를 쓴게 이 '은방울꽃' 인거야."
"근데, 그럼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였어요?"
"그거야 모르지. 진짜 귀신일 수도 있고, 저승사자라는 얘기도 있어."
"저승사자가 진짜 있어요?"
"그 너네 오해하는게 하나 있어. 저승사자가 하도 테레비에서 죽을 때 까만 옷 입고 훅 나타나서 이미지가 그렇게 굳혀진거지, 원래는 안그래."
"아니 그럼 진짜 있다고요?"
"혹시 모른다? 너네 주변에 저승사자 있을지."
애들한테 별걸 다 말하네, 저 사람은. 괜히 주위 눈치를 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데 턱을 괸 채로 중얼거리더니 그새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성이름이 보인다. 아침에 보니까 피곤해보이기는 하더라. 억지로 계속 물마시고 그러던데. 그 모습을 나 또한 턱을 괴고선 바라보았다. 저렇게 자면 머리 안무거운가, 싶다가도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이 햇볕에 비춰지며 뭔지모를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분위기가, 그 모습이. 마치 200년 전 혜선이인것만 같았다. 둘이 성격은 전혀 딴판인데.
"이 시는 각자 읽어보고, 어디다 껴놓던지 해. 버리지는 말고. 알겠냐."
"예"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고, 남은 시간은 자습을 하던지 쉬던지 해. 구준회 말대로 오늘 머리 좀 식히라고 주는 시간이니까."
자유시간을 주자마자 애들은 저들끼리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까와 같은 자세로 잠든 성이름이는 시끄러운듯 인상을 찌푸렸다. 좀 조용히 시켜줄까?
"... 쉿."
손을 입술에 가져다대니, 무음 처리가 된 듯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 정 3품 때였나. 그 때부터 이런 자잘한 능력들을 얻었던 것 같다. 가끔 유용하게 쓰이기도 했었고, 자꾸 나를 골탕먹이려는 사람들도 이런 방식으로 막아서기도 했었다. 뭐, 원래는 그런데에 쓰라고 있는 건 아니긴 하다만. 종 치기 전까지 조용히 잘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는, 새근새근 잘도 자는 성이름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 귀엽네."
그 모습이, 좀 귀여워 보였다.
어두운 방, 취침등만이 켜진 자신의 방에서 진환은 침대와 벽 사이에 몰래 껴 둔 오래되어보이는 앨범을 열었다. 자기 사진은 없고, 낯선 여자들의 사진들만 가득한 그 앨범을 진환은 차갑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 230년?"
아무도 없는 집에서 미친듯이 웃던 진환은, 웃음을 멈추곤 앨범 한 장을 넘겼다. 사진같은 그림 한 장이 고이 껴있었다. 한복을 입고 단아한 자태로 있는 여자의 초상화였다. 진환은 그 그림을 매만지며 인상을 썼다. 괴로워하고 있었다.
"... 한이 많아, 아직."
"못 푼 한이, ... 많다 난."
모서리 끝에 '月梅(월매)' 라 적혀있는 그 사진 아니, 그림을 진환은 곧 껴안고 그대로 뒤로 누워버렸다. 어두운 방 안에, 취침등이 곧 꺼질듯 위태로웠다.
더보기 |
이제야 제가 바라는 전개대로 슬슬 가고 있네요! 으후, 진작 이렇게 가야했는데. ㅋㅋㅋ
아 월요병이 또 스믈스믈 올라오네요. 월요병 다같이 이겨내 봅시다! 아자자!! ㅠㅠ 으헝 싫어 ㅠㅠㅠ
암호닉! (암호닉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주네띠네 님♡ 구닝 님♡ 초록프글 님♡ 핫초코 님♡ 뀰지난 님♡ 바람빈 님♡ 비비빅 님♡ 부끄럼 님♡ 0324 님♡ 마그마 님♡ 까까 님♡ 깜냥 님♡ 준회윙크 님♡ 환생 님♡ 김밥빈 님♡ 바나나킥 님♡ 바뱌 님♡ 괴물 님♡ 뿌요를 개로피자 님♡ 감귤 님♡ 하이린 님♡ 시작 님♡ 이원 님♡ 아침 님♡ 한비나겨론하자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