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시간. 수업이 끝나자마자 남자아이를 괴롭혔던 그 아이들이 다시 그 쪽으로 향했다. 아까 미처 못한거 끝내야지? 하며 이 학교 이사장 아들이라던 아이가 그 아이의 책상 위에 털썩 앉는다. 큰 덩치의 몸이 책상 위에 닿으니, 책상 위에 올려있던 볼록 튀어나와있던 교과서가 금새 납작해진다. 이사장 아들은 초점 없는 아이의 턱을 잡곤 시선은 아래로 향하며 내리깔듯 보았다. 남자애는 여전히 초점없이 정면만 응시했다.
"야. 너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학교 안이야, 알아?"
"......."
"그니까 기어오를 생각 말라고 이 씨...!"
그 때 였다. 욕이 입 밖으로 거의 다 튀어나왔을 때 쯤 자기 턱을 잡고 있던 덩치의 손목을 그대로 뒤로 꺾어 버리다 책상 위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버린다. 잡고 있던 손목을 놓고 꽤나 푹신해보이는 등판 위에 발을 대더니 음료수캔 밟는 것 마냥 척추뼈를 밟아버린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괴롭히려 같이 기세등등하게 다가왔던 남자아이들도, 옆에 앉아 도저히 못보겠다는 식으로 말하던 여자아이도 놀란 표정으로 제압당한 덩치를 내려다보다 남자애로 시선을 돌렸다.
"야 이 미친새끼가...!!!"
모여있던 남자아이들 중에서도 한 주먹할 것 같이 생긴 애가 나와 남자애의 얼굴을 치려하니, 고개를 뒤로 빼며 자기를 치려던 그 애 조차 가차없이 제압해버린다. 그 광경을 보던 아이들의 표정은 하찮음에서 점점 놀람으로 변해갔고 이어서 두려움의 얼굴로 번져갔다. 초점없는 눈으로 주위를 슥 돌아보던 애는 척추뼈를 밟히고 있는 애에게 발을 떼곤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 입술이 벌어졌다.
"너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 돼지 우리일 뿐이야."
"병신아."
덩치에게 그 말을 꺼내던 때. 내내 무표정하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그런 표정으로.
"내일은 반장선거할건데, 하고 싶은 애 없니?"
"........"
"... 그럼 우리는 반장선거 안할거니?"
"........"
"....... 그, 그래. 알아서들 신청하러 와라, 그럼."
너네 자소서에 리더십 내용 한 줄이라도 적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이번이! 선생님의 말에도 반 아이들은 아무 말 조차 않았다. 이름이는 아까의 일이 아직도 충격에서 가시지 않아 말이 없었고, 한빈은 평소처럼 말이 없었고. 그에 반해 평소에 말많던 구준회는 힘없이 축 늘어져있는 이름을 보며 걱정되는 마음에 아무 말이 없었다. 1학기 반장이였던 동혁은 김한빈을 한번 보다 고개를 돌려 아까 선생님께 가서 복사해 온 과제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무언가 걸리는 눈치로 보였다.
"오늘은 이만하고, 선거 나갈 애들은 이따 교무실로 와라. 꼭이야, 꼭."
"........."
"... 반장 인사하자."
선생님의 말에 동혁은 다시 그 종이를 접어 책상 서랍에 넣고 일어났다. 차렷, 공수, 배례. 감사합니다. 하며 내려가는 고개가 다시 한빈으로 향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한빈은 그 시선이 안느껴지는듯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메고 일어난다. 이름이는 계속 멍하니 있다 뒤에 다가와 어깨를 치는 구준회에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왜."
"아까부터 왜그러냐?"
"... 뭐..가."
"아 됐고, 너 저 반장선거 나가봐. 너 맨날 떨어졌었잖아, 이번엔 될 것 같으니까 해봐. 애들 관심 하나도 없잖아."
"뭐래, 싫어."
"쪽팔리냐 이제서야?"
"아니거든?"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을 같이 해와서 그런지 구준회는 성이름이의 사소한 것까지 어느 정도도 아니고 거의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반장선거는 애들 관심도 없겠다, 그동안 해보고 싶어하던 그 반장 좀 해보라고 권유한거였다. 평소같음 해볼까? 하고 설레발부터 칠 놈인데. 싫다고 하는 말에 구준회가 최후의 딜을 걸었다. 성이름 너가 제일 좋아하는거.
"떡볶이."
"... 뭐?"
"떡볶이 사준다고. 그러니까 나가라고."
평소엔 절대 안말하는 말을 하는 것에, 성이름이의 눈에 의심이 가득해진다. 진짜? 끄덕끄덕. 고개 끄덕임에 금새 언제 멍했냐는듯이 좋다고 미소짓는다. 그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한빈이 신발을 다 갈아신곤 둘에게 말했다.
"... 나 간다"
간다는 말과 함께 손인사하는걸 보던 성이름이의 얼굴이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아까의 그런 의심이 아니라, 정말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선. 문을 나서고 창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김한빈에게 시선이 따라가더니, 문에 가려져 더는 볼 수 없는 그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러다, 성이름이 입을 떼었다.
"야, 구."
"왜."
"넌 마법이 있다고 생각하냐?"
"마법은 없어도, 마술같은 트릭은 있지않을까."
"... 그럼 초능력은?"
"초능력?"
맞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곤 잠깐 고민하는듯 보이다, 입을 뗐다. 글쎄, 그런게 있을까 과연.
"... 나 그런걸 본 것 같아서."
"... 그런거?"
"내가 헛것을 본 건 아닐텐데, ... 모르겠어 나도. 그냥, ... 모르겠어."
한빈은 자꾸만 걸음을 멈췄다. 자꾸만 아까 놀라던 성이름 얼굴이 떠올라서.
"... 뭘한거야."
그리고, 후회되어서.
혼잣말로 후회하는 말을 되뇌이다, 한빈은 복도 벽에 기대었다. 사실 그럴 생각이 아니였다. 무심결에 나온 능력이였다. 그 애가 다칠 수 있을거라 생각이 들자마자 나온, 정말 무의식적인 행동이였기에 저도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다시 그 정적이 깨지고, 고개를 돌리곤 날 보던 성이름이의 눈빛을 보았을 때엔 혜선이의 얼굴과 겹쳐보이기까지 했다.
".. 미친거지."
어떻게 혜선이랑, 혜선이랑. 고개를 세차게 젓곤 벽에 대고 있던 등을 떼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곧 나올 구준회와 성이름을 마주칠게 뻔했으니까. 그 얼굴을 다시 마주하다간, ... 그 이상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걸음에 집중했다. 겨우 학교 건물을 나와 운동장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익숙한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와요? 기다렸잖아요!"
"......"
강서월. 그래 맞다, 오늘 악귀 봤다 했었지. 학교 끝나기 전에 본다는 것을 깜빡했다.
"봤어요? 내 말 맞죠."
"못봤어."
"에?! 그걸 왜 못 봐요!"
".. 미안. ..... 이만 들어가봐, 내일 볼테니까."
"... 무슨 일 있어요?"
"없어, 그런거. 간다."
날 기다렸다는 강서월을 뒤로 한 채, 다시 발을 떼는데 뒤에 묘한 기운을 가진 누군가 더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았다. 가려진 풀숲 사이로 점점 그 모습이 형체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탄식했다.
"아 뭐야."
"놀랐냐?"
다름아닌 준이였다. 정말 급한 일, 필요한 일이 아닌 이상 나도 쟤보러 잘 가지도 않는데, 저 녀석은 틈만나면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이다. 서월은 준이가 왔다는걸 이미 알고 있던 듯 했다. 준이가 서월이와 함께 내 쪽으로 걸어왔다. 준이는 서월이를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얘가 알려주더라고, 너 곧 나올거라고."
"페이 없어요? 오고가는게 있어야 할텐데."
"그냥 나오는거 알려준건데 바라긴 뭘 바라냐?"
투닥거리는 둘을 보다, 한빈이 입을 뗐다.
"무슨 일이야 또"
"아 넌 친구가 왔는데 반응이 뭐 그러냐?"
"환영 할 기분은 아니라서."
"혹시 알고 있었어?"
"... 뭘."
알고 있었냐는 말에 한빈의 표정이 굳는다. 준은 그 모습에 아랑곳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이어진 말에, 한빈은 더더욱 얼굴을 굳혔다.
"오늘, 혜선이 기일이잖아."
울리는 핸드폰, 그걸 쥐고 있던 한빈의 손이 힘없이 풀렸다. 그 새로 밑으로 떨어진 핸드폰 액정에 떠있는 이름 하나.
[성이름]
시간은 그 때에, 진정으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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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급속한 전개보다는 조금씩 천천히 전개가 될거에요. 물론 저도 너무 느린 전개는 좋아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 러브라인 전선도 타다가, 사건 전선도 타게 될테니 그저 재밌게 읽어주시기만 하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너무 피곤하고 피곤하네요 ㅠㅠ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고,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초록글도 당연 감사하구용♡)
암호닉! (암호닉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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