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지호의 등장에 당황하는것도 잠시, 일단 지호의 손을 잡았어.
"...내가 알면 안되는거야?"
솔직히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지켜주고싶었으니깐.
무작정 단독으로 행동한 거에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간신히 마음 추스려서 말했는데 지호의 눈이 많이 떨리더라.
"괜찮아. 말안해줘도."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어. 나는 아직 너에게 믿음을 주지못했구나. 씁쓸하기는했지만 말이야.
"...여주야. 나는 정말, 널 지키고 싶어."
뜬금없는 말에 우지호를 쳐다봤어. 여태까지봤던 모습들 중 가장 진지했고 절실했어.
"..말해줄게."
그 말에 송민호는 잘생각했다며 카페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용기를 낸 지호의 손을 더 꽉 잡았지.
"어떡할래, 우지호. 내가 다 이야기할까?"
"....."
지호는 아무말도없이 고개를 숙였어. 나는 걱정말라며 슬쩍 웃어보이곤 송민호에게 이야기해달라고했지.
"그러니깐 거의 2년전일이지. 그 때 나랑 사귀던 여자애가있었지. 철없이 욕하고 싸움하러다니는 우리와는 달리 순수하고 모범적인, 그런 예쁜아이였어.
그러던 와중, 우지호와 내가 정한해의 소개로 친해졌고 우리 넷이서 자주 어울렸어."
낮게 읊조리는 송민호에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지.
..이제보니 너와 꽤 닮았네. 덧붙인 송민호의 말에 미묘한 기분이들기는 했지만 가만히 내 손을 잡아주는 우지호덕분에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어.
"그런데 우지호가 갑자기 그러는거야. 그 여자애가 좋대. 나랑 사귀는걸 아는데 어쩔수가없대. 나는 우지호에게 우린 친구니깐 널 믿는다고 했고.. 우지호는 그 여자애에게 고백했어. ...그 여자애가 받아줬네? 나는 친구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마음 다 정리한 척. 여전히 넷이서 우린 어울렸지."
잠시 숨을 고르던 송민호가 말을 이어나갔어.
"..그렇게 둘이 일주년이 되던 날, 우지호는 서프라이즈를 해주겠다며 정한해와 나를 자기 집으로 불렀지.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어. 그 여자애에게 내가 사고났다고 당장 우리집으로 와달라고 전화해줘. 우지호는 들뜬 표정으로 전화하는 나를 바라봤고 나는 소리치며 엉엉우는 그 아이를 고스란히 들어야했어.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오는거야. 그러던 중 전화가 왔어, 모르는 전화번호로."
담담하게 말하던 송민호의 목소리가 떨렸고, 고개를 푹 숙이던 우지호는 잡은 손에 힘을 풀었어.
"...사고가나서 즉사했대. 어디 급한일이 있는 마냥 뛰어가다가 지나가는 차에 치여 죽었대."
...생각하던 것보다 충격적인 이야기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어.
"나는 우지호가 원망스러웠어. 죽이고싶었지. 뺏어간걸로 모자라 이젠... 그래도 참았어. 정말 참고 참았어. 근데 저 새끼가 갑자기 전학을 가더니 떡하니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귄거야."
야, 우지호 여자친구. 너같으면 내가 빡쳐 안빡쳐?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에 목소리가 꽉 막혀 나오지 않는다. 내가 뭐라고 해야할까, 어떻게 해야할까.
"...미안."
뜬금없는 내 말에 송민호와 우지호가 날 쳐다봤어.
"난 존나 이기적인 년이라 과거에 여자가 어쩌고 저쩌고 그런거 상관안하거든. 난 그런 이유로 우지호를 놓치긴 싫어."
미안, 송민호. 이 말을 끝으로 우지호의 손을 잡고 나왔어.
"고개들어."
푹 숙이고있던 고개를 겨우 든 우지호의 얼굴이 참 안쓰럽더라.
"사과해, 송민호에게. 그 여자애에게도. 용서빌고 그리고 나는 변함없이 사랑해줘."
"...고마워, 고마워 여주야."
고마울게뭐있어. 나는 나밖에 생각안하는 애여서, 그냥 지금처럼. 너가 나만 사랑해주면 돼.
<여주는 모르는 이야기>
정말 철없었을 적 이야기. 씻을수없는 상처를 줬고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던 날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지금 여주가 듣고 있다, 송민호에게서.
이야기를 듣는동안 더이상 여주의 손을 잡을 용기가 안났어.
송민호도 그 아이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을거라 생각했고, 그 사고 또한 생각치도 못했었으니깐.
한동안은 현실부정을 했지. 내 잘못이 아니야. 내가 죽인게 아니야.
그럴때마다 송민호는 내게 그랬어.
"..넌 내 친구잖아."
그 말이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어서 도망치듯 전학을 왔어.
"야, 우지호 여자친구. 너같으면 내가 빡쳐 안빡쳐?"
...민호야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차마 미안하다고 하지 못했던 말을 속으로만 되내였어.
여주야 너는 나에게 실망했겠지? 내가 너무 나쁜새끼라서, 더이상 날 보고싶지도 않을꺼야.
"...미안."
미안. 여주가 내뱉은 말이 나를 향한건지, 송민호를 향한건지 헷갈려서 고개를 들지 못했어.
"난 존나 이기적인 년이라 과거에 여자가 어쩌고 저쩌고 그런거 상관안하거든. 난 그런 이유로 우지호를 놓치긴 싫어."
갑작스런 내용에 얼떨떨하기도 잠깐, 내 손을 이끌고 나오는 여주를 바라보다
너무 놀라서, 너무 고마워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어.
"고개들어. 사과해, 송민호에게. 그 여자애에게도. 용서빌고 그리고 나는 변함없이 사랑해줘."
여주의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어. 나는 변함없이 사랑해줘.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너에게 상처만 준 것같아서.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어.
그 일이 있은 후, 여주는 나를 전처럼 대해줬고 나도 변함없이 여주를 사랑했어.
"..무슨일이야."
그리고 나는 송민호를 만났지.
"같이 가자."
"어딜?"
"...납골당."
송민호는 말없이 나를 쳐다봤어. 그 동안 죄책감에 감히 납골당을 갈 수도 없었거든.
"...미안하다. 너무 미안해서 이 말도 염치없는 걸 아는데.."
"됐어. 사과는 납골당가서 그 애에게 제대로 해."
"..송민호."
"나에게 사과할 필요없다. 내가 널 이렇게 만나는 것만 봐도 모르냐? 난 진작에 용서했어."
가슴부터 올라오는 울음에 차마 뭐라 말도 못하고 꺽꺽 울어대기만 했어.
"...여자친구한테 잘해라."
잘하고 오라는 여주의 문자에, 내 등을 토닥여주는 송민호의 손길에.
내 주위에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만 있구나 하는 생각에 소리도 못내고 울기만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