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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기타 방탄소년단 정해인 변우석 더보이즈 세븐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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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05 ------------------------------------------------------------------------

"괜찮아?"

"아....아니요....으..."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이 아팠다.  있는 힘껏 웅크린 채로 한참을 가만히 있었더니 그제서야 두통이 겨우 멈추는 것 같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온몸이 뚜드려 맞은 것 처럼 아프고 아려왔다.





"아으... ....으....."

"술병이 아니야? 감기 몸살인가? "





.......아무래도 그거 두 개가 동시에 온 것 같아요 선배.... 아 이러다 죽을 것 같아.



























"처자가 아파?!"





하루 밖에 안됐는데 이미 익숙한 저 목소리.  종점할머니다.  아 제발 저리가 주세요  죽을 것 같단 말야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ㅡㅜ





"어여 이거 마셔. 이거 동치미 국물인데 이거 마셔야 돼. 이게 만병통치약이야"





아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무슨 동치미 국물이 만병통치약......  미처 말을 내뱉을 새도 없이 시큼달달한 냄새가 코 앞에 들이닥치더니 입안으로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들어왔다.  벌컥벌컥.  나도 모르게 한 그릇 다 마시고 나니 눈이 번쩍 뜨였다.  눈 앞의 두사람이 나를 보며 신나서 동시에 입을 떼는게 보였다.





"와, 진짜네요 할머니."

"잉, 봤제?! 내가 뭐랬어"





뭔가 억울해서 눈을 부릅뜨고 선배를 노려보았다.  선배가 말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아까 아침짝에 버스가 왔는디 사람은 안내려 와- 그래서 내가 기사 양반 한참 잡고 있었다니까.  나갈 사람 있다고 쫌만 더 기다려보라고.   이래 끙끙 앓고 있어서 못 나갔구만.  아니 술을 얼마나 마신겨. "

"술 보다도 어제 눈을 좀 많이 맞아서 그런가, 감기가 오나봐요...."

"아이고 어쩐댜. 울 집에 쌍화탕 있응께 좀 다려와야겄네, 기다리고 있어."

"아, 아니요. 할머니 저 주시면 제가 해 줄께요"

"그러다 또 다 태워 먹으려고!!!"





손을 훠이훠이 휘저으며 할머니가 사라졌다.  할머니를 따라 현관 밖까지 나섰던 선배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선배가 여닫은 현관문 사이로 들어온 차가운 바람이 방안을 한 바퀴 돌아 내게 까지 날아왔다.  찬 기운에 이불을 끌어당기고 보니-  나는 뜨끈한 전기 장판 위에서, 선배의 다락방 안에서 이불을 몇 겹이나 덮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몸이 무겁더라니, 이 이불들 때문이었나;;;  





"정신은 좀 들어?"

"지금 몇 시에요?"

"2시."

"2시요?!"

"응."

"오후 2시요?!"

"...응. 오후 2시"





깜짝 놀라 밖을 내다 보았다.  눈을 실컷 쏟은 하늘이 다시 새파래져 있었다. 오늘은 구름도 안보이게  맑았다.  밤새 내린 눈만큼 더 하얘진 운동장 위로 점선같은 발자국들이 삐뚜름한 빗금을 몇 개씩 그려놓은 게 보였다.  하늘을 쫓아 제 몸을 비추는게 바다만이 아니라는 걸 나는 푸르스름하게 반사되는 눈 밭의 발자국을 보고 깨달았다.





"제가 지금까지 잔 거에요?"

"겉옷도 안 입고 눈 밭에서 강아지 마냥 뛰 놀 때부터 알아봤다."





가만히 어제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눈이 펑펑 내렸고, 그래서 버스가 끊겼고, 그대로 선배집으로 들어와 저녁도 얻어먹고-  정확히는 내가 해서 같이 먹었고, 그리고 난로를 피웠고 그 앞에서 선배가 담근 과실주를 마시고.....  그리고 .....  그 다음부터 기억에 없다.





"그러게 그냥 여기서 자라니까.  감기에 몸살에 제대로 앓아서 완전히 기절해가지고. 아침에 얼마나 놀랐는데.  버스도 없는데 시내 응급실까지 들쳐 업고 뛰어야하나 잠시 고민 했었다니까. "





아아....... 진짜 제대로 민폐였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러려고 선배를 찾아온 게 아닌데.  고개를 수그리자 다시 두통이 쫓아왔다.  있는대로 구겨지는 내 얼굴을 보고 선배가 이부자리 끝을 정리하며 말했다.





"좀 쉬어. 막차 시간까지는 여유 있으니까. 좀 더 누워있어."





민폐인 건 아는데, 정말 아는데 선배의 따뜻한 말을 듣자마자 바로 스르륵 몸이 저절로 녹아들었다.





"선배 그럼 저 조금만 더 누워있을께요....."





선배가 뭐라 말해주고 있었지만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정신이 아득해졌다.





























"ㅈㅏ, 언능 인나서 이거 먹고 자!"

"아웅... 괜찮... ㅡㅜ"

"쓰읍 어여 먹어"

"아 진짜아아........."





겨우 잠들었는데 또다시 종점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쓰겁고 뜨거운 탕약이 입안으로 꿀꺽꿀꺽, 말 그대로 쳐들어왔다.





"이익........."

"어여 먹어, 이거 다 먹으면 곶감 줄테니까 얼릉-"

"아으 쓰다고요..."

"으이그, 나이만 쳐먹었지 애네 애야."

"아니이..."





아파서일까, 나는 평생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어리광을 부리며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억지로 할머니가 먹여주는 탕약을 마셨다.  그 뒤로 접시에 담긴 곶감을 든 채 웃음을 삼키고 있는 선배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선배를 또 다시 노려보았고 선배는 시선을 돌리며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눈깔 봐라. 뭐여, 이렇게 챙겨주면 할머니 고맙습니다아~ 해야지!"





할머니가 있는 힘껏 내 등을 쳐올리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조그만 할머니가 손은 왜 이렇게 매운거야;;;  약 때문이 아니라 할머니 손맛에 아픈게 가시는 느낌이었다.  연탄 불 위에서 구워지는 마른 오징어처럼 나는 몸을 뒤틀었다.  큭큭- 선배가 웃음을 못 참고 소리를 냈다.  나는 다시 한 번 선배를 향해 눈빛을 날렸고 뒤따라서 할머니도 손바닥을 날렸다.  등 짝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우 아파요 할머니이...“

"지랄...뭐 좀 먹어야 힘이 나지. 삐쩍 말라가지고. 밥차려놨응께 얼릉 먹어"





아아 제발 ㅜㅠ





"이것도 먹어 봐"

"괜찮은데..."

"잔말 말고 어여 먹어. 아프면 손해여-"

"할머니도 좀 드세요"

"나는 괜찮응께 얼릉 먹어. 아이구 잘 먹는다. 우리 혜원이도 이래 생선살 발라주면 사죽을 못쓰고 잘 먹었는디."





밥을 두공기나 비웠더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자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두어 숟갈 푹 떠서 내게 넘겨주고는 그 위로 다시 생선살을 발라서 얹어 주었다.  선배가 아까부터 계속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또 째려봤다가 할머니한테 등짝 스매싱을 당할까봐 창밖으로 시선을 날렸다.





"밤새 눈이 계속 내렸나봐요. 버스 또 끊긴 거 아닌가 몰라."

"아참, 아까 너 자는 동안 슈퍼 갔다왔는데 오늘은 버스 4시꺼가 끝이래. 눈 때문에 버스 줄어서 내일도 두 대만 겨우 온다고..."





아니 그런 애기를 왜 그렇게 태연하게 하는건데요!? 나는 고개를 홱 돌려 선배를 쳐다보았다.





"뭐 하루 더 자고 가도 .....  아, 맞다. 너 회사!"





나는 한숨을 포옥 쉬었다.





".......휴가 중이라 괜찮긴 해요."

"아, 그럼 다행이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까지 푹 쉬고 내일 가. 버스 걱정 말고...  뭐 정 급하면 마을에 시내 나가는 어르신 있는가 알아봐 줄까."

"그런데 선배는 이런 산 속에 들어와 살면서 왜 차가 없어요? 불편하지 않아요?"

"아, 그게..."

"어이구 큰일 날 소리!"





할머니가 다시 내 등짝을 후려쳤다.  이러다가는 날개뼈에 금이라도 갈 것 같았다;  





"그러다 사고나! 뭘 믿고 운전대를 맡겨!"





선배가 할머니 눈치를 살폈다.  





"자동차가 뭐여, 이앙기 운전도 제대로 못 해 논두렁에 처박는 사람한테.  큰일 날 소리. 내가 최씨네한테 말 해놓을테니 최씨네 아들내미 차 얻어타고 나가"

"어,  형님 오셨어요? 지금 계세요?"

"그려, 오늘 동네 겨울농장인지 뭐시기 그것 땜에 마을 회관에서 하루종일 있드라고."

"아 그래요? 형님이 그거 맡아서 하시기로 한 거에요?"

"그런 거 같어. 마을 회관에 컴퓨터가 있어도 뭐 쓸 수있는 사람이 그치 밖에 더 있어?"

"잘 되면 좋겠네요.  마을도 살아나고,."

"그러제, 그제는 서울에서도 전화도 몇 개 왔다던데. 다 서울 총각이 뭐시냐 인터넷인가로 뭐 해줘서 그런 거 아녀"

"에이 제가 뭘요..."

"어디서 이런 보물단지가 굴러 들어와가지고....  에구 이쁘다 이뻐"





할머니는 선배의 엉덩이를 툭툭 두들기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처자도, 이따가 저녁 때 마을 회관으로 와.  거기서 그 뭐냐 겨울농장 머시기 흉내낸다고 이것 저것 해본댔어.  잔치도 하고."

"잔치요?"





마을잔치? 선배에게 시선을 돌리자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 머시냐 마당에 불도 때고."





캠프파이어-  선배가 입 모양으로 설명해줬다. 아하...





"돼지새끼도 통째로 잡아 굽고..."





통돼지 바비큐- 선배가 립싱크로 다시 번역해 주었다.





"긍께 와서 먹고 마시고 푹 쉬고 그러고 내일 나가-  내가 최씨한테 내일 아가씨 편한 시간에 시내까지 태워다달라고 할팅게..."

"아니, 저는 괜찮......."





철썩!!!!  할머니의 손바닥이 다시 내 등짝으로 날라왔다. 아니, 왜 괜찮다고 하는데도 때리시는건데요 할머니 ㅡㅜ    





"어르신이 뭐 하자~하면 아이구~ 네~ 감사합니다아~  하면 되는거지!!! " 

"아니 그게..."

"올꺼지?"





선배가 다시 입 모양으로 내가 해야 할 말을 설명해주는게 보였다.





"네... 감사해요 할머니"

"그라제"





할머니가 만족한 듯 웃음을 띄웠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슥슥 쓰다듬었다.





"아이고 우리 혜원이도 요로코롬 곱게 이쁘게 크면 딱 좋겠네."



































"동네에 젊은 사람이 없어서, 손녀 또래 되는 사람만 보이면 저렇게 잘 해주시는거같아"

"잘해주시는 거 같긴 한데....고마운 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지금 저는 뱃속도 등짝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거든요. "







할머니를 배웅하고 운동장을 빙- 되돌아 오는 선배가 낸 발자국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발자국 저 편에 어제 만들어놓았던  눈사람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선배를 닮은 눈사람은 밤새 내린 눈을 한꺼풀 뒤집어 쓴 덕에 얼굴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손으로 툭툭 눈을 쳐내며 다시 눈사람의 얼굴을 찾아냈다.   입 끝에 지워진 보조개를 손가락으로 푹ㅡ 찌르는데  뒤에서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났다.  







"어제도 그러더니, 눈 되게 좋아하는구나"

"서울에서는 이렇게 눈이 쌓이는 걸 많이 못보니까요."

"그렇지. 서울에선 경험 못할 게 많지. 여긴..."

"그래서 선배도 여기로 온 거 아니에요? 서울이 싫다고..."

"꼭 그렇게 싫진 않아."

"왜요? 막상 이렇게 살아보니까, 서울이 나아요?"

"그렇다기보단... "







선배는 뽀득거리며 계속 발자국 소리를 냈다.  딱히 집으로 들어가는 방향도, 운동장 밖 마을 쪽으로 가는 방향도 아닌 애먼 걸음으로 내 주위를 걸었고 나도 어느새 선배를 따라 발자국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어짜피 외로울 거, 차라리 그냥 철저하게 외로운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  어설픈게 싫어서."

"그런데요?"

"낯선 곳으로 떨어져서 혼자 지내면, 그렇게 나를 객관화 시켜서 지켜보면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건 없더라고.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선배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너를 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더더욱 모르겠고."





새하얀 눈밭 가운데 서 있는 선배의 모습이 꼭 동화 속 삽화 같았다.  하늘빛을 뱉어내며 이질적으로 새하얀 눈 밭 때문에 선배의 실루엣이 푸르스름하게 CG로 이어 붙인 것 처럼 낯설어보였다.  언젠가 선배가 말했던 이 익숙한 풍경 안에,  낯설어진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낯선 풍경이 익숙해 보이고, 익숙한 사람이 낯설어 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여지껏 살아온 삶은 그랬어.  학창시절 이후로 여지껏.  잘못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방황하느라 좀 많은 시간을 보냈지."

"선배는 방황도 뭔가 길을 잃지 않고 가야 할 길은 제대로 걸어가면서 할것같아요."

"내가?"

"네, 경계선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삐뚤어지지 않는. "

"소심하단 뜻이야?"

"소심한 거랑은 달라요.  정도를 아는 느낌이랄까.  생각이 많은, 아는 게 많은, 뭔가 통달한 느낌?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정선을 지킬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예를 들면 기분 나쁜 말도 배려해서 설명할 줄 아는 사람."





선배가 서 있는 낯설은 풍경 속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  선배는 여전히 낯설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랬어?“







또 그 말.





"네."

"나도 나를 잘 몰랐네."

"선배가 그런 고민까지 하는 줄은 몰랐네요. 저는 선배는 항상 해답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라고 딱히 좋을 거 없다고 하면, 너무 배부른 투정일까?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양면성이 있어서, 무작정 행복할 수도 무조건 불행하기도 힘들다고 말야."

"아니요. 당연하게 들려요."

"그래?"

"제 좌우명이 뭔줄 알아요?"

"좌우명?"

"사람에게는 누구나 부피는 달라도 질량은 같은 삶의 고통이 있다."

"...."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고.  저마다, 부피는 달라도 질량은 같은 삶의 무게를 지니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갖잖아 하지 말고, 내 고통의 한계치에 빗대어 상대방의 힘듬을 이해해야한다고. "





선배에게 다가설 수 있는 만큼 다가섰다고 생각했다.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선배에게 내가 뭔가 되돌려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가 위로로 해준 말 들이, 제게 큰 힘이 됐었어요"





선배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한숨을 쉬었다. 맑고 차가운 공기 사이로 선배의 입김이 하얗게 번져갔다.































처음 버스가 산골짜기로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을 초입부터 산골에 어울리지 않게 이쁜 집들이 몇 개 눈에 띄인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주말농장이니 시골농장이니 새로운 트렌드에 맞춘 건지, 펜션부터 해서 하나 둘 씩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어서였다. 그제야 종점 근처 슈퍼가 시골답지 않게 깔끔해 보이는 이유를 알았다.





"아유 서울총각 왔네"

"옆에 처자는 누구여?"

"서울서 온 여자친구랴"

"하이고 서울총각 임자가 있었어? 아깝구만 우리 딸 소개 시켜줄라했는데"

"에헤이...."





이미 얼굴이 충분히 붉어진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아이구 요녀석, 새까맣게 어렸을 때 여기서 헤매던 거 내가 시내 태워다 주던 때가 엊그젠데.  벌써 색시 삼을 사람도 데리고 오고... 여기서 살 거래?”





색시라니.  당황한 나와는 달리 선배는 능숙하게 그 말을 받아 쳐내며 술잔을 넘겨 받았다.





“에이~ 형님 많이 취하셨네 벌써. 아는 후배인데 내일 서울 갈 거에요.  아참, 내일 시내 혹시 나가시나요?”

“내일? 우리 남준이가 나가자면 나가야지!”





우리 남준이.  선배를 저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선배의 이름을 입 안에서 따라 중얼거렸다.  우리 남준이.  우리 남준이.



저 쪽에서 종점할머니가 신나서 만세를 부르며 달려왔다.  한 손에 들린 막걸리 병이 보였다.  겨우 가라앉힌 속이 다시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아이구 왔네 왔어."





선배가 재빨리 내 옆으로 와 할머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할머니 저도 왔어요"

"어이구, 우리 복덩이도 왔댜-  어서 한 잔 받아"

"네 할머니, 감사합니다-"

"어이구 잘먹는다-“

"와 할머니 이거 맛있어요. 직접 담그신 거에요?"

"그렇지. 맛있지?”

"네. 아 근데 할머니 저 배고픈데 먹을 것부터 주심 안돼요?"

"으잉 그려그려 잠만 기달려 봐"





사발에 담긴 막걸리를 마저 들이킨 선배가 슬쩍 윙크를 날렸다.





"나 흑기사 해준거다? "





선배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마을 사람들이 전부 선배를 이뻐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소탈한 모습을 한 우리 남준이.  나는 한동안 그런 선배를 쳐다보았다. 이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종점할머니의 목에 하얀 목도리를 둘러주던 고운 손으로, 이쪽도 저쪽도 어르신들 뿐인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술잔을 들이키면서,  스스럼 없이 어깨 동무도 하면서,  애어른 같던 선배는  어린 어른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 남준이.  이 모습도 선배로구나.  벤자민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선배는 이 산골짜기에서 점점 젊어지는 제 나이를 되찾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매일 밤 달빛을 받으며,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꿈꾸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고운 처자가 이런 산골짝이에서 살림 차리려고 쫓아왔나? 농사는 지을 줄 아는가?!"

"아... 아뇨..... "

"아이고, 이렇게 말라서 뭔 농사를 해. 밥 숟갈 들 힘도 없어 보인다! "

"아뇨 저 잘 먹는데요..."

"몇 살이야, 서른 넘었는가? 어려 보이는데~?"

"아... 아뇨 아직..."





선배의 흑기사가 무색하게 쏟아지는 관심과 비례한 술잔을 도저히 피할 길이 없었다.  정신없이 건내지는 질문도, 비우기가 무섭게 채워지는 술잔도 주종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였다.





"저기, 저 화장실 좀...."

"화장실은 저쪽인데-"

"아, 일어선 김에 바깥 바람도 좀 쐬려구요"





왁자지껄 술판에서 겨우 빠져나오는데 뒤로 마을 사람들의 수다가 계속 이어졌다.





"서울총각 여자친구래?"

"아니 후배래."

"후배? 아, 서울 총각이 뭐냐 영화 만든다 뭐다 하더니, 그짝인가? 아, 뭐 영화배우 이런 거 아냐?"

"그런가?"





영화배우라니.  아무리 시골 분들이라해도 사람 얼굴을 봐가면서 상상을 하셔야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 와중에서 낯선 단어가 와서 꽂혔다.  영화?  선배가 영화를 만들어?  

















마을 회관 앞에 캠프파이어랍시고 만들어놓은 드럼통 안에서 불길이 확확 치솟는게 보였다.  마당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탈탈 털어 그 앞에 앉았다.  그러다 일렁이는 불꽃 때문에 어지러운가 싶어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아...불빛 때문이 아닌가.  감은 눈 안에 가득찬 어둠이 블랙홀처럼 아득하게 내 정신을 멀리 잡아 끌었다.





"취했니?"





어느새 따라 나온 선배가 종이컵을 하나 건냈다.





"음... 조금요?"

"믹스커피인데... 뭐 마실 게 이거 밖에 없네. 동치미 국물을 퍼올 순 없고."

"고마워요 선배"





내가 사라지자 마자 걱정이 되어 쫓아온 모양이었다.  당연한 건데도 나는 챙김받는게 새삼 기뻤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사람 한 명한테 계속 의지하는 거."

"그래?"

"네, 뭔가 특별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나는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선배를 올려다보았다.





"고마워요 선배."





선배는 어깨를 으쓱 하고 올려보이며 쑥쓰럽게 웃어준 뒤 주변을 휙 돌아보았다.  내 옆에 앉을만한 의자를 찾는 눈치였다.  저 옆에 몇 개 나뒹구는 일회용 플라스틱 의자들이 보였다.  내가 눈짓을 보내자 선배는 웃으며 그 중 하나를 주워왔다.





"낯선데서 좀 그렇.....우아악"





쿠당탕.



그렇지.  주워와도 꼭 그렇게 다리 한 짝이 부실한 걸 주워 와야지.  의자의 다리 하나가 헐렁하게 휘어있다가 후다닥 자리를 잡는 선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하고 부러졌고 그렇게 선배는 뒤로 한바퀴 나뒹굴었다.  나는 선배의 창피함을 모른척 해주기 위해 계속 타는 장작에 시선을 두고 커피를 마셨다.  큼큼거리며 선배는 재빨리 의자를 정리하고 겨우 자리를 잡고 다시 앉았다.





"나...낯선데서 좀 그렇지?"

"큭큭큭..."





아니, 대사를 좀 바꾸시던가.  애썼지만 결국 웃음이 터졌다.  내 웃음소리에 뻘쭘한 듯 슥슥 손가락으로 턱밑을 긁던 선배도 결국 웃고 말았다.





"아씨, 나는 항상 이런식이냐-  맨날 내가 뭐 만 하면 이렇게 깨지고 망가지고. 아주 노이로제 걸리겠어"

"선배는 힘 조절이 잘 안되나봐요, 아니면 맘이 급해서 그런걸 수도 있고."

"그런가?"

"이상해요 선배는, 어떤 때는 정말 진중하고 멋있는데 어떤 때는 진짜 덜렁이같고."

"내가 좀... 그렇지? "

"네."

"야, 그래도 너무 정색으로 그렇게 대답하면 내가 좀...."





선배가 장난끼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괜찮아요. 선배 그런 모습도 보기 좋아요"

"이런 게 뭐가 좋아"

"진짠데..."





나는 뭔가 얼굴을 보고 말하기가 애매해서 계속 타는 장작에 시선을 던져주며 말을 이었다.





"있잖아요....  처음에는 선배가 참 많이 낯설어져서 뭔가 다른 사람같았어요.  그래서 아, 세월엔 장사 없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추억은 그냥 추억인게 좋았겠다- 하고 마음이 좀 그랬거든요.  헷갈리기도 하고. 나도 변했으면서 선배는 그대로길 바라고 찾아온 건가 하고 보니 그런 내 마음도 부끄러워지는 거 같고."

"내가 많이 다르니? 네 기억보다?"

"그게....선배는 뭔가 변하긴 했는데 어떻게 보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게 뭔데?"

"그러니까.... 뭔가 옛날 같은데 옛날 같지 않은 모습이랄까...  내 기억 속에 선배는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다가설 수 없는 벽이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지금은?"

"지금은....."





나는 선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다가서기 쉬워?"

"아 뭐...."



생각보다 진중해보이는 눈빛에 당황스러웠다.





"아유, 다가서기 뿐인가, 막 발로 밟고 다녀도 될 것 같네."

"뭐야 그게..."





선배가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선배 지금 이 모습도 되게 좋은 거 같아요.  아니, 훨씬 더 좋은 거 같아요.  처음엔 선배 찾아온 거 잘못한 거 같았는데,  찾아오길 잘한 거 같아요.  진짜로.  선배가, 예전에 힘들면 찾아오라고, 그 말 기억하기를 잘한 거 같아."





웅웅- 술기운에  저 멀리서 왁자지껄 울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밤하늘 별빛처럼 아득했다.  





"고마워요 선배. 너무 오랜만에 찾아와서 이렇게 민폐도 끼쳤는데. 잘 대해줘서."





선배가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 술기운 탓인가 참 선배 얼굴이 몽롱하게도 보인다.   고개를 돌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이고, 오늘도 나는 취하는구나.  이 산골짜기엔 숙취해소제도 없을텐데.  회식 때면  늘 비싼 숙취해소제를 몇 개는 사서 돌려야 했는데.  대한민국같은 회식의 왕국에서 그런 생활필수품을 왜 그렇게 비싸게 파는지 모르겠다.  



-걱정마.  네가 찾아오면 언제든 위로해줄께.  지금처럼.



막연한 기억하나 믿고 찾아온 낯선 산골짜기.  스스로 어이가 없을만큼 무모했던 발걸음 끝에 진짜 동화처럼 서 있었던 선배.  처음에, 찾아온 나를 내려다보던 어색하던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변했다가, 변하지 않았다가 왔다갔다하던 선배의 모습도.  나는 예전의 선배를 기억하고 싶어서 더 예전의 나로 돌아갔던걸까.  부끄럼도 모르고 까불거리던 나를 다시 예전처럼 한없이 받아주던 선배.  그러다 한꺼풀 한꺼풀 양파처럼 제 겉껍질을 벗어내고 속살을 조금씩 보여주던 선배.  그때는 상상도 못했던ㅡ 주저 앉아 쳐다만 보던 벽 안에 있던 선배의 새로운 모습들을 나는 본 것 같았다.  예전이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선배의 회색 후드티를 머리에 올려썼다. 꿈 같았던 선배와의 이틀 밤을 뒤로하고.  내일이면 이 산골을 떠나 다시 저 도시 속으로 파뭍힐 준비를 해야한다.  하루 다섯 번 이 산골짜기를 오르는 타임머신같은 버스를 타고 다시 나의 현실로 돌아가겠지.  무작정 도망쳐 나왔던 나의 팍팍했던 현실 속으로.  이웃집 할머니의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손바닥 대신 ㅡ비싼 숙취해소제로 아픈 속을 달래야하는.



다 타버린 장작 하나가 수그러들며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정신이 들었다. 내가 너무 내 생각에 빠져있었나?





"아 맞다. 선배, 영화는 또 무슨...."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응?  뭐지?  쵹.... 그렇게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는 따스하고 촉촉한 무언가.  선배의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이 와 있었다.   뭔가가 지금....  손 끝을 입술에 갖다 댔다.  뭔가 닿았는데......  취기에 뇌가 느리게 돌아간다.  선배가 입꼬리 한쪽을 슬깃 올려 웃어주고 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뭐... 뭐하는..."





선배도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바로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금방 떠오르지 않는 듯 쉬이 말을 떼지 못했다.  술기운이 돌아서 눈을 천천히 깜빡이는데 그런 나를 보며 다시 베시시 웃는 얼굴을 보니 선배도 어느 정도 취한 눈치였다.





"선배,  제가...."





라고 나머지 말을 내뱉으려 했으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입 안에서 웅얼웅얼 돌아다니다가 목구멍 뒤로 다시 넘어가는 나의 말들을 인식하고 나서야 선배가 또 다시 내게 입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닿아있는 입술을 바로 떼버리려 하니 선배가 재빨리 한 손으로 내 뒷 목을 잡았다.  뒷 목을 잡고 싶은 건 나라고 이 사람아!!   이게 꿈인가 싶었는데 입술에 아찔하게 와 닿는 감촉이 너무 생생해서 술이 다 깨는 느낌이었다.  선배의 남은 한 손이 등 뒤를 지나 허리를 감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옥황상제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참을 세상 삼라만상의 모든 신들을 찾아 헤매고 나서야 선배의 입술이 떨어졌다.  아직도 이 상황이 뭔가 싶어 머릿속이 분주해서 멍해있는데 내 속도 모르고 선배의 손가락이 입술을 닦아주었다.  나는 계속 멍한 상태로 선배를 쳐다보았고, 선배 역시 멍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뭐........ 뭐, 뭐하는거에요?!“

"그게.... 나는 그냥....  위로... 위로해주려고 했었는데...."





그제야 선배도 현실로 돌아온 표정으로 다시 대답할 말을 찾기 시작했다.  위로? 기껏 찾아낸 단어가 위로오??





"아니 무슨 위로를 그렇게 야하게 해!?!?!?”

"아니 그게...  그러니까...."





선배의 입술이 실룩였다.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는데..."





저건 미안해하는 표정이 아니다.  아무리봐도 웃음을 참는 표정같다.





".....하....하다보니 야해졌네..."





그걸 말이라고 하냐 선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나를 보고 선배는 바로 입꼬리에 걸려있던 웃음기를 멈췄다.





"미안해, 저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께.  내가 분위기에 휩쓸렸나봐,  진짜 미..."

"사과하지마요."

"응?"

"뭐, 괜찮아요.  나도 나이 먹을만큼 먹었고 뭐 첫키스도 아닌데, 뭐.  위로라고 쳐요 뭐."

"아니 나는 진짜 그런게 아니라. 내가 좀 취해가지고...."

"알고 있었죠?"

"저기..."

"........내가 선배 좋아했던거 옛날에도 다 알고 있었잖아요. "





선배는 당황한 듯 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포즈로 나를 계속 올려다보았다.





"아냐 나는 진짜로 네가 ..........  말없이 한참 그러고 앉아있는데 뭔가 외로워보여서... 뭔가 말하려고 하는데 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니까... 그런데 얼굴도 막 가깝고.....근데 네가 그렇게 쳐다보고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





술기운탓인가 저쪽에서 동네어르신들이 술에 취해 노래부르는 소리가 윙윙 울렸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 이렇게 옛기억을 따라 나를 찾아와서, 그 시절을 떠올려보고 싶을 만큼 사는게 지쳐서..."





울고 싶은 건 아닌데 눈물이 툭, 떨어졌다.  언제부터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었던 걸까.  당황해서 휙 돌아섰다.





"뭐야 산 속에 몇 년 살더니 도라도 닦았어요? 독심술도 하나봐..."

"응. 내가 이거저것 좀 잡학다식하게 하는게 많아. 너도 잘 알잖아"

"칫..."





입 끝에 웃음이 걸리자마자 눈물 또한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게 맞나보다.













말그대로 거지같은 나의 현실.  세상 나만 힘든게 아닌건 알지만 그래도 나는 너무 힘들었다.  선배가 그랬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짊어지고 산다고, 저마다 부피는 달라도 질량은 같은 삶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그 말은 뒤집어보면 나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힘든가 설명하기 딱 좋은 말이기도 했다.



일이 될만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돈이 모일라치면 바로 사건이 터졌다.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마음 쨘한 추억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남앞에서 기죽지 않을 만한 목돈도 못 모았다.  무슨 놈의 인생이 이따위람.  하면서도 다시금 모래성을 쌓아오던 과거를 더이상 이어나갈 여력조차 남아나질 않았다.



회사 앞까지 꾸역꾸역 쳐들어와 눈물을 한바가지 뽑아낸 엄마가 결국 내 적금통장을 들고 가기 전 까지만해도,  나는 소풍날 아이들 손에 하나씩 들려 떠다니는 헬륨풍선만치 둥실둥실 행복한 마음을 불려내고 있었다.  몇 년째 허리띠를 졸라매며 부어온 적금들,  따로 모아둔 돈들 이것저것 정리할거 다 정리하고 대출받으면 지겨운 가족들을 떠나고 지겨운 회사를 떠나서 나만의 공간을, 선배만큼은 아니어도 나만의 달콤한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을 거 같다는 꿈에 부풀었을 바로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터진것이다.



미친듯이 독촉장이 날아오고 아버지는 종적을 감췄다.  큰오빠는 애 둘을 키우느라 모른 척이고 외국으로 유학간 동생에겐 차마 이야기할 수가 없단다.  애국가마냥 일절, 이절 귀에 못이 밖히도록 이삼년을 주기로 들어 온 엄마의 신세타령이 또다시 나를 줄줄이 따라다녔고 참다못한 나는 통장을 집어던지며 화를 냈다. 그 잘난 오빠한텐 왜 연락을 못해요?! 그렇게 귀하게 자란 동생한테는?!  그렇게 세상 잘나게 잘 자라난 사람들이 왜 이런 일하나 처리를 못해줘요, 그래?!  자기는 커오면서 그렇게 엄마아빠돈을 빼먹고 내 시집밑천까지 뻇어가놓고는,  왜 이렇게 나만 힘들어야 해요!?   악에 받쳐 소리지르는 내 앞에서 엄마는 걔들은 원래 그런 애잖니.. 하며 울었다.  



엄마 요새는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감당 못 할거면 자식도 낳지 말라고 해요.  요새 세상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이럴거면 왜 나를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해?  비명처럼 쏟아지던 나의 말들을  하나하나 마음 속에 주워담던 엄마가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엄마의 입에서 끝내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화를 멈췄다.  사실은, 엄마의 말보다 내가 한 말에 놀라서 말을 멈췄다.   너덜대는 엄마의 심장이 아픈 줄도 모르고 그 안에 계속 들어서려하던 나의 날선 말들.  엄마의 헤진 심장 안에 하나하나 비수처럼 꽂혀가는 나의 말들이 더 이상 꽂힐 자리가 없어 바닥으로 엄마의 눈물과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그 위로 후두두둑 함께 떨어지는 낡은 심장의 파편들이 보였다.  평생을 사고치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무던해졌을 고단함, 저 밖에 모르는 응석받이 자식들의 무관심과 그나마 기댈만 했을 딸의 원망.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이 있어.



엄마가 짊어지고 살아왔을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한참을 울다보니 입 안에서 짭잘한 눈물 맛이 났다. 어느샌가 선배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쥐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눈물 나도록 다정하게. 따스하게.



이렇게 포근한 선배에게도 선배만의 고통이 있을까? 선배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어떤 것일까. 무작정 버스에 올라 헤매다 찾아낸 이런 산골짜기에 어설픈 텃자리를 꿈꿨던 어린 날의 선배는, 어떤 삶의 무게에 치여 힘들어 하고 있었을까.



주위의 모든 소음이 뭉쳐져 발밑으로 떨어지더니 바로 아득하게 사라졌다.  떠들썩했던 마을사람들의 술자리가 사라지고,  마을 회관이 사라지고, 버스 종점의 정류장도 그 아래 수퍼도  산 중턱의 운동장과 선배의 집도 사라지고, 그리고 그  뒤에 보이던 커다란 산들도 사라졌다.  텅 비어 어두컴컴해진 이 속에 빙빙도는 별빛과 나무장작이 불에 타는 소리만이 남았다.   나무장작이 불꽃의 뜨거움을 못견디고 아파하는 소리를 내며 검게 타들어 갔다.  타닥타닥 타는 장작불의 그림자 위로 지난 일들이 모두 타들어가 사라졌다.  발 끝이 공중에 둥둥 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나는 선배가 말했던 커다란 달 끝에 손을 뻗지 않고도 이미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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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57.200
제목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글을 본 적이 없네요. 개인적으로 reflection이 솔로곡 중 가장 사랑하는 곡인데, 작가님도 그 곡에서 무엇을 느끼셨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
4년 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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