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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에필로그 ------------------------------------------------------------------------

"찾았어."





그가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찾았어.  그 녀석."





reflection. 작은 단어 하나가 설명의 끝인 sns안에 사진이 가득했다. 그가 사진 하나하나를 클릭했다. 그 안에는 중국 무협지에서나 나올법한 장대한 산맥도 있었고, 하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볼리비아의 유우니 사막도 있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별빛을 가진 호주 사막의 밤 하늘도 있었고, 가도가도 일직선의 길만 보이는 미국 고속도로 풍경들도 있었다. 사진들 밑엔 그 곳들을 가는 방법들이 해시태그와 함께 간략하게, 무뚝뚝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적혀 있었다.  마치 어느 싯구절처럼  누군가 나를 , 꼭 그렇게 눈치채 줘,  조용히 다가와서 곰곰 나를 읽어 줘,  그런 후 마지막으로는 부탁인데 곧 나를 잊어 줘,  자꾸 기억한다면 아마 나는 죽고 싶을거야 하고 말하듯이.  그 속의 바람 같은 여행자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세상을 누비고 다녔다.  마치 그 곳으로 누군가를 인도하는 안내 책자처럼.  





"내가 가고 싶어했던 곳들이야.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을 때, 여행프로그램을 좋아해서 다 찾아봤었거든. 녀석과 이야기하면서...."





sns는 꽤 오래 전에 시작되어 있었다. 첫 여행지의 사진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두 개의 산과, 그 밑에 작은 계곡, 몇 개의 작은 집. 그리고 커다란 달. 그 곳만 안내글이 없었다.  그 밑에 하얗게 침묵으로 적혀있는 누군가의 마음이 보였다.  침묵 밑에 낯선 아이디의 댓글들이 장소를 물어왔지만 딱히 그 사진이 아니어도 다른 어떤 사진에도 대답은 없었다.  내 추억 속에 남아있지만 실존하지는 않았던 남준선배처럼, 그는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잘 모르겠어."





 끝없이 펼쳐진 평야 위에 세워진 낮고 거대한 도시의 야경과 그  안에 이질적으로 외롭게 서있는 타워 사진. 그렇게 밤을 새고 아침이 찾아온 그 도시를 거대한 푸른산이 내려다보는 모습까지. 회색 빌딩 안에 갖혀서 그것들을 지켜보는 쓸쓸한 사진이었다.  그는 그 사진 밑에 해시태그 없이 홀로 쓰여있는 단어를  손 끝으로 쓸었다.  tokyo.  





"여기서부터는 내가 잘 모르는 곳이야. 녀석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쓸쓸한 그 곳의 어느 아침 사진을 시작으로 sns의 사진들은 점점 더 그의 시선을 오래 잡아 끌었다.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을 뿌리던 여행자는 어느 순간부터, 풍경이 아닌 다른 것들을 찍기 시작했다. 우기가 시작되어 질퍽해진 진흙길 위에서 지나가는 차를 피하는 어느 꼬마아이와 그 아이의 염소.   느릿느릿 여행자들의 짐을 실어나르는 당나귀의 기다란 귓바퀴.  사람을 싣고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두꺼운 발굽.  낯선 관광객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고단한 장사치의 손짓. 아프리카 어느 부족 아이의 콧잔등에 붙은 파리가 보였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 우르르 모여있던 구걸 바구니와 짝퉁시계들이 보였다.  도쿄를 기점으로, 그가 알던 장소 만큼의 모르는 장소와 사람들이 주루룩 한참을 이어졌다.  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집을 짓는 사람의 뒷 모습과, 기대에 찬 모습으로 옆에서 돕고 있는 까무잡잡한 아이들의 미소를 끝으로 sns는 지난 가을 인도에서 멈춰있었다.   



그는 한참을 그 사진들을 보고, 또 다시 보았다.  언젠가,  내가 집어 던져 발치에 떨어진 사진을 내려다보던  그의 일렁이는 눈빛이 떠올랐다.





"무슨 생각해요?"

"쇼펜하우어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헛된 욕망 때문에 자기 잠재력의 4분의 3을 상실한다고 했대."

"나도 그런건가."

"한소라씨는...충분히 소라씨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김남준 선배처럼 살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죠.  어우 쇼펜하우어는 정말 못 읽겠어. 나는 헤르만 헤세까지가 딱 좋아요. 데미안이 좋고, 어렵지 않은 예쁜 시까지가 딱 좋아."

"자신 만의 길을 걷는 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그가 웃으며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같이 갈래?"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기를 다요?"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다 가는 건 아니고, 답사가 필요해서 어느 정도는...."

"답사?"





그는 으쓱, 익숙한 어깨짓을 보이며 웃었다. 사춘기 소년이 자신의 꿈을 자랑하듯이, 조금은 수줍게 그러나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그는 말을 이었다.





"이 녀석 이야기를 만들거야. "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게 많은 진짜 김남준에게  새로 알아가야 할 것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그 중 물어보기 애매해서 속으로만 품고 있던 궁금증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영화라도 만들어요?"

"어떻게 알았어?"

"마을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는거 얼핏 들었어요. "

"아, 그거..."





그가 쑥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어줍잖게 시작한 스튜디오가 있는데... "

"영화찍는 회사에요?"

"미디어아트 쪽 일 관련해서 이것저것 다 하고 있거든. 처음엔 웹사이트 관리하면서 필요한 영상 몇 번 제작하는 정도였는데...  그러다 조금 커졌어.  웹드라마랑 다큐도 외주 작업으로 이것저것 들어간 것도 있긴 한데 영화는 아직....  "

"오오... 사장님이네. 아니 요샌 대표님인가?"

"에이, 손바닥만한 벤처회사야."





그가 손사래를 쳤다.





"아직은 벤더회사 통해서 사람 보내는 정도야.  외주 따는 것도 일인데, 내가 그 쪽으론 영 재능이 없어서 후배 직원들 도움을 좀 받고 있지.  바지사장이랄까. 나는 소속 아티스트나 피디에 더 가깝지. 음악 쪽이 주로 내 파트야.  편집이 주인데 창작도 가끔하고. 총무보는 친구하고 영업 뛰는 친구 몇 빼고는 다들 나랑 비슷하게 일하고 있어. "

"아하... "

"아, 아까 지나 온 그 미술관 옆 공원도 우리가 빌린 적 있어. 강아지사료 웹 광고 들어와서 거기서 영상 찍었거든. "

"그런 똥밭을 왜 찍었는데요?"

"똥밭...."

"남준씨 아까도 똥 밟고 넘어졌잖아요."





그가 찝집한 듯이 발바닥을 다시 바닥에 비비며  볼을 부풀렸다.  의외로 주변정리를 잘 못해 무엇이든 늘어놓고 어지럽히기를 잘하는 그는, 또 그와는 반대로 지저분하고 불편한 걸 잘 못참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산골짜기에서 지낼 생각을 했을까.





"거기가 견주들이 산책을 많이 오는데거든.  공원 지킨다고 강아지 배변봉투까지 입구에 걸어놨는데도, 가끔 그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더라고. "

"몰지각 정도가 아닌데요. 아까 그 똥은 개똥이 아니라 소똥 수준이던데. 개가 아니라 소까지 산책시키러 오는가봐요. 범인잡기 쉽겠네."

"소라씨는 개 별로 안좋아 해?"

"어으, 저는 털 달린 건 질색이에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데 그가 서운한 얼굴을 했다.





"의외네. 강아지 그런 귀여운 거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귀여운 거 좋아해요. 털날리는 게 싫어서 그렇지.... 뭐 작은 개는 괜찮아요. 작고, 털 안날리고."

"그럼 개 말고 더 작은 동물들 키우면 되지. 햄스터나... 슈가글라이더 같은."

"그건 또 뭐예요? 슈가...?"

"슈가글라이더. 날다람쥐 말야. 사실 생긴 모양은 다람쥐인데 캥거루과 쪽 동물이야. 엄청 귀여운데..."





스쳐지나가는 작은 주제에도 그는 자상하게 설명을 곁들였다.  잡학다식한 남준선배의 모티브다웠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큭큭 웃었다.  





"이따 누구 소개시켜준다고 했잖아. 우리 회사 후배인데  강아지 엄청 좋아하거든. 그런데 강아지가 죽고나선 다시 못 키우더라고. 그래서 내가 다른 동물 키우라면서 추천해줬어. 요새 여자친구가 생겨가지고 아주 장난아니게 꽁냥꽁냥이길래."

"여자친구랑 슈가글라이더가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데요?"

"요녀석들이 날기도 잘하는데 파고들고 기어들기도 잘하니까, 여자친구 집에 데리고와서 보여주면 십중팔구는 여자친구 옷 속으로 기어들 거 아냐"





그리고 남준선배답지 않게 야해. 야하다고. 산골짜기에 봉인되어 있던 변태의 닻을 올린게 과연 잘한 일일까 .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나에게 장난스레 윙크를 날리며 서점의 문을 열었다. 





"야 선배님아! 죽을래!?"

"노선을 좀 확실하게 정하죠? 존대를 하든가 하대를 하든가."

"오호 그래 그럼 확실하게 하대를 해 주마. 선배놈아 약속시간이 몇시인지 기억은 나니?"

"어허 대표님한테."

"아으 진짜, 내가 속아서 취업했어. "





훤칠한 키에 말갛게 잘생긴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어디서 봤지? 저런 얼굴이면 기억날만한데. 나는  반갑게 툭탁거리는 그들을 갸우뚱거리며 쳐다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두 사람이 말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인사해 소라씨, 여긴 우리 스튜디오 실질적 사장님이야. 김석진이라고- 대학 후배인데..."

"안녕하세요- 김석진이라고 합니다."





그의 손가락에 익숙한 반지가 보였다.  그제야 나는 그가 기억났다. 





"우리 덜렁이 선배놈이 정신 차리게 해주신 분이군요.  한소라씨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네... 저도 김석진씨 이야기 많이.. 들었..."





아무래도 이따가 자기 전에 나도 나의 직장 후배님한테 톡 좀 보내야겠다.  슈가글라이더 키우는 남자는 좀 음흉할 수도 있다고  조심해야한다고.





"아하하하- 짜식, 그래도 이 형 밖에 없는거지? 맨날 툴툴대더니 내 이야기 얼마나 하고 다닌거야?"

"일절만 하죠- 후배님아"

"야 씨, 너 스튜디오랍시고 만들어만 놓고 손 놓고 사라지고 툭하면 없어지고, 응? 아니 내가, 응? 내가 얼마나 그동안 너 대신 고생하고...응?  아주 타이틀만 선배지 나이도 나보다 어려, 사회생활도 나보다 못해... 아는 게 많으면 뭐하냐. 실제로는 덤비지도 못하는게. "

"이제 덤빌꺼야. 진짜로. "

"그래, 이번엔 제발 기획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마. 진짜로. 우리 기똥차게 예술 하나 만들어보자고."





아이고 시끄러워.  나의 싱클레어, 그녀가 밝아진 이유를 단 몇분만에 깨우쳤다.  





"그래서, 왜 여기서 보자고 한거야 후배님아."

"아, 이번에 너 그거...  여기 이사님이 관심 보이길래 눈도장 찍을 겸...우리 그때 작업한 게 맘에 들었나 봐.  아무래도 여기저기 투자 받는 게 좀 힘들 것 같아서 독립영화쪽으로 노선을 틀긴 했는데 여기 익숙해져놓으면 나중에 장소 따기도 쉽고.  아, 그리고 따로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고."

"누구?"

"여기 알바생 중에 우리 저번에 광고 영상 찍을 때 급해서 잠깐 도와준 애가 있는데-  카메라 관심있다고 배우고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진짜 감이 좋아.  괜찮더라.  데려다 가르치면서 키우면 좋을 거 같아서."

"아 그 친구?"





시끌시끌하게 서점 내에 있는 까페로 그가 우리를 안내했다.  





"어? 안녕하세요? 또 오셨어요 피디님?"





사투리가 살짝 섞인 어색한 억양으로 반갑게 인사하는 알바생이 보였다. 





"어, 꾹아. 여기 우리 대표님.  인사해."

"안녕하세요- 김남준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수줍게 인사하는 저 아기같은 얼굴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애가 친해지면 엄청 장난꾸러기인데, 낯가림이 좀 심해서... 임마 너 스카웃하러 온거다."

"스카웃이요?"

"우리 회사 알바 좀 하라고.  요번에 들어가는 게 있는데. 아직 보수는 많이 못 줘. 그래도 배우는 건 많을 거야. 열정페이는 아니니까 걱정 말고.  여기 알바비 정도는 내가 책임지고 준다. 잘되면 보너스 더 가는거고. "





엄청나게 커다란 동그란 눈이 흔들흔들 의심의 눈초리로 촛점을 못찾고 뒹굴거리는게 보였다.





"우리가 그렇게 형식따지는 데가 아니어서... 좀 이상하죠? 그래도 사기치고 그러는 데 아니에요."

"사기 아닌 건 알아요...."

"영상 모아둔 사이트,  잘 봤어요. 진짜 좋더라고요.  감각 좋고.  음악 선곡도 센스있고.  카메라 뭐 썼어요? 본인 거에요?"

"학교에서 빌려서 썼어요. 너무 비싸서...."

"앞으로는 우리 회사 카메라 써도 돼요."





그가 웃으며 이야기를 건냈다. 팔짱을 낀 채로 그 옆에서 맞장구 치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실질적인 사장님이라는 직장후배님과 함께 아기같은 알바생을 내려다보는 그의 키가 유난히 커보였다.   어두운 색 수트 안에 편한 카라의 셔츠를 입은 그가 새삼 멋있었다.





"일단 이력서부터 가지고 와요. 여기 제 명함이에요."





가슴 안 쪽에서 명함을 꺼내 건내는 모습까지. 이건 또 다른, 새로운 김남준의 모습이었다. 





"멋있는데ㅡ. 남자어른 같다. 진짜 멋있는 남자어른."





나는 그의 뒤에서 소근거렸다.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한껏 솟아난 어깨를 보니 내 말을 듣고 기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게 느껴졌다.  멋있다가 귀여우면 정말 끝인데. 그렇게 빠지면 정말 답이 없는데.





"온 김에 책 좀 보고 갈까? 커피도 한 잔하고..."

"어, 맞다 잠시만요. 뜨겁지 않아도 괜찮으면  아까 실수로 더 내린 게 있는데 그거 드릴까요?!"

"-계산 할께요. 그거랑, 라떼 한 잔 더 주세요."





아, 생각났다. 저 알바생.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 남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를 보면서 나는 아직 쓰지못한 지갑 속 쿠폰이 떠올랐다.  뒤돌아서서 울리는 휴대폰을 받아 어깨에 끼우고 대화하며 계속 일하는 하얀 손이 보였다.  저러다 쏟을라 걱정이 되었다. 





"어 그때 그 피디님 오셨다. 아냐 금방 끝나고 갈테니까 ... 아, 더 비싼거 사줄께, 라면은 무슨..."





그 여자친구랑은 잘 되고 있으려나?  아직도 사랑싸움 중 인가.  





"...저녁 같이 먹자니까! 쫌! "





기다리는 사람은 아랑 곳 없이 어느새 커피를 내려놓고 통화에 집중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세상 가장 어려운 문제를 푸는 사람처럼, 그 난제가 저 혼자 라면을 먹겠다고 고집피우는 휴대폰 속 여자친구의 목소리 안에  들어있다는 듯 심각한 그 모습을 보면서ㅡ 좋을 때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렀다.  그래, 세상 사람 모두 저만의 힘든 삶의 무게를 가지고 있지.  그게 부러워하던 삶 속을 헤매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그래서 모든 인연을 끝까지 이어갈 수 없었던 외로운 영혼의 무게 일 수도 있고,  저렇게 늦은 저녁 라면 한 그릇 나눠먹고 싶어 절절매는 작고 귀여운 사랑의 무게 일 수도 있고.  



나는 커피를 기다리는 그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고 넓은 어깨 위에 턱을 기댔다.  익숙한 비누 냄새가 더 없이 설레게  코 끝에 와 닿았다.





"오늘 우리집가서 라면 먹고 갈래요? 그러고보니 나 이사했는데 집들이도 안했네."





그가 웃으며 천천히 나를 내려다 보았다. 세상 가장 멋있고 야한 표정으로.





"큰일이네. 커피마셔서 잠 안올텐데."




















[방탄소년단/김남준] reflection - 에필로그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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