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랑하는데에 반해 더 이상 그 사람은 감정이 없음을 알았을 때,
여전히 사랑하는데에 반해 그 사람은 애초에 감정이 없음을 알았을 때,
전자와 후자중 더 불쌍하고 슬픈 것은 없다.
둘 다 똑같이 불쌍하고,슬플 뿐이다.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오해는 너무나도 깊어서,
한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본래대로 못 돌아가곤 한다.
**14**
그렇게 이틀을 앓다가 일어났다.이틀동안 열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올랐다.밥 먹는 시간을 빼곤 거의 잠을 잤고,잠결에 어렴풋이 그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기도 했다.새벽 5시.감은 눈을 떠 잠에서 깨어났다.아직 뻑뻑한 눈꺼풀에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손을 올려 물수건을 들었다.물기로 축축히 젖은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열이 내렸고,지끈대던 머리도 한결 나아졌다.창 밖으로는 아침 햇살이 밝았다.창문에 있는 흰 커튼이 햇빛을 받아 일렁였다.그렇게 창가를 한참보다 주위를 둘러봤다.협탁에는 감기약과,물통이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의자에 걸터앉아 침대에 엎어져 자고 있는 그도 보였다.그가 깰까봐 몸을 조심히 일으켜 침대헤드에 등을 기대 앉았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침대까지 들어와 자고 있던 그의 얼굴에 닿았다.햇빛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가 했던 것처럼 나도 똑같이 미간을 검지로 눌러 펴주곤 손을 들어 그에게 비치는 햇빛을 가렸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그러곤 닫혀 있던 창문을 열었다.아침바람이 솔솔 불어 커튼이 작게 살랑였다.맨발로 발코니에 나오니 아침이슬의 축축한 감이 그대로 발바닥에 느껴졌다.난간에 기대 눈을 감았다.여름이지만 아침 바람이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 한참을 있다가 차가운 발바닥에 마지막으로 크게 숨을 들이켜 심호흡을 한 뒤 옷가지를 챙겨 계단을 내려왔다.욕실로 들어가 입고 있던 옷을 천천히 벗었다.이틀동안 식은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옷에선 땀내가 진동했다.샤워기를 틀었다.뜨거운 김이 샤워기로 훅 뿜어져나왔고 거울에는 김이 서려 뿌옇게 변해가고 있었다.아무생각없이 그저 물줄기를 맞고만 있었다.얼굴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사람을 차분하게 하는데 한 몫 했다.소름돋을만큼 나는 차분했다.
준면과 나의 사정이 기억남에도,준면의 고백이 고백남에도,그가 고백했던 자신의 마음이 기억남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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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나오니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였다.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집안은 조용했다.부엌으로 가 오렌지주스 한 잔을 마셨다.입술을 혀로 한번 쓸고는 현관으로 걸어갔다.운동화를 대충 구겨신곤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머리를 아직 덜 말린 감에 머리에 엉켜붙는 차가운 아침공기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대문을 나와 집 앞에서 운동화를 고쳐 신고는 준면의 집으로 향했다.그와 항상 등교를 같이하고 하교도 같이 했지만 준면의 집 앞에 서는 것은 처음이였다.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수십번을 고민을 하고 검지손가락이 초인종으로 다가가다 말다를 반복했다.그러다가 이내 아예 손을 거두곤 대문앞에 쪼그려 앉았다.그는 나를,이렇게 항상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하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게 1시간을 앉아있었다.평소 등교시간도 넘겼었다.늦잠은 자지 않던 준면이였기에 더 이상했다.그렇게 10여분을 더 앉아있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었다.쭈그려있던 다리가 꽤나 저렸다.다리를 꾹꾹 주무르다 상체를 일으켜 우리집을 바라봤다.그러다가 몸을 정반대로 돌려 버스정류장을 향했다.집에서 챙겨나온건 버스카드 하나 뿐이였다.청소년카드를 들고 등교시간에 교복이 아닌 사복으로,그것도 학교 정반대방향으로 버스를 타는 나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보다 이내 자신이 할 것을 했다.창가 쪽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봤다.덜컹대는 버스따라 내 속도 덜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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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에서 종점으로,버스를 타길 몇 십번을 했다.아침을 거르고 나와 점심도 걸렀고,저녁도 걸렀다.8시가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버스를 타고 혼자만의 여행을 계속했다.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하루종일 구경한 것은 사람들이였다.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구경하고 또 구경했다.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카드를 찍곤 내렸다.집 앞까지 가는 골목에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었다.앞을 보지 않아서 이리저리 휘청였다.그러다 집 앞 전봇대에 머리를 박을 뻔 했고,겨우 그 앞에서 멈춰섰다.대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여는 데까진 꽤나 시간이 걸렸다.손잡이를 쥔 손이 잘게 떨렸다.
집안은 어두웠다.신발을 벗고 거실로 천천히 걸어갔다.낡은 마룻바닥이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것만 같았다.쇼파에 앉아 두 다리를 올려 웅크려 앉았다.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쇼파 위에 앉은 내 얼굴까지 비춰졌다.무릎에 고개를 기대곤 양말 속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창밖을 바라봤다.마당에 심어져있는 큰 나무의 잎사귀가 눈에 띄었다.그렇게 한참을 밖을 구경하고 있으니 계단으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났다.위층 방에서 나온걸로 봐선 그인듯 했다.그가 쇼파에 앉아있는 날보곤 한숨을 크게 쉬었다.
"ㅇㅇㅇ."
"..."
"어디갔었어.걱정했.."
"나를 왜 좋아했어요?"
그가 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나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말을 자르곤 내가 되려 물었다.내 질문에 그가 적잖이 당황한듯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런 그를 쇼파에서 올려다보다 쇼파에서 내려와 그 앞에 섰다.나는 그의 눈을 바라봤다.그도 나를 바라봤고,꽉 쥔 내 오른손이 부들댔고,그의 손도 잘게 떨리는게 보였다.눈앞이 다시 일렁이더니 눈물이 고였다.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울음을 삼키곤 겨우 다시 물었다.
"나를 왜 좋아했어요?도대체 왜?"
"...미안해."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랬어요?왜?왜!"
"미안해..내가 다 미안해."
그를 채근하기 시작했고 그는 내 앞에 주저 앉아 미안하다 말했다.결국 그 모습에 나는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엉엉 울면서도 겨우겨우 말을 이어 채근했다.도대체 왜 그랬느냐고,나한테 왜 그랬느냐고,왜 나를 좋아했냐고.끊임없이 채근하고,끊임없이 울음이 나왔다.울음에 넘어가지 않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울음은 그칠 생각을 못했다.내 앞에 주저앉은 그도 울고 있었다.왜 그랬냐며 발악 비슷하게 하는 나를 주저앉은 상태 그대로 안았다.그가 내뱉는 울음기어린 더운 숨이 내 배에 닿았다.슬프지도 않았다.그렇다고 아프지도 않았다.근데도 눈물이 주체 못하게 흘렀다.
"왜 그랬어요..왜..왜!"
힘이 빠져 왜,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소리치는 내게 그는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듯 계속 미안하다며 말을 했다.그 목소리가 차분하면서도 아파서 그칠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그의 얼굴이 닿은 배주변 옷자락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나는 한참을 소리치다 제 풀에 꺾여 끅끅대는 울음소리만 내뱉었다.그도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그는 7살 어릴 적 그대로 내게 안겨울고 있었다.달빛이 들어와 그와 내게 비춰졌고,집 안엔 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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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러분!
오늘은 동생이랑 놀러가기로 해서 일찍 왔어요.근데 더워서 나가기가 겁난다..제가 더위를 많이 타서..ㅋㅋ
이렇게 14편이 끝났네요.내일이면 드디어 마지막입니다.으아아아앙ㅠㅠ
아!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메일링을 할지..말지..킁킁
메일링을 하게 되면 요기서 내용이 많이~추가될거같아요.그래서 전개가 이거보단 더 느릴거 같아요.
그리고 후속편은 음씀!(단호)대신 이거랑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을 하나 더 할 거같아요.
그럼 이 얘긴 다시 하고 저는 이만 씻으러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