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랑하는데에 반해 더 이상 그 사람은 감정이 없음을 알았을 때,
여전히 사랑하는데에 반해 그 사람은 애초에 감정이 없음을 알았을 때,
전자와 후자중 더 불쌍하고 슬픈 것은 없다.
둘 다 똑같이 불쌍하고,슬플 뿐이다.
*
너와 나의 거리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고,너는 사랑이 없었다.
그렇게,동화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11**
그는 아무말없이 밥을 먹다가 이내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그러곤 아직도 벙찐 채 그를 쳐다보고 있던 찬열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찬열이 외마디비명을 지르다 식판을 들고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급식실을 나가는 두 사람을 보다가 다시 식판으로 고갤 돌렸다.남은 초록색 브로콜리에 괜히 현기증이 났다.수정이는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 이내 내 등을 토닥여줬다.식판 위 브로콜리만큼,그가 당황스러웠다.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 이상한 기분으로 교실로 올라왔다.내 책상으로 향하니 책상 위에 누군가가 엎드려 있었다.누군가 싶어 검지손가락으로 소심하게 어깨를 찔러댔다.그러니 그 누군가가 몸을 꿈지럭대다 고개를 들었다.잠에서 덜 깬 준면이 내 자리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그런 모습의 그를 보며 당황을 했지만 내색은 안 한채 그를 노려봤다.그러니 그가 샐샐 웃으며 내게 말을 했다.
"나 오늘도 야자 쨀거야."
"내일도,모레도,그 다음다음날도."
"오늘 나랑 놀러가자."
사람들이 말하는 그는 모범생에,성실한 사람이라 했다.근데 야자를 짼다며,놀자며 얘기하는 그는 상당히 모순적이였다.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내가 아는 준면은 싫다해도 포기하진 않을 성격임을 알기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러고 있으니 그가 더욱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그럼 놀러가는거지?라며 내게 물으며 손을 잡아왔다.여름에도 항상 뜨거운 내 손과 달리,그의 손은 얼음같이 차가웠다.대충 고개를 끄덕이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뒷문으로 나갔다.참 알수 없는 사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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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 때문에 나도 반강제적으로 야자를 째곤 교문을 나섰다.야자를 짼건 찬열과 논 이후로 처음이였다.그가 유하게 웃으며 항상 잡던 내 팔목이 아닌 내 손을 그러쥐었다.딱히 상관을 안 쓰려는 게 눈에 보였는지,그는 더욱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내 손을 꽉 잡아왔다.찬열과 놀았을 때처럼 똑같은 것들을 했다.석식을 안 먹은 그는 나를 자신의 앞에 앉혀놓고는 밥을 먹었고,그 후에는 후식이라며 아이스크림 와플과 카페라떼를 사주었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쳐다보기만 할 뿐 손을 대진 않았다.그러는 나를 준면은 여전히 웃으며 나를 따라 와플에 손을 대지 않았다.아이스크림이 녹아 끈적한 아이스크림이 접시에 가득했다.나는 그런 접시를,그는 그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니 그는 다먹었어?갈까?_하며 접시가 놓인 쟁반을 들었다.고개를 작게 끄덕이니 준면이 쟁반을 들고 카운터에 가져갔다.알바생이 손도 안 댄 와플을 보다 우릴 이상하게 보기도 했다.
밥을 먹고,카페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벌써 8시가 넘었었다.그는 대답없는 내게 뭘할까,하며 물었고 자신 혼자 말을 하다 이내 내 손을 잡아끌어 노래방으로 들어갔다.그는 들어가자마자 꽤 많은 양의 노래를 예약했고,나는 마이크에 손도 안댄채로 쇼파에 앉아 쇼파 가죽결을 따라 손가락으로 쓸고 있었다.시선은 바닥의 무늬를 쫓고 있었다.그는 두어곡을 부르다 나를 보곤 마이크를 내려놓았다.말소리 없는 반주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그가 신청해 놓은 이름모를 팝송의 독특한 반주를 따라 고개를 작게 까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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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지 일어나보니 준면의 등에 업혀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을 가고 있었다.준면은 조금 힘이 드는지 나를 업고 가파진 숨을 쉬고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에 억지로 다리에 힘을 줘 내려오려 했다.그가 깬 나를 알았는지 바닥에 조심히 내려줬고,오랫동안 업혀있었던건지 다리가 저릿저릿했다.걸으려 할 때마다 찌릿찌릿 저린 다리에 휘청이니 그가 또 옆에서 내 어깨를 감싸 받혀주었다.조금 나아진 다리에 어깨 위의 손을 밀어내니 그가 손을 내려 다시 내 손을 잡아왔다.그가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고,그렇게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집 앞에 도착했다.
"잘자고."
"..네"
"잘가."
그가 내게 웃으며 인사를 건냈고,나도 그저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냈다.평소같았으면 그는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을게 뻔한데,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런 그에 맞받아치기라도 하듯 나도 그를 바라보다 되려 내가 지쳐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했다.그가 내게 성큼 다가와 팔목을 잡았다.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올려다보니 그가 내 찡그러진 미간에 입을 짧게 맞추곤 떨어졌다.그러곤 벙찐 나를 쳐다보다 이내 웃어보이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그 자리에서 얼은 나는 당황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처럼 가슴이 뛰지도 않았고,싫지도 않았고.그저 그냥 당황한 채로 아무렇지 않았다.
****
어제 했던 준면의 행동에 괜히 당황해 잠을 쉽게 자지 못했다.겨우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데다가 피곤은 장난이 아니였다.축 쳐진 몸을 이끌고 학교 갈 준비를 한 뒤 집을 나섰다.그와 준면,불편한 둘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하품을 했다.그러고 결국 교실에 도착해선 책상에 엎어졌다.오전수업을 그렇게 망치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였다.평소같았으면 종이 치자 마자 밥먹으로 가자며 달려왔을 수정이가 책상 위에 나와 같이 엎어진 채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어디 아픈가,싶어 수정이에게 다가가 빈 옆자리에 앉았다.
"어디 아파?"
"아니..다이어트 중..근데 배고파..완전"
"니가 어디 뺄데가 있는데..매점가자.우유라도 하나 사마셔."
그럴까?하며 엎어져있던 몸을 번쩍 일으키며 눈을 반짝이는 수정이가 웃겨 작게 웃음이 일었다.수정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팔을 잡아끌었고 그런 수정이에 끌려갔다.매점에 가니 급식을 다 먹고 나온 건지 몇몇이 안되는 애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나는 초코우유를 집어들었고,수정이는 딸기우유를 집어들었다.수정이에게 선심쓴다,하며 수정이것까지 계산을 하니 수정이가 고맙다며 나를 껴안기 바빴다.매점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수정이와 우유를 먹고 있으니 내 옆으로 누군가 다가와 앉았다.
"김종인 동생!밥 안 먹고 이런거 먹어?"
"괜찮아요."
"에이~"
내 옆에 앉아 장난을 걸던 찬열이 옆에 서있던 그가 우릴 지나쳐 교실로 가려하자 팔을 붙잡아 내 앞에 앉혔다.그는 그런 찬열을 노려보다 이내 핸드폰을 꺼내 무언갈 하기 시작했고,찬열은 수정이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수정이과 찬열의 대화를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근데 갑자기 그의 옆에 앉아있던 찬열이 수정이와 얘길 하다가 말을 끊은 채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핸드폰을 하던 그도 내 뒤를 보곤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그에 궁금해져 수정이와 내가 거의 동시에 뒤를 돌았다.
"어.."
"ㅇㅇ아,여깄었네.한참 찾았는데."
"아..근데 왜..요?"
"너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시간 좀 내 줄수 있어?"
내 뒤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준면이 보였다.나를 한참 찾아다녔다고 말한 그는 얼마나 뛰어다닌건지 이마 위에 땀이 송글했다.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며 말하던 그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시간 좀 내 줄수 있냐 물었다.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였기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려던 참이였다.근데 내 앞에 앉은 그가 만지고 있던 핸드폰을 탁자 위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김준면."
"..."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
"김종인."
"얘한테 할 얘기 여기서 해보라니까?왜,못해?"
그가 준면을 무섭게 노려봤고,준면은 항상 짓던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그를 보고 있었다.어느새 매점에 있던 애들은 큰 소리에 일제히 조용해진지 오래였다.내 옆에 앉은 수정이는 입술을 깨물었고,찬열은 그와 마찬가지로 인상을 쓴 채 준면을 노려보고 있었다.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찌 할줄 모른 채 가만히 그와 준면을 번갈아보고 있었다.못하냐며 도발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준면이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작게 웃었다.
"여기서 할까?난 상관 없어."
"..해."
"난 ㅇㅇ이랑 조용히 얘기하려 했는데,니가 이렇게 기회를 준다면야."
"...."
"나야 고맙지."
준면이 그를 바라보며 더 짖궃게 웃었다.그는 준면을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마른 침이 저절로 넘어갔다.입술을 깨물다 이내 입술을 혀로 축였다.그를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그가 여전히 샐샐 웃으며 말을 했지만,자신이야말로 고맙다고 말할 땐 입꼬리가 내려간채 그를 보며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그를 노려보던 준면이 이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준면의 시선이 닿자마자 나는 교복치마 위 주먹을 꽉 쥔 내 손으로 시선을 깔았다.불편하고 무거운 상황에 침이 자꾸 말라갔다.갑자기 준면이 주먹을 쥐고 있던 내 손을 세게 잡았다.
"ㅇㅇㅇ."
"..."
"좋아해.사귀자."
준면은 나를 보며 말하다 이내 내 뒤에 그를 쳐다보며 비웃었다.나는 놀라 준면을 올려다봤고,내 앞의 그는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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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화보는 15화에 끝난답니당.
ㅎㅎ
오늘은 너무 빨리 전개됬어요...당황당황...흡
ㅠㅠ내일 뵈어요!
하트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