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쪽도 내 사생이냐고."
잔뜩 날이 선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저 남자를 보았다. 사생? 그게 뭐지? 그냥 자신은 입고 싶었던 옷을 탈의실에서 갈아입었던 것 뿐인데. 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신을 죽여라 노려보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저기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라는 백현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한 남자가 백현이 내민 묵주를 빼앗아가듯 채갔다. 뭐야, 저 새끼. 기분이 약간 상한 백현이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거나말거나 그 남자는 백현을 한번 더 노려본 후에서야 뒤를 돌았다. 그러자 그 남자의 옆에 있던 키가 큰 회색의 머리를 가진 남자가 백현을 향해 대신 고개를 숙였다. 형이 요즘 예민해서요. 죄송해요.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남자가 어쩐지 낯이 익었지만, 백현은 되었다면 쿨하게 뒤를 돌았다. 그러나, 쿨한 백현은 뒤를 도는 그 순간 몸이 얼수밖에 없었다. 창 밖에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 자신을 죽여라 노려보고 있었으니깐. 이게 도통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In The Trap
01. 잘못된 만남
w.샐리비
'형, 잘자요.'
경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어제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한 묵주를 찾아오면서 종인이 기분 좀 풀라며 초콜렛아이스크림을 경수의 손에 쥐어주었다. 잠시 공백기를 가지면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경수의 다짐과는 달리 경수의 입 안에는 달달한 기분 좋은 초콜렛맛이 들어왔다. 그렇게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꽁기했던 기분을 풀고, 중국 스케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민석이형과 함께 음을 맞춰보고 경수가 좋아하는 딸기향이 내뿜는 바디워시로 샤워를 한 후, 분명 기분 좋게 잠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잠이 든 경수가 잠에서 깼을 때에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변백현!!!!!"
"....?"
"너 진짜 안 일어날래?!"
분명 오늘 숙소이모가 오신다고 한 적도 없었는데, 한번도 듣지 못한 아줌마의 목소리가 경수의 귀를 마구잡이로 잡아당겼다. 억지로 눈이 떠진 경수가 아악! 아파요! 라며 잡힌 귀를 다시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몸이 반 쯤 일으켜진 경수가 슬그머니 눈을 위로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한 번도 만난 적도 본 적도 없는 한 아줌마였다. 숙소이모가 바뀐다고 했었나. 아닌데, 숙소이모는 우리가 스케줄이 있을 때만 와서 청소를 해주고 가시는데. 규정이 바뀌었나. 잠에서 덜 깬 경수의 머릿속은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그리고는 주위를 찬찬히 돌아보았다. 여전히 경수의 앞에서 국자를 든 채로 자신을 노려보는 낯선 아줌마. 그 뒷 배경으로 시선을 돌리면, 룸메이트였던 세훈이가 골랐던 깔끔한 하늘색계열의 벽지가 아닌 분홍빛이 사알짝 도는 듯한 벽지가 경수를 반겼다. 그제야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그 쯤, 경수에게 다시 한 번 날아온 것은 낯선 이름과 강한 등짝 스파이크였다.
"변백현!! 얼른 안 씻고 뭐해?"
"아! 아파요!"
"아픈건 아냐. 아휴. 얼른 씻고 나와. 밥이라도 먹고 학교가. 어째 군대를 다녀오기 전이나 후나 똑같아."
"...네?"
"후딱 안 들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보니 경수가 좋아하던 잔잔한 향의 섬유유연제가 아닌 베이비파우더 향이 경수가 입고 있는 옷에서 맡아졌다. 엉겁결에 낯선 집의 낯선 욕실로 떠밀려진 경수가 한숨을 푹 내쉬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화장실 안에서 마주친 것은
"뭐야???????????"
다름 아닌 거울이였다. 믿기지 않은 듯한 얼굴로 거울에 밀착하면서 경수는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팬들이 그토록 환장한다던 경수의 큰 두 눈은 라면을 10개는 먹을 정도로 퉁퉁 부은 듯 축소되어있었고, 경수의 짧은 턱에 비해는 약간 긴 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일주일 전에 빨갛게 염색이 되어있던 경수의 머리는 샛노란색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다. 이건 경수가 아니였다. 분명, 다른사람이었다. 꿈인가 싶어서 거울에 비친 낯선 자신의 얼굴을 세게 뺨으로 내려쳤다. 아아. 손자국이 뺨에 새빨갛게 남았다. 이건 꿈이 아니였다. 분명한 현실이다.
* * * * *
"경수형!"
"...?"
"눈 떴어? 밥먹어!"
늘 그래왔듯이 잠투정을 부리며 5분만, 10분만..을 더 자처한 백현의 이불이 이내 누군가의 힘으로 벗겨졌다. 아, 엄마. 십분만 더잘께, 응? 이라며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자신의 눈가를 가린 백현에게 또랑또랑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수형 왜그래? 어디 아파?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자꾸 낯선 이름을 부르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백현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손에 가져다대었던 팔을 내려놓고 희미하게 눈을 뜨자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에 있는 한 남자의 두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ㅇ,어?"
"뭐야 형. 귀신본 것 같은 얼굴로"
"저..기..여기 저희 집 아니죠?"
"진짜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야. 야, 오세훈 경수형 왜저래?"
종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훈을 쳐다보았다. 평소처럼 아침운동을 마치고 씻고 나온 세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경수형 어제 잘만 자던데. 라고 말을 내뱉은 세훈이 기지개를 키며 방을 빠져나갔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벙쪄 있는 백현을 보며 회색머리를 한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잠에서 덜 깼어? 레드 썬! 이라며 백현의 앞에 손가락으로 큐! 소리를 내던 종인이 ‘밥먹게. 빨리나와, 형!’ 이라며 방문을 빠져나갔다.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백현이 딱딱하게 굳어졌던 얼굴을 풀면서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분명 어제 복학 전 동기모임이라며 과 동기녀석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개강 첫 날에 샤방샤방한 복학생오빠를 꿈꾼 백현은 딱 2잔만 먹고 집에 들어왔다. 오전에 샀던 쇼핑백을 책상 옆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던 백현이였다. 씻는건 내일 씻어야지. 하면서 2주를 빨지 않은 약간 퀘퀘한 냄새가 나는 잠옷을 집어 들어서 입고 잠이 들었었는데. 분명 내일 후배들에게 보여줄 개인기를 떠올리며 킬킬 웃어대며 좋은 꿈을 청하면 잠이 들었었는데.
"...이게뭐야?"
이리저리 눈을 돌리고 눈을 비벼보아도 이 곳은 우리집이 아니였다. 남자 셋이 사는 모양인건지 한 쪽 침대는 무진장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나마 지금 자신이 몸을 일으킨 침대는 깔끔했다. 여전히 상황이 파악을 하려고 해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침대들과 아무렇지 않게 놓여있는 캐리어들 사이사이로 수 많은 편지들과 이 곳에 함께 사는 사람들 사진인 듯 액자들이 몇개 걸려있다. 또, 이상한 형광색 색지로 만들어진 플랜카드도 놓여있다. 이게 대체 뭐야. 멍한 표정의 백현이 자신의 침대 옆에 놓여 있는 액자를 보았다. 환하게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경수야, 생일축하해!’ 라는 글씨가 써져 있다. 경수? 경수가 누군데. 그나저나 이 남자의 얼굴이 낯이 익다.
"아!"
"아, 경수형! 준면형이 화낸다니깐?"
순간 백현의 머릿 속에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어제 매장에서 백현을 무섭게 노려보던 그 남자. 그리고 한 쪽 머리에 까치집을 진채 백현에게 경수형이라고 부르는 저 남자는 분명 싸가지 밥말아먹은 그 남자 대신에 사과했던 그 남자다. 무언가 무섭다는 듯한 느낌이 백현의 뒷통수에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천천히 액자 옆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뭐야???????????"
자신의 전매특허인 예쁜 눈웃음을 지을 수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쌍꺼풀이 없는 백현의 눈은 포토샵으로 눈을 키워놓은 것 마냥 희미한 쌍꺼풀을 내보이며 커져있었고, 백현오빠라고 자청하며 힘을 주고 다녔던 어깨가 축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일주일 전 과 동기녀석과 함께 염색을 했던 자신의 노란 머리가........빨갛게 변해져 있었다.
이건, 분명 무언가가 잘못된 일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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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억하고 있으시려나 모르겠네용!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쭈글)
거의 마지막 글이 2년 전이더라구요. 백현아빠도 그랬고. 즐거운 편지도 인더트랩도. 기타 등등!
오랜만에 글잡 들어오니깐 옛 생각도 새록새록 나오네요. 그런데 백도 글이 자주 안 보여서 속상쓰......T_T... 저도 곧 이렇게 묻히겟..ㅈ....
다음 편은, 본 편보다는 더 길꺼에요. 이제 발단이 시작되는 부분인지라. 이번 편은 아무래도 좀 짧은....!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 살랑살랑 인사를 하면서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어요. 또 비도 오면서 갑자기 날도 추워졌구요. 내일 분명 학교가실텐데 따뜻한 외투 꼭꼭 챙기세요. 그럼 다음편에서 봴게요!! 저 댓글 되게 좋아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