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지금 당장 총을 버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범인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던 루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라며 중얼 거리는 루한의 어깨에 닿는 감촉과 동시에 크나큰 총성이 울렸다.
“나이스 샷.”
루한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린 준면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 모습에도 표정을 풀지 않은 루한이 잠복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스 샷은 개뿔. 이 새끼 대체 어디서 나타난거야. 옆에서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수에게 눈짓을 해보이자, 경수 역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였다. 아, 진짜 짜증난다. 이상하게도 김준면 저 새끼는 경찰대에서 부터 루한의 일들을 얄밉게 앗아 갔다. 대체 왜 저래? 라는 물음을 내던지면 루한의 단짝인 경수는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Stuck On You 01
w.샐리비
“어서오세요!”
딸랑- 소리와 함께 힘찬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서 앞에 있는지라 형사들은 물론, 경찰청 사람들도 자주 들리는 곳이기도 한 이 카페는 아담한 크기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에서 일을 보면 옆에서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음료수를 만들고는 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보이지 않고 앳되어 보이지만 탄탄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민소매 남자가 카운터에서 경수와 루한을 반겼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시럽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한 잔에만 넣어주세요. 루한 괜찮지?”
경수의 말에 귀찮다는 듯 루한이 고개를 까닥인 후에 어느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잔뜩 열이 받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루한의 모습을 본 경수가 멋쩍은 듯 앞의 민소매 남자에게 웃어보였다. 남자가 동그란 모양의 벨을 경수에게 내밀었다. 내민 그 손이 얼굴과는 다르게 조금 거칠다는 생각을 한 경수가 이내 자신의 생각을 지워버렸다. 형사생활 3년 차에 접어들자, 모든 사소한 일에 관심을 가지며 자꾸 사람들을 의심하고 생각하게 하는 이 일들이 직업병으로 경수에게 다가왔다. 10년차에 접어든 전설적인 조규현 반장님께서는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직업을 맞추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저렇게 일 중독이 되지 않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경수였다.
“내가 진짜 김준면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운도 안 좋지. 야, 거기 김준면네 구역이였더라.”
“씨발. 엿같네. 아 그 개새끼는 왜 거기로 뛰어가고 지랄.”
거칠게 주머니 에서 담배를 꺼내려던 루한의 행동을 경수게 제지했다. 여기 흡연 구역이야. 라는 작은 말에 씨발, 되는 일이 없네. 라며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의자 뒤로 기댔다. 일주일을 밤을 새어 다 잡아가던 범인이 갑자기 옆 동으로 튀는 바람에 그 공이 지나가던 김준면에게로 돌아가버렸다. 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더니. 이게 딱 그 상황에 맞는 문구였다. 경수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밤을 새서 빨갛게 충혈이 된 경수가 두 눈을 비비며 테이블 위에 잠시 자신의 얼굴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 위에 있던 벨이 진동이 울리자마자, 경수가 루한을 쳐다보았다.
“뭐하냐?”
빨리 안 다녀오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경수를 보며 루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살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현장을 뛰어다니던 녹초가 되었던 경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경수의 까만 뒷통수를 한 번 내려보고서는 루한이 벨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주문하신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이 쪽이 시럽 넣은거에요.”
시럽을 넣을 꺼면 대체 왜 아메리카노를 먹냐며 투덜거리던 경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짜식. 그러면서도 꼭 주문은 시럽을 넣어달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하네. 소소한 그의 배려에 슬쩍 웃음을 짓던 루한이 남자가 건내주는 쟁반을 받았다.
“어?”
“...?”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죠?”
쟁반을 받고 뒤를 돌아서려는 루한의 몸이 일시적으로 멈춰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루한은 자신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맞죠? 라며 재차 묻는 남자가 베시시 웃어보였다. 내가 이 남자를 본 적이 있었나. 워낙 주변의 일에 무감각한 루한이 앞의 남자를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오른쪽 가슴에 달려 있는 남자의 명찰에서 시선이 멈추어진다.
‘매니저 김민석’
김민석? 짧게 남자의 이름을 부른 루한이 고개를 휙 돌렸다.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아, 삼개월 전에 절도 죄로 재판에 들어간 도둑놈 새끼 이름이 김민석이기는 했는데. 그 새끼는 덩치도 산만했고, 저렇게 선한 표정을 지을 수도 없는 놈이었다.
“사람 잘 못 보신듯요.”
“아, 아닌데. 분명 우리 본 적 있어요.”
“저기요.”
“네!”
“여기에 수많은 서 사람들이 왔다갔다해요.”
“...아”
“이거 보세요.”
루한이 약간은 꿈틀 거리는 눈썹으로 자신의 점퍼 안에 가려져 있던 형사증을 내보이자, 그제야 민석이 아, 하고 탄식했다. 죄송합니다. 라며 민석이 자신의 뒷통수를 긁적였다. 그 말에 약간은 거만하게 고개를 한 번 끄떡이는 루한이 여전히 엎어져 있는 경수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아, 진짜 어디서 봤는데..”
루한이 경수의 앞에 앉자, 민석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 거리며 루한을 쳐다보았다. 낯이 익은데. 분명 경찰서사람이라고 아는 게 아닐 텐데. 짧게 혼자 중얼거리던 민석이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보며 재빠르게 표정을 고치며 환하게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 * * * *
“도련님. 가실 시간입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한 남자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전신 거울으로 자신의 옷 매무새를 다듬고는 뚜걱 거리는 구두로 방 안을 빠져 나왔다. 그러자, 복도 밖에 서 있던 또 다른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세 남자가 백현의 뒤로 따라 붙었다.
“기자들은.”
“모두 통제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집에 들리신다며 가셨습니다.”
집이라는 말에 백현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리고는 도착한 곳은 하얀색 국화꽃과 함께 놓여 있는 영정사진이었다.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백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백현이 왔냐.”
그런 백현의 뒤로 무게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뒤를 돌아 백현이 고개를 숙이자 괜찮다며 백현의 옆에 나란히 서는 남자였다.
“아버지”
“사고였다”
밥 먹었냐는 말 처럼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는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을 한참이나 백현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떨궈지는 고개. 앞에 놓인 환하게 웃고 있는 백현의 형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회장님. 박회장님 오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가만히 영정을 바라보던 백현의 아버지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나자 아득해지는 향 냄새와 함께 백현이 혼자 덩그라니 빈소에 남게 되었다.
“..사고”
사고라니. 교통사고라고 했다. 해외로 출장을 갔다 오는 귀국길에서 형은 그렇게 차가운 도로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백현의 두 눈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는 어젯밤, 아버지의 고함과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다시끔 들려오는 듯 했다. 그때, 똑똑히 들었다. 이 사고가,
‘..래요. 그 사람이 죽였어요. 그 사람이 시켜서. 죽인거라구요!’
단순한 사고가 아니였다는 그 사실을. 백현은 흘러넘치는 눈물을 꾹꾹 삼켜냈다. 그 사람. 자신의 형을 죽인 그 사람. 똑똑히 들었다. 그 여자의 이름을. 그리고 그 여자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는 그 사실을.
“다, 죽여버릴꺼야.”
주먹을 꽉 쥔 백현이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어 영정사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형. 내가 그 사람들한테 똑똑하게 보여줄꺼야. 가족을 잃는 그 슬픔이 무엇인지를. 어른들 싸움에 아무 죄 없는 형의 억울한 그 죽음을, 그 한을 풀어줄게.
형, 조금만 기다려줘.
* * * * *
굳게 닫혀 있던 눈을 느리게 떴다. 그러자 경수의 두 눈에 보이는 건 초록색 책상 위의 서류들이다. 거의 한달을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던 사건이 다시 떠올라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듯 했으나 평정심을 되찾기로 했다. 화를 내봤자 자신에게 득이 될 건 없다는 판단이였다. 잠시 눈을 붙인다는게 창 밖을 보니 어두컴컴해져 있는 저녁이었다. 짜증나는 그 서류들을 모두 휴지통안에 구겨 넣은 경수가 아무 곳에 널려있던 후드티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돼지저금통에서 지폐 몇 개를 꺼내었다. 분명 룸메이트인 루한의 돈이였다. 하지만, 둔한 놈은 지가 여기다가 돈을 넣어놨는지도 모를 놈이었다.
“루한 어디야?”
운동화를 신은 경수가 루한에게 전화를 걸자, 길지 않게 받는 루한이었다. 신발 뒷 축을 꺽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신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아버지가 보자고 하셔서.]
“아 그래? 나 깨우지. 고모부 못 뵌지도 꽤 되었는데.”
[깨웠는데 계속 자던 놈이 누군데]
“난 못 들었는데. 깨운척하지마라.”
[야, 됐고. 다음주에 다시 같이 와.]
“내가 너랑 왜 같이가? 혼자 갈껀데?”
[미..]
미친새끼.. 라고 하려던 루한이 허둥지둥 알겠어, 끊어. 라며 말을 바꾸었다. 아마 전화통화를 하던 중 고모부께서 들어오신 모양이었다. 아무리 거침 없는 루한이어도 보수적인 부모님 앞에서는 모범적인 아들이었다. 훤하게 보이는 모습에 경수가 미소를 지으며 집 밖을 나서던 찰나에 계단 밑에 쭈그려 있는 한 사람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기요.”
“...”
“여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 요새 꽃샘추위가 얼마나 무서운데.”
검은색 정장을 입은채 계단 벽에 기대다시피 한 남자에게서 술 냄새가 폴폴 풍겨왔다. 경수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새근새근 잠이 든 이 남자는 깨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숨은 쉬나 싶어 경수가 그 남자의 콧등 아래로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숨소리에 다행이다 싶은 경수가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다가 보이는 그 남자의 손에 경수가 버릇적으로 찬찬히 살펴보았다. 새하얀 얼굴마냥 새하얀 긴 손가락들이 '저 어디서 고생한 번 없이 곱게 자란 사람이에요' 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곱게 자란 새끼들은 누가 안 챙겨주면 이런다니깐? 하여간 이런 새끼들은 존나 마음에 안 들어요. 혼자 중얼거리며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대로 남자를 지나쳤다. 그대로 3층이었던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1층에 발이 닿기 전에 경수는 뒤를 돌고 말았다.
“아 씨”
짜증나. 결국 경수는 오지랖과 시민들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의 직업의식에 가던 발걸음을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여전히 쓰러져 있는 그 남자의 팔을 든 채로 남자를 일으키자 경수에게 부드럽게 안겨온다. 지독한 술냄새와 시원한 향수냄새가 경수의 코를 찔렀다. 중간에 향 냄새도 섞여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눈살을 찌푸린 경수가 비밀번호를 힘겹게 누르고서는 남자를 소파에 눕혔다. 그리고는 신원확인. 이라는 명목하에 남자의 정장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이라도 있으면 보호자한테 전화하면 되는데. 하지만 이런 경수의 바람은 깨지고 말았다. 핸드폰 대신 사원증 하나가 경수의 손에 잡혔다.
“S회사 변..백현?”
S회사라면 우리나라 기업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였다. 거기서 일 하는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쯧쯧 혀를 내두른 경수가 티비 뒤에 설치된 씨씨티비를 남자를 눕힌 소파위로 돌려놨다. 경수가 라면을 사러 편의점을 다녀오면서,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거였다. 철저한 경수가 나가기 직전 까지 누워있는 남자를 범인을 보는 것 마냥 쳐다보고 나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백현은 가만히 누워서 꿈세상을 헤매고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조직물로 다시 돌아온 샐리비입니다만...........;;;; 스토리 구상을 끝내고! 현재 3편까지 쓰여져 있는 stuck on you 입니당..ㅠ_ㅠ 고백은 삭제처리 되었어요.. 도저히 완결까지 낼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ㅠㅠ 이야기 내용 정리. 1. 경수와 루한은 형사이자, 사촌관계이다. 경수의 아버지와 루한의 어머니가 남매ㅇㅇ 2. 변백현은 대체 누구에게 복수를 하려 하는가 3. 김민석은 대체 루한을 어디서 본 걸까 늘 좋은하루되세요 ^-^ 혹시 고쳐야할 피드백이 있다면 바로 댓글달아주세요...♡ 바로 2편 나옵니당..여러분 알라뷰...ㅎㅎ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