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요 (feat.조현아)
보통의 연애 上 w. 샐리비 |
연애는 늘 어렵다. 어제만 해도 히히덕 거리며 함께 했던 이와 오늘 매서운 이별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저 친구로만 느꼈던 사람이 오늘 나에게 고백을 해올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타이밍에서 늘 연애할 시점은 찾아온다. 또, 여전한 그 타이밍에서도 늘 알수없는 이별의 시점은 찾아온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연애는.
보통의 연애 上
“..응 말해”
그 날은 조금 이상했다. 추위를 떨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 팔을 당겼다. 춥다며 투덜거리는 내 말에도 다른 날 같았으면 입고 있던 옷이라도 덮어주던 너였는데. 굳게 닫힌 너의 외투에서 무언가의 단호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한참을 나를 끌고 가던 네가 걸음을 멈추었다. 덩달아 내 걸음도 멈추어졌다. 무언가 할말이 있다는 듯 입을 들썩 거리던 너를 보며 성격이 급한 내가 참다못해 말하라고 먼저 말을 내뱉었다. 살짝 눈썹의 미간을 찌푸리던 너는 내게 넌지시, 아니 내가 예상치도 못한, 그러니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구라까지마” “진짜야. 나 너랑 그만 하고 싶어” “야, 변백현”
화난 듯한 내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아 하는 네가 너의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았다. 변백현은 이상하게도 긴장을 하면 아랫입술을 깨무는 습관이 있었다. 변백현이 긴장할때란,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거짓말할때, 또 다른 하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겨우 말을 내뱉었을 때. 난 당연히 변백현이 선자일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변백현을 잘 아는 하나뿐인 자랑스러운 애인이 였으니깐. 하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구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헤어지자”
엿같게도 변백현은 후자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아니 나와 변백현은 4년의 연애의 종지부를 찍었다. 변백현에게 보기 좋게 뻥 차인 이 일이 벌써 2년 전의 일이였다. 그리고, 나는 이 엿같은 상황을 가끔씩 꿈으로 겪는다는게 더욱더 곤혹스러웠다.
“씨발!!”
우렁찬 욕소리가 강의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100명의 남짓한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를 쳐다보았다. 분명 교양시간에 잠시 졸았던 것이 분명했다. 머쓱한 표정으로 교수님께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이미 교수님은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이였다. ‘제 강의에 그렇게 불만이 많으셨나보네요.’ 로 시작해서 ‘마음에 안 드시면 앞으로 강의 안들어오셔도됩니다.’라며 경수를 강의실 밖으로 쫓아냈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강의실에서 쫓겨나다니. 이 모든게 갑자기 꿈에 나타난 변백현 때문이였다. 쫓겨나는 경수의 뒤에서 킥킥 웃어대는 박찬열의 발을 지그시 밟고 나온 경수가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아무래도 요새 느낌이 불길했다. 변백현이 꿈에 나타나는 빈도수가 잦았다. 짜증나는 머리를 붙잡으며 단대로비로 나갔다. 그리고는 조용한 복도에 놓여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미친놈.”
미쳤다. 나는 정말 미친놈임이 틀림이 없었다. 2학기가 시작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놈이 다시 나타난 것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녀석과 나의 끝난 연애 시점의 이야기를 운운하는 것 자체도 지금으로서는 참 우스운 일이다. 밀려오는 짜증에 개강 기념으로 새로 장만한 운동화 끝을 툭툭 두드렸다. 이런다고 절대 화가 풀리는 것은 아니였지만.
‘저기’ ‘...’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고등학교1학년이였던 우리, 그러니깐 변백현 그 녀석과 내가 처음 만난 곳은 어느 학원이였다. 모의고사 점수가 갑자기 곤두박질 치는 바람에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서 다녔던 그 곳에는 변백현이 다니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집 근처의 유명한 학원에 집어넣었던 터라 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었던 내게는 학원에 같은 학교 친구 따위가 존재할리가 없었다고 생각하며 늘 구석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는 했었다. 쉬는시간조차도 수업 강의실 안에만 틀혀 박혀서 같은 반인 김종대놈이나 다른 친구들에게 문자를 두드리기 바빴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는 우리학원에 나말고도 같은 학교 학생이 한 명 더 다닌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 학생이 변백현이라는게 문제였지만.
변백현은 오랫동안 이 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나보고 먼저 친해지자며 손을 내밀었던 그 녀석의 새하얀 손을 한참이나 내려다 보았다. 머쓱한듯 자신의 손을 거두어가는 변백현녀석을 보며 나는 그 녀석이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거두어갔던 그 녀석의 새하얀 손을 내가 직접 끌어와서는 마주 잡았다. 마주잡으면 안되던 그 손을 나는 마주 잡았고. 우리는 급격하게 친해지기 시작했었다.
“도경수씨. 군대에서 욕설이나 배우셨나봐요?” “닥쳐” “아, 진짜 배 찣어지는 줄 알았네. 김종대. 너도 봤었어야해.” “찬열아” “응. 욕설경수야.” “주둥이 찣어지기전에 닥쳐라.”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쏟아지는 학생들 사이에서 박찬열의 등짝을 한 대 후렸다. 하나도 안 아프면서 아프다고 찡찡 거리는 박찬열을 김종대에게 밀어버리고는 교수님께 가서 죄송하다고 빌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일 있는 수강신청변경시간에 종대가 듣는 교양으로 넘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자꾸 옆에서 깝죽거리며 내 심기를 건드리던 박찬열은 결국 내게 정강이를 몇 번 걷어차이면서 입을 닫았다. 옆에서 종대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아는 척이라도 하려는 듯 손을 내뻗는 김종대였다. 시선을 돌려 김종대가 향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마주치고 싶지 않던 그 녀석의 모습을 마주했다.
“복학하신 기분이 어떠신가요?”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김종대에게 어색하게 웃어보이던 변백현과 두 눈이 마주쳤다. 당연히 먼저 피해버린건 나쪽이였다. 야, 나 배고파. 라면서 박찬열의 가방 끈을 잡아 끌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박찬열은 오랜만에 만난 변백현이 반가운 모양이였다. 개강총회때 지각으로 오지 않았던 박찬열은 실로 변백현을 2년 만에 보는 거였으니깐.
20살의 끝. 그러니깐 스물하나로 넘어가던 그 추운 겨울에 변백현은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리고 그 때는 나의 입대 날짜 2주 전이였다. 헤어지자는 변백현의 말에 나는 가차없이 뒤를 돌았다. 화난 표정으로 화난 걸음을 옮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쯤되면 변백현이 나를 붙잡을 때가 되었는데. 하지만, 그것도 내 착각에 불구했다는 것을 나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변백현은 나를 붙잡지도, 다시 연락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끝이 났다.
“잘 지냈냐?”
정신 없는 박찬열과 김종대와 인사를 나누던 변백현과 다시 한 번 두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내게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 변백현을 보면서 속 안에 무언가가 치밀어 오른다. 그 무언가가 대체 무엇일까. 아마 지금 내가 내뱉는 말과 동일한 마음이겠지. 잘 지냈냐고? 녀석의 물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내가 다시 한 번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좆까.”
너 같으면 잘 지냈겠냐.
* * * * *
시끄러운 소음 소리에 경수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가지 않겠다며 뒤로 내빼는 경수와 종대를 질질 끌고 온 건 예비역 회장 선배였다. 유난히 경수를 예뻐라 하던 그 선배는 아마도 예비역 총무자리에 경수를 앉히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물론 경수는 그 사실에 탐탁치 않아하며 그 선배를 필사적으로 피해다녔지만 어쩔 수 없이 꽉 잡혀서 개강파티까지 왔다. 지난 1학기에 복학했던터라 아는 후배들이 꽤 있었다. 여자고 남자고 신입생들의 어색한 인사를 받으며 찬열이 앉아 있는 곳에 앉았다. 앉자마자 폭탄주를 먹이는 박찬열의 무릎을 살짝 팔꿈치로 눌렀다. 그러거나말거나 주도되는 분위기 속에서 폭탄주를 마신 경수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야. 너 괜찮냐?”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걸어오는 김종대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박찬열은 이미 저쪽에서 선배들과 힘을 합쳐 놀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건지 제법 큰 소리도 내면서 오랜만에 본 여자동기들과도 으쌰으쌰 잘하고만 있다. 앞에 놓인 고기 한 점을 집어들었다. 조금만 앉아 있다가 바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경수가 자신의 셔츠 깃을 살짝 매만졌다.
“오, 봤냐? 경아랑 백현이랑 나가던데.” “경아?” “아, 너네는 모르려나? 변백현 2학년1학기때 사겼던 여자애.”
다시 박찬열이 자리에 돌아오고, 김종대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으며 킬킬 웃어댄다. 그러니깐, 나는 대학교1학년을 마치자마자 그 개같은 이별을 통보받고 군대로 떠났다. 변백현은 1학기를 더 보내고서야 군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공백의 사이에 변백현 그 개새끼가 사겼던 예쁘장한 신입생. 도경아였다. 작은 체구에 하얀 얼굴과 동그랗게 큰 두 눈이 남학우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던 그런 후배였다. 왜 엿같게 나랑 이름이 비슷하고 난리야. 다시 한번 밀려오는 짜증에 빈 술잔에 소주를 채우는 경수였다.
‘왜 불렀는데.’
그 날도 김종대 놈과 아무렇지 않게 놀고 있던 변백현이 제법 딱딱한 얼굴로 나를 불렀던 것 같았다. 평소와는 다른 비장한 표정에 변백현을 쳐다보자 초조하다는 듯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문다. 내가 그거 하지 말랬잖아. 라는 내 말에 아! 하는 얼굴이 꽤나 귀여웠다. 살짝 웃는 내 얼굴을 감추고 다시 변백현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나의 말에 다시 뜸을 들이던 변백현이 이내 입을 열었었다.
‘너 김종대랑 안 놀면 안돼?’ ‘뭐?’ ‘아니. 그러니깐.’ ‘그러니깐?’ ‘김종대랑 놀지 말고 나랑 놀자.’
교실 안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 김종대 녀석을 힐끔 바라보던 변백현은 이내 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읽고는 다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너 그러다가 어제처럼 입술 터질것같은데. 말 없이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이 이내 고개를 떨구고는 뒤를 돌아서려고 한다. 그런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린 건 나였다.
‘왜?’ ‘...응?’ ‘이유를 알아야 놀던지 말던지 결정하지.’
내 말에 다시 말이 없어진 변백현이였다. 그런 변백현의 목에는 보기만 해도 꽉 막히게 죄어오는 넥타이가 보였다. 살짝 풀어도 될텐데. 나도 모르게 변백현의 목덜미로 손이 갔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변백현이 내 손을 잡는다. 빨리 대답 안할래? 라는 나의 딱딱한 말에 변백현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계집애도 아니고 왜 이렇게 빨갛게 변하는 건데. 또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 ‘너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깐.’
우리의 연애의 시작을 알리던 첫 징검다리를 건너던 그 날. 멍하게 서 있는 내게 저 말을 내뱉고는 자신의 교실로 쏜살같이 사라졌던 부끄러움이 많던 그 녀석. 변백현은 내게 굉장히 부끄럼을 많이 탔다. 내 손을 먼저 잡을 때도 덜덜 떨면서 잡았고, 우리의 첫 키스도 내게 허락을 맡고 했다. 그런게 좀 무드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만큼 그 녀석은 나를 많이 배려하고 이해해주었다. 그랬던 변백현의 이별통보는 내게 정말 급작스러운 것 이였다.
“너 담배도 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변백현과 그 여자후배녀석에게 신경을 끄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소주 반 병을 드링킹하는 바람에 머리가 알딸딸해왔다. 옆에서 내게 안주를 먹여주던 여자 후배에게 고맙다고 하며 대충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교차가 심한 날씨였던터라 차갑고 날카로운 밤 공기가 경수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자리에서 쭈그려 앉은 채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불을 폈다. 답답한 마음에 한 번 담배연기를 들이 마셨다가 뿜어내자 내 시야가 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그 연기 속에서 그 녀석은 다시 한번 내게 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네가 알바야?” “말 좀 예쁘게 쓰라니깐.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뭔 상관이야.”
차가운 내 말에 한숨을 푹 내쉬는 녀석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정말 네가 무슨 상관인데 자꾸 내게 오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이별을 먼저 통보한 전 연인의 편한 마음일까. 혹시 다시 친구 사이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갖고 다가오는 듯한 변백현은 정말 싫었다. 왜냐면, 나는 차였고. 차인 후에야 녀석의 부재를 실감나게 느꼈으니깐. 가혹했던 지난 날의 그 시간들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얄쌍한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뭐하는거야?” “너 이맘때 쯤이면 꼭 감기 걸렸잖아.” “...” “많이 쌀쌀해졌어. 그거 입어.”
일어나려는 내 몸 위로 너의 피부를 닮은 하얀색 가디건이 내 무릎 위로 떨어졌다. 뭐냐는 듯 쳐다보는 내게 무심한 듯 다정하게 말을 해오는 변백현의 모습에 우리가 연애 중이였을 때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욱 하는 마음을 겨우 누르고는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일어나 있는 녀석과 두 눈을 마주했다. 옛날 같았으면 이 가디건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였지만. 우리는 이미 이별한지 2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야, 변백현.” “..응, 경수야.” “한번 더 내 눈에 뜨이면 뒤진다.” “...” “그리고 이딴 개같은 호의도 보이지마. 씨발새끼야.”
그대로 변백현의 하얀 가디건을 땅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그 하얀 가디건을 그대로 밟은 채 그 녀석을 지나쳤다. 곧장 집으로 갈 생각이였다. 어둠이 내린 도로들에 라이트를 킨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 내 인생속의 어둠의 도로를 걷고 있다. 저기 라이트를 킨 자동차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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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_ㅎ |
오랜만이져!!!!!!!!! 변명따위는 집어치울게요...ㅠ_ㅠ 연재되던 고백(go back)은 6월 말부터 연재될 예정입니당. 흐규ㅠㅠ
사죄의 의미로 고백 전에 구상해놓았던 단편 하나 보내드리구가요!
上 = 금요일 中 = 토요일 下 = 일요일
늘 애정합니다. 사랑해요. 여러분..♡(과연 저를 용서해주실분은 있으시려는지..또르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