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8.18
w.1억
월순과, 지현은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고, 월순이 몸이 좋지 않아서 당장 내일모레 이사를 가게 된다. 그래서인지 지현은 월순과 추억을 쌓고 싶은지.
며칠동안 월순을 데리고 돌아다니기 바쁘다. 월순이는 이렇게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도 좋은지 지현의 옆에 꼭 붙어있는다.
"오늘은 술 마실까? 뭐 많이는 말고.. 대충 한모금 정도는 마실 수 있지 않나."
"응. 그 정도는 괜찮아. 우리 엄마도 너라면 다 허락해주실 거야."
둘은 정반대 성격이다. 수수하고 예쁜 외모에 학생 때부터 둘은 유명했고, 전혀 다른 둘의 성격에 더 유명해질 수 있었다.
월순이 환하게 웃으면, 지현은 '좋니?'하며 소리내어 웃는다.
정재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서 술집 앞에 서서 담배를 피고 있었을까, 골목길 사이로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본다.
피던 담배를 바닥에 무심하게 떨구고선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면.. 골목길 안에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이 정재를 향해 '넌 뭐냐?'한다.
"너넨 뭐냐? 지금 삥 뜯는 거냐?"
"그런데?"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를 해야지. 같은 친구 삥이나 뜯고 다니고 말이야."
"진짜 맞고싶냐?"
"때리려고?"
"……."
뒤 따라 오토바이에서 내린 우성은 담배를 피며 골목길을 막아 섰다. 골목길 안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곧 얼마 있지 않아서 한 학생의 돈을 뜯던 세명의 고등학생들이 코피가 터진 채로 골목길에서 급히 빠져나온다.
"……."
우성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말 없이 뒤돌아 골목길 안을 본다. 돈을 뜯길 뻔한 학생과 어깨동무를 하며 나오는 정재에, 아무 관심도 없는 듯 여전히 담배를 피며 다른 곳을 본다.
골목길에서 나온 학생과 정재.. 학생이 도와줘서 감사하다며 정재에게 지갑에 있는 현금을 주었고, 정재는 사양않고 고맙다고 하며 돈을 세어본다.
"……."
많이도 줬네. 하며 중얼거리는 정재의 앞으로 자기보다 한참 작은 누군가 섰고, 정재는 돈에 시선을 두다가도 바로 그 사람을 바라본다.
"지금 돈 뜯은 거예요?"
"뭐?"
"저기 저 학생한테 돈 뜯은 거냐구."
"뭐니, 넌?"
"나 차월순."
"…허."
"당장 돌려줘. 다 커서는 학생 돈이나 뺐고, 뭐 하는 거야.
"너 왜 말 까냐?"
"너도 깠잖아."
"너 진짜 웃긴다. 나 이거 뜯은 거 아니고 받은 거야."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쪼그만한 게."
정재가 앞으로 한발자국 움직이면, 월순이는 곧 흠칫- 떨며 뒷걸음질을 친다. 별 것도 아닌 게.. 왜 이러니? 곧 심장부근에 손을 댄 채로 한참을 있는 월순에 정재는 그저 어이없을 뿐이다.
담배를 입에 물고선 불을 붙인, 정재는 여전히 놀란 듯 숨을 크게 쉬는 월순이에게 말한다.
"어쭈, 연기하냐?"
"……."
"……."
"어유.. 언니가 잠시 어디 다녀온 동안 웬 벌레들이 붙은 걸까나.. 훠이훠이 저리 가- 얘 아픈 애야. 잘못 건드렸다가 죽으면 그쪽들이 책임 질 거야?"
지현의 등장으로 정재는 당황을 한 듯 했다. 월순이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뒤로 숨긴 지현이 정재에게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한다.
"안 그래도 아픈 애한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네."
"아파?"
"아파. 심장병 있어, 쟤."
"몰랐지, 난."
"미안하면 나중에 우리 밥 사주던가."
"뭐?"
"얘 지금 숨 쉬기 힘들어 하는 거 안 보여? 죽을 뻔 했다고."
"…웃기는 년들이네."
"어머, 월순아 괜찮니?"
월순이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묻는 지현.. 월순이 더 심하게 숨을 몰아 쉬며 고갤 젓자, 지현이 정재의 눈치를 보았고.. 정재가 귀찮다는 듯 말한다.
"알겠어. 밥 한 번 사주면 되는 거지."
바보같이 넘어간 정재와, 모든 걸 눈치 챘으면서도 정재에게 아무 말도 안 해주는 우성..
월순이는 여전히 아픈 척을 하고 있고, 지현이 신나서 말한다.
"그럼 내일 모레 백강공원에서 1시에 만나자. 새벽 아니고 낮이다."
"너 연기 잘하더라?"
"그치? 근데 정말로 밥이라도 얻어 먹을 거야?"
"그럼. 그리고 걔네랑 놀러가려고."
"놀러가?"
"응. 걔네 오토바이 못 봤어? 뒤에 태워달라 그러자. 같이 계곡도 가고 그러자."
"그치만 걔넨 모르는 남자들이잖아.. 혹시라도 그 애들이 못된 애들이면.."
"걔네 못된 애들 아니야. 내가 잘 알아. 싸움은 밥 먹듯이 해도, 착한 애들이야. 동네에서 유명한데, 너는 밖에 잘 안 돌아다니니까 모르겠구나."
"응."
"아무튼 잘 했어 차월순이."
지현이 잘 했다며 월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월순이는 아직도 그 남자들이 의심스럽다.
착한 애들이라면.. 그 돈 뜯은 건 뭘까 싶기도 하고.
꺄아- 하고 월순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정재의 허리춤을 꽉 안고서 소리지르자, 정재는 왠지 모르게 흠칫- 한다.
지현은 우성의 뒤에 타서는 바람을 느끼는 듯 하다. 생에 처음으로 타보는 오토바이에 신기하면서도 무서운지 월순이 두눈을 감고 있다가도.. 정재의 등에 볼을 기대어서는 눈을 천천히 뜬다.
넓게 보이는 바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 무섭기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단 생각에 월순이 그제서야 작게 웃어보인다.
갑자기 조용해진 월순에 정재는 얘가 죽은 건가 싶다가도, 곧 허리춤을 세게 끌어 안는 월순에 살아있음을 확신하고선 안심한다.
"……."
물가에 가서 물을 뿌리고 노는 지현과 월순을 멀리서 보는 정재와, 말 없이 담배를 피며 둘을 보는 우성..
월순이 곧 뒤돌아 밝게 웃으며 '이리와서 같이 놀자'하면, 정재가 한참 망설이다가 못이기는 척 우성과 함께 월순이에게 다가간다.
그냥 발목까지 오는 물가에 온 것 뿐인데 뭐가 그리 신나는지 계속 웃고있는 월순에, 정재가 말 없이 묻는다.
"너 무슨 여기 처음 와보냐? 처음 와보는 것처럼 그러네."
"응. 처음이야."
"왜?"
"난 아파서 집 밖에 잘 못 나갔으니까."
"…아."
"야! 계곡에 왔으면 고기가 먹고싶어지지 않니? 배도 고프고."
고기나 먹으러 가자, 언니가 쏜다- 하며 지현이 손을 흔들며 달려 올라가면.. 정재는 그런 지현을 보며 콧방귀를 뀐다.
아주 지 멋대로지. 월순이 '같이가!'하며 천천히 지현을 따라 걷는 걸 보던 정재는 생각한다. 아프다고 한 게 거짓말이 아닌가보네.
지현에게 가던 월순이 갑자기 다시 돌아서서 물을 정재와 우성에게 뿌렸고, 둘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월순을 바라본다.
월순이 해맑게 웃으며 도망가듯 뛰어 지현에게 가다가도 뒤돌아 둘에게 말한다.
"원래 이럴 땐 잡으러 오는 거야."
"……."
"꺄아..-"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왜 소리를 질러?"
월순이 '무서우니까'했고, 정재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월순을 따라 걸었고, 우성은 소리 없이 웃으며 그들을 따라간다.
"아까부터 자꾸 이 새끼고양이가 따라온다?"
"……."
"고양이 좋아해?"
"응."
"나도 좋아하는데."
"……."
"너 이름이 뭐야? 생각해보니까 이름을 안 물어봤네."
"정우성."
"아, 그렇구나."
"너도 알려줘야지. 그게 맞는 건데."
"아, 미안. 나는 차월순이야."
"차월순."
"이름이 촌스럽지..? 난 나중에 개명 꼭 할 거야."
"아니. 예쁜데."
"내 이름이 예뻐?"
"응. 예뻐."
"그럼 나중에 딸 이름 월순이라 지을래?"
"그래."
"농담인데.. 알겠다고 할 줄 몰랐어."
"……."
말 없이 웃는 우성과, 소리내어 웃으며 우성을 바라보는 월순.. 지현의 할머니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게 된 넷..
가위바위보에서 지게 된 정재와 지현은 고기를 사러 갔고, 우성과 월순이는 정자에 앉아서 재밌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고기를 굽다가 더운지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월순에, 우성과 정재의 시선은 모두 월순이에게 가있다.
"……."
"……."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하자는대로 했을 뿐이데, 부탁을 들어준 둘에게 고마운지 지현도 괜히 둘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월순이 내일모레 이사 가서 이제 여기 못 와. 그래서 좋은 곳 좀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마침 너네가 오토바이를 갖고 있길래 같이 오자고 한 거야.
솔직히 내가 고기도 샀는데 내일까지 같이 있어줄 수 있지?"
"이사를 가?"
"응. 공기 좋은 곳으로. 왜? 갑자기 정 들었냐?"
"아니??"
정재가 급히 고갤 저었고, 우성은 조금은 섭섭한 듯 월순을 바라보았고, 월순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기 한점 입에 넣는다.
월순이 말 없이 고기를 먹으면, 정재도 월순이 가는 게 신경 쓰이는지 고기도 먹지 못한 채 한참 월순을 힐끔 본다.
여자들과 남자들은 서로 다른 방에서 자게 되었고, 월순이 잠이 오지 않는지 집 밖으로 나와 정자에 앉아서 개구리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갑자기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리자, 놀랬는지 월순이 심장부근에 손을 댄 채로 흠칫- 하면, 정재가 어색하게 서서 말한다.
"뭘 그렇게 놀래냐.."
"…아, 정재구나."
"뭐해, 혼자."
"잠이 안 와서. 너는?"
"나도."
"앉아."
월순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하자, 정재는 곧 고개를 저으며 팔짱을 낀 채로 정자에 기대어 섰다.
치- 하고서 월순이 하늘을 보았다. 아, 공기 좋다- 하며 웃는 월순에 정재는 괜히 월순을 힐끔 몰래 보게 된다.
"그때 미안."
"어?"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심장 안 좋다면서."
"…아.. 아, 그건..사실.. 그건.. 아픈 척 한 거였는데.."
"뭐? 왜 아픈 척을 해?"
"처음부터 다 그런 건 아니구..! 처음엔 놀래서 그랬던 거긴.. 한데.."
"……."
"네가 정말로 화를 낼 것만 같아서.. 혹시라도 때리면 어쩌나 싶었어."
"미쳤냐, 내가 널 왜 때리냐?"
"무서운 불량배인줄 알았어."
"나같이 착한 애가 어딨다고."
"많지않아..?"
"야."
"미안.."
"근데 너 진짜 이런 곳 처음 와보냐?"
"아니,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은 가봤는데. 친구랑 온 건 처음이었어. 그래서 더 좋았어."
"다음에 또 오자."
"어?"
"다음에 또 오자고. 기회가 되면."
"…진짜? 나중에 또 와줄 거야?"
눈물까이 고여서는 진짜 그래줄 거냐며 웃는 월순에 정재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고갤 끄덕였고, 월순이 고마워.. 하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정재는 '그렇..게 좋냐..'하며 괜히 헛기침을 해보인다. 월순이 고갤 끄덕이면 정재는 어정쩡하게 서있다가도 곧 월순이의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그리 가깝지 않고, 그리 멀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선 앉은 정재는 울고있는 월순이의 눈치를 본다.
"언제부터 몸이 안 좋았어?"
"태어났을 때부터.."
"그럼 제대로 논 기억이 없는 거야?"
"응. 그래서 지현이가 나 데리고 많이 돌아다녀줘."
"…그러냐. 근데 심장병은 뭐 못 고쳐?"
"…아무래도 돈도 많이 들고."
"부모님이 그거 하나도 안해주냐. 딸이 아프다는데."
"……."
"…왜."
"…안 해주는 거 아니고.. 못해주시는 거야. 계속 노력하고 계시고!.."
"……."
"말 함부로 하지 마."
월순이 화를 냈다. 화를 낸 뒤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로 울기 시작했고, 정재는 야.. 왜..울고 그래.. 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허공에 있는 민망한 손은 월순을 달래줄줄 모르고 계속해서 월순이의 우는 소리만 들릴 뿐.. 정재는 아무 말도 못한다.
다음날 월순이는 지현이랑만 대화를 하게 되었고, 우성과 지현은 정재를 힐끔 본다.
정재는 뭐- 하고서 괜히 또 헛기침을 하고.. 월순이 말 없이 우성의 옆에 서서 말한다.
"네 뒤에 탈래."
"이정재랑 어제 뭐 싸웠어?"
"…아니."
"…내가 쟤랑 뭐.. 싸울 사이도..아니고."
월순이 더 화가났다. 아예 정재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우성의 옷자락을 잡으면, 우성이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월순도 오토바이에 타면, 지현이 정재에게 쯧쯧- 혀를 차고선 말한다.
"내일이면 월순이도 가는데..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벌써부터 싸우고 그러냐?"
"야 뭘 싸웠다고 그래."
"좋게 보내주려고 했더니만, 네가 다 망쳤어."
"…내 탓이냐?"
"얼른 타기나 해."
월순이 집에 왔을까. 괜히 어제 일을 생각하니 너무 속상해서 침대에 누워서 발을 동동 굴리며 또 울고 있었을까..
'월순아, 네 친구라네?' 하는 소리에 월순이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야, 나 이정재인데.
"…아, 응."
- 잠깐 볼 수 있냐.
"…왜 그러는데?"
- …어제.
"……."
- 어제 일도.. 미안하고..해서.. 잠깐 할 말도 있고...
"……."
- 네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해도 되고, 무슨 짓을 해도 돼.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다 받아줄게.
"근데.."
- …….
"우리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니?"
- 전지현한테 물어봤어.
"…아, 그렇구나."
- 그럼.. 1시간 뒤에 시계탑에서 보자.
"…응."
"……."
"……."
"…딱이다. 가자..!"
정재에게 모자, 선글라스를 씌우고선 가자며 손을 잡고 걷는 월순에 정재는 또 얼굴이 붉어진다.
정재의 차를 타고 놀이공원에 오게 된 둘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월순이 계속 웃고 있는 덕에 어색한 걸 조금씩 풀 수 있었다.
"회전목마 타자."
"너 혼자 타."
"다 해준다고 했잖아."
"저건.. 유치해서 싫어."
"…그래. 그럼 나 혼자 타지 뭐."
"……."
"이것 좀 맡겨줘."
월순이의 짐들을 맡아준 정재는 여전히 얼굴이 붉어진 상태다.
"……."
"……."
무심하게 월순을 보던 정재도 얼마 안 있어 결국엔 미소를 띄우고 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에 정재는 자신의 심장부근에 손을 댄 채로 월순을 보았다.
"뭐해? 안 가?"
"…어?"
"왜 이렇게 멍을 때려?"
"…내가 언제?"
"아까부터 계속."
"…아닌데."
"가자. 나 저것도 타고싶어."
"……."
"아, 참.. 너희 집 전화번호는 뭐야? 나도 알고싶어. 가끔 생각날 때 전화하게."
"…야, 이정재."
"…어."
"아까부터 왜 자꾸 멍 때려? 불러도 대답 안 하고."
"……."
"…내가 귀찮게 놀이공원 오자고 해서 화난 거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차월순.
"……."
"너 하루만에 누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적 있냐?"
"…아니, 왜?"
"내가 너만 보면 자꾸 심장이 뛰는데. 이게 널 사랑하게 돼서 뛰는 건지, 나도 심장병이라도 걸린 건지 모르겠어."
"……."
"…알아."
"……."
"본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사랑한다, 좋아한다 하는 내가 이상해보일 수도 있지만. 나 26년 동안 인생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없었어. 이번만큼은 진심이야."
"……."
"네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놈일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난 나쁜 놈은 아니야."
"……."
"오늘이, 지금이 아니라면 말 할 기회가 없으니까. 섣부르게 이렇게 너한테 사랑한다 말해.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해."
"난.. 하루만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 없어."
"……."
"…그건 그냥.. 잠깐일 뿐인 거야."
월순이 정재를 뒤로한 채로 걸었고, 정재는 혼자 덩그라니 놀이공원 한가운데에 서있다.
"……."
월순이 올까봐, 차에서 기다리고 있던 정재는 벌써 2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월순이는 아마도 버스를 타고 집에 간 것 같았고, 정재는 그래도 계속해서 월순을 기다린다.
"……."
"……."
정재는 아까 그 순간은 후회했다. 그래. 하루만에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를 누가 좋아할까.
분명 나를 또라이로 봤을 게 뻔하지.
이삿짐을 거의 다 쌌을까.. 월순이는 전화기를 지키고 서있었고.. 월순이의 부모님도 전화기만은 건드리지 못하고 월순이의 눈치를 본다.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전화 한통 안 오는 전화에 월순이는 결국엔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곱게 접은 종이를 꺼낸다. 종이를 펼쳐보면 종이엔 정재의 집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마음 먹고 전화를 건 월순이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한참 긴장을 한 듯 침을 꿀꺽- 삼킨다.
"…여보세요?"
- …….
"정재니?"
- …어.
"…나."
- …….
"…이제 이삿짐 다 싸서, 가야 돼."
- …….
"나 오늘.. 가는 거 알고 있었지?"
- …어.
"왜 연락 안 했어?.."
- 내가 어제 그랬지. 난 확실히 나쁜놈이 아니라고.
"……."
- 근데 나 나쁜놈 맞아. 좋아하는 여자한테 차였다고 그게 기분 나빠서 너한테 연락 하기 싫었어.
"…사랑한다면서, 왜 연락 안 하는데. 기분 나빠도.. 그래도 마지막인데. 우리는 그러기 전에 친구인데.. 연락 한 번쯤은 해줄 수 있었던 거 아니야?"
- 그래. 잘가.
"……."
- 잘지내.
전화가 끊겼고, 예진도 수화기를 내려놓고선 곧 눈물을 흘린다. 우는 월순에 어머니는 걱정이 되는 듯 다가오다가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막아서며 고갤 젓는다.
"……."
이삿짐을 다 싼 가족들은 차에 올라탔고, 월순도 차에 타려고 했을까.. 곧 오토바이 하나가 골목길로 들어서 차 앞에 선다.
혹시나 정재일까, 월순이 화들짝 놀라서 보면.. 우성이 헬멧을 벗어서는 월순이에게 다가온다. 근데..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져있다.
"이거. 이정재가 전해달라더라."
"……."
"그리고 이건 내 선물."
정재가 전해달라고 한 선물은 목걸이였고, 우성이 준 선물은 꽃다발이였다. 결국에 월순이는 또 눈물이 터져버린다.
"……."
하루만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너에게 무서워서, 자신이 없어서, 믿을 수가 없어서 도망치게 된 나도 너와 같았다.
나도 하루만에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음을 이제서야 알아채버렸다.
그리고 난 1994년 8월 18일 하루만에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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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원래 친구가 이정재꺼 써달라고 해서...............뭐쓰지..하는데....
갑자기 막 옛날 갬성으로 쓰고싶어졌다지 뭐예요..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