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또 금새 흘러 내가 이 곳에 투입된지도 한달가량이 지났다
그 동안 기욤의 음식은 점점 내 입맛에 맞게 변해갔고- 아마 적응한것 같다. 하지만 블레어는 여전히 툴툴댔다
일리야와의 훈련의 강도는 점점 세졌으며- 어제만해도 그랬다. 어제는 숲을 하루종일 뛰어다니며 일리야가 쏘는 레이져를 총으로 맞춰댔다
그래서인지 내 몸은 항상 상처투성이라 내가 나를 치료해야만 했고
그 모습을 본 위안은 안쓰럽다는 듯 얼굴을 가득 찌푸리곤 치료를 도와주곤 했다
'정상, 일리야랑 하는 훈련 힘들지..'
'아니에요, 위안이 걱정해주니까 고맙네요'
'맨날 이렇게 상처투성이니까 걱정되서 그러지-'
'치, 맨날 이렇게 세게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니까요'
그가 잠깐 침을 꿀꺽 삼키더니 주위를 둘러보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다 이유가 있어-'
'무슨 이윤데요?'
'곧 전장에 투입될거야'
'전장에요?'
'우리 팀 훈련도 끝났고. 정상도 투입됬고. 상부에서 곧 지시가 내려올거야. 타일러랑 일리야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둘한테만 미리 이야기를 해줬나보네요'
'응. 근데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전에 투입된 팀이 다 다쳐서 우리가 투입되는 거라고 하더라구'
위안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그래서 일리야가...'
'내가 아는건 일단 여기까지야. 군의관인 네 역할이 중요할거야. 행운을 빌어 정상'
'위안도요.'
위안이 기욤의 세차를 도와주러 가고, 나는 내 상처의 드레싱을 마친 후, 구급함을 닫았다
위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꽤 중대한 일일텐데, 훈련을 할때의 일리야의 표정이 항상 담담했던것을 떠올리자 더욱 기분이 안좋아졌다
어쩌면 죽을수도 있어
그리고, 그날. 그날은 내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날과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여전히 기욤은 카레를 휘휘 젓고있었고 위안은 군화를 손질하고 있었으며 블레어는 내 옆에서 어제 꾼 꿈 얘기를 하며 재잘대고 있었으니까
그때, 고위직으로 보이는 한 사람과 일리야, 타일러, 타쿠야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곧 그들을 본 기욤은 국자를 들고 안으로 느릿느릿 걸어왔으며 위안은 군화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블레어도 말을 멈추곤 정자세로 앉았다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위안의 이야기가 맞구나
'음. G팀. 짧게 말하겠다. 작전 투입이다. 지금 당장 무장해서 앞에 대기하고 있는 트럭에 올라타도록. 그리고 기욤 패트리?'
'예'
'너는 타일러랑 타쿠야, 정상을 태운다. 여기가 두뇌부이니 잘 지키도록. 수잔?'
'예?'
'너는 이 팀을 보호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그다음. 블레어?'
'네'
'너는 위안과 다니엘, 알베르토 그리고 샘을 태운다. 여기는 물자를 공급해야하니까 샘 너가 잘 지켜야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줄리안, 로빈, 일리야는 우리 트럭에 탄다. 10분내로 준비해서 나와. 교전이 시작된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
그가 속사포로 말을 끝내고 막사 밖으로 나갔다
멍하니 있자 블레어가 눈 앞을 손으로 휘휘 저으며
'정상!! 정신 차리고 빨리 무장해!! 구급함도 챙기고 실탄도 챙겨야 해. 어서!'
'어..어..알겠어'
정신없이 방탄조끼를 입고 총알을 장전하곤 헬멧을 썼다.
불안감이 가득 밀려와 어지러워 졌다
비틀거리자 일리야가 구급함을 들어주며
'정상. 정신 차려야 해. 실전이야.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거 명심해. 우리는 널 지켜야하고, 네가 죽으면 모두 죽는다는거 잊지마. 냉철해져. 행운을 빈다'
그는 구급함을 기욤의 지프차에 실어주곤 앞에 대기하고 있는 트럭으로 뛰어갔다
일리야..
곧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리고 우리의 차는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타일러와 타쿠야가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고 수잔은 묵묵히 총만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저기..수잔..'
'응?'
'수색병들은 왜 따로 트럭에 타는거야?'
'그들이 제일 먼저 투입되어야 하니까. 먼저 그곳이 투입되어도 좋은지, 안전한지 알아봐야 하니까'
'나도 수색병이잖아. 그런데 왜..'
수잔이 들고있던 총을 내려놓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상. 잘 들어. 이번 작전은 꽤나 위험할거야. 죽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게 나일수도, 너일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는 너를 지켜야해. 네가 없으면 모두 다 죽으니까'
'............'
'넌 수색병이기 이전에 군의관이야. 타일러의 지시가 있기 전까진 절대로 이 트럭을 나가선 안돼'
'그럴게.'
'다 잘될거야. 다..'
희미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 가슴이 아려왔다
내가 생각하던 군생활은 이게 아니었다
동료를 잃고 사람을 죽이는 군생활이 아니라
나라를 수호하고 명예로워지는 군생활이었는데.
곧 차가 멈추고 무전기 소리가 들렸다
아마 일리야였던것 같다
'아.....여....는...섹션...A..다..'
'일리야. 일리야 들려?'
'타일러. 들린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지?'
'걱정하지말고 기도비닉 유지한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 좋아.'
갑자기 타일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 어!! 안돼!! 로빈 앞에 다섯명!!로빈 멈춰!!'
그리고 총소리가 들렸다
그 한발의 총은 엄청난 교전의 신호탄이 되었고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수잔도 썬루프를 열고 일어나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타쿠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상'
'왜?'
'하.. 정상 너도 나가야 할것 같다'
'나도? ......그래'
'수잔이랑 샘이 도와주고 있긴 한데, 위안 폭약 설치가 늦어지고 있어서. 미안하다'
'아니야, 미안할것 없어'
'행운을 빌게. 구급함은 꼭 매고 가. 일리야랑 매고 훈련했지?'
'걱정마. 거뜬해'
내 옆에 있는 총을 집어들었다
'로빈도 구해오고, 이겨서 돌아올게'
'우리 뒷쪽엔 적들이 없어. 타일러 무전 잘 들으면서 이동해'
'그럴게'
문을 열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하얀 갈대들이 바람에 나풀거렸고
방금전까지만 해도 들리던 총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뭐야, 무슨일이지
그리고 귀에선 타일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상, 들려?'
'응. 아주 잘 들려'
'이제 모든걸 응 아니로만 답해.'
'응'
'지금 GPS로 보면 1시 방향에 로빈 쓰러져있고, 3시 방향에 일리야, 4시 방향에 줄리안. 그리고 12시 방향에 적들이 있어'
'응'
'근데 아직까지 적들한테 GPS기능은 없어. 물자가 부족하거든.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응'
'자, 이제 3시 방향으로 계속 가. 일리야랑 줄리안도 이 무전 듣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응..?'
'응'
'자. 조금만 더. 조금만..'
그때 눈에 익은 뒷통수가 보였다
줄리안이었다
다시금 타일러의 무전이 들렸다
'줄리안. 뒤 돌아'
줄리안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분노로 일그러져있어, 평소의 그 처럼 보이지 않았다
'줄리안?'
'정상'
'무슨 일이야..'
'로빈이 총에 맞았어. 빨리 여기를 떠야해. 안그러면....로빈이 위험할거야'
'걱정마 줄리안. 금방 끝날거야.'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일단 지금은 타일러 말 듣자. 알겠지?'
'그래'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지만 분명한 소리였다
타일러의 무전도 들리지 않았다. 뭐야, 지금 무슨일이야
나와 줄리안은 등을 맞대고 총을 앞으로 겨누었다
내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후. 침착하자 정상.
점점 발소리가 가까워 졌다.
하나, 둘, 셋
그때 다시
'저...정상? 줄리안? 들려? 거기서 빠져나와 당장! 5시 3시 방향에 적들있어!'
'일리야는? 로빈은??'
'일단 너희 둘이 먼저야. 줄리안. 정상 엄호해'
'...........그럴게'
줄리안이 나의 등을 두드렸고 우리는 앞으로 계속 달려나갔다
뒷쪽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총소리가 들리곤, 그 소리는 곧 멎었다
아마 샘이나 수잔의 솜씨일것이다
우리는 한참을 뛰어 트럭에 올라탔다
타일러의 얼굴이 벌개져있었다
'타일러.. 무슨일이야 지금'
'일리야랑은 무전이 끊겼고 로빈은 아직 괜찮아. 출혈은 멈췄대'
'아직...? 로빈이랑 무전 계속 하고 있는거야?'
'..그래.. 그럴려고 무전 잠시 끊은거였어. 미안해'
'일리야랑은 언제쯤 연락이 되는거야..'
'지금 고치고 있어. 일리야가 로빈을 찾을거야. 로빈을 데리고 뛰어나오면 샘이랑 수잔은 그 둘을 엄호할거고 위안이 폭탄을 떨어뜨릴거야.
무전이 연결되면 정상은 바로 수술 준비해'
'그럴게'
구급함에서 마취제와 소독약. 매스와 실 그리고 초록색 천을 꺼냈다
줄리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상. 잘 부탁해. 나한텐 형제 같은 애야'
'알고있어 줄리안. 로빈은 꼭 살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전신마취 안할게'
'.......그래'
그때
'치..치직...치지지직...'
'어!! 일리야?? 여기는 타일러다'
'여........기는..일리야다..'
'괜찮아?'
'........어.. 로빈 만났어'
잠시 사격을 멈추었던 수잔이 뒤를 돌아 샘에게 손짓했고 둘은 총알을 장전했다
'지금 5시 방향에 적들 있는거 알지?'
'....알......고있어'
'로빈 상태는 어때'
'괜찮아. 로빈, 일어날 수 있겠어?'
'정확히 어디에 총을 맞은 건데'
'배'
'배?'
잠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타일러가 다시 말했다
'일리야, 내가 신호주면 1분 내에 거기서 나와야해. 위안이 폭탄을 쏠거야'
'그래.'
'셋 하면 뛰어 알겠지?'
'응'
'하나'
기욤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둘'
줄리안의 동공이 떨렸다
'셋'
그리곤 총소리만이 가득했다
수잔은 계속해서 총을 쏘아댔고
타일러는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수잔이 내려오고 트럭의 문이 열렸다
일리야였다
'일리야!!'
그가 희미하게 웃어보이며 로빈을 태우곤 곧 자신도 올라탔다
기욤은 차의 기어를 올려 뒤로 빠르게 후진했고
우리가 조금 멀어지자
'펑'
엄청난 파열음이 들렸다
차체는 심하게 진동했고
로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로빈..?'
'...어.'
'내가 누구야'
'정상.'
'그래 좋아. 이제 말하지 말고, 동의하면 눈을 깜빡여. 알겠지?'
그가 그의 물기어린 눈을 깜빡였다
우리가 탄 차는 다시 산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장기는 괜찮은것 같아. 구토하거나 하지는 않았지?'
그가 눈을 깜빡였다
'좋아. 따끔'
상처부위에 마취제를 주입했다
'전신마취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줄리안? 소독 약이랑 거기 쟁반 좀'
소독약과 쟁반을 건네주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에게서 그것들을 건네받고,
상처부위를 소독한 후, 초록색 천을 덮었다
그리곤 수술이 시작되었다. 살을 조금 찢어 총알을 빼내고, 소독한 후 꽤매었다
꺼내어진 총알을 살펴보던 일리야는
'음, 다행히 구식 총알이라 상처 부위가 좁구나. 정말 다행이네'
'....고마워요 일리야'
'그래, 막사로 돌아가서 안정 취하면 괜찮을거야.'
일리야가 자신의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
안녕 정들!
오늘 두개나 왔어!!
작은 추석 선물<3
좀 길다 그치..
끊기 애매해서 그냥 쭉 썼어.
이해해줘 뿌익<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