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씨 또 어디 아파요? 안색이 안 좋아요."
"어... 괜찮은데. 안 아파요. 걱정하지 마요."
"아... 어떡하지.... 요즘 들어 자주 그런 거 같아요.... 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아이스크림 가게에 다녀온 후부터 누군가가 내 머리를 내려치는 것만 같이 깨질 듯이 아파졌다. 머릿속에서 자꾸 무언가가 떠다닌다. 기억해내려 하면 할수록 머리가 더 아파져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건 석민 씨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아픈 모습을 보이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석민 씨의 얼굴을 보면 나는 항상 괜찮은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석민 씨는 걱정하지 말라는 내 말에도 불안한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석민 씨는 거실을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거리며 손톱을 탁탁, 물어뜯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혼잣말을 하는 석민 씨에, 나는 결국 일어나 석민 씨의 손을 잡았다.
"석민 씨, 나 봐요."
"......"
"나 괜찮아요 정말. 뭐가 그렇게 불안해."
"..... 나 두고 가면 안 돼요.. 없어지면 안 돼요...."
"......"
석민 씨의 말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석민 씨는 지금 내가 갑자기 자신의 곁에서 없어질까 봐, 그것을 불안해하고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왜.. 내가 왜 없어져요. 석민 씨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석민 씨를 두고 어디 가요."
"아프지 마요. 제발....."
보는 이까지 가슴 미어지도록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석민 씨에 나는 그저, 손을 꼭 잡아주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꿈속의 그녀
"여주 씨, 나 일 때문에 잠시 앞에 좀 다녀올게요."
"네. 늦어요?"
"아니요, 금방 와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올 때 사 올게요."
석민 씨는 신발을 고쳐 신으며 물었다. 석민 씨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나를 보고 석민 씨는 예쁘게 웃으며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현관을 나섰다. 아.... 또. 쿵쿵, 뛰어오는 심장에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 들어가도 되겠지? 막상 주인 없는 방에 들어가려니 괜히 죄짓는 기분에 한참을 고민하다 문고리를 내렸다. 에이, 석민 씨가 들어가지 말라 한 것도 아니고 괜찮겠지 뭐.
"와... 되게 깔끔하다.."
문을 열고 들어간 석민 씨 방은 그냥 평범했다. 어느 방처럼 침대가 있고, 책상이 있고, 의자가 있었다. 발을 움직여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눈에 보이는 선반 위에 놓여있는 여러 가지 상장들과 트로피.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음악 콘테스트 트로피였다. 트로피를 조심스럽게 꺼내자, '이석민 최우수상'이라고 쓰여 있었다. 석민 씨는 빠지는 게 없구나. 석민 씨의 생활이 고스란히 묻어져 있는 방 안을 보고 있으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액자가 보였다. 무슨 사진이길래 액자에다 넣어놨지? 석민씨 집에서 사진은 처음 보는데. 의아한 마음에 액자를 손에 쥐었다.
그 사진 속에는 서로를 바라보며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
툭.
"... 이게 무슨......"
석민 씨와 내가 있었다.
순간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내 모든 기억이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예쁘게 찍어라."
"네네~ 자, 하나 둘 셋!"
"칠칠아, 또 다 묻히고 먹고 있어."
"닦아줘."
"아 예뻐 죽겠어."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공원에서 비를 맞고 있는 나를 보고 놀라던 너의 얼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씁쓸히 웃는 너의 눈. 내가 아파하자 미치도록 불안해하던 너의 모습까지. 전부.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진 기분이었다.
"..... 나 두고 가면 안 돼요.. 없어지면 안 돼요...."
"아프지 마요. 제발...."
내가 아픈 모습을 보였을 때 불안해하던 석민이가 생각났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 내가 떠날까 봐 얼마나 무서웠을까... 주먹을 쥐고 가슴을 세게 내리쳤다. 그런 석민이를 생각하니 숨이 안 쉬어질 만큼 답답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리는 눈물과 이제는 입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입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