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자존심
W. jh23
내 등을 꽉 붙잡은 채로 키스를 받아내는 김성규의 손이 비누거품 덕분에 끝없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래도 김성규의 손은 기특하게도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자꾸만 내 등을 할퀴고 있었다. 짧지 않은 손톱이 긁고가는 자리가 아팠지만, 내가 언젠가는 받아야 할 응당의 댓가라서 나도 김성규를 꽉 끌어안았다. 물론 내 손톱에 여린 살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나는 애를 썼다. 고개를 왼쪽으로 틀면 그에 따라와 여린 콧김을 내뿜으며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입술도 역시 기특했다. 이제는 내 숨이 모자라 잠깐 틈을 두려고 해도 제가 먼저 몸을 숙여 내 입술을 찾는다. 응, 나 여기 있다……. 어리고 달래도 불안한지, 내가 마치 보면 예쁘지만 만지기만 하면 터져버리는 비누거품 같은지 꽉 붙잡고 미끄러움을 견뎌내는 김성규. 외로움을 견디다못해 미끄러움마저 견디려 하는 김성규의 저 바보같음. 어깨까지 닿은 비누거품이 펑펑 터져나가고 있었다. 키스를 마친 후에도 입술에 짧은 뽀뽀를 몇 번이나 해주었지만 아직도 부족한가 보다. 눈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내 어깨에 턱을 기댄다. 예전처럼 쌀쌀맞지도 않고, 튕기지도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스킨십을 해오는 모습에 낯설면서도 씁쓸한 마음뿐이다. 사람 하나를 어색함이 무색하게 바꿔놓은 나도 참 대단했다. 이렇게 사람 하나가 완전히 변할동안 그것도 모른 채로 외도를 했던 나에게,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뾰족한 턱이 어깨에 닿아 아픈 것도 모른 채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물은 차츰 식어가고 있었다. 격한 움직임 때문에 밖으로 흐른 거품들도 하수구에 고여있었다. 뿌연 수증기도 서서히 가라앉아, 서로의 얼굴이 더욱 선명해질 때 축축한 목소리 ㅡ수증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ㅡ가 내 귓가를 때렸다. 즐거운 연애를 할 때처럼 칼칼한 목소리도 아니고, 톡톡 쏘아붙이는 말투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내 귓가에 크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나도 키스 잘해."
"……"
"숨도 다 참았어."
알아……너 키스 되게 잘해……. 툭 떨어지는 내 말에 김성규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붉은 김성규의 팔을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이자 제 팔을 내려다본다. 너 여기 되게 빨개. 빨갛게 부어올랐잖아. 안 예쁘게ㅡ 나는 분명 장난이었다. 장난이라기 보다는 그저, 김성규가 걱정되서 한 말이었는데 그 예쁘지않다는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나보다. 옛날의 김성규라면 남자에게 예쁘다는 말이 무엇이냐며, 당장 사과하라고 노발대발 성질을 부렸을 것이다. 잘생겼다고 해주진 못할 망정 예쁘다는게 무슨 소리냐며, 그래야 했을텐데. 김성규는 입술을 죽 내밀고 내 어깨에서 턱을 떼어냈다. 허전한 어깨가 그대로 전해진다. 제 빨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김성규가 대뜸 제 팔을 물 속에 담궜다. 거품이 빠져나간 물 속으로 김성규의 팔이 잠긴다. 제 팔을 뚫어지게 내려다보는 김성규의 눈이 팔만큼이나 무척이나 붉었다. 충분히 충혈된 김성규의 눈이 잔뜩 부어있는 것을 보고 또 속이 상한다. 물에 팔을 담근 것은 필히 예쁘지 않다는 내 말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것에 별 말을 하지 않고 욕조에서 빠져나와 샤워기를 틀어 김성규에게 뿌려주었다. 따뜻한 물을 받고 부르르 몸을 떨며 제 몸의 비누거품을 헹구는 김성규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 온 몸 구석구석을 문지르자 베베 꼬며, 끝내는 내 손을 밀어내고 말았다. 민망해진 손에 멍하니 서있자, 슬그머니 내 손을 다시 제 어깨에 갖다대며 고개를 숙이는 김성규에게 불쌍한 마음이 맨 처음으로 드는 것은 왜일까. 김성규의 어깨부터 가슴을 지나 배를 씻겨주며 묘하게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 섹스하자던 김성규의 얼굴이 떠올라 애써 눈을 질끈 감고 다리 아래로 손을 뻗자, 대담한건지 발칙한건지 김성규는 내 손을 이끌고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던 나는 김성규의 얼굴을 보았고, 그래놓고 내 얼굴을 보지 않는 김성규의 귀는 아까의 팔만큼이나 무척이나 드거워져있었다. 허벅지를 몇 번 쓸어주고 무릎을 지나 종아리까지 내려오자 그제서야 발로 욕조 벽을 은근히 차며 내게 물을 튀겨오는데,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 몰라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안할거야?"
"뭐가?"
무엇인지 빤히 알면서도 은근히 대답을 회피하자 아직도 자기가 싫어서 그러는 줄 아는 김성규는 어찌할 지 모르고 제 허벅지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김성규의 발을 닦던 내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을 가져오니, 그제서야 고개를 바짝 들고 내 눈을 본다. 시선을 피했다. 김성규가 싫어서 이 순간을 모면하기를 원하는 거라면 그것은 백 퍼센트 거짓말이었다. 김성규를 지켜주고 싶었다,라는 것도 어쩌면 모순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적어도 김성규의 몸을 함부로 탐할 권리는 없었다. 나와 몇 번이나 뒹굴었던 여자의 존재를 알면서도 김성규가 나에게 섹스를 바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닦을테니 일어나라는 내 말에 김성규는 반항이라도 하듯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욕실은 온통 정적이었다. 뿌옇던 거울도 슬슬 제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덕분에 당황스러운 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잇었다. 김성규는 그대로 앉아 입술만 물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저 입술이 상하기라도 할까 걱정되어 무심코 손을 내밀었더니 그마저도 고개를 돌리며 거부한다. 응석받이가 따로 없다. 섹스를 해주지 않는다고 이렇게 심통이 나다니. 귀엽기도 하고 어쩌면 고맙기도 했지만 나는 너무나 미안했을 뿐이다. 딱, 백 퍼센트 미안한 감정이었다. 사실 겁쟁이인 나는 김성규를 안을 자신이 없었다. 서로의 몸을 잊고도 남을 육 개월, 그 시간동안 우리의 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을테니까. 내 밑에 누워 눈도 뜨지못하고 헉헉댈 김성규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사실은……그랬다. 예전에도 김성규는 섹스를 할 때마다 눈을 감곤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은 없었으나, 지금은 그게 섹스를 피할 구실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충 이런 생각을 정리하며 김성규를 다시 일으켜세우자 또 고집을 부린다. 싫……어. 질질 끌면서도 할 말을 하는 김성규 때문에 다시 욕조로 들어가 왜 그러느냐고, 닦고 나가서 무엇이라도 먹어야하지 않겠느냐고 천천히 달래니 김성규가 내 손에 있던 수건을 빼앗아 들고 벌떡 일어나 스스로 닦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나는 과정에서 좀 어지러운지 잠깐 비틀거리는 통에 내가 김성규의 다리를 꽉 붙잡아야 했다. 내 손길도 뿌리치고 욕조 밖으로 나가 닦지도 않은 몸을 가지고 아예 욕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졸지에 혼자 남게 된 내가 급히 몸을 헹구고 밖으로 나가자 옷을 입지 않은 채로 거실에 멍하니 서있었다. 뭐해ㅡ 내 말을 무시한 채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버린 김성규 덕에 어째 더 꼬인 느낌이었다. 정말 섹스를 해야하나. 물론 나도 하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미안했고, 안을 자신이 없었고, 그냥. 마치 큰 숙제를 받은 어린이처럼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한참 부스럭거리는 김성규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수건 한 장을 가지고 식탁 의자에 앉아버렸다. 물이 뚝뚝 떨어져 온 바닥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것을 닦을 겨를이 없었다.
안방에서 나온 김성규의 얼굴은 조금 충격이었다.
"……"
입술이 쥐 잡은 것마냥 붉었다. 탐스럽고 생기 넘치던 김성규의 입술 색깔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만큼, 도색 잡지에 나오는 여자들이나 바를 것 같은 립스틱인지 무엇인지 모를 어떤 것을 덕지덕지 바른 채로 나와 내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물론 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연인끼리 아무것도 입지 않은채로 마주보고 있는 것 자체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지만, 김성규의 그 얼굴이 충격이어서 나는 얼 빠진 눈으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김성규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 상태로 성큼성큼 다가온 김성규는 내 옆으로 의자를 끌고와 앉으면서 내 허벅지를 은근히 더듬기 시작했다. 본능에 충실한 남자, 그리고 연인. 서서히 발기하는 내 페니스를 보면서도 멈추지않고 안쪽으로 손을 넣어 손으로 춤을 추는 김성규의 몸짓은 가면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다. 손을 떼야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새빨간 입술을 보다가, 피가 몰려 딱딱해진 내 페니스를 본 것은 이미 묽은 액을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그만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술만 보던 내가 김성규를 안아들고 안방으로 향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상황을 바란 것처럼 쉽게 들리는 김성규의 몸이 안쓰러운 것도 잠시, 그 붉은 입술로 무작정 돌진해 혀를 섞고, 영혼까지 섞으며 새벽 네 시를 보낸 우리는 아마도 미친거겠지. 바람난 애인을 잊지 못한 안타까운 연인과 그 연인에게 죄스러워 섹스도 하지 못하는 나. 이처럼 웃긴 코미디가 또 어디 있을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우리의 불 붙은 섹스는 끝을 예견하지 못했다. 김성규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나는 내 의지대로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김성규는 욕조에서처럼 내 어깨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쌕쌕대는 가슴팍이 무색하게, 침대 시트만 꽉 붙잡고 고통 섞인 쾌락을 받아내고 있었다. 몇 번이나 숨을 참으면서 내 살에 손을 대지 않은 김성규에게 물었다.
"힘들면 나 잡아. 아까 욕조에서처럼."
"……"
"시트말고. 네 애인 잡으라고."
"아까는……물이 있어서 좀 괜찮았는데……."
"……부담스러워?"
"아니, 그런건 아니야."
슬그머니 손을 올려 내 목 뒤로 깍지를 껴오면서 어딘가 민망한 것처럼 고개를 돌린다. 내 입술과 맞닿은 탓에 다 번져버린 립스틱이 입가와 인중, 볼에도 묻어버렸지만 그 모습마저 예쁘고 좋아서, 그리고 조금 귀여워서 픽 웃자 그제서야 다시 내 눈을 본다. 내 얼굴도 립스틱으로 엉망일 것이다. 내 눈에서 조금 시선을 떨어뜨려 입술과 볼을 본 김성규가 그제서야, 그제서야 말을 했다.
"이 립스틱……. 뭔 줄 알아?"
여전히 내 목 뒤로 손 깍지를 낀 상태였다. 덕분에 더욱 밀착하게 된 상태에서 내 입가로 곧장 다가오는 뜨거운 숨결이 혼을 빠지게 했지만 꿋꿋이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저었다. 뭔데?ㅡ 내 말에 한참을 머뭇거리던 김성규가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우리 엄마 유품."
"……"
"나 장가가면……며느리 준다고 산건데."
김성규의 어머니는 나와의 교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성규가 혼자 자취를 하는 줄 알고 계셨었으니까. 채 남자 애인이 있다고 말하지 못한 김성규의 사정을 모른 채로 며느리를 위해 립스틱을 준비한 어머니의 마음씨가 참 예쁘면서도 안타까웠다. 당신의 아들에게 이런 몹쓸 짓을 하고도 배를 맞대고 있는 나를 알면 하늘에서 얼마나 노하실까.
"……엄마가 며느리 주고 싶어했던건데."
"……응."
"그냥……넌……"
"……"
'우리 엄마한텐……넌 아들 애인이니까……"
"……"
"……우리 엄마가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
"우리 엄마가 너한테 못주니까 내가 대신……."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김성규의 입술을 다시 한 번 찾았다. 당신에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을 내게 주신, 일종의 감사 표현이었다. 며느리에게 줄 립스틱을 전해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그 분을 위해서 난 김성규를 사랑해야했다. 일종의 즐거운 의무. 그 립스틱을 바르고 나와 입맞춤을 한 김성규의 예쁜 마음이 슬퍼서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성규가 울었는지, 내가 울었는지 구분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냥……김성규의 마음이 참 예뻤다. 이런 애인을 두고 외도를 했던 나에게, 어머니는 하늘에서 분노하셔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착한 아들을 주셔서……감사해요, 어머니.
"우현아……"
"……"
"나는……이제 엄마도 없어……."
"……"
"너 밖에 없으니까……"
"……"
"그냥……나랑만 있어주면 안돼?"
온 얼굴에 립스틱을 묻히고 이런 말을 해도 슬퍼보이는 사람은 김성규 밖에 없을거다.
지금 제 컴퓨터가 이상해서 글씨가 어떤지 모르겠어요. 혹시 너무 작거나 읽기 불편하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불맠을 달아야할지, 안달아야할지 몰라서 걍 안달았슴다ㅡㅡ; 안달아도 되는거겠죠? 암튼 저번에 댓글 주신 독자님들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특히 바쁘신데도 읽어주신데다가 긴 댓글까지 남겨주시는 분들껜 너무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 1차 메일링이 끝났으니 암호닉도 새로 받아요. 그냥 댓글로 알려주시면 제가 알고 있겠습니다. 신알신, 댓글 너무 감사해요S2 부족한 글인데도 매번 초록글가는 것보면 신기할 따름이네요ㅠㅠ 저번엔 무려 1페이지에ㄷㄷ;; 과분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메일링 받으신 분들은 내용 절대 댓글에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ㅠㅠ 저와 여러분만의 비밀로 해요ㅠㅠㅠㅠ꼭!!!!!!!!!! 부탁드려요. 댓글에 메일링 내용이 언급되면 이 글 그냥 펑할게요ㅠㅠㅠ 나중에 자세한 공지 띄우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이 글에선 이 글에 대한 내용만 댓글로 알려주세요ㅠㅠ 아무튼,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번 편 역시 구독료가 아깝지 않으시길ㅠㅠㅠㅠ 꼭X100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