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llon, are you taking pills, huh?"
"Jesus, what the fuck are you talking about?"
김지원네 아버지의 차를 훔쳐 타고 다 같이 클로이의 파티에 가는 길이었다. 딜런과 김한빈이 서로 약을 챙겼니 안 챙겼니 잘잘못을 따지며 물고 뜯으며 싸우는 바람에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던 바비가 욕지기가 뒤섞인 한숨을 내쉬며 핸들을 급하게 꺾었다. 병신들. 기숙사로 다시 갈 테니까 싸우지들 마. 그러자 금세 뭔 일 있었냐는 듯 둘은 아무렇지 않게 킬킬대기 시작했다. 우린 서로 약 챙긴 줄 알고 있었지 뭐야. 딜런, 난 니가 팬티 안에 숨겨놓고 올 거라길래 진짜인줄 알았어. 웃기지도 않은 시시한 얘깃거리로 둘은 10분 가량을 웃겨 죽겠다는 듯 차체가 흔들리도록 배를 잡고 웃어제꼈다. 요란하고 경박스러운 웃음소리에 운전에 방해를 받자 바비가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이대로 가드레일 박고 황천길 가고 싶지 않으면 그만 웃고 쳐 앉아. 김한빈과 딜런은 바비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깔깔댔다. Fucking hell. 바비가 질린다는 듯 웅얼거렸다.
바비 부모님의 차 안에는 어릴 적 바비의 사진과, 바비의 동생과 바비가 함께 찍은 사진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밑에 짤막하게 쓰여진 메모들도 함께였다. 지원이 생일. 동생과 껴안고 뽀뽀를 하는 사진이었다. 숨을 죽이고 키득대며 사진을 감상하자니 옆 자리에서 운전을 하던 바비가 멋쩍은 듯 따라 웃으며 말했다. 나 어릴 때 존나 병신같이 생기지 않았어?
"조금."
"Fuck."
가끔 넌 너무 솔직해서 좆같을 때가 있어. 바비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오른손에 쥔 담배를 창 밖으로 내밀고 재를 툭툭 털어냈다. 바비의 느릿하게 치켜올라가는 입꼬리에서부터 뿌연 담배연기가 뻐끔뻐끔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비의 한국식 이름은 김지원이었다. 남자다운 얼굴과 골격에 어울리지 않는 꽤나 중성적인 이름이었다. 영어 이름은 더더욱 가관이었는데, 바로 Robert 였다. 엄숙하고 단정해 보이는 게 바비랑은 전혀 상극인 이름이었다. Robert라고 부르면 바비는 질색을 하고 fuck off, 를 외치는 반면에 한국식 이름인 김지원은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치만 그래도 Robert의 애칭인 바비라고 부르는 게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바비는 바비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렸다. 바비는 자유로웠고, 느긋했고, 아무도 감히 말로는 형용 못할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다채로웠다. 나는 바비가 피워대는 담배에서 무지개빛의 연기가 흘러나오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냥 그 애한테는 그런 게 잘 어울렸다.
"Bin, you go."
"Fuck off. It was your fault. You have to go."
기숙사에 다다르자 이번엔 누가 약을 챙겨올 것인지에 대해 딜런과 김한빈이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바비가 잇새로 짙은 연기를 뱉어내다 말고 지랄하지 말고 사나이답게 대결로 승부수를 보라며 타박했다. 딜런과 김한빈은 곧 가위바위보를 했고, 주먹을 낸 김한빈 대신 가위를 낸 딜런이 분개하며 차 문을 쾅 닫고 기숙사 건물을 향해 발을 구르며 걸어가는 걸로 둘의 사나이다운 승부가 끝이 났다. 김한빈은 꼴 좋다는 듯 키득거리며 앞으로 팔을 뻗어 바비가 쥐고 있던 담배를 넘겨받아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딜런 저 새끼는 날 못이겨. 그러자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옷차림이 불편한 듯 연신 검은색의 원피스를 치켜 올리던 그웬이 말했다. 둘이 존나 똑같거든? 김한빈은 아니라며 바득바득 우겼으나 차 안에 있던 모두가 낄낄거리며 그웬의 말에 암묵적인 동의를 표했다.
상대적으로 발음하기 어려운 구준회나 내 이름에 비해, 김한빈의 이름을 대부분은 명확하게 발음하기 마련이었다. 딜런이나 그웬이나 혹은 조금씩 안면이 있는 친한 친구들은 애칭으로 김한빈을 빈이라고 불렀다. 잘 어울리는 애칭이었다. 그에 반해 내 이름은 보통 J라고 간단하게 줄여 불렀는데, 그 배경에도 역시 구준회가 자리해 있었다. 내가 처음 교실에 들어서서 인사를 건네던 날, 구준회는 제 한국 이름의 중간 글자인 준과 내 이름의 중간 글자인 진이 비슷하다며 불쾌하다는 투로 신랄하게 지껄이다말고 나를 J라고 칭하며 불렀고, 그냥 그게 그대로 굳다보니 내 이름같은 애칭이 된 것이었다. 다만 나는 그게 그다지 나쁘거나 마음에 안 들지 않아서 나름대로 만족해했다. 오히려 그 때는 구준회가 말을 붙이고 이름을 지어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기까지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병신 같은 경우였다.
구준회는 어릴 적부터 영국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성을 딴 구준회라는 제 이름을 고집했는데, ㅡ자존심이 센 구준회가 자기 이름을 굳이 이들의 편리성에 맞추지 않겠다는 의지였다ㅡ 모두가 그의 이름을 어려워 해서 보통은 Jun, 혹은 구준회의 영국식 이름인 Justin 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치만 나는 그냥 구준회가 편했다. 그게 구준회한테 제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남성스럽고 호전적으로 들리는 발음이었다. 끝이 홱 날라가는 듯한 발음이 그 애의 바람같은 모습과 잘 어울렸다.
"So Gwen, today you look like a little bitch."
바비가 키들키들 웃으며 말하자 그웬이 인상을 찌푸렸다. 김한빈도 마찬가지로 바비의 말에 동의했다. 그웬은 불쾌하다는 듯 구겨진 얼굴로 니들 보라고 가슴 내놓은 거 아니니깐 꺼지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웬은 체구가 작은 라틴계 여자애였다. 클로이가 꾸미기를 좋아하고 늘씬한 몸매를 내놓고 다니기를 즐기는 반면에, 그웬은 화장은 고사하고 허구헌날 운동복을 고수하곤 했다. 그녀가 학교를 대표하는 리듬체조 선수인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까무잡잡하고 매끈한 피부에 짙은 고동색의 머리색을 가진 그웬은 체조를 하는 몸이었기 때문에 담배나 약 같은 건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특히 이번 시즌에선 몸매를 더욱 철저하게 가꿔야 하기 때문에 음식도 가려 먹는 편이었다. 그웬은 제법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성숙하고 키가 큰 클로이랑은 상반된 깜찍한 여자애였다. 어린애 같이 생긴 맨 얼굴과 스포츠 웨어를 고수하는 패션 센스 때문인지 그웬은 남자애들에게 그다지 대쉬를 많이 받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오늘이 클로이의 집에서 있는 파티인지라, 분명 어제 클로이와 함께 입을 옷을 쇼핑하고 클로이가 알려준 대로 화장을 했을 것이었다. 덕분에 평생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웬의 맨 살을 본 친구들이 전부 놀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자라면 껌뻑 준는 딜런이 특히 그웬을 보며 크게 놀랐고, 감명 받았으며 또 즐거워했다. 그웬은 한숨을 쉬며 딜런에게 중지를 올려 대꾸할 뿐이었다.
오늘 파티에서 섹시한 남자 하나 꼬실려고 작정한거야, 그웬? 바비가 얄궂게 어깨를 흔들거리며 농담조로 실실거렸고, 곧이어 기숙사에서 가까스로 약을 챙겨 달려온 딜런이 차체의 문을 벌컥 열어제끼고 정신없이 그웬의 옆자리에 어거지로 끼어 앉으며 말했다.
"That sexy guy is right here, huh?"
아니, 도대체 그동안 그 쩌는 가슴은 왜 그렇게 꽁꽁 숨겨 놓은거야? 딜런이 잔뜩 신이 난다는 표정으로 그웬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말했고, 그웬은 신물이 난다는 표정으로 또박또박 좆까라고 다시 답했다.
"Even you are a gay, for Christ sakes!"
그웬이 신경질적으로 김한빈을 질타했고 넋을 놓고 그웬의 가슴께에 시선을 꽂고 있던 김한빈이 멎쩍게 웃었다. 아니, 그냥 너무 탱탱해 보이길래. 딜런이 엑스터시와 함께 챙겨온 대마를 종이에 손수 말아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키득거렸다. 딜런이 웃을 때마다 그 애의 매끈한 입꼬리에 아슬하게 걸쳐진 대마가 달랑거렸다. 섹시한 남자 엉덩이 같아서 눈이 가나보지.
오, 인정하긴 싫지만 일리 있는 말 같아. 김한빈이 중얼거렸다.
*
파티가 열리는 클로이네 집은 초입부터 요란한 사이키 조명과 시끄러운 클럽 음악으로 정신이 없었다. 여러 종류의 후르츠 펀치와 브랜디, 조니 워커와 잭 다니엘을 여러 가지 배율로 섞어 만들어 놓은 위스키들과 수많은 종류의 보드카들이 줄줄이 열을 맞추어 테이블에 놓여 있었고, 그 위로는 형형색색의 현란한 LED 조명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DJ부스 옆의 한쪽 구석에서부터 커다란 소음을 만들어 내는 스테레오가 있었고, 그 때문인지 심장 박동이 음악 박동에 묻혀 규칙적으로 쿵쿵 진동했다. What a fucking nice party! 하고 소리치며 바비가 먼저 스테레오가 있는 거실의 한 중간으로 뛰어 들어갔고, 그웬과 딜런도 이내 후끈하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가 몸을 흔들었다. 웃긴 건 딜런이 은근슬쩍 자꾸만 그웬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자 그웬이 짜증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딜런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다시 춤을 추는 사람들 안 쪽 깊이 들어갔단 거였다. 옆에서 웃겨 죽겠다는 듯 얄밉게 찡긋거리는 김한빈과, 딜런이 제 정강이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욕지꺼리를 내뱉는 모습을 잠시간 지켜보다 거실 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조그마한 데낄라 잔을 집어 들고 바비의 맞은편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비싼 값을 하는건지 푹신한 소파 안으로 몸이 먹혀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바비는 딜런이 건네었던 잘 정제된 엑스터시를 주사기에 우겨넣고 제 팔뚝에 꽂아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꼴이 꽤나 볼만해서 데낄라 잔에 끼워진 레몬을 꾹 눌러 즙을 짜내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바비가 예의 그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는 특유의 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왜, 너도 할래? 하고 물어왔다. 약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바비는 이미 반쯤 어딘가 홀린 듯한 얼굴이었다. 속눈썹이 내려앉은 바비의 가느다란 눈 속에 비친 내가 사이키 조명의 색상에 잡아먹혀 기괴한 빛을 띠고 있었다.
"Nope, mate. I gotta go."
"Go for what?"
바비가 물었고, 나는 이내 대답이 더이상 그 애에게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바비의 팔 안쪽 여린 살을 뚫고 들어간 날카로운 주삿바늘에서부터 엑스터시가 그 애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바비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두터운 목울대가 울렁이다 부르르 떨렸다. 바비의 툭 불거져 나온 턱 뼈가 파르르 경련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바비는 몸을 축 늘어뜨린 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삿바늘을 빼내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구준회 찾으러 가야 하거든. 재밌게 즐겨, 바비."
나는 바비가 리듬을 타며 음악을 작게 흥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마시던 데낄라를 테이블에 그대로 올려둔 채 몸을 일으켰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에 구준회가 내게 2층에 있는 클로이의 방으로 곧장 오라고 했으니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만 뭣 때문에 나를 오라가라 하는 건지는 몰랐다. There is something for you. 영국식 발음으로 툭툭 끊어 말하며 씩 웃는 그 낯짝이 말문이 막힐 만큼 반듯하고 훤칠해서, 나는 어, 으응.. 따위의 머저리 같은 대답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고장난 테이프 마냥 굴었을 뿐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신발을 신은 채로 몸을 흔들고 부벼대는 통에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는 것이 힘들었다. 가뜩이나 키가 작다보니 180대를 웃도는 백인 남자애들 사이에 낀 채로는 도대체 시야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Fuck. 저주스러운 내 키에 엿을 먹이고 고개를 최대한 쳐 든 채로 힘겹게 걸음을 옮기려는데 저 멀리 웬 늘씬한 백인 여자애와 몸을 부벼대고 있는 김한빈이 보였다. 그 짧은 새에 조금 술을 마신 상태였는지, 김한빈의 뺨이 살짝 열기를 띠고 붉게 번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김한빈이 스스로 원해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이미 반쯤 취해 맛이 간 상대 여자애가 핫한 아시안 가이라며 김한빈을 붙잡고 몸을 밀착해 유혹을 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어쩔 줄 몰라 하며 대충 맞춰주는 김한빈과 눈이 마주쳐 잘해보라는 식으로 코를 찡긋거리며 웃자 김한빈이 입을 뻐끔거리며 Fuck off, 하고 대답했다.
"집 한번 더럽게 넓네."
사람들로 둘러싸인 부엌을 지나자 겨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아직 파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계단에는 만취 상태로 속을 게워낸 것처럼 보이는 여자애가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애가 게워낸 토사물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다행히 냄새는 심하게 나지 않는 것 같았다.
2층으로 올라가자 누가 봐도 클로이의 방으로 보이는, welcome 이라는 글자가 중간에 박혀 있고 꽃으로 장식된 리스가 걸린 방문이 보였다.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게 딱 클로이 취향이었다. 아래층과는 다르게 2층은 웅웅 거리는 음악이 진동하는 소리와 남아있는 잔음만이 공명할 뿐이었다. 이 값비싼 집은 빌어먹게도 방음마저 잘 되도록 완벽하게 설계된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클로이의 방문에 대고 두어번 노크를 하자, 안에서 구준회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Come in.
"Oh, shit."
젠장. 빌어먹게도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신기하다는 듯이 클로이의 방 안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어항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고 있는, 윗옷은 어디에다 벗어놓은 건지 맨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 구준회의 넓은 등짝이었고, 다시 시선을 옮기자 누가 봐도 전라의 상태로 보이는 클로이가 얇은 이불 하나만을 걸친 채로 시무룩하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클로이의 표정과 그 방 안의 냉랭한 기류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마 구준회가 또 말도 안 되는 모욕적인 언사로 클로이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안 봐도 뻔했다. 다만, 여자인 친구의 맨 몸을 보는 것이 내게는 그다지 익숙한 일이 아니어서, 나는 나즈막히 욕설이 뒤섞인 사과를 연신 내뱉으며 황급히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What the…"
클로이 쪽을 보지 않으려 두 손으로 대충 눈을 가리고 구준회에게 뻐끔뻐끔 입술을 벙긋거리자 구준회가 비실비실 웃음을 건 채로 내게 물어왔다. 그래서, 니가 보기엔 어때. 클로이 가슴 짝짝이 맞는 것 같지? 나는 당황스럽게 허둥대며 아니, 아니, 절대! 라고 머저리처럼 대답했다.
"How do you know without looking them?"
구준회가 느릿하게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사람을 홀리는 여유로운 미소도 함께였다. 카키색을 띤 구준회의 오묘한 눈동자가 나를 또렷하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그 직설적이고 번들거리는 눈빛에 꿰뚫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어 순간적으로 머리가 어찔했다. 별안간 클로이가 상체를 일으키고 저를 감싸고 있던 이불을 제끼며 내게 물었다. 제이. 니가 보기에도 내 가슴 짝짝이 같아? 예상대로 클로이는 맨 몸이었다. 머리끝까지 홧홧한 열기가 치솟아 원만한 굴곡을 이루고 있는 그 가슴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네 가슴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조각같이 예쁜 가슴이라고, 랩을 하듯 빠르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클로이는 다행히 만족한 듯 다시 이불로 제 가슴을 가렸고,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Anyway, why are you calling me?"
구준회에게 따지듯 짜증스레 묻자 구준회가 느릿하게 몸을 옮겨 침대의 한 쪽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구준회의 동그란 어깨 선을 타고 적당히 근육이 자리한 팔뚝과, 쭉 이어져 내려오는 손이 클로이의 하얗고 맨들맨들한 어깨와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농도 짙은 스킨십이었다. 오, 제발 구준회가 내 앞에서 클로이와 몸을 섞거나 하는 등의 일을 벌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욕을 지껄인 뒤 뒤돌아섰다. 그러나 구준회의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에 또 병신같이 뒤돌아선 그대로 막 옮기려던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돌아선 등 뒤로 혀라도 섞는 모양인지 질척한 소리가 울렸다. 클로이의 나즈막히 그르릉 대는 것 같은 신음성도 함께였다. 돌아버릴 것 같은 짜증스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구준회가 나를 부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키스를 하든, 몸을 섞든 내가 하등 상관할 바는 아니니 그냥 지들끼리 뒹굴면 될 걸 왜 굳이 나를 이딴 식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해서 당황스럽게 만드느냐 이 말이었다. 차라리 딜런을 불러냈으면 아마 그 애는 관음증 체험이냐면서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기꺼이 이 둘의 옆에 걸터앉아 그들을 세세하고 면밀하게 관찰했을 것이다. 차라리 딜런을 부르지 그래. 조용하게 속삭이자 구준회가 피식 웃는 것이 느껴졌다.
"No. I've got something for you. Not for Dillon."
"Then where fucking is it?"
"Oh. well…. I forgot."
구준회와 같이 있다 보면 속이 끓어올라서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은 때가 많다. 물론 그만큼 재밌는 일도 많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좆같은 일이 정말로, 정말로 많았다. 지금이 딱 그런 좆같은 류의 일 중 하나였다. 장난하냐며 자리를 뜨려고 하면 구준회가 멈추라고 말했고, 그 말에 화가 나 뒤돌아보면 적나라하게 반쯤 벗은 몸뚱아리를 비벼대고 있는 둘 때문에 다시 뒤돌아서야 했다. Bollocks. 입에서 자꾸만 상스러운 욕지거리가 터져나왔다. 아예 우리 섹스한다고 커다란 전광판 티비로 방송이라도 하지 그래? 내가 비꼬듯 말하자 구준회가 오, 그것도 좋은 제안이군. 하며 낄낄거렸다. Fuck. 구준회 저 커다란 개새끼에겐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내 상황이 마치 구준회의 집사라도 된 기분이 들어 인상이 찌푸려졌다. 기껏 파티에 와서 하는 일이 구준회랑 클로이의 섹스 전 단계를 생생한 3D 사운드로 감상하는 거라니. 엿같기 그지없는 경우였다.
한참 뒤에서야 클로이에게 퍼붓던 키스를 잠시 멈춘 구준회가 책상 위에 선물이 있다고 말했고, 나는 이 때다 싶어 구준회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뭔지도 제대로 보지 않고 책상 위의 네모난 종이 박스를 홱 집어든 채 문을 쾅, 닫고 방을 뛰쳐나갔다. 안에서부터 나는 클로이와 구준회의 웃음소리가 방 문에 부딪혀 맥없이 사그라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기분이 개같았다.
2층에서 다시 1층으로 내려가니 집 안 꼴이 가관이었다. 아까 계단 위쪽에 맥없이 늘어져 있던 여자애 옆에는 또다른 만취 상태의 여자애가 앉아있었다. 친구가 생겨 다행이네. 나는 웅얼거리며 아까보다 더욱 범위를 넓힌 토사물을 피해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약 20분 가량 밖에 지나지 않았을 시간이었는데도 아까와는 또 생판 다른 분위기였다. 조명은 더욱 현란하게 돌아가는 중이었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음악을 즐기던 바비는 약빨이 제대로 돈 건지 집 안 이곳저곳을 마구 누벼대며 춤을 추듯이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술과 물을 마구잡이로 뿌려대기도 했으나 다들 술에 취해서인지 약에 취해서인지 모두가 즐거워했고 바비의 행동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것과는 반대로 축 가라앉은 기분 때문에 더이상 파티에 앉아있을 자신이 없어 나는 들어왔을 때처럼 힘겹게 사람들을 비집고 겨우겨우 클로이네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클로이네 집 앞에는 흰색 타일이 세련된 넓은 수영장이 있었고, 양 쪽으로 자리한 수영장 한 중간에는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있었는데, 그 벤치의 앞 쪽에서 아까 전까지 무척 신나보이던 딜런과 김한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서로가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둘이 투닥대는 모습이야 늘상 봐왔던 것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김한빈이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있었고, 딜런은 답지 않게 살벌하게 표정을 구기고 묵묵히 김한빈이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Seriously, I don't wanna have to be stuck around watching you do a guy."
딜런이 말했다. 평소처럼 들뜬 목소리가 아닌 착 가라앉아 낮게 공중을 부유하는 목소리였다. 이내 김한빈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Can I bring a girl back?"
딜런이 대답하지 않자 다시금 김한빈이 쏘아붙였다.
"I could, couldn't I? You're shit, Dillon."
김한빈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한빈을 누구도 좆같다거나 역겹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한빈은 그냥 김한빈이었다. 딜런도 김한빈과는 꽤나 각별하다 말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다만 그 둘의 사이에 문제가 하나 있다면 딜런의 가족이 대대로 내려오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이다. 게이와 독실한 신자가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충돌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둘은 그래도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는 가감 없는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김한빈이 더욱 저렇게 열을 내는 건지도 몰랐다. 김한빈은 사람을 쉽게 믿고 정을 잘 주는 애였다. 아마 정말로, 정말로 딜런이 자기를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각별함을 원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Well, have you ever tried being with a girl?"
"What the fuck is wrong with you?"
딜런이 김한빈에게 여자랑 자보려는 시도는 해 봤냐며 운을 떼자 김한빈이 정말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였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술기운 때문에 붉게 달아올라 있던 김한빈의 뺨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You know, gay is... just wrong."
딜런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하곤 이내 시선을 내리깔았다. 김한빈이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잠시간 딜런을 노려보다 대답했다.
"Then you don't want anything to do with me."
김한빈은 미련 없이 뒤돌아서서 화가 난 듯 씩씩대는 발걸음으로 클로이의 저택 뒤 쪽에 자리한 정원 쪽을 향해 걸었고, 딜런은 한참동안 김한빈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 한숨을 푹 쉬고 이내 도로 쪽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잠시간 고민하다 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불리한 건 언제나 약자였다. 김한빈은 동성애자였고, 다수의 힘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약자였다. 나 또한 그랬다. 구준회 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백인들 사이에 끼어있는 작고 계집애 같은 머저리일 뿐이었다. 아마 내가 김한빈을 위로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 모습을 보고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김한빈이 내게서 어떤 동질감을 느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수영장 쪽에 설치된 흰 테이블 위에 누군가가 올려두었을 양주 한 병을 대충 손에 쥔 채로 김한빈을 쫓아 걷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자그마해 보이는 어깨가 축 늘어져 있어 그것이 서글펐다.
"Don't be upset, mate."
"…J."
다다다 달려가 김한빈의 옆으로 보폭을 맞추어 걸으며 말을 건네자 김한빈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쌍꺼풀 없는 옅고 반듯한 눈매가 축 처져 있었다.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먼저 말을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입을 벙긋거리자 김한빈이 힘없이 피식 웃어 보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린 룸메이트잖아. 딜런이 파티에서 꼬신 여자애를 데리고 기숙사 방에서 뒹굴겠다는 거야. 그래서 그럼 나도 남자 하나 꼬셔서 데리고 가겠다고 했더니 역겹다잖아. 자기는 내가 남자랑 뒹구는 꼴 보기 싫대."
"Shit. That's unfair."
김한빈이 풀 죽은 모습으로 제 손 끝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진심으로 걔가 보는 앞에서 뒹굴겠다는 말은 아니었어. 그건 그냥… 알잖아, 그냥 하는 말인거. 근데 딜런이 그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어. 난 그저…. 답답한 듯 김한빈은 제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툭툭 내리쳤다. 긴장하거나 답답하거나 할 때 나오는 김한빈의 습관이었다.
"I'm just gay. I always have been."
뿌연 가로등 빛에 비치는 김한빈의 머리칼이 바람에 나풀거렸다. 나는 들고 있던 양주와, 구준회가 건넸던 네모난 박스를 품에 들고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항상 그래왔어. 하고 말하는 김한빈이 처음으로 작고 약해 보였다.
나는 내가 게이인게 부끄럽지 않아. 그런데도 나는 내가 내 자신에게 당당해지지 못할 때가 많지. 그게 답답해. 물론 모두가 나를 이해하고 수용해주지 못할 거란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딜런은… 딜런은 내 친구잖아. 적어도 그렇게 역겨운 표정으로 날 밀어내지는 말아야지. 왜냐면 난 있는 그대로의 딜런을 좋아하니까. 난 걔의 껍데기를 보고 좋아하는 게 아냐. 걔가 단지 잘생긴 북유럽 혈통의 남자애고, 밝은 색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거나 해서 딜런을 아끼고 친구하는 거 아냐.
"I'm just… I'm just like him the way he is."
난 있는 그대로의 걔를 좋아해.
그 애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미풍과 함께 귓가를 스쳤다.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한빈이.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할 고민과 걱정들을 함께 끌어안은 채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해 주질 못했다. 김한빈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신 김한빈의 작고 여윈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김한빈이 몇 번이나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나는 구태여 덧붙이지 않아도 네 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김한빈은 고맙다고 말한 뒤 고개를 두어번 주억거리다 제 입술을 꾹 짓씹었고, 나는 그런 김한빈의 등을 토닥이며 구준회가 건넨 정체모를 네모난 박스를 꾸욱 움켜쥐었다. 클로이의 집 전체에선 요란한 클럽 비트가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잘 조경된 예쁜 정원 쪽에서 보이는 2층의 창문으로는 구준회와 클로이의 것이 틀림없을 그림자가 난잡하게 엉겨있었다.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밀물처럼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이 딜런에 대한 실망감이었는지, 아니면 김한빈에 대한 동정심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구준회와 클로이가 몸을 섞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종내엔 고개를 돌려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조명이 구름까지 뚫을 기세로 요란하게 번쩍거렸다.
이상하게도 달이 오랜만에 밝았고, 선선한 미풍이 불었으며, 더럽게도 예쁘고 찬란한 밤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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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애 여친...^^... (찌통) 클로이의 설정 이미지샷입니다! 넘나 예쁜것...
드디어 시험이 끝났습니당 uㅅu..!!! 또다시 내일 밤을 새야하는 과제가 있긴 하지만 뭐^^ 꺼지라 이거에요^^!일단 오늘은 밤새며 연성이나 할 계획입니당 @'o'@ 넘ㄴㅏ 조흔것.... 맥주와 감자칩과 함께 노래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자니.... 세상만사 행복.... 이것보다 큰 행복은 없을거야 아마... TㅆT 전 이제 천천히 글 쓰다 지치면 답글달면서 원기회복하고 다시 글쓰다 폐인처럼 잘 것이애오.... 진심 햎삐니스... 아 그리고 연재는 그냥 블로그와 동일하게 이어나가야 할 것 같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변덕보슼ㅋㅋㅋㅋㅋㅋ 왜냐면.... 그냥입니다.... 그거시 이유... 입니다.... ^^ (노답)
그럼 지금 당장 3, 4 편도 같이 찾아오도록 할게여! 그리고 5편도 같이요!!! 훠~~~후~~~!!! (신남주체못함) 저번화에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닷 ㅜㅜㅜㅜㅜ 사랑해오 제 사랑 다가저가새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