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관) 어, 뭐야. 카페엔 웬일?
석민) 여주가 케이크 먹고싶대서 왔는데, 넌 혼자 뭐해?
승관) 이 형님은 너희들을 위해 제주도 맛집 커리큘럼을 짜고 있었다! 이말이야!
무더운 여름 날, 치즈케이크가 땡겼던 여주는 소파에 늘어져, 아. 치케 먹고싶다. 하고 중얼거렸고, 석민은 금새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의 팔을 잡았다. 뭐하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여주에 석민은 먹으러 가자. 치케. 하곤 답했지.
됐다고 손사레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석민은 여주를 끌어당겼고, 곧 둘은 저번에 승관을 마주쳤던 카페로 향했다.
여주가 주문하는 동안 자리를 잡으러 내부 안으로 들어온 석민은 승관을 마주하고, 석민은 자석마냥 승관 맞은편에 자리했다. 석민은 승관이 찾아놓은 자료들을 보고 감탄사를 뱉어냈고 여주가 계산을 마치고 진동벨을 든 채 두리번 거리다 곧 석민과 승관을 발견하고 석민 옆에 앉았다.
여주) 너 뭐해?
승관) 어, 여주 하이. 자료 알아보는 중이야. 제주도 식당!!!!
여주) ..넌 이미 제주도 간 것 같아.
석민) 거의 이미 비행기 탄 수준이야.
여주) 방학인데도 만나다니, 신기하다.
승관) 이런게 바로, 운명 아니겠니?
석민) 뭔 운명이야. 때려쳐.
진동벨이 울리고 석민이 자연스레 들곤 카운터로 향했다. 뒷모습을 보던 여주가 승관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여주) 너 혼자 다 알아보는거야?
승관) 엉. 그래도 제주도에 대해선 내가 빠삭하니까. 이따 정한이 형이랑 민현이 형 온다그랬어. 그 전까지 다 뽑아놔야돼.
석민) 여주야 여주야! 쿠키도 주셨어!
여주) 헐 진짜?
석민) 서비스래.
석민이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고, 여주는 곧 쿠키를 만지작거렸다. 석민이 헤실헤실 웃으며 자몽에이드를 쭉 마시고, 여주는 곧 쿠키를 내려놓고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푹 찔렀다.
승관) 넌 사진 안찍어?
여주) 응? 아, 나 먹기전에 사진 안찍어.
승관) 오, 새롭네 뭔가. 웬만한 여자애들 사진 엄청 찍던데. 하물며 난 급식도 찍는 애들 봤어.
여주) 귀찮아. 난 찍어도 엄청 대충 찍어.
석민) 명호도 먹기전에 사진 찍잖아.
승관) 맞아.
석민) 근데 우리는 셋이 먹으면 보통 민규가 찍기도 전에 먹어버려.
여주) 맞앜ㅋㅋㅋ 민규가 먹을 땐 빨라서 찍을 생각 들기도 전에 다 먹어버리던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가 승관이 식당 알아보는 것에 빠지자 여주와 석민도 승관을 돕기 시작했다. 여긴 거리가 꽤 멀지 않느냐, 음식 대비 가격이 꽤 높은 편 인 것 같다는 둥 평을 뱉어내면 승관은 더 다양한 음식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만난지 1시간 가량 지났을까, 승관을 부르는 목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자아이를 향했다.
“승관아!”
승관)..뭐냐? 하이.
“너도 이 근처 살아?”
승관) 아니. 만날사람 있어서.
석민) 누구? 혼자 하는 거 아니었어?
여주) 아. 민현오빠랑 정한이오빠 온다그랬어.
석민) 아하.
“..나 여기서 같이 마셔도 돼?”
민현과 정한의 이름이 나오자 여자아이는 살풋 볼을 붉히더니 승관에게 물었다. 그러자 승관이 4인용 테이블에 가득한 자료들과 여주와 석민이 먹고있는 케이크, 음료, 그리고 자신이 시킨 음료를 보며 입을 열었다.
승관) 보다시피 자리가 없는데? 너 얘네도 모르잖아.
“에이, 이거 정리 조금하면 되지.”
그리고 나 얘 알아. 너 홍일점 걔지?
여자아이가 종이를 모아 탁탁 치곤 승관의 노트북 옆에 가지런히 놓더니 여주 앞에 앉으며 말했고, 여주는 눈을 깜박거리며 아이의 눈을 맞추다가 곧 케이크로 시선을 돌렸다.
승관) 야, 공기 불편하게 하지말고 딴 데 앉지그래?
“뭐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인데?”
승관) 반이 다르잖아.
“너 김여주 맞지?”
..아, 응.
승관의 말에 잠시 승관을 바라보다 휙 고개를 돌리곤 여주를 보며 말을 걸었다. 여주는 낯가림이 꽤 있는 성격에다가 표정관리도 잘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니 여주가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자아이도 이미 알고있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아이는 굴하지 않았다.
“너 치즈케이크 좋아하는구나? 나도 치케 좋아해.”
여주)........
“너 시력 안좋아? 안경 꼈네?”
여주) ..아 이거 블루라이트..
“아~ 근데 너도 사진동아리구나? 넌 이름이 뭐야?”
석민)...이석민.
“석민이구나. 넌 자몽에이드 좋아해?”
승관) 야. 지금 너 혼자 신나서 떠들고 있어, 알아?
여주와 석민의 표정이 좋지않자 승관이 한숨을 내쉬더니 제 옆에있는 여자아이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곧 휴대폰을 들었다. 어색함에 석민과 여주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 자꾸 끼어드는 탓에 그 대화마저도 멈춰버리고 정적이 테이블 위에 자리했다.
석민) ........
여주) ........
승관) ...어, 형!
정한) 승관아. 황민현 조금 늦-, 어, 여주도 있네?
얘는..?
옆 테이블을 붙인 정한이 여주 옆에 앉으며 여자아이를 가리켰고, 석민과 여주는 애꿎은 케이크와 에이드를 휘저어댔다.
승관) 이제 좀 가지? 우리 바쁜데.
“뭐하는데? 나도 들으면 안돼?”
승관) 동아리 일이야. 넌 동아리가 아니잖아.
“나도 하고싶었지~ 여주는 어떻게 들었대?”
여주야, 넌 어떻게 들었어? 말 좀 해줘봐.
여주) ........
여자아이가 제 귀에 손을 대며 여주에게 귀을 기울이는 시늉을 보이자 여주가 몸을 뒤로 빼며 눈을 깜박거렸고 정한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턱을 괴고 아이를 불렀다. 야,
정한) 내가 뽑았는데 나한테 물어봐야지.
“..어떻게하면 여자애도 받으시는데요?”
정한) 이름이 일단 김여주여야돼.
“...네?”
정한이 웃음기를 머금은 채 제 옆에있는 여주를 바라보며 말했고, 승관과 석민은 이미 웃음보가 터진 듯 마주보고 입을 막았다. 여주는 케이크를 입에 집어넣으며 정한의 눈을 맞췄다.
정한) 머리길이는 딱 여주 정도? 치즈케이크를 좋아하지만 식성은 이지훈, 아 그니까 밥먹는 걸 좋아해야되고, 여기 팔에 점도 있어야돼. 여주처럼. 그리고 안경도 여주처럼 잘어울려야하고, 손도 여주만큼 작아야해. 그리고 석민이랑 민규가 아끼는 애여야되고-,
“....그건 그냥 김여주잖아요.”
정한) 응. 못알아들어?
얘 말고 받을 생각 없다는거잖아.
정한의 차가운 음성에 여자아이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다 헛웃음을 쳐보였다. 곧 제 음료와 휴대폰을 들어보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넌 좋겠다? 뭔 애가 주변에 남자가 이렇게 많아?”
석민) 야.
“너 우리 학년 사이에서 뭐라고 불리는 줄 알아?”
승관) 너 돌았냐?
여주) 불여우?
석민) ........
정한) ........
여주가 마지막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곤 오물거리며 그 옆에 서비스로 받은 쿠키를 무덤덤하게 집어들었다. 여주의 손보다 훨씬 큰 쿠키를 양손으로 집어든 여주가 한 입 베어물고서 제 앞에 선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자아이의 시선을 맞췄다.
“...넌 알면서도 이러고 노는거야?”
여주) 저번에 들었어, 화장실에서. 그 목소리가 너였던 것 같기도 하고.
“누가봐도 하는 짓이 여우야. 남자 여럿 꾸리고 돌아다니는거.”
승관) 그만해라 진짜. 좀 가라고.
여주가 자연스레 쿠키를 조각내고 석민의 입에 넣어준뒤 남은 쿠키를 내려놓으며 손을 털었다. 그리고 자몽에이드를 쭉 빨아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여주) 내가 부러워?
“..뭐?”
여주) 난 내가 싫은데 넌 나를 부러워하는 것 같아서.
“부러운게 아니라-,”
민현) 부러워하는 것 같은데?
여주의 입꼬리가 살며시 내려가고 곧 쿠키를 집어 손장난을 하며 말했고, 아이가 맞받아치려다가 제 음료를 손에 쥔 채 들어오는 민현에게 막혔다. 음료를 탁 소리나게 내려놓은 민현이 제 앞에 서있는 여자아이를 내려다보며 살풋 웃었고 곧 말을 이었다.
민현) 너 이제 빠질 타이밍이야. 잘가.
“........”
민현) 더이상 쪽팔리기 싫음 가란 소린데.
“........”
여자아이가 한껏 여주를 째려보더니 휙 민현을 스쳐지나가 카페를 빠져나갔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가 울리고 민현이 여자아이가 자리했던 여주 앞에 앉아 여주 손에 들린 쿠키를 부드럽게 앗아갔다.
민현) 어쩌다 저런걸 상대해주고 있었어?
승관) 다 제 탓입니다요.
석민) 뭘 니탓이야. 쟤가 갑자기 와서 앉았어. 여주한테 시비걸고.
민현) 여주 괜찮아?
여주) .........
정한) ..아.
씹.
여주가 말없이 쿠키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자 정한은 제 머리를 쓸어넘기며 욕을 삼켰다. 노트북을 두드리던 승관과 에이드를 마시는 석민의 시선이 아무말 없는 여주를 향하고 카페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줄곧 자신을 바라보던 민현의 시선까지 받던 여주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치즈케이크 하나만 더 먹고싶어.
표정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였지만, 그 말이 최선이었다는 걸 안 석민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 승관이 석민을 따라가며 종알거렸다. 야 내가 살게 내가!
민현) ..여주야. 말하면 처벌해줄 수 있어.
여주) 아냐. 그런 것 쯤은 별거 아냐.
민현) ........
여주) 민규랑 석민이랑 다니면서 수도 없이 들은 말이야, 그런 뒷말쯤은.
민현) ........
여주) 그냥 나는,
민현) ........
여주) 나를 부러워한다는게 신기해서 그래. 내 모습이 남한테 부러운 모습이구나 싶어서.
여주가 머쩍게 웃어보이며 자몽에이드를 마셨고, 민현은 여주에게서 떼지 않던 시선을 처음으로 뗐다. 짧은 정적이 자리하고 승관과 석민이 돌아오면서 자연스레 다시금 소란스러워졌다.
승관) 자! 여주가 좋아하는 치즈케이크~
석민) 맛좋은 치즈 케이크~ 여주야 우리 집 갈 때 하나 더 포장해갈까? 응?
여주) 헿, 그래도 돼?
석민) 너 먹고싶으면 또 포장하지 모!
승관) 자자 여기 포크! 어서 포크를 들어!
여주) 고마워.
승관) 형들은 이거 프린트 해놓은거 봐 봐. 메뉴판이랑 싹 다 있어.
정한) 여주는 제주도가면 뭐먹고싶어?
여주) 나? 글쎄 다 잘먹어서..
승관) 아놔 이형이 또 여주한테 물어보는 것 좀 봐!
석민) 우린 안중에도 없다니까아-! 민현이형! 어떻게 좀 해봐!
민현) 여주는 뭐 먹고싶은데? 여기 카페 예쁜 곳 도 있다.
...아나 진짜 이 형들이!!!!!
승관) 여주야, 비행기 타면 오렌지 주스 주거든? 그거 오백원이야.
여주) .........
순영) 신발 벗고 그 앞에 그물망 있는데 거기다가 넣어야돼. 알았지?
석민) 창문 열리는데 조금만 열어야 돼, 다열면 숨 못쉬어.
여주) .........
민현) ..야.
여주) 오빠 진짜야?
승관) 진짜지 여주야!! 못믿어? 나 비행기 엄청 많이 타!
순영) 맞아~! 오빠 못믿겠숴?
비행기 탑승수속 직전, 비행기를 처음 탄다는 여주의 말에 득달같이 달려든 부석순이었고 여주 옆에 서있던 민현이 얌전히 쳐다보다가 웃음기를 머금으며 아이들을 말렸다. 순간 여주가 눈을 깜박거리며 듣고있더니 민현을 올려다보며 순진하게 물어보는 탓에 곧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지만. 민현의 웃음에 여주가 혹시 눈치라도 챌까 승관과 순영이 재빨리 시선을 분산시켰다.
민규) 뭔 얘기해?
승관) 야 비행기에서 주는 오렌지 주스 오백원이지?
민규) ..어. 오백원임. 아 칠백원으로 올랐나?
여주) 진짜야?
민규) 진짜야. 그치 형?
정한) 응? 뭐가?
석민) 비행기에서 주는 오렌지 주스 오백원이지?
정한) ..아 그거? 오렌지 주스는 모르겠네, 난 포도주스만 마셔서. 둘이 똑같나?
여주)...거짓말. 거짓말이지?
정한) 여주야. 오빠가 거짓말 하는 거 봤어?
여주) 오빤 거짓말 엄청 많이 하잖아!
정한) ..여주한테 한 적 없어!
여주) ...그치 나한텐 한 적 없지.
자- 야 막 움직이지말고! 곧 가야하니까 자리 지켜~
정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한 아이들이었지만, 움직이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여주) ........
승관) ...여주야.
순영) 여주야~ 이거봐라~ 어유 우리 여주 너무 예쁘게 나완네~
여주) ........
석민) 여주야 여주야. 감귤 초콜릿 사주까? 응?
여주) 다 저리가!!!!!!!
민규) 아이 여주야~
정한) 여주야 장난이야 장난~
여주) 다들 너무해! 우씨 승무원분이 날 얼마나 멍청이로 봤겠어!
순영) 아이 여주야~ 그럴리가 있나~ 귀여워하셨을거야~
배낭을 앞으로 메고 나오며 여주가 잔뜩 입술을 삐쭉거리자 한 껏 놀리던 아이들이 여주 주변을 맴돌며 한마디씩 거들고 있었고, 여주는 아이들을 째려보고 고개를 휙 돌려 원우의 옆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여주) 못나도 너무 못났어.
원우) 냅둬, 착한 너가 참아줘.
여주) 나 완전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민규) 여주야아-..
여주) 뭐.
석민) 이따 시내 카페 가면 감귤케이크 사줄게.
여주) .......
승관) 여주야 내가 시내 카페에 감귤케이크 엄청 맛난 집 알아.
여주) ..진짜 사줄거야?
석민) 그럼!! 감귤케이크 사줄게. 응? 화 풀어-
여주) 진짜 이번만 봐준다.
원우의 옆으로 와 투덜거리자 금새 따라온 승관과 석민, 그리고 민규가 여주에게 감귤케이크를 속삭였다.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던 여주의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승관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시내 카페에 감귤케이크 맛집을 말하면서 거들었고, 여주는 사줄거냐면서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덕분에 석민과 승관의 얼굴이 활짝 펴지고 원우는 그들을 보고 옅은 웃음을 입에 띠웠다고.
공항을 빠져나온 아이들이 곧 버스에 올라타고, 하나같이 밖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가장 앞에 앉아있는 승관은 휴대폰을 보면서 목적지를 확인했고, 옆에 앉은 순영은 신이난듯 제 뒤에 앉은 석민이와 떠들어댔다.
순영) 촤- 석민아. 보이니? 너의 눈 앞에 바다가 보여!?
석민) 형님, 보입니다! 보여요! 눈 앞에 펼쳐진 바다가!
순영) 하! 저 수평선을 봐!
지훈) 조용히 좀 해.
순영) 저저 차가운 자식.
지수) ..근데 여주 너는 진짜 사진 잘 안찍는구나.
여주) ..어, 잘 안찍어. 좀 모순인가, 사진동아리인데.
지수) 그러고보니까 넌 사진동아리 왜들어왔어?
창밖으로 사진을 찍던 지수가 가만히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주를 바라보며 말했고, 여주의 대답에 지수는 다시금 사진동아리에 왜 들어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여주) 사실 애들따라 들어왔어.
지수) 아 석민이랑 민규 따라서?
여주) 응. 오빠는?
지수) 윤정한 따라서 들어왔지. 정한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정한) 정확히는 하늘 찍는게 재밌었어. 누나랑 별보러가서 찍는 거 진짜 재밌었거든.
여주와 지수의 대화에 여주 뒤에 앉은 정한이 불쑥 나와 말했고, 여주가 몸을 살짝 뒤쪽으로 돌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주) 그럼 나머지 오빠들은? 알아?
정한) 알지. 일단 최승처얼은... 체대입시 하느라 바쁘니까 놀려고 들어왔지?
승철) 어. 입시로 맨날 움직이니까 움직이기 싫어서 인화만 하려고 들어왔더니 주말에 사진 찍으러 돌아다닐 줄 누가 알았겠냐.
정한) 그리고 준휘도 똑같았어 그냥 대충 아는 애들 좀 있다고 해서 들어온 케이스였고. 아 나 근데 지훈이는 어떻게 들어왔는진 몰라.
지수) 지훈이는 강아지사진 잘찍고싶어서 들어오고 싶다고 했었어.
자꾸 자기가 찍으면 거지같이 나온다고.
여주) ㅋㅋㅋ그게 뭐얔ㅋㅋㅋㅋㅋㅋ
정한) 순영이는 그냥 지훈이 따라 들어왔고.
여주) 원우오빠는?
정한) 원우는 몰라. 쓰읍 쟤는 그러게. 어떻게 들어온거지?ㅋㅋㅋㅋ
지수) 원우는 모르겠다. 우린 원우를 중학교 때 부터 봐왔는데 진짜 모르겠어. 우리도 모르게 원우랑 같이 있어.
정한) 맞앜ㅋㅋㅋㅋ 원우도 뭐, 아는 애들 많았으니까 들어온 거겠지.
승관) 다음에 우리 내려요- 들은 사람들 뒤로 전달~
지훈) 다 들려 승관아.
석민) 여주야 여주야 다음에 내린대. 뒤로 전달!
여주) 다 들었지?
정한) 들려. 승관이 말 다이렉트로 들려.
자자 내립니다~
집에서 짐을 푼 아이들이 정한의 주도로 아침밥을 먹을 식당으로 향했고, 천천히 밥을 먹고 나온 아이들이 자유시간에 바닷가로 향했다. 많은 인원수 만큼 다양한 특성이 보여졌다. 후덥지근한 여름에 뛰어노는 류, 절대 뛰지 않는 류. 종류는 두가지였다.
순영) 바닷가다-!!!!!!!
석민) 모든 속세를 벗어던지고 풍덩~!!!!!!
승관) 형형형!!!!형-!!!!!!! 시원해!?!??
순영) 야 빨리 들어와 완전 시원해!!!!!
승관) 야 이 찬!!!!!!! 들어와!!! 완전 시원해 진짜!!!
찬) 진짜로!??!
민규) 시원해?!
석민) 시원해!!!!!!!!
원우) 와 날씨 진짜 덥다.
민현) 그러게. 아직 열신데.
원우) 여름이긴 여름이다 진짜.
한솔) 너 수영 잘해?
여주) 아마 못할걸.
명호) 아마 못하는 건 뭐야?
여주) 옛날엔 좀 했는데 지금은 물에 뜰 줄 만 알아.
승철) 들어가고 싶긴 한데 젖긴 싫네.
정한) 뭔소리야 그건.
지수) 개소리지, 왈.
지훈) 뭔말인지 이해는 돼. 근데 난 그냥 젖기가 싫어.
정한) 왜 젖기 싫다는 애들을 빠뜨리고 싶지?
지수) 그니까.
준휘) 빠뜨려버려, 빠뜨리자.
승철) 맞고싶어?
이미 바닷가에 들어가 시원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민현과 원우는 모래사장에 앉아 햇빛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여주와 한솔, 그리고 명호는 천천히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다.
서로를 빠뜨린다며 장난스러운 말을 주고받던 아이들은 모션만 취할 뿐 천천히 걷다가 원우와 민현 옆에 앉았다.
원우) 부석순 대단해.
민현) 저런 모습 되게 닮고싶어, 순영이 마인드 같은거.
지훈) 쟤가 근데 또 다를 때가 있어.
민현) 그래?
지훈) 또 막 차분할 땐 차분하고, 그래.
정한) 그래서 오히려 더 종잡을 수 없어.
민현) 하긴, 누가 밝기만 하겠어.
원우) 다 그런거지 뭐.
승철) 여기서 몇시에 출발해? 여기서 가깝나?
정한) 승마장이 아쿠아리움 보다 조금 먼데 별로 안걸려. 한 삼십분 더 놀고 집가서 옷갈아입고 출발하면 될 것 같은데.
지수) 아, 좋다.
원우) 뭔가 여유롭지? 이상하게 막 편안하고.
지수) 애들 노는 소리가 듣기 좋아, 뭔가.
민현) 맞아. 노는 소리가 좋아.
승철) 여름이라 해가 엄청 뜨거운데 중간 중간에 부는 바람이 좀 시원하지
지수) 어 그게 좋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이 꽤 흐르자 승철이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불렀다. 야 나와!!!
순영) 뭐라는거야?
승관) 아 승마랑 아쿠아리움 가는 사람들 나오라는 거 아냐?
찬) 아 그런가보네.
민규) 야 석민아 가자
순영과 민규 그리고 석민이 물에서 천천히 걸어나오고 물 속에 있던 승관과 찬이는 명호와 한솔이를 끌어들이기 위한 작당모의를 펼쳤다.
곧 명호의 비명소리가 바닷가에 울려퍼졌다.
정한) 요즘 아쿠아리움엔 먹을 것도 팔아?
민규) 그러게 신기하네.
정한) 뭐 먹을거야? 먹고싶으면 말해.
민규) 그럼 나 츄러스!
석민) 헐 나도 츄러스!
정한) 여주는?
여주) 난 괜찮아, 쟤네 거 한입씩 먹으면 돼.
곧 민규와 석민 손에 츄러스가 들려지고 다섯명은 천천히 구경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정한) 와 근데 확실히 보는데도 시원하다.
석민) 그러게. 와 가오리봐 진짜 크다.
민규) 가오리 진짜 귀엽다. 얼굴이 너무 귀여워.
민현) 니모다 니모.
여주) 귀엽다. 쪼끄매.
민규) 여주 여주. 쪼끄만거.
여주) 죽을래 멀대?
민규) 거기 있어봐 찍어줄게.
민규) 형 뭐해, 비켜.
민현) 같이 찍어줘.
민규) 뭐래. 빨리 비켜~
민현) 자 여주야 붙어.
석민) 아나 저 형이!
정한) 제주도와서 맞고싶냐?
어깨동무를 해보이는 민현에 민규는 들고있던 휴대폰을 내리고 정한과 석민은 민현을 끌어왔다. 혼자 남은 여주는 여유로이 민규를 향해 웃어보였고 민규는 다시금 휴대폰을 올려 초점을 맞췄다.
정한) 아이 귀엽다.
민현) 니모랑 잘어울려.
민규) 맞아 쬐끄매서
여주) 야아 나 작은키 아니라니까!
정한) 여주는 포즈를 잘 안취하네?
여주) 어색해. 그냥 웃고있는게 편해.
그리고 민규가 사진을 잘찍어서 알아서 예쁘게 찍어주더라고.
여주가 앉아서 미소를 짓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이들이 여주 걸음걸이에 맞춰 천천히 걸었고 정한의 말에 여주가 담백하게 답했다. 여주의 말에 정한은 불현듯 생각난 듯 민규를 불렀다.
정한) 민규야 넌 왜 사진동아리 들어왔어? 여주는 너랑 석민이 따라 들어왔다는데.
민규) 나? 명호가 들어간다길래. 명호는 평소에 사진찍는 거 좋아했어가지고.
민현) 다 비슷비슷하네.
여주) 와 위에 봐 위에! 상어 지나가!
석민) 와!! 와 겁나 커!!!
민규) 와 완전멋있다. 오우 무서워 오우!
여주) ...우와.
수족관으로 된 둥근 길 속에 우두커니 멈춰선 채 고개를 젖힌 다섯명의 모습이 퍽 웃겼다.
정한) 야 넌 좀 시시하지 않아?
민현) 뭘 시시해?
정한) 캘리포니아에 엄청 큰 수족관 있잖아. 너 거기 가보지 않았어?
민현) 가보긴 가봤지. 거긴 너무 넓어서 거의 하루종일 있어야돼.
정한) 여긴 그럼 좀 지루하지 않냐고.
물고기에 흥분한 여주, 석민과 민규에 셋의 거리가 둘과 멀어지고, 정한의 나지막한 물음에 민현은 생각에 잠긴듯 물 속 물고기를 바라만 볼 뿐 말이 없었다.
정한) 거기보다 종류도 훨씬 적잖아.
민현) 비교도 못 할 만큼 적지.
정한) 지루해?
민현) 아니, 전혀.
정한) 왜?
민현) 같이 온 사람이 다르잖아.
민현의 시선이 자신들보다 앞에 가고있는 아이들을 향했고, 민현을 쳐다보던 정한의 시선도 물고기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있는 아이들을 향했다.
민현) 하나도 안지루해, 너무 좋고 행복해.
epilogue
잠시 화장실로 자리를 비운 정한과 석민 민규에 민현과 여주가 고래가 갇힌 수족관 앞 벤치에 앉아 멍하니 헤엄치는 고래를 응시하고있었다. 관광지인만큼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여주가 민현이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여주) 안쓰럽지.
민현) 어?
여주) 우리 같아.
민현) ........
여주) 저 고래.
얼마나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을까.
여주의 말에 민현은 여주를 바라보다 시선을 고래로 옮겼다.
여주) 사실 울고 있는데 물에 가려져서 안보이는 걸지도 몰라.
민현) .........
여주) 그래서 이상하게 동질감이 들어.
우리가 지옥같은 삶에 갇힌 게, 물고기한텐 저 수족관에 갇힌거나 다름 없을 테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그 동질감 때문에 자꾸 오고싶더라. 같은 상황인게 원래 더 위로가 되는 법이잖아.
나지막이 들려오는 여주의 음성에 민현도 옅게 걸치고 있던 미소를 지워내고, 유난히 느린 것 같은 고래의 헤엄에 집중했다.
민현) 바닷가로 돌아가게 해줄게.
여주) ...나를?
민현) 응.
여주) 싫어.
민현) ..왜?
여주) 내가 먼저.
민현) 어?
내가 먼저 시작했어, 오빠 바다 보내기.
고래를 바라보던 여주가 민현에게 시선을 돌리고 살풋 웃으며 답했다.
여주) 오빠 먼저 가.
민현) ........
여주) 가서 어떤지 말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