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반복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었다. 그의 과거…. 그에게 연류 된 사람들이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밉고, 또 저주스러웠다. 내게 이런 얘기를 해준 정재성마저……. 사실 그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저 내게 잠깐의 호기심으로 그러지 말라는 말 뿐이었다. 물론 진심인 데 그런 말로 사람 기분을 나쁘게 한 건 잘못이지만 그가 해준 얘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를 이해해야 했다. 지금 그와 이용대의 상황은 그렇게 사람을 삐딱하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를 수 있을 리가 없을 만큼 그들은 절박했고, 이용대는 사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과보호 한다 싶을 만큼 정재성이 신경 쓰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부러웠고, 그런 그가 나를 반대해서 분한 것이 사실이었다.
좀처럼 화를 누르기가 어려웠다.
심호흡을 여러 번 한 후에 조금 화가 사그라졌다 싶을 때 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눈에 보이는 건 구자철이 아닌 박종우였다.
"왜 여기 있냐?"
종우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연신 투덜거렸다. 이유인즉슨, 침대가 너무 작다고 관계자에게 몇 번이고 칭얼댔더니 큰 침대가 원래 종우네 방에 들어왔는데, 소식을 들은 구자철이 달려와서는 방을 바꾸자며 내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자기는 자기가 이길 줄 알고 내기를 받아드렸는데 의외로 져버렸다는 게 결말이었다.
"뭐야, 이 한심한 놈들은."
"아, 뭔데. 닌 어디서 놀다가 왔는데 인마, 외박까지 해대고 말이야."
그의 물음에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핑계가 없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만 멀뚱히 쳐다보니 그의 눈도 역시 나를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대답해보라는 무언의 압박이 들려왔다.
"아……."
"어?"
"설마… 기성용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얼마나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종우 녀석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던져봐라, 네 뜬금포.
"밤에 신음 장난 없던데, 니가 그중 하나냐?"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서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놈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할 지경이다. 내가 밤중에 들었던 그 신음소리를 말하는 거겠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들은 건 한명 분의 목소리였는데, '그중 하나'라고 묻는 건 종우가 들은 건 한 둘이 아니라는 말인가? 선수촌엔 얼마나 섹슈얼 스캔들이 많은 걸까 새삼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여러 생각을 하는 동안에 녀석은 자기 혼자 멋대로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표정이 알았다는 표정이 되며 고개를 끄덕인다. 뭘 끄덕이는 거야.
"뭘 끄덕여, 끄덕이긴. 아니야."
"근데 왜 대답이 없어? 외박 할 만한 일도 없잖아."
"어… 이용대네 방에서 자고 왔어."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하게 몰릴 것 같아 사실대로 말했다. 말하고 보니 여긴 영국이고, 나는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뛰는 선수라는 것이 생각났다. 거리가 가깝지는 않다지만 대충 잘 둘러댈 수 있었을 텐데, 왜 머리 회전이 한 박자 느렸는지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종우의 눈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흥미롭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눈을 확 찔러버리고 싶네.
"이용대랑 친해?"
"너보다 형이야 인마."
"야, 니나 나나."
하기야 녀석도 내가 빠른 년생이라 우기면 같이 빡빡 우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학벌 면에서 졸업 년도가 다르기 때문에 매번 무시되기 일쑤였다.
"암튼 친하냐? 소개 좀 해줘."
"뭐… 남자 소개 받아서 뭐하려고."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티가 나지 않도록 말을 이어갔다. 녀석의 눈빛이 반짝이는 게 왠지 모를 부담감과 불안함이 밀려왔다. 스멀스멀 뭔가 다리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아, 그래. 이건 아까 정재성의 얘기를 들을 때 들었던 그 느낌이었다. 아까도, 지금도 이게 뭘까. 생각해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그의 거뭇거뭇한 이야기들이 내 다리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애써 그 검은 걸 외면하며 인상을 쓰고 종우를 쳐다봤다. 워낙 서로에게 인상쓰고 있는 것이 버릇인 듯, 일상인 듯이 그 역시 내 표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 좋고 잘생긴 사람한테 호감 가는 건 당연한거 아니야?"
머리가 띵한 느낌이었다. 분명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왠지 소개시켜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난 또 머리를 굴려댔다. 친하지 않다고 할까? 아니 그건 내가 싫다. 그와 친하게 보이고 싶었다. 왠지 모를 욕심이다. 하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핑계도 없었다.
"어… 아직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말하면서도 속이 간질간질했다. 이 핑계만은 대지 말아라 하는 마음의 외침. 하지만 나쁜 머리는 다른 궁리를 생각 해내지 못하고 결국 말을 내뱉었다. 대충 넘길 수 있겠지 생각 했지만 그의 표정이 탐탁치 않아보였다. 뭐야, 또 뭐가 문제야.
"안친한테 숙소 가서 자고오냐?"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긴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이 더욱 간질거렸겠지.
"애석하게도 사실이라 뭐라 할 말이 없네."
"뭐 하고 왔는데?"
"술 마시고 왔다. 같이 마실 사람 없다고 있어달래서. 됬냐."
"뭐야, 나도 그런 사람이랑 같이 술친구 하고 싶다고."
"왜 그렇게 이용대랑 친해지고 싶어해?"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었다. 정재성에게서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다른 사람의 표정을 잘 관찰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우는 진짜 그냥 별거 없는 듯 해보였다. 저런 생각 없는 자식을 봤나. 그렇게 생각 하고 나니 몇 초 후, 그가 대답을 해왔다.
"그냥."
그럴 줄 알았다, 새끼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뭐. 라며 반박해온다.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서로 신경전을 하고 있을 때, 두꺼운 철문이 쾅쾅 소리를 내며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문 소리에 종우도 나도 놀랐다. 서로 무안해서 큭큭 거리며 서로를 비웃었고, 서있던 내가 문으로 다가서며 누구세요. 하고 말했다.
"저에요, 기성용 선수. 이용대……."
문 너머에서는 망설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뒤에서는 왁! 하고 놀라는 박종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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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어요 ㅠㅠㅠㅠㅠ 흑흑 ㅠㅠㅠㅠㅠㅠㅠ
오랜만인데 이렇게 짧은 분량으로 와서 죄송합니다... 으 드릴 변명이 없네요 ㅠㅠㅠㅠㅠㅠ
ㄴ러분 태풍 조심하셔요~~
다음 과거는 천천히 풀어가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