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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음마 전체글ll조회 2827l 9

 

아이컨택

w.신예음마

 

 

02.

 

 

아이씨, 글쎄 이거 보라고"

"내놔봐! 야 임마!"

"내꺼라고, 이 새끼들아!"

 

 


아, 정말 시끄럽다. 이 새끼들은 왜 하필 내 자리에서 지랄인지. 낡고 낡은 히터기는 꽤 무게가 나가는 사내놈 3명을 받히고 열심히 버티고 있었다. 가끔가다 삐그덕 거리며

걱정스러운 소음을 냈지만 녀석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채 열심히 잡지를 보고 있었다. 수박만한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성이 고양이 같은 포즈로 앞으로 엎드린 채 잡지의 표지에 찍혀 있었다. 펼쳐친 성인잡지에 코를 박은 3개의 뒷통수가 보였다.

학교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성인잡지를 보는 자신의 친구의 꼬락서니를 보며 종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참 대단하다, 대단해.

"개쩔어. 역시 서양녀 클래스."

사탕을 쩝쩝 소리를 내며 먹던 종대는 종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선, 다시 잡지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 종대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인 종인은 풀고 있던

수리문제를 마저 풀어내려갔다. 꽤나 어려운 문젠데, 종인은 곰곰히 생각하며 샤프를 끄적여 내려갔다. 간간히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던 종인은 눈 앞에 불쑥

튀어나온 벌거벗은 여인의 나체에 순식간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이런 시발.

"전교1등 김종인은 고자라네. 어떻게 이걸봐도 아무렇지 않아?"

성인잡지 제공자인 세훈이 종인의 눈 앞에 잡지를 흔들여보였다. 얼마나 봤으면 이미 낡아서 너덜너덜 해졌다. 몇장은 심지어 뜯겨져 그들의 바짓주머니 안에 곱게 접혀 있었다.

다리를 적나라하게 벌린 채 자신의 중요부위를 드러낸 여자를 봐도 종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뭐, 남자들이 벗은 여성을 보면 흥분한다던데, 발끝을 타오르는 찌릿한 느낌 혹은

배 바로 아래쪽에 피가 몰리는 듯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여자들의 천박한 모습에 조금 구역질이 났다.

"꺼져."

"그려. 니는 고상하다, 고상해."

어느새 사탕을 다빨아 먹었는지, 종대는 세훈의 손에서 잡지를 낚아 챘다. 이렇게 좋은건 혼자 봐야돼. 종대의 말에 세훈과 찬열이 낄낄거린다.

저런 모습을 스토커년들이 봐야 하는데, 종인은 자신의 사진을 몰래 찍었던 후배들을 생각했다.

그 후배들의 폰에 곱게 있을 녀석들의 사진이 머릿속에서 상상된다. 저런 것들이 뭐가 좋다고.

저질스러운 농담을 뱉으며 낄낄 거리는 그들을 한심하게 본 종인은 다시 수학문제로 빠져들었다. 반 이상 풀어내려가던 손은 우뚝 멈췄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

왼쪽 귀는 녀석들의 저질스러운 농담을 듣고 있었고, 오른쪽 귀는 조용히 들려오는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샤프를 여기저기 놀리던 종인은 슬쩍 옆을 쳐다봤다.

백현의 옆모습이 보인다. 무엇에 그리 집중하는지, 잠 자는 듯한 조용한 숨소리만이 들렸다. 슬쩍 넘겨보니, 꽤나 어렵기로 유명한 외국어 문제집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 어려운 문제를 막힘없이 탁탁 풀어나간다. 검은색의 심플한 샤프로 마악 답을 체크한 백현의 머리카락이 조그맣게 흔들렸다. 이마를 덮은 갈색머리가 정갈하다.

그런 녀석의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에 종인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단정. 깔끔. 백현과 너무나도 잘어울리는 단어기에 웃음이 나왔다.

종인은 슬쩍슬쩍 백현을 곁눈질 하며 숫자들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 숫자가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또 나체의 여인들이 눈 앞을 가로막는다. 머리위로 녀석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 시발. 종인은 검은색의 배경위에 박힌 하얀 여자의 나체를 손으로

밀려는 순간, 자신의 눈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잡지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종착역은 김종인이 아니었다.

툭 하고 떨어진 잡지는 그 어렵기로 유명한 외국어 문제집 위에 자리잡았다.

 

바로 변백현의 책상에.

 

이게 무슨 일이지, 종인은 굳어진 백현을 얼굴을 한번 보고 이런 상황을 만든 녀석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빨을 훤히 드러낸 찬열은 몸을 기울인 채 흥미진진한 듯 백현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 옆에 나란히 앉은 종대와 세훈도 실실 흘리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백현을 살피고 있었다.

"흥분돼?"

저음인 찬열의 목소리가 들리자 종인은 저도 모르게 부아가 치밀었다. 무슨 개수작이지. 백현의 시선이 머물러진 저 싸구려 잡지를 내동댕이 치고 싶었지만 종인은 관심없다는 듯 무심하게 백현을 쳐다봣다. 마치 방관자처럼.

아까보다 더욱 굳어진 얼굴의 백현은 천천히 잡지를 덮었다. 그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종인은 저도 모르게 뜨거운 것이 배를 감싸는 느낌에 숨을 들이켰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자신의 심장을 잡아채는 듯 했다. 종인은 짐짓 그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백현의 책상위에 곱게 닫혀있는 잡지를 들어올렸다.

"뭐야. 니들끼리 봐."

마치 신경써준게 아니라는 듯, 굳은 변백현을 생각하는게 아니라는 듯, 종인은 짖궂은 장난을 치는 찬열을 자신도 가볍게 넘기며 대했다.

정작 중요한 변백현을 제3자인것 마냥 여기며.

"내일 근육쟁이들 잡지 가져와줄까?"

하지만 찬열의 시선은 여전히 백현에게 머물러 있었다. 대체 뭐야. 종인은 조금 도가 지나친 찬열의 모습을 말리고 싶었지만

싱글벙글 웃고있는 녀석들의 모습에 그럴수가 없었다. 하긴 그렇겠지. 자기들끼리도 도가 지나친 장난을 하기로 학교에 소문난 이 녀석들을 누가 말리겠는가.

오히려 이런 상황이 더욱 당연해보였다.

항상 그런 그들의 장난을 은연히 즐기듯 관찰하는 방관자였던 종인은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럴수 밖에 없었다. 선을 넘었다 치면 천천히 나서서 말리는 역할을 하던 자신은

지금 이상황에서 밧줄에 꽁꽁 묶인 사람처럼 움직일수 없었다. 왜냐하면 딱히 특정 선은 넘지 않았으니깐. 물론 그들 사이의 기준에서.

"보디빌더들 쫘악 세워진 잡지 보면 흥분돼?"

덜 성숙한 10대는 잔인하고, 짖궂다. 찬열은 그저 자신의 호기심과 재미를 채우기 위해서, 백현에게 들이댔다. 벗은 여자들이 훤히 드러난 잡지는 이미 세훈의 손에 가있었다.

백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찬열을 마주보았다. 녀석은 알수없는 표정으로 찬열을 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보며, 세훈과 종대는 연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거 보고 딸쳐?"

 

 

 

도가 지나치다. 선을 넘었다. 종인은 조금 굳은 얼굴로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서로를 보던 시선은 종인으로 인해 끊겨버렸다.

종인의 짙은 눈썹이 조금 일그러진 것을 본 찬열은 보일락 말락한 미소만 남긴채 일어섰다. 여전히 시선은 집요하게 백현을 보고 있었다. 무슨 장난감 보듯이.

찬열은 항상 이랬다. 조금이라도 재미나거나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이렇게 달려든다. 그런 찬열을 알기에 종인은 왠지 모르게 겁이났다. 저 새끼 또 뭐할려나.

종인은 들려오는 종소리를 멍하게 흘려보내고선, 찬열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벌써 오세훈 새끼는 자기 반으로 돌아가버리고 없었다.

슬쩍, 백현을 돌아보니 평소대로 돌아와있었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백현은 조용히 문제만 풀어 내려간다. 신기하네. 아까일이 신경이 쓰이지 않는지, 조용한

백현을 보며 종인은 혹시 자신이 오바한게 아닐까, 아까의 일을 지우고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렷다.

시간은 흐르는데, 선생은 들어오지 않는다. 칠판으로 무엇인가 써내려가는 소리에 종인은 고개를 들었다. '자습'이라고 크게 쓰여진 흰색의 글자가 어색하고 삐뚤었다.

주번인 여자아이가 그것을 곰곰히 보다 지우더니, 다시 쓴다. 그 모양이 꽤 귀여워서 종인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너도 아까 잡지같은거 봐?"

 

 


조용한 공기를 부드럽게 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누가 나한테 말한거지. 분명 옆에서 들려왔지만 종인은 확인차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한테 한말인가? 호기심으로 가득찬 순진한 눈과 마주지차 온 몸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이로써 세번째 아이컨택.

백현은 어제와 같은 표정으로 종인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눈.

그렇다고 완벽히 순수하다고 할수 없는 눈. 그 눈이 싸구려 야한 잡지를 봤다는 생각이 들자, 종인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

 

 


너는 그럼 남성잡지 봐? 종인은 저도 모르게 질문할뻔 했다. 사실 궁금했다. 기호로 가득 찼던 머리는 순식간에 다른 생각으로 가득찼다. 근육이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나온

잡지를 보며 딸 치는 백현. 종인은 느릿느릿 침을 꿀꺽 삼켰다. 혹여나 자신의 생각이 들킬까, 자신의 눈을 쳐다보는 순진한 눈이 자신의 머릿속을 읽을까 무서워,

급히 시선을 돌렸다. 머릿속에 정갈하게 쓰여진 숫자가 보인다. 애써 속으로 그것을 되읽었다. 하지만 숫자들은 천천히 녹아내리고 변백현의 얼굴이 되었다.

그 얼굴들이 끊임없이 속삭였다.

 


"저런거 안 좋아해?"

 


대체 뭘 묻고 싶은건지. 백현이 무슨 심보일까, 종인은 저도 모르게 다시 시선을 맞췄다. 그 가느다란 입꼬리는 웃을듯 말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강아지같이 축쳐진 눈꼬리는

살며시 접혀있었다. 장난하자는건가. 그 누구에게도 말을 붙이지 않는 차갑기로 소문난 백현이 맞는지, 종인은 왠지 모르게 심술이 났다. 자신을 갖고 노는 것 같아서.

 

 


"별로."

"아-."

"그렇다고 너처럼 남자좋아하는 건 아냐."

 

 


정적.

민망한 정적만이 흐른다. 백현의 손끝에서 샤프심이 똑 부러진다. 동시에 굳어지는 녀석의 얼굴. 종인은 방금 그 말을 내뱉은 자신의 주둥이를 때리고 싶었지만,

틀린말은 아니었기에 애써 무시했다. 그래도 자신의 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백현의 '상처받은 듯한' 얼굴에 괜시리 미안해졌다. 그 소문이 맞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려진것이

없었기에 종인은 괜히 녀석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낸게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종인은 아무렇지 않게 녀석의 표정을 넘겨버렸다.

 

녀석이 진짜 '호모'일수도 있으니깐.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 자체는 이 녀석에게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니깐.  종인은 자꾸만 떠올려지는 녀석의 얼굴을 무시하고

숫자들을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변백현'이란 존재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숫자들을 축구공처럼 뻥뻥 차버렸다. 푸른 잔디 위에 홀로 선 백현은 자신에게

브이를 그리며 웃어보인다. 종인은 낮게 욕을 읖조리고 일어섰다. 오늘 공부는 물건너갔다. 종인은 축 쳐진듯한 녀석의 어깨에서 애써 시선을 떼내고 반을 나섰다.

공기가 필요하다. 차가운 공기.

자신의 머리를 깨끗하게 식혀줄 차가운 공기가,

종인은 필요했다.

 

 

 

*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냄새가 코를 에워싼다. 종인은 탁한 담배냄새에 코를 막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리가 띵하다.

씁씁한 무엇인가가 목구멍 근처를 에워싸는 것 같은 느낌에 종인은 벌떡 일어서 창고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런 종인을 보고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던 세훈이 웃어보였다.

"우리 전교1등 종인님께서는 담배를 싫어하시지."

"고럼, 고럼."

"아니, 사실 집에서 대마를 할수도. 스케일이 달라, 우리 종인이는."

"개소리쩌네."

"멍멍."

참 잘들 논다.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유일한 숨구멍인 마냥 맡는 종인은 낄낄거리며 웃는 세훈과 종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창밖의 봄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푸른 잎사귀 끝이 조금씩 다른색으로 물들어진다. 종인은 깨진 창문 근처에 바스라진 나뭇잎을 하릴없이 보다,

그것을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잎사귀는 부스러졌다.

 

 


그 말을 내뱉은 후 백현과 이야기는 일절 끊어져버렷다. 물론 그전에도 서로를 공기취급하듯이 신경쓰지도 않았지만, 둘의 사이에서 무엇인가 닫혀버렸다.

커다란 벽이 세워진것 같았다. 참 웃기는 일이다. 전혀 친하지도 않았는데 무엇인가 끊어져버린 느낌에 조금 안달이 난 종인은 그 사실에 스스로에게 자조섞인 웃음을 던졌다.

게다가 요즘, 박찬열 새끼가 변백현에게 조금씩 접근한다. 호모라고 놀릴때는 언제고, 이제 녀석은 변백현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정도로 친해진듯 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괜시레 짜증이 나는 제 모습이 종인은 너무 웃겼다. 호모 변백현. 그래, 호모다. 근데 대체 뭣때문에 신경을 쓰는지.

그 정갈하던 갈색의 머리칼도 조금 더 연한 갈색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염색을 한것인지, 녀석의 머리칼은 조금 노랗게 변해있었고 몸에서 점점 담배내음이 풍겼다.

그것도 박찬열과 똑같은 담배냄새. 백현은 천천히 찬열로 물들여졌다. 박찬열 순 양아치 새끼. 하루에 담배를 몇개피나 피는 찬열이 생각난다. 그 새끼 순 양아친데.

완벽하게 물들 것 같은 백현에 겁이 났다. 마치 주황빛으로 천천히 물드는 잎사귀 보듯이, 종인은 봄이 멀어져갈까봐 무서웠다.

 

"야, 김종인."

 

동굴에서 나는것같은 목소리. 안 봐도 뻔하다. 박찬열. 종인은 저절로 인상이 쓰여지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왜. 퉁명스럽게 내뱉자 녀석이 나를 잡아끈다.

"잠시만, 컴오온-"

녀석이 잡아끌자 몸에서 담배냄새가 풍긴다. 내 옆자리에 앉은 놈과 똑같은 냄새. 그것만으로도 불쾌해진다.

"야, 박찬열. 김종인! 어디가?"

뒤에서 오세훈의 목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녀석들은 또 무엇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잠시만 담소를 나누려 한다, 형님들은."

"야, 빨리 하고와. 내가 오늘 저 김종인 입에 담배를 쳐넣고 말테다."

지랄은 무슨. 종인은 세훈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선 찬열을 따라 나섰다. 창고 밖으로 나오자 뒷뜰이 보였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 풀이 무릎까지 자라 벌레들이 여간 많은게

아니었다. 그때문에 학생들도 이곳에 잘 오지 않아 어느새 여기는 우리들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창고 문 옆에 기대선 종인은 찬열을 기다렸다. 입에 문 담배를 빼내

땅바닥에 던진 찬열은 그것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병신새끼."

완벽하게 꺼진 불은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사라졌다. 혼탁했던 연기가 깨끗한 봄의 공기 사이로 녹아드는 것이 신기하다. 종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찬열을 무심하게 지켜봤다.

할말있으면 해봐. 종인이 말하자, 녀석의 입이 벌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왜 그게 그렇게 두려웠을까. 조금 망설이는 찬열을 보며 종인은 기다렸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알수없는 오한이 들었다.

 

 

"나 남자좋아하는것 같다."

 

 

헐. 적중이다. 내 예상이 맞았네. 그 오한이 무엇인지, 종인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박찬열의 주둥이에서 충격적인 말이 나오겠지. 하지만 이정도로 충격먹을줄 몰랐다.

참, 내 주위에 호모 많네. 옆자리 새끼도 호모고, 옆자리 새끼랑 같은 담배냄새나는 새끼도 호모고, 둘이 완전 짝짝꿍이네. 종인은 자신의 앞에 서서 자신의 표정을 살피는

2년지기 친구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그래, 뭐 어쩌라고. 종인이 조용히 말하자 찬열이 그제사 웃는다.

 


"나 안 싫지?"

"나 안 좋아하면 돼. 호모새끼야."

"넌 시발, 내 스타일이 아니야."

"언제부터야?"

"뭐?"

"언제부터 남자 좋아했니."

 


언제부터 남자를 좋아했니. 종인의 머릿속에선 이 문장이 천천히 입력되었다. '남자'라는 부분은 괄호로 바뀌어졌다. 언제부터 ( )를 좋아했니. ( ) 안에 있는 놈은 누구니.

머릿속에 천천히 퍼즐처럼 맞춰지는 얼굴을 종인은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 바람에 퍼즐은 공중으로 흩어졌다. 보기 싫어.

종인은 자신의 머릿속을 무시하고 찬열에게 대답을 요햇다.

"얼마전부터."

"그래?"

확신이 든다. 네 그말이 나의 생각에 기름을 붙네. 그게 터져버렸어. 종인은 자꾸만 마춰지려는 퍼즐을 무시했다. 하지만 퍼즐은 한낱 종이로 된게 아니었다.

작은 불씨로 이루어진 퍼즐은 박찬열의 말에 더 심하게 타올랐다. 그 바람에 강렬하게 누군가가 떠올랐지만 종인은 애써 무시했다. 무시하자, 무시해.

"참, 친구가 호모라니. 놀랍다."

"나도 내 정체성에 놀랐어."

"별로 안그래보이는데?"

"그래, 사실 난 모든 만물을 사랑하니깐."

녀석이 장난쳐오자, 나도 맞춰주었다. 우린 친구니깐. 그래, 친구다.

창고안에 있을 두놈을 남기고 찬열과 학교로 들어섰다. 녀석의 온 몸에서 자꾸만 담배냄새가 나는데 미칠것같았다. 그 담배냄새가 싫었기도 했지만,

 

자꾸만 누군가가 떠올려져서.

 

 

*

 

기말고사 성적이 나왔다. 게시판에 붙여진 등수를 살펴보았다. 또 전교1등. 자신의 이름이 맨 앞에 있는것을 눈에 담은 종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와이씨! 김종인 새끼 또 1등이야!"

"괴물새끼네!"

여기저기서 놈들이 난리친다. 전교 1등부터 25등까지만 적어놓는 게시판에 항상 붙여져 있는 김종인의 이름에 녀석들은 혀를 내두른다. 완전 괴물. 어떻게 빠진적이 없냐.

녀석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죽었다 깨어나도 게시판에 걸리지 않을것을 알지만, 마치 자신들의 일이라도 된마냥 열심히 살핀다.

종인은 자신의 이름 밑에 크게 쓰여진 1이란 글자를 보다 옆으로 옮겼다. 전교2등. 하지만 눈 씻도 찾아봐도 녀석의 이름은 없다. 전교2등의 자리에는 낯선 이름만이 보였고,

낯익은 녀석의 이름은 사라지고 없었다. 혹여나 있을까, 게시판을 살펴보았지만 녀석의 이름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전교2등 변백현의 추락.

게시판을 본 모든 아이들은 하루종일 그 사실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뭐 새로운 남자를 사겼다느니, 이사장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맞았다느니,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녀석들은 그것을 재미난 가쉽거리로 여겼다.

하지만 정작 소문의 주인공은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종인의 옆에서 열심히 문제집만 파고 있었다.

 

 

"또 1등이더라."

 

 

항상 이 녀석의 목소리에선 봄내음이 났다. 그게 참 이상하지만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봄내음이 나지 않는다.

조금씩 지고 있는 잎사귀처럼, 녀석의 목소리도 조금씩 지고 있었다.

조금 가라앉은 녀석의 눈동자가 보였다. 한동안 녀석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물론 내쪽에서 확실히 시선을 차단했지만.

노란빛의 갈색머리는 더이상 정갈하지 않았다. 뭐라도 바른건지, 딱딱하게 굳은 머리카락들이 이마를 덮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한심하다, 한심해.

조금 구겨진 와이셔츠와 풀려진 단추가 눈에 보이자 더 이상 신경쓸것도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난 엄청나게 내려갔는데... 과외해주면 안될까?"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금의 애교가 섞인 듯한 말투. 근데 왜 난 그게 싫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녀석의 몸에서 담배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익숙한 냄새. 허구헌날 맡던 냄새. 내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냄새가 이제 이 녀석에게서 풍겨져 나온다. 그 사실에 조금 열이 받쳤다. 손 끝에서 샤프심이 뚝뚝 끊어졌다.

 

 


"난."

"...?"

"담배냄새 나는 놈은 사양이야."

 

 


특히 너같은 호모말야. 녀석의 눈동자가 나의 말에 조금씩 흔들렸다. 그래, 너도 네 꼴을 알겠지. 무심하게 녀석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끊어져버렸다.

갑작스럽게 우리 사이를 침범한 아이때문에. 칠판에 적었던 '자습'이라는 글자때문에 몇번이나 쓰고 지우던 것을 반복했던 아이, 유진.

단정하게 곱게 입은 교복이 정말 잘 어울린다. 흔하디 흔한 단발머리가 꽤나 어울리는, 미소가 예쁜 아이, 유진은 우리 사이를 침범했다.

쨍쨍하게 얼어붙던 얼음이 쨍그랑 깨지고 곧 녹아든 물에서 싱그러운 향이 퍼져나오는 듯했다.

"종인아. 너 또 1등이더라?"

"어? 어."

귀엽게 눈을 접으며 웃은 유진은 그렇게 종인에게 관심을 보였다. 여자의 관심이 꽤나 나쁘지 않은지, 종인은 쑥스럽게 웃어보이며 유진과 대화를 나누어 갔다.

온 몸에서 향긋한 레몬향이 퍼져나오는 유진과 눈을 맞추며, 슬쩍 녀석을 살폈다. 녀석은 사라졌다. 어디로 갔나, 고개를 돌리니 박찬열과 뒷문을 나서고 있엇다.

그 모습에 완전히 고개를 돌렸다. 귀엽게 접힌 유진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래, 변백현.


넌 박찬열이랑 놀아라나,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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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안녕하세요! 우와...카백읽어본적이없어서 새롭고좋네요 신알신햇어요! 일편도봐야지
12년 전
신예음마
감사합니당ㅎㅎㅎ
12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2년 전
신예음마
네유ㅠㅠ기대해주세야
12년 전
독자3
헐...카백찬백...!!!!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으으다음편너무기대되용ㅋㅋㅋㅋㅋㅋㅋ카백찬백행ㅇ쇼...
12년 전
신예음마
전카백......ㅋㅋㅋㅋㅋ
12년 전
독자4
작가님짱;;졸짱;;;재밌게보고가요!
12년 전
신예음마
고마버영
12년 전
독자5
ㅜㅜㅜㅜㅜㅜㅜㅜㅠㅜㅈ진짜카백조아여ㅜㅜㅜㅜㅜㅠㅜㅜㅜㅠㅜㅠㅜㅅ사랑해요금손작가님
12년 전
신예음마
금서뉴ㅠㅜ감사합니당
12년 전
독자6
카백진짜좋아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재밌어요!!!!!!!!!
12년 전
신예음마
저도카백좋아염ㅋㅋㅋ
12년 전
독자7
사랑합네다...다음편안쓰면 울꺼에여ㅜㅜㅜㅜ카백은 사랑임니다 백혀나 담배피지맠
12년 전
신예음마
ㅋㅋㅋㅋㅋ감사합니다 백혀니 ㅜㅜ
12년 전
독자8
아진짜작가님!!!!!!!!!!!!!!사랑해요ㅠㅠㅠㅠ너무재미있엉용ㅅ.......어응ㅌ.지ㅣ아듀튜우좾유앚배유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독자9
질투의 신 김종인!!!!!!!!!!!!!!!!!!!!!!!!!!!!!!!!!!!!!!!!!!!!!!!!!!!!!!!!!!!!!!!!!!!!!!!!!!!!!!!!!!!!!!!!!!!!!!!!!!!!!!!!!!!!!!!!!!!!! 아설레여ㅠㅠ
12년 전
독자10
종인이마음이뭔지알것같아요ㅠㅜㅠㅠㅠㅜㅠ음마님이간접적감정처리참잘하세유ㅠㅠㅠ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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