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아.."
"..."
또 그런 얼굴. 차 시간은 둘 째치고 조금만 더 봤다간 전부 말짱 도루묵 될 것만 같아서 고개를 숙였다. 내 신발, 걔 신발, 들고 나를 캐리어만 들어왔다. 그런데 도저히 발이 떼지질 않았다. 한 번 본 김선호의 표정이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금방이라도 눈물 떨굴 것 같은 얼굴. 지금 울 사람이 누군데.
작게 한숨을 내뱉고 겨우 멈춰있던 캐리어를 끌었다. 캐리어 손잡이 위로 다른 손이 올라왔을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 김선호가 붙잡는다.
"우리... 그냥 계속 친구하면 안 될까?"
김선호가 운다. 우네. 그것도 그런 말을 하면서. 네가 이러면 내가 뭐가 돼. 너는 정말 친구로서 날 잃기 싫어하는구나. 손잡이 위로 올라온 선호의 손을 떼어냈다.
"내가 말 했지. 너 좋아한다고. 근데 그걸... 들었으면서 이래?"
"헷갈린 걸수도 있잖아. 우리 친구니까, 워낙 가까웠던 친구니까..."
"우리가 친구라고... 너 나때문에 한 번이라도 밤 잠 설쳐본 적 있어? 나때문에 하루종일 핸드폰만 본 적은? 나 신경쓰여서 누구 만나기 눈치보였던 적이라도 있어? 그런 적 없잖아, 너. 근데 난 너때문에 늘 그랬어. 근데도 우리가 친구야?"
말 하는 사이 캐리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만 더 세게 쥐면 상처라도 날 것 같은데도 도저히 힘이 안 풀어졌다. 좋아하는 애한테 듣기 싫었던 말을 듣고나니 더 비참해진 것만 같아. 그 애가 바닥만 보며 서럽게 우는데도 자꾸 상처 줄 말들이 튀어나온다. 내가 뱉은 말들에 김선호뿐만 아니라, 나도 상처 받는걸 알면서도 입은 닫히질 않았다.
"우리 연락도 하지말자. 안부도 묻지마. 그냥... 제발 부탁인데, 지나쳐가주라."
정말 끝나버렸다. 끝내버렸다.
김선호랑 친구는 관뒀는데, 앞으로는 친구도 못 한다.
김선호는 모른다. 지금 누가 울고 싶은지.
*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만 있다. 김선호가 잡아세우느라 시간 좀 날렸더니, 매정하게도 기차가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빠른 시간으로 표를 새로 발행했다. 조금이라도 정신 차렸다간 아까의 선호보다 더 서글프게 울까봐서 최대한 정신줄을 놓고 멍을 때렸다. 넋을 놓고, 아무런 생각도 안 했다. 그냥 빨리 차에 타고 싶었다. 빨리 도착을 해서, 동생이라도 끌어안고 목놓아 울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한 시간동안 보려고 예능이나 드라마들도 다운 받아놨는데, 핸드폰엔 손도 안 댔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힘을 쫙 빼고나니까 그제서야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독소라도 배출하듯이 줄줄 눈물만 떨궈댔다. 동생 집에 도착해 덜렁 깔린 이불 위에 누워 잠들 때까지 울기만 했다. 모든 상황이 서글프기만하다.
김선호한테서 연락이 끊겼다.
더이상 전화를 거절하거나, 쌓인 메세지를 지울 필요도 없었다.
연락 하지말자고 한 것도, 안부도 묻지 말자고 한 것도 난데 지금 일 분에 한 번씩 프로필 확인하는 것도 나다. 참, 못났다.
이별을 한 건 아닌데, 이별을 극복하는 온갖 방법들을 다 찾아봤다.
만취가 직빵이라길래 좀 마셔볼랬더니 숙취해소제 챙겨주는 애가 없고, 밥 챙겨 먹었냐고 물어봐주는 애가 없고, 시도 때도 없이 날 찾는 애가 없어.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나잖아. 넌 뭘 그렇게 잘해줘서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왜.
김선호한테서 연락이 끊긴지도 2주일이 다 돼갔다. 내가 걔한테 고백하고 튄지도 2주가 됐다는 거지. 그럼에도 난 아침에 일어나면 여전히 바뀌지않은 네 프로필을 확인하고, 업로드를 멈춘 네 피드를 괜히 새로고침해보고. 내일은 이 짓거리도 하지말자고 다짐이나 한다.
전송 버튼만 누르면 알게 될 소식을 해윤이를 통해 전해들었다. 종강하고부터 통 안 보인다고. 저번에 은정이가 다시 한 번 찾아간 걸 봤는데, 만난 것 같진 않았다고. 언제쯤 올라올 거냐는 물음에 한참 고민하다 겨우 답장을 보냈다. 김선호가 정리될 때쯤. 내가 더이상 그 애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게 될 때쯤. 그 애를 봐도, 아무렇지않게 될 그 때에 가겠다고.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그게 어디 쉽나. 3년이나 쭉 안 변하고 갔던 마음인데. 나라고 정리 안 해보려 한 줄 알아? 누르고 누르고 그렇게 세게 억눌러도 걔 얼굴만 보면 원상복구되는데. 내 마음은 김선호 한정 스프링이란 말이야. 눌러도 손만 떼면 다시 튀어올라. 그래도 언제까지나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학교를 때려치고 온 것도 아니고, 혼자만의 공간을 얼떨결에 공유하게 된 동생에게 눈칫밥도 장난아니게 먹었다. 그래서 앞당겨보기로했다. 김선호랑 친구는 그만뒀으니까, 이제 좋아하는 것도 그만해야지. 아침에 일어나면 프로필 확인을 하기 전에 부스스한 머리나 정리하고, 인스타그램은 아예 지워야겠다.
"동생아. 언니가 오늘 큰 결심했으니까 치킨 쏠게."
카드 손에 끼고 쿨내나는 척 좀 하다가 핸드폰을 엎어놨다. 대신, 네가 시켜. 언니 오늘 핸드폰 일절 안 쳐다보기로 맘 먹었으니까.
*
핸드폰을 엎어놓고 있으니까,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소파에 정자세로 누워서 멀뚱멀뚱 천장이나 보고있었다. 한 두번씩 거실을 지나가던 동생한테서 기분 좋지 않은 눈빛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정말 할 게 없었다. 뭐라도 좀 하자고 누워있던 몸을 간신히 앉혔는데,
"어, 밥 왔나보다. 성, 가서 받아와."
"아 언니가...!"
"내가 샀잖아. 얼렁."
밥이 왔네. 먹고 생각해야지.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이랬잖아.
"어... 언니, 치킨이 아니라.... 선호 오빤데?"
"..."
"..."
김선호네. 나 지금 꿈꾸는 중인가? 아닌데. 진짜네. 하다하다 여기까지 김선호가 침투했다. 아 진짜 어떡하냐 나...
2주만에 보는 얼굴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 방금 완전 결심했단 말이야. 너 봐도 아무렇지 않게 될 때까지 마음 정리 해보려고 했다고. 그렇게 결심한지가 지금 삼십분도 안 됐어. 근데 넌 뭐 이래. 자꾸 이럴 때만 방해를 해.
나 안 해. 네가 무슨 용건을 달고 왔든, 네 용건 안 들을 거야.
*
사족🤍 |
김서노 울려따...! 첫 눈물이 이런 타이밍이라 죄송합니드.... 이번 화만 꾹 참고 봐주세요...^-^ 이제 친관프에서 울 일 없을끄야 오늘두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앗 그리고 매 화에 달리는 댓글들 너무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세 번씩은 읽어요 쿠쿠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건강 조심하세요. 금~~방 후딱 또 다음 화 들고 찾아뵙겠슴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