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안 먹어도 괜찮겠어? 아까 내가 방해한 것 같던데."
"아..., 괜찮아. 근데 여긴 왜... 무슨 일이야?"
굳이 따지자면 연 끊은 애랑 동네를 몇 바퀴째 돌고있는지... 안부도 묻지 말자고 했었는데 막상 얼굴 보니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바보였네. 김선호가 여길 모르는 것도 아닌데. 동생한테 자취 축하한다고 선물까지 들고 왔던 앤데 얘가. 토끼긴 뭘 토낀다고.
"네가 연락을 통 안 받길래. 무턱대고 찾아왔네. 미안해. 오늘 꼭 말해야 될 것 같아서."
한참 걷던 걸음을 우뚝 멈춰세우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안 본지 겨우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
부재중 전화 📞김선호 (6)
확인하지 않은 메세지 ✉ 김선호 (5)
이게 뭔. 부재중 찍힌 숫자를 보다가 민망함에 핸드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오늘부터 너 생각 안 하려고 폰 안 보고 있었어, 할 수도 없고...
"오, 오늘 할 일이 좀 많아가지고... 못 봤네. 무슨 할 말이 있길래 그래?"
부스스한 머리를 손빗질하던 선호가 우물쭈물거린다. 아예 앞으로 옮겨와 서서 목도 한 번 가다듬는다. 뭐 얼마나 대단한 소릴 하려고.
"...생각해봤는데, 나도 너랑 친구하기 싫어. 그래. 우리 친구하지 말자."
이걸 제가 아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엥스러운 얼굴로 멍하니 보다가 아무렇지않은 척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저 말 하자고 여기까지 내려온 거야? 연락을 그렇게 해대면서? 화려한 황당함이 나를 감싸네... 이게 뭔데. 얘는 친구 끊을 때 꼭 이렇게까지 해야돼? 합의하에 친구를 끊어야 속이 편한 뭐 그런 타입이냐고. 어이없고 황당하기도 한데, 티는 내기 싫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 잘 됐네."
"나 너 좋아해."
"그래. 잘..., 뭐? 뭐라고?"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포커페이스는 무슨. 눈은 똥그래져서, 입은 떡 벌어진 데다가 미간은 좁혀졌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그러겠지. 2주 전에 계속 친구하면 안 되겠냐고 울던 애가 누군데.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 그럴 거야.
"네가 아니라 내가 착각한 거였어. 나 너때문에 하루종일 못 잤어. 네가 그렇게 가고 잘 잔 날이 없어. 너때문에 보조배터리도 챙겨왔어. 혹시라도 연락 올 때 못 받을까봐. 나 너때문에 그랬어. 우정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 우정 아니야 이거."
"...지금 무슨...."
"여기 오는 한 시간이, 일 년 같았다? 내가 헷갈렸어. 친구한테 이런 감정이 들리 없는데도 내가 꿋꿋히 우겨왔어. 2주동안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 이거야. 내가 너 좋아한다는 거."
얘 지금 뭐라고하는 중인지 아는 사람...?
*
내가 김선호한테 고백을 받을 줄이야. 그것도 내가 고백한지 2주만에. 다리에 힘이 쫙 풀려서 터덜터덜 아무 벤치로나 기어가 앉았더니만 얘는 살짝 웃으면서 옆에 앉았다. 이거 몰래 카메라니? 아님 호구 농락 그런 거니?
묻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다가 이런 결론이 난 건지, 이거 뻥 아니고 진짜 진짜인지... 한 번 물었다간 와다다 쏟아지는 답변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입은 앙 다물었다.
"너무 부담갖지 않았으면 하는데. 대답 재촉할 생각은 없거든. 내가 자각하는 동안에, 너는 마음 정리했을 수도 있는 거고... 답변은 네 생각이 다 정리되면 그 때 들을게. 그대신 신중하게 생각해주면 더 좋고."
"..."
"그리고, 너한테 내가 피해야 될 대상이 아니었음 해. 대답하기 전까지 나 계속 연락할 거야. 안부도 자꾸 물을 거야. 또, 여기. 나때문에 내려온 거면 다시 올라왔으면 좋겠어. 올라가자, 나랑."
얘는... 좋아한다는 애가 뭐이렇게 조건이 많아? 넋 놓고 있다가 겨우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락도 하고 같이 올라도 가자...
"어... 내일. 내일 올라갈게."
"그래. 그럼, "
"이제 할 말 다 한 거지? 먼저 가봐. 나 생각 좀... 해야할 것 같아서."
"나 가? 그냥 이렇게 가?"
"그럼...?"
"지금이면 막차도 떴을텐데..."
"이 시간에 무슨, 아니.. 막차가 끊겨. 그래, 차 없으면 저기 좀 내려가면 많아. 숙박 시설."
대충 아무 곳이나 짚어주니 입술이 댓발 나왔다. 귀여운데... 지금 그거 신경쓸 여유가 없거든. 이게 진짜일지 구라일지 꿈인지 아닌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할 게 많거든...
"부담... 부담 주지 않겠다며."
그 말 하나에 댓발 나왔던 입이 쏙 들어간다.
뭐야? 쟤 진짜 나 좋아하나봐... 진짜인가봐......
*
사족`°` |
오늘 분량 무슨 일인가여... 염치X... 게다가 스토리 급발진이 아주 트리플 악셀로 밟아버렸습니다. 선호가 다시 다른 감정으로 보게 되는데는 큰 계기가 있는 것보다, 혼자 천천히 생각하면서 자각하는 게 더 좋다고 느꼈어요. 예.... 급발진한 변명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에필로그로 넣을까 아님 한 회차를 따로 시점 변경해서 넣을까 했는데 일단은 이름 시점으로 가는 게 깔끔하다고 생각했어요ㅠ-ㅠ 이름 입장에서는 2주가 지나고 엥? 스러운 고백을 받은 거니까 앞으로를 위해서 그 당황스러움과 얘가 지금 장난치나? 싶은 마음을 아주 고스란히 전달해드리고 싶었어요 나중에야 짧게라도 서노 시점이 들어갈 수도 있겠찌만... 일단은 그렇슴미다 지금까지 이틀에 한 번씩 업로드하긴 했는데, 다음 화는 쬐끔 더 늦게 올라갈 것 같아용... 당황스러움 폭탄만 던지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악ㅠㅠㅠ 금방 올게요 건강 유의하시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