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에김선호는 반칙이지
드디어 주말이 찾아왔다. 나에게도 휴식이 찾아왔다고.
요란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잠에서 깨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밖은 아직 컴컴한데 어떤 놈이 이시간에 전화를 하지?
"일어났어요?"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다. 주말인데 이시간에 어떻게 일어나? 난 죽어도 못 해.
아무 말 없이 다시 잠들기위해 눈을 감는데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으면 안 돼요."
"하 이재욱.. 알바 자격 박탈이야.."
"늦을까 봐 걱정 돼서 전화했어요. 내가 이날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기다린 김에 더 기다려 봐.."
"저는 한숨도 못 잤는데 되게 잘 잤나 보다."
"지금이라도 좀 자.. 난 요새 잠을 못 잤더니 졸려 죽겠어."
"왜요."
"다음 이 시간에."
"은근슬쩍 넘기지 마요."
만나기 전까지 통화를 할 생각인지 재욱이는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결국 내가 늦으면 너가 사장하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그날은 해가 서쪽에서 뜬 건지 일어나자마자 굉장히 상쾌했다. 적당히 새들도 지저귀고, 햇살도 기분 좋게 들어오고, 웬일인지 눈도 저절로 떠지는 거다.
원래는 알람을 5분씩 미루는 내가 말이다.
씻고 옷을 골라보았다. 생각해보니까 뭘 입어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데이트라고 하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후줄근하게 가기엔 재욱이의 말이 잊혀지질 않는다. 뭐라 그랬더라..
"저 샵 갈 거예요. 전여친 결혼식 간다고 하려고요."
이랬었지. 그때는 표정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믿을 만큼 진지했다.
그렇다고 나까지 빡세게 꾸미면 진짜로 데이트 같잖아.
"니트..? 아냐 너무 안 꾸민 것 같아. 목폴라..? 아냐 가뜩이나 부엉이처럼 목도 없는데 목폴라는 무슨.. 블라우스..?"
옆에 누구라도 있는듯 전매특허인 혼잣말로 옷을 골랐다. 이렇게 중얼거리면 해답이 꽤 빨리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였다. 그래, 블라우스가 좋겠어. 며칠 전에 쇼핑신이 강림해서 몇 개 구매해놓은 옷 중 블라우스를 꺼냈다.
하나는 너무 화려하고, 다른 하나는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너무 꾸미면 오바하는 것 같아서 심플한 블라우스를 골랐다.
색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카이블루다. 그냥 블루도 아닌 스카이블루.
비교적 빨리 고른 옷까지 완벽했고 화장도 잘 먹었다.
신호등도 딱딱 바뀌고 내 생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이제 막 약속장소에 도착할무렵 비극이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왜 겨울에 얼죽아를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다. 차가움으로 덜 깬 잠을 깨워준다던가, 강제로 아이스버킷챌린지를 체험하게 해줘서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정도?
"세탁비 드릴게요!"
"괜찮아요..! 실수인데요 뭘."
그분은 생각보다 착한 사람이었다. 내 손에 세탁비를 쥐어주고 바쁜지 다급하게 빠른걸음으로 사라져버렸다. 마지막까지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까지 숙이며 말이다.
그래. 너무 운이 좋다 했어. 그래도 돈이 생겼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재욱이한테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남겨주고 서둘러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 그럼 저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어야 한다고..?
따질 시간이 없어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숨차게 뛰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어 왔어?"
누가 봐도 나 오늘 꾸몄어요 하는 패션이었다. 평소엔 맨투맨, 후드티처럼 편한 옷만 입었는데 이렇게 꾸미니까 다른 사람 같네.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맡아지는 향수 냄새에 깜빡하고 향수를 안 뿌린 게 생각나 소매를 킁킁거렸다.
바디로션향 밖에 안 나네. 아 향으로 지기 싫은데. 그렇다. 이상한데에 승부욕이 있다.
"늦은 이유를 말하자면 긴데 일일이 말하면 변명처럼 들리니까 그냥 사과만 하겠습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그래그래 사람마다 다 사정이 있는 거지."
까먹었을 줄 알았는데 다 기억하고 있었네. 기억력 좋아 아주.
"반말 잘하네? 이 날만을 기다렸나 봐?"
"그래도 한 번 들어는 줄게. 무슨 일인데?"
"아이스버킷챌린지를 하고 왔습니다."
"묻지 말 걸. 정말 말도 안 되는 변명이네?"
"누가 나한테 커피를 쏟았어.. 그것도 아이스를! 이 겨울에!!"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하지? 오늘 가뜩이나 추운데 옷만 갈아입고 나왔을 거 아니야. 그 새끼는 쏟아 놓고 그냥 튀었죠? 인상착의 말해봐요"
"..진정해. 그분이 세탁비도 주고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도 숙였단 말이야.."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가 그렇게 화나는지 인상을 잔뜩 구긴 재욱이의 미간을 속으로 꾹 눌러주었다.
내 행동에 지도 어이가 없는지 입을 가리며 웃는 거다. 그래 웃으면 이렇게나 예쁜데..
"근데 오늘 왜 평소랑 다르지? 뭔가 다른 것 같은데."
"재욱아 넌 평소랑 뭔가 다른 게 아니라 그냥 달라. 풋풋한 대학생 같더니 오늘은 소개팅 나온 사람 같네?"
"소개팅 많이 해봤나 봐."
"꼬투리 잡지 마."
이번에는 대체 어느 부분에서 기분이 상한건지 불어터진 만두마냥 퉁퉁 불어서는 날 아니꼽게 쳐다본다. 순간 난 허리를 숙이며 사과라도 할 뻔했다. 넌 날 눈치 보게 하는 아주 당찬 사람이야.
"배고프다.."
"배고파? 얼른 갈까?"
"와.. 갈까? 갈까아?"
"뭐 문제 있어? 갈까라는 말이 별로면 갈래? 가자. 다 준비되어 있는데."
"...가자 좋네요 과자 같고."
"그래, 그럼 가자."
재욱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반말을 술술 내뱉었다. 하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늦으면 너가 사장하라는 말 같지도 않은 제안을 해가지고..
"자."
"..이게 뭐야?"
"뭐긴 뭐야 핫팩이지. 오늘 춥잖아."
"어휴 고맙습니다요 어떻게 이런 것까지 소인을 위하여 챙겨주시는지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요..!"
"아니 사장이 되라고 했잖아요. 왜 내가 신분 상승을 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핫팩 고마워. 너는?"
"저는 추위 안 타서 괜찮아요."
"너 귀 되게 빨개. 곧 똑떨어질 것 같은데 진짜 괜찮아?"
"사장님이랑 있으니까 따듯한데요?"
"...응? 그, 그래.. 내가 인간 핫팩이구나.."
드디어 음식점에 도착했다. 카페에서 가끔 배달을 시켜 먹은 적은 있다. 바빠서 서로 교대 형식으로 먹느라 마주 앉을 시간도 없었는데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먹으려니까 은근히 어색하다.
"그러고 보니 너랑 한 번도 회식을 안 했더라. 뭐 둘이서 회식하기도 웃기긴 하지."
"저희 데이트하는 거라니까요?"
"혹시 데이트 뜻이 변질됐어?"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그 데이트 맞는데요?"
"내가 어떤 데이트 생각할 줄 알고?"
"서로 알아가는 단계?"
"와.. 재욱아 너 많이 뻔뻔해졌구나? 왜그러는데 도대체.."
"왜 그러긴요. 사장님도 형 좋아하면서 저는 누구 좋아하면 안 돼요?"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내가 누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재욱이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었는데 마침 내가 옆에 있어서 당첨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어느 부분에서?
"갑자기 왜..?"
"저는 티 냈는데 사장님이 눈치 못 챈 거잖아요."
"언제부터..?"
"한 3년 전부터?"
"나를 알았어?? 알고 있었다고??"
"네. 제가 알바하던 호프집 단골이었잖아요."
"호프집? 아 전에 살던 거기!?"
"네 거기."
"...헐 그 도도술술라라술?"
내가 이 곳으로 오기 전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곳이었다. 집 떠나와 개고생 중인데 재욱이도 개고생 중인가 보다.
여기 꽤 먼데?라고 생각을 스친 순간 재욱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주변에서 자취한다고 했지.
"아 순간 너무 놀랐네. 우리 인연 대박이다.. 근데 집도, 대학도 먼데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됐어?"
"안 왔어요. 저 계속 거기 살고 있는데요?"
"여기 주변에 자취 하는 거 아니었어?. 분명 면접 볼 때 그랬었는데..?"
"집 멀면 저 안 뽑아 줬을 거잖아요."
"난 너 인스타감성으로 만들어준다고 해서 뽑은 건데? 그게 제일 임팩트가 컸어."
"여기 다니려면 뭔 말을 못 하겠어요."
상상도 못한 정체.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고 재욱이를 보는데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남들은 유난이라고 하겠지만 저한테는 왕복 3시간 걸려도 좋을 만큼 간절해서."
"호프집 단골이라서? 너 혹시 거기 아들이었어..?"
"그 호프집 사장 기억 안 나요?"
"아 그 미친놈!!? 혹시 너가 그 알바?"
**
내가 그 호프집 발길을 끊은 건 순전히 사장 때문이었다.
손님들한테는 한없이 착한 사장이었다. 서비스도 주시고 서글서글하게 웃어주셔서 사람들한테 평판도 좋고 한 번 왔던 손님은 영원히 단골로 남는 그런 호프집이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었지.
어느 날 취기가 올라 바람도 쐴 겸 밖에 나와 술을 깨고 있는데 호프집 옆 골목에서 누군가 손찌검을 하고 있는 거다. 일방적으로.
혹시 몰라 증거를 남기기 위해 비틀거리며 동영상을 찍었다. 조금 흔들렸지만 확인해보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 날따라 무슨 정의감에 휩싸였는지 모르겠지만 난 겁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만!!!!!!"
"..."
내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멋진 모습은 상상 속에만 남았다. 난 술 취하면 젤리 다리였고 어렵게 잡은 사장 팔이었지만 뿌리침에 의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당신 뭐ㅇ.. 어, 손님..!!!?"
"..괜찮아요!?"
내가 바닥과 인사했을 때 그 알바생은 뛰어와서 날 일으켜 주었다. 사장도 뒤늦게 다가와 다친 곳은 없나 살펴봤지만 난 지금 상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애를 때려요 감히!!!"
"..아, 이 녀석이랑 아는 사이입니까? 일단 제 얘기 좀 들어ㅂ"
"듣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고소할 테니까 콩밥 먹을 준비나 하십셔!!!"
"안 돼요.."
경찰을 부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가 날 말렸다. 돈이 급했다고 했나? 제발 신고하지 말아달라며 시골개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는데 너무 안쓰러운 거다.
"증거 다 있으니까 각오해!!"
잔뜩 꼬이는 발음에 최대한 집중해서 끝마치고 그를 데리고 그곳을 벗어났다.
"아프겠네.. 사장이 자주 그랬어요?"
"..아!"
"미안해요!! 살살 발라줄게요."
많이 아픈지 내 팔을 꼭 부여잡고 아파하는 그였다. 다시금 정의감이 불타올라 바르다 말고 호프집으로 다시 가려는데 내 팔은 붙잡고 다시 앉히는 그에 의해 다시 앉아 화를 삭혀야만 했다.
"앞으로는 참지 마요. 그런 새끼는 좀 맞아야 돼."
"..."
"왜 그렇게 봐요?"
"좋아서요. 남이 해주는 걱정."
"걱정 마요. 제가 다 해결해 줄게요."
"해결해 주기 전에 제가 걱정할 일도 안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그에 난 고백이라도 받는 줄 알았다. 그는 연고를 열어 내 무릎에 발라주더니 호하고 바람까지 불어주었다.
그 와중에 다쳤네 김여주. 대단하다.
"앞으로 나서지 마요. 위험해요."
"그래도..!"
"나설 거면 저 불러요. 그때는 제가 맞서 싸울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웃어요..?"
"너무 착해서 못할 것 같아요. 눈빛이 너무 착한데요?"
"오늘부터 복싱 배울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사장은 급여도 밀리고, 손찌검까지 했던 악질이었다.
결국 영상으로 협박해 여태까지 일했던 급여와 합의금까지 요구해 그에게 안겨줬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커뮤니티에 글까지 써서 그 호프집은 몇 달 안 가 망해버렸다.
그 집 골뱅이무침은 잃었지만 악덕사장 일자리도 잃어서 속이 후련했었지.
**
"와 그걸 기억해?"
"왜 그 이후로 연락 안 됐어요?"
"폰이 망가져서 연락처가 다 날아갔거든.."
"아, 그래서 번호도 바뀐 거였어요? 저는 일부러 제 연락 피하는 줄 알고.."
"아냐. 연락을 왜 피하겠어."
아니 이거 드라마인가?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을까?
어쩐지 처음 면접 보러 왔을 때 저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냐며 말을 걸어오더라. 그 때는 그냥 나 닮은 사람이 전국 곳곳에 심어져있구나 하고 넘겼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비밀인데요?"
"재욱아 내가 왜 카페 차린 줄 알아?"
"비밀이라 하시려고요?"
"... 어떻게 알았지..? 역시 날 너무 잘 알아.."
"이제 제가 사장님 좋아하는 거 믿는거죠?"
"어? 어.. 믿지..!"
"근데 왜 그 형한테 빠져있냐고요. 그 형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요?"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왜 이렇게 맛있냐."
우적우적 먹었다. 체한다며 천천히 먹으라고 에이드를 밀어주는 재욱이에 더 체할 뻔했다.
이런 친절 그만이야.
"혈액형은 뭐예요?"
그때부터였나..?
질문 공세가 시작된 게.
"좋아하는 노래는요?"
"요즘 취기를 빌려 좋더라."
"아 빌려볼까.."
"제발 들리는데서 그런 말 좀 하지 말아 줄래..?"
"그럼 언제 해요? 전화로 해야 하나."
"..우리 이제 어디 갈까?"
"취기를 빌려 좋아하는 거 보면 웹툰 보나 봐요?"
"놓쳐서 한 번에 몰아보는 편이야."
그 후에도 재욱이는 많은 질문을 했다. 취미, 좋아하는 영화 장르,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등등.
호구조사를 끝마친 재욱이는 이제 슬슬 나가자며 일어났다. 면접 보러 나온 것 같아요.
**
다들 그거 알까? 요즘 코로나 때문에 갈 데 없는 거.
근데 그것도 알까? 오늘 겁나 추운 거. 그래도 무작정 걸었다. 그냥 무작정 말이다.
"사장님은 연상연하 몇 살까지 가능해요?"
"6살."
"딱 나네."
"아...? 아!? 너 선호씨랑 띠동갑이야??"
"네. 이제 삼촌이라고 부르려고요."
"너 그러면 내가 조카라고 부른다?"
"와 이 와중에 형 편드는 거 봐. 진짜 싫어."
진짜 신기한 게
23-29-35
우리는 6살 차이씩 난다.
앞으로 숫자 6만 보면 소름 돋을 것 같아. 난 앞으로 육개장 먹을 때, 육수 더 달라고 할 때, 육각수의 노래가 들릴 때까지도 소름이 돋을 것이다.
"맞다, 그래서 복싱은 배웠어?"
"아뇨. 태권도 배웠어요. 제가 저보다 한참 어린 꼬맹이들이랑 배우느라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요?"
"그래서 그 사이에서 일진짱이 된 거야..? 진짜 귀여웠는데.."
"지금도 귀엽다면서요."
"웃을 때 귀엽지."
".."
"다시 보니까 아닌 것 같아."
"이제 절대 안 웃어요."
"얼마나 안 웃나 보자. 바로 웃을 거면섴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안 웃었다. 웃안웃. 그는 고무처럼 질긴 놈이었다.
내가 드립을 쳐도 웃기는커녕 찡그리고, 내가 하는 말에 웃음기를 쏙 빼고 대답만 로봇처럼 해댔다.
"휴.. 내가 로봇이랑 데이트를 하나..?"
"데이트? 지금 데이트라고 했어요?"
"..아 이재욱 때문에 입에 뱄네.. 그놈의 데이트 진짜.."
"왜요 듣기 좋은데."
"와 웃는다고? 이 말에 웃어? 미치겠네 진짜.."
이마짚을 하며 재욱이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는데 익숙함이 무섭다고 우리 카페까지 걸어와버렸다. 카페에 왔다는 건 선호씨 꽃집까지 왔다는 말인데.. 왜 오늘 문이 열려있을까?
"오늘 형 문 열었나 보네."
"응?? 어디 가? 재욱아 돌아와..!!"
어제 뭔가 찝찝하게 헤어져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데 재욱이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꽃집으로 튀어갔다.
뒤를 따르며 천천히 가는 중인데 빨리 오라며 재촉하는 재욱이에 선호씨와 마주해버렸다.
"형 오늘 일해요? 저는 데이트 중인데."
"데이트?"
"네. 데이트."
왜 이렇게 가시방석 같지..? 차라리 꽃집이니까 장미 가시 위에 앉아있는 게 마음 편할 거다.
재욱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꽃을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저 오늘 누나한테 꽃 줄 건데 하나만 골라주세요."
"와 누나? 누나??"
"누나!!?"
꽃 줄 거라는 말도 잊고 누나에 사로잡혀 소리를 질러버렸다. 와 누나라는 말 왜 이렇게 어색하지?
"둘이 부쩍 친해졌나 봐?"
"네. 저희 예전에 인연이 있었거든요. 누나 전에 살던 곳에서."
"아.. 이재욱.."
"제가 말했잖아요. 뭔 말을 못 하겠냐고."
오늘따라 재욱이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선호씨였다. 마름 침을 삼키는 나를 보다가 재욱이에게 꽃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 꽃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걸로."
"누나 뭐가 좋아요?"
"나 대마초.."
"역시 남달라. 매력 있어."
"양귀비..?"
"형 해바라기 있어요? 해바라기가 첫 데이트에 딱 좋을 것 같은데."
내 말에 살짝 분위기가 풀린 듯싶다가 재욱이의 말에 또 분위기가 팍 가라앉았다.
마치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아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러시아에서 사우나와 밖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더 맞겠다.
"재욱이랑 데이트해서 좋겠네 아주."
"..아니, 그게 아니라.."
장난인 줄 알았던 재욱이의 마음이 진심인 걸 알아버려서 데이트가 아니라고 딱 잡아떼지도 못하겠다.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안타깝게도 해바라기가 없네."
"저건 뭔데요?"
"아, 저거 안 돼. 임자 있어."
우연이었을까. 나를 보며 말하는 선호씨의 또 심장이 쿵해버렸다.
재욱이는 보란듯이 임자 없는 곳에서 사야겠다며 대충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 그게.."
"다음 주 주말엔 저랑 해요 데이트."
"네?"
"불공평하잖아. 나도 기회를 줘야죠."
아니 이게 무슨.. 어버버 거리고 있는데 문을 열며 빨리 오라고 닥달하는 재욱이다. 다음 주 주말에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데이트하자고 새끼손가락까지 걸었다.
"싸인도..!"
"싸인?"
"복사도요!!!"
"복사까지? 이왕이면 코팅도 하죠?"
"좋아요..!"
"얼른 나와요!!"
싸인, 복사, 코팅 약속할 때 하는 거 다 하며 은근슬쩍 손을 잡는 중인데 재욱이의 성질머리에 그제서야 밖으로 나왔다.
와 다음 주 주말에 선호씨랑 데이트한다. 개행복해..
다들 분량 많다고 해서 오늘도 꽉꽉 눌러 담아봤습니da
근데 댓글 왜 이렇게 귀여워yo? 귀여움에 휴대폰 깨물어서 액정 나갈 뻔했잖아yo!!!!
귀염둥이덜 항상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