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에김선호는 반칙이지
그에게 표현을 한 번이라도 더 해줘야겠다. 표현을 안 하면 죽어도 모를 테니까 나라도 표현을 해서 티를 내야겠어.
그는 나에게 꽃을 주니까 난 나(친구)의 제빵학원 실력을 살려서 마카롱을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뭐부터 하면 돼??"
"마카롱 만든다고??"
"응. 하트로!"
"사랑이 밥 먹여주니.. 사랑은 밥 먹여주지 않아.."
"걔는 밥 먹여주지 않냐? 치아까지 닦아줄 기세던데."
"나 권태기인가?"
"올해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겨."
"진심이야. 나 진짜 진지해."
"나도 진지하게 웃겨."
나도 선호씨랑 권태기라도 왔으면 좋겠다. 아니지. 권태기가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선호씨랑 권태기 오면 난 인간도 아니야. 그때는 산 중턱에 집 짓고 속세를 단절하고 산다. 난 누굴 만날 자격도 없어.
난 월요일 아침부터 마카롱을 만들었다. 친구가 말해주는 대로 했는데 이게 뭐지. 도저히 하트라고 볼 수 없는 모양이 내 눈앞에 있는 거다.
"누가 먹다 뱉은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말 개 심해."
"이거 눌린 엉덩이야?"
"하트라고."
"다시 해 봐. 너 오늘 카페 출근 못할 것 같은데?"
말만 들으면 깐깐한 깐깐징어 같아. 못 만든 것도 열받는데 친구 말 때문에 더 열받네.
분명 짤주로 열심히 짜는데 원하는 모양이 안 나온다
친구의 시범을 따라 하는데 문제점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아 똥손과 금손 차이구나.
"야 너가 남자라 치고 썸녀가 이걸 ㅈ.. 잠시만.. 썸녀라고 했어.. 내가 썸녀라고 했다고..!!!"
"지랄 말고 내 말 들어봐. 난 이거 줘도 안 먹어."
"근데 모양은 구려도 맛은 있을 거 아니야."
"맞아. 맛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
그래.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마카롱 없다.
열심히 만들다 결국 하트의 축에라도 낄 수 있는 마카롱이 완성됐다. 열심히 포장 중에 어제 데이트는 어떻게 됐냐고 묻는 친구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방귀 꼈어???"
"아니. 그거보다 심각해."
"더러워.."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밖에 못 하냐곸ㅋㅋㅋㅋㅋㅋ"
주말에 있었던 얘기를 해주니 나보다 더 놀라 내 등짝을 때리며 난리를 치던 친구는 곧 진지하게 말을 내뱉었다.
"걍 두 명이랑 사귀면 안 되냐? 나였으면 둘 다 안 놓쳐"
친구가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돌려서 말해줬다. 욕 오지게 먹어서 오래 살라는 거잖아..
"근데 너 오늘 카페 안 열어??"
시계를 보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미쳤네, 미쳤어. 마카롱을 몇시간 동안 만든 거야.
하지만 난 카페 문 여는 것보다 선호씨를 보는 게 더 급했다.
**
막상 선호씨 얼굴 보니까 속으로는 잘만 되던 주접이 1도 안 나오는 거다. 왠지 더 어색해진 것 같고 오늘따라 선호씨는 더 잘생겼고.. 귀엽고.. 눈부시고..
정말 자연스럽게 들어가 카페에 장식할 꽃을 찾는 척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자마자 꽃 봐요? 저 봐야죠."
"아 거기 계셨구나. 저는 선호씨가 꽃인 줄 알고 한참을 찾았네."
"와.."
"..."
"오늘 왜 늦게 왔어요?"
"아 맞다! 이거요."
방금까지 열심히 만들어 온 마카롱을 내밀었다. 종이 백 안을 열어 뭐가 들었는지 확인해본 그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 마카롱 맨날 만들어야 하나. 저 미소 보려면 맨날 만들어야겠어.
"이거 뭐예요?"
"이거 제가 선호씨 생각하면서 아침 일찍부터 만들었어요."
"와 하트네?"
갑자기 선호씨가 카운터 쪽으로 가더니 꽃을 들고 왔다. 심호흡을 한 후 망설이다 꽃을 내미는 선호씨에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단지 꽃을 줘서? 아니다. 무려 해바라기다.
"해바라기씨 여주 받아요."
"아니 선호씨가 한 술 더 뜨시넼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왜 해바라기를 저한테..?"
"임자 있다고 했잖아요."
"네!?"
"그냥 그렇다구."
아침부터 놀라게 하네.. 간질간질한 마음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향기 맡아보겠다고 가까이 다가온 그에 의해 난 한 발자국 물러나버렸다.
아, 아까 말했다시피 난 표현을 주구장창 할 것이다.
"불쑥불쑥 그렇게 다가오지 좀 마요!!"
"...부담스럽습니까?"
"떨린단 말이에요..!!!"
"아 떨리는구ㄴ.. 떨려요? 떨린다고요?"
"네..!! 그럼 이만 해바라기는 가보겠습니다!!!"
쪽팔려서 가는 거 아니다. 오픈해야 해서 가는 거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선호씨 또 보네요? 오늘은 모카 프라푸치노 안 드세요?"
"그때는 달달한 게 땡겨서요. 오늘은 달달한 걸 먹었더니 쓴 걸 좀 먹어야겠어요."
"그럼 에스프레소 어때요?"
"..쉬운 거 주는 거죠?"
"들켰다.."
"그럼 편한 걸로 주세요."
장난친답시고 에스프레소로 찍고 아아를 만들어주었다.
진짜로 에스프레소 주는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그에 난 얼굴을 쓸어내리며 마른 세수라도 할 뻔했다. 잘 참았어.
"어제는 잘 들어갔나? 뭐 잘 들어갔겠지만 궁금해서요."
"어휴 말도 마요.. 재욱이 보내겠다고 버스정류장까지 가줬거든요? 딱 도착했는데 집 데려다주겠다고 다시 저희집으로 갔다니까요?"
"그 수법 좋은데? 배워야겠어요."
"배워서 어디에 써먹으시려고요?"
"아마도 이번 주말에 써먹지 않을까요?"
아니 이로써 느낀 건데 우리 쌍방이야..? 내 다짐을 선호씨도 함께 한 건지 우리 둘다 거침이 없다. 누가 보면 배틀하는 줄.
"근데 선호씨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여기 오시면 꽃집은 누가 봐요?"
"그냥 문 잠그고 와요. 번호 붙이고 와서 괜찮아요."
진짜 웃긴 게 꼭 이런 말 하면 전화가 걸려온다. 황급히 나간 선호씨의 뒷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봤다.
그러니까 하나로 합치자니까요..
**
"안녕하세요."
"..왜 이렇게 웃어?? 좋은 일 있어?"
"웃는 게 좋다면서요."
"귀엽다고 했어."
"그게 그거죠 뭐."
역시 만만치 않은 녀석이야. 쉽게 봤다가 큰코다치겠어.
"이건 뭐예요? 문어 모양인가?"
"문어라고..? 이게 어떻게 문어로 보여..?"
망친 꼬끄들을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왔는데 재욱이가 문어란다. 나원참 눌린 엉덩이까지 이해하겠는데 문어라..
"하트인데.."
"아 다시 보니까 하트네."
그때 카페에서 애쓰지 마요 노래가 울려펴졌다. 그 덕분에 둘이 터져서 미친 듯이 웃고 있다.
아니 타이밍 뭐냐고ㅋㅋㅋㅋㅋㅋ
"애쓰지 말래 재욱아ㅋㅋㅋㅋㅋㅋ"
"노래 눈치 없네.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거 먹을래?"
"이거 뭔데요?"
"친구한테 배워서 만든 거야. 맞다, 여기 표정 그린 것도 있어."
"우는 거예요?"
"웃는 건데..?"
"아 웃는 광대인가 보다."
"난 오늘도 니 앞에서 웃는 광대..."
하나를 들고 요리조리 둘러보다가 먹더니 고개를 갸웃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맛은 안 봤는데 선호씨도 지금쯤 갸웃하고 있을 것 같아서 심히 걱정된다.
"뭐지 이거."
"별로야..?"
"산 거죠?"
"에이 재욱이도 참! 그렇게까지 칭찬해 줄 필요 없어~!"
"너무 인공적인데?"
"나가."
"ㅋㅋㅋㅋㅋㅋㅋ농담이에요. 저희 마카롱 팔아도 되겠어요."
"진짜??"
"또 좋아한다. 역시 단순하다니까."
뭐지 왜 내가 놀아나고 있는 것 같지?
맛은 봐야 하므로 하나 먹어보는데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맛이 없진 않은데 특유의 쫀득함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냥 친구한테 반죽 부탁할걸..
"진심으로 제가 먹었던 마카롱중에 제일 맛있어요."
"혹시 오늘 마카롱 처음 먹어봐..?"
"저 항상 힘들 때 마카롱 먹거든요? 엄청 많이 먹어봤는데 비교가 안 될 만큼 맛있네요."
"헐 재욱아 힘들 때가 나와서 말인데 오늘 카페에 애정이라도 담을 겸 대청소할 거야."
"..네?? 아니 여기서 갑자기 대청소가 왜 나와요?"
누누이 말하지만 내 생각은 마인드맵처럼 뻗어나간다.
선반도 더럽고, 재욱이가 준 장식품들도 먼지가 쌓여버렸다. 보이는 곳만 청소하고 구석은 신경을 못 쓴 것 같아서 싹 청소를 해야겠다.
내 말에 준비라도 하듯 라텍스 장갑을 끼는 재욱이에 나도 비장하게 장갑을 꼈다.
"뭐부터 할까? 일단 유리부터 닦을까?"
"제가 할게요. 사장님은 여기서 손님 받으세요."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 뭘. 내가 닦을 테니까 너가 손님 받아줘."
"힘든 건 저 시켜요."
"손님 받는 게 더 힘들어. 나 유리 닦을 거야."
유리세정제와 스퀴지를 들고 밖을 나왔다. 뿌리고 닦는데 한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 유리 위쪽이 너무 높네..
까치발을 들다 더 이상 안되겠어서 재욱이를 부르려는데 누가 스퀴지를 가져가서는 열심히 닦아주는 거다.
"때마침 나오길 잘했네."
"선호씨!!?"
위에만 해줄 줄 알았는데 선호씨는 아주 꼼꼼이 모든 유리를 닦고 있었다.
뺏으려고 다가가도 스퀴지를 높게 드는 바람에 내 키로는 택도 없었다.
"얼떨결에 선호씨 청소 시키네."
"저 청소 잘해요. 집에서도 제가 다 치우거든요."
"와 1등 신랑감.."
"그리고 저."
"그리고?"
"아기도 잘 봅니다."
그 말에 순간 민망해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잔뜩 올라온 입꼬리와 광대를 숨기는데 아니 뭐 그냥 아기를 좋아해요.. 하며 수습을 하는 거다.
수습 금지. 뱉은 말 책임지기.
"사장님 대청소하신다면서요. 청소는커녕 아주 깨를 볶고 계시네."
"오늘은 누나라고 안 하네. 너가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구나?"
"..카페 벗어나면 바로 누나라고 부를 거거든요."
"테이블에 있는 해바라기 봤어? 그거 내가 준 건데."
"그거 임자 있다면서요."
"응. 임자한테 줬잖아."
둘이 알게 모르게 튀기는 스파크는 나의 세정제 덕에 날아가 버렸다.
창문에 세정제를 뿌리자 바람에 날려 사방에 흩뿌려졌고 다들 피하기 바빴다.
"어휴 창문이 왜 이렇게 더러워."
"사장님이 들어가세요. 제가 이거 할래요."
"그래."
이 둘 사이에 껴있는 게 너무 불편했다. 세정제를 건네주고 안으로 들어와 심장을 부여잡았다.
아니 다들 왜 그러세요..
**
대청소는 끝이 없어요. 집에서도 대청소하면 하루가 훅 가듯이 카페에서도 대청소하니까 시간이 훅 간다.
"이번에는.. 선반 해야겠다."
"사장님."
"응??"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오늘은 청소 잘하는 남자가 좋아."
급 팔을 걷어부치고 선반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둘씩 꺼내는 재욱이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 사람이 왜 이렇게 투명하냐고ㅋㅋㅋㅋㅋ
선반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닦고, 닦고, 또 닦고.. 눈물도 닦고, 콧물도 닦고...
"오늘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며칠 동안 못 잤는데 푹 자겠네."
"왜 자꾸 못 자고 그러는데요. 걱정되게."
"걱정 고마운데 불면증이 있어.."
"불면증은 무슨. 전에 12시간 잤다고 들은 것 같은데."
"딱 들켰잖아.. 너는 잘 자서 부럽다?"
"사장님이랑 데이트하는 날 못 잤다니까요?"
"그만."
"설레서요."
"그만..!"
그렇다. 재욱이는 한 번 속마음을 말한 후 불도저가 되었다. 재욱이에 비해선 난 굴삭기도 힘들겠어.
간신히 청소 끝내고 퇴근하려는데 오늘따라 둘이 나를 어지간히 괴롭게 할 생각인지 문을 열고 선호씨가 들어왔다. 둘이 안 마주치게 하고 싶어요...
"선호씨 오늘 정말로 자주 보네요."
"여주씨 퇴근 언제 해요?"
"저 이제 가려구요."
"같이 가요. 저 오늘 일부러 차 안 가져왔어요."
"헐 진짜요??? 오르막길 엄청 힘들던데.."
"여주씨 데려다주고 가니까 하나도 안 힘들던데요?"
풍년이다 풍년.
이제 막 퇴근하기 위해 앞치마를 잘 접어놓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누군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여주야.."
잠시만 얘가 왜 여기서 나와..?
"잠깐 얘기 좀 해."
"왜 이렇게 죽을 상이야..??"
"잠깐이면 돼."
"선호씨 잠시만요. 저 금방 올게요! 재욱아 나 간다!"
툭 치면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가득 차있는 눈에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제가 안 울렸어요.
먼저 나선 그를 따라나섰다.
과연 세종씨는 무슨 역할일ji..!!!
여주와 무슨 사이일ji..!!!!!!! 기대해주십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