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양이 어서 앉으라는 듯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쳤다. 정신을 가다듬고 조수석 자리의 문을 열었다. 방향제 냄새가 훅 끼친다. 자리에 앉고 문을 닫았다. 쑨양이 내 옆에 있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두근거렸다.
" 오랜만..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오랜만도 아니네요, 그쵸? "
' 아. 예, 예. ' 하고 대답했다. 정신을 반쯤 놓고 있어서 지금 뭐라고 하는지 귀에 잘 안들어온다. 나 방금 엄청 바보같았겠지..
" 나랑 있는데 왜 자꾸 딴 생각 해요, 태환? "
나 보고싶었다면서. 하고 입을 삐죽이는 그.
" 아.. 죄송해요. 근데 딴생각은 안했어요. 갑자기 당신이랑 옆에 있게 되니까 이게 꿈인가 해서.. "
자꾸 낯부끄러운 말이 쏟아진다. 쑨양이 씩 웃더니 핸들을 잡고 골목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지금 어디가는거냐는 내 물음에 그는 ' 카페. ' 하고 짧게 대답하곤 입을 닫아버렸다.
차 안은 그렇게 우리가 카페에 도착할때 까지 고요했다. 그 누구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것 같았다. 과연 내가 이 사람과 다시 가까워질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만큼이나.
" 왜 얼굴이 뚱해요? 좀 웃어요, 태환. "
" 네?.. 아.. 하하, 그렇게 보였어요? "
억지로 웃어보이니 쑨양이 내 앞머리를 쓱 쓰다듬고 근처 카페로 차를 댄다.
" 내려요, 태환. "
문을 열고 내렸다. 품에 꼭 껴안고 있었던 옷가지들을 조수석에 두고 문을 닫았다. 쑨양은 빨리 들어가자며 나의 곁으로 와 내 손을 잡고 이끈다.
" 아, 쑨양.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이거좀 놓고.. "
" 너무 정신없어보여요. 꼭 곧 길 잃을 것 처럼 멍 하잖아요, 지금. "
내가 왜 여기서 길을 잃어요! 여기서 산지가 몇 년인데- 하고 항변하자, 내 머리에 조심스레 꿀밤을 먹이곤 ' 그럼 정신좀 차려요, ' 란다. 그렇게 정신 없어보이나..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로 카운터로 가 쑨양이 내 의사도 묻지 않고 ' 아메리카노 두잔이요- ' 한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대충 구겨져있는 5만원 권을 잘 펴더니 ' 잔 돈은 굳이 안주셔도 되요. ' 하고 다시 날 끌고 창가 자리에 앉는다.
" 나도 지금 엄청 서두르고 있는거 보이죠? "
" 네. "
" 하하, 사실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
시간? 무슨 시간이요?
" 저, 곧 있으면 다시 중국가요. "
" 네? 그게 무슨... 왜 갑자기.. "
그래서 작별인사 하려고요. 하면서 밝게 웃는 그. 그래. 내가 생각 한 대로 될리가 없지.
" 목요일 비행기예요. "
" ..... "
" 지금 짐 싸고 있다가 나온거예요. "
" .. 아. 그러세요. "
나한테 계속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는데, 종업원이 테이블에 아메리카노 두 잔을 올려놓고 휙 가버린다.
그것을 신호로 쑨양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와 주실수 있으세요? "
심장이 두근거렸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그의 눈을 보았다.
" 공항에, 와주세요. "
" 무, 물론. 물론 갈게요. "
자꾸 말이 더듬어진다. 갈게요, 갈게요를 반복하는 날 보더니 살풋 웃는 쑨양이다. 다행이라고 중얼거린다.
" 싫다고 할까봐 무서웠어요. "
" ... 제가 그러지 않을 거란거 알잖아요. "
" 사람 일 모르는거죠. "
어깨를 으쓱하며 또 환하게 웃는다.
" .. 몇시에, 어디서 만나죠? "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아메리카노를 한 입 정도 쪽 빨더니 고개를 갸웃 하곤 그 컵에 시선을 고정 하고 말했다.
돌아오는 그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 비밀이예요. "
" ..그럼 어떻게.. "
" 전 와달라고 했지, 만나자고 하진 않았어요. "
개구쟁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데, 일부러 내 속을 애태우려고 부른건가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했다.
" ....전 말장난 하려고 만난게 아닌데요, 이러실거면 그냥 저 가보겠습니다. "
입술을 꽉 깨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때, 쑨양이 얼른 내 손목을 잡고 진지한 얼굴로 얘기한다.
" 태환. 앉아 봐. "
" ... 진짜, 나한테 왜그러시는데요? "
떠나려고 마음 먹을쯤이면 어느샌가 다가와서 헤집어놓고.
정리 될 때 쯤이면 또 나도모르게 접근해서 다시 엉망으로 해놓고.
이제는 제가 떠날게요, 집착 안할게요.
저번에 제가 했던 말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취소할게요.
중국? 안녕히 가세요, 더 이상 잡고 싶은 마음이 없네요.
무슨 정신으로 저렇게 말해버린걸까,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내가 그에게서 손을 뿌리치고 등을 돌린 후였다.
" 태환, 잠깐. 내 말 들어봐. "
하면서 다시 날 잡는 그를 살짝 돌아보니, 쑨양이 무릎을 꿇고 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곧바로 우리에게 쏠렸다. 순간 당황해서 왜이러냐며 그를 잡고 일으키려는데 그는 꿈쩍도 않고 나에게 말한다.
" 당신이 아직도 날 믿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난 당신 사랑해. 이제 더 이상 맘에도 없는 소리 못하겠어. 사실 너한테 도망치려고 항공권도 급하게 끊은거야. 목요일에 공항에서 우리가 한번이라도 마주친다면, 한번이라도 연락이 닿는다면.. "
' 당신에게 정식으로 고백할게. ' 한다. 그리고 뒤이어 ' 이 핸드폰도 내일부로 해지될거야, 이제 우리 연락 못해. 순전히 우리둘의 운이랑 인연으로 만나는거야. ' 라며 다시 또 내 속을 헤집어놓는다.
" 뭐지, 저 사람들? "
" 저기서 무릎꿇고 뭐하는거야? "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빠져나가는게 급선무같았다.
" 쑨양, 빨리 일어나. 나가서 얘기해 우리. "
쑨양을 끌고 카페를 나와버렸다. 사람들이 수근거리며 ' 깜짝 이벤트인가? ' , ' 뭐야, 연극이야? ' 하며 우리를 쳐다본다. 갑자기 확 더워졌다. 머리를 위로 쓸어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화가났다. 이 또한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어려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 대답해, 박태환. "
" ....할게, 할거니까.. "
거짓말이 아니라고 한번만 말해줘.
쑨양이 내 입술에 짧게 키스한다. 그리곤 가볍게 웃으며 어떻게 해야 믿겠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 ....먼저 갈게요. "
그대로 쑨양을 지나쳤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 뒷모습을 계속 보고있는 것 같다. 그의 시선이 계속 느껴진다. 결국 우뚝 멈춰서서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쑨양이 계속 날 바라보고 있다.
" .. 갈게요, 공항. "
쑨양에게서 여지껏 본적 없던 정말 환한 미소를 보았다. 잘가라는 의미로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도 조용히 손을 흔든다.
다시 앞을보고 걸었다.
" ...좋은걸 어떻게 해. "
또 뒷통수 맞아도, 좋을거같다.
환한 쑨양의 얼굴을 보았으니까.
" 만났으면 좋겠다, 공항에서. "
나한테 그런 운명같은 일이 벌어질까.
+
에휴
내일 또 학교에 가네요 ㅠㅠㅠ
우리 학생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