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02: 츤데레 복숭아의 매력.
W. Bohemian Heal
***
권순영이 준 감기약을 삼키고 지독한 졸음이 어깨를 짓누르고 눈꺼풀이 반쯤감겨 눈이 뻐근해져왔다. 몸은 어느새 지루한 수업에 몸이 자꾸만 흔들려오자 귓가를 찌르는 따가운 국어선생의 목소리에 나는 결국 몸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수능 끝나고 수시 끝나면 다니? 누누히 학생의 본분을 잊으면 안된다고 이야기 했는데 무시하는 거니?"
반박도 하기 어려운 비몽사몽한 졸음과 동시에 지끈거리는 머리가 마치 수십키로의 돌덩이로 뇌를 내려치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이마에 맺히며 얼굴선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고, 오늘따라 기분이 바닥이라며 아침부터 히스테리 팍팍 부리던 이 선생은 도저히 멈출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들 교실은 뜨끈한 히터바람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는 상황에 보기좋게 걸린 나를 보고 잠을 깨고 있었고 정적 속 국어의 윙윙 거리는 목소리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이제 슬슬 제 화에 못 이겨 분풀이 대상이 되어가던 찰나 내 손을 살짝 쥐어잡는 권순영은 내 상태를 잠시 확인하더니 낮은 언성과 함께 반대편 손을 번쩍 들었다.
"얘 아픈데요"
정적과 오직 카랑카랑 국어의 히스테리로 꽉 찼던 교실 내에 권순영의 목소리가 울렸고 무뚝뚝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제서야 선생님은 식은땀에 쩔어 떨며 서있는 내 모습이 보였는지 앉으라 한 마디 던졌고 내가 앉자마자 권순영은 제 셔츠 소매자락을 끌어와 땀을 닦아준뒤 교복마이를 어깨에 덮어주었다.
잠은 이미 달아나버리고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리다 못해 세상이 팽글팽글 돌았다. 수업을 파하는 종이 치자마자 교실을 나가버리는 권순영, 그 다음 교시가 체육시간임을 알아챘다. 나쁜 새끼 그렇다고 그냥 나가버리냐
"야 체육이야. 일어나"
"아 좀만 누워있자.... 나 진짜 죽을 거 같아"
"뭐야? ㅇㅇㅇ 아파? 헐 존나 대박사건이다. 수첩 줘봐 기록 좀 하게. 살았냐, 죽었냐"
"만지지마"
달려와 내 머리통을 수박 고르듯 두들기는 권순영2, 이석민의 손길에 욕지거리가 턱 밑까지 올라와 한바탕 쏟아내려는 차 손을 잡아채고 "얘 아프잖아, 그냥 냅둬" 한 마디와 눈 앞에 핫팩 세 개를 올려두고 교실을 나가는 권순영에 어디서 핫팩을 가져왔는지도 묻지 못한 채 주머니에 주섬주섬 챙긴 나였다. 매너 없는 샛끼라 한 거 취소한다 우리 순영아..
***
"ㅇㅇㅇ, 밥은 먹자. 밥 안먹으면 ㅇㅇㅇ가 아니지"
"아 꺼져.. 속 메스꺼워"
"약 먹었는데도 그래? 아 그래도 우리 토실이가 안 먹으면 안돼잖아"
"아 시발 안 먹는다고!!! 먹다 체해 뒤질 거 같다고!!"
너에게 핫팩 같은 훈훈함을 잠시 기대해서 죄송합니다. 존나 대국민사과각. 너의 그 진지함은 대체 어디 쓰레기통에 던진 거야, 내가 온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네 진지함을 찾아올테다. 어느새 엎드린 내 위에서 말도 안돼는 머리따기를 실행하며 급식을 먹으라 때를 쓰는 9개월 애새끼의 생때에 주먹을 쥐고 있으니 금방 나를 알아차렸는지 원우는 권순영을 떼어냈다.
"킬미힐미 찍어? 이번엔 초딩이냐. ㅇㅇㅇ, 야 외출증 끊었어. 골라"
권순영을 떼어낸 전원우가 내민 건 본죽 광고지였다. 죽종류로 가득차 눈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다 단호박죽에 손가락을 짚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갑을 든 채 교실을 빠져나갔다. 입을 쥐어 비틀고 싶은 이석민도 자리에 없었고, 꽤 많은 아이들이 점심시간이므로 교실을 비워 덩그러니 엎드려 차차 다시 쏟아지는 잠에 눈을 늙은 거북마냥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는 나와 내 앞 마주보고 어느새 전원우가 나가고 자리를 잡은 채 쥐도새도 모르게 잠에 든 권순영 뿐이였다.
"...야"
"졸린가"
밤을 정말 새운 건지, 미동이라곤 오르락내리락 안정된 들숨과 날숨 뿐 그의 눈꺼풀은 변동이 없었다. 조용히 네 눈가를 쓸어내리다 나 역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귓가에 들린 언제 한번도 들은 적 미미한 너의 저음.
"걱정시키지마. ㅇㅇㅇ"
권순영의 혼잣말이었다.
*
한참 자고 일어나니 눈을 뜬 공간은 교실 아닌 온통 백지 투성이인, 보건실 침대 위였다. 난 또 정신병원인줄. 물 먹은 솜이 되어버린 몸을 억지로 찬기 품은 왼쪽 벽을 짚고 일어나자 반대손에 걸리는 묵직함에 눈을 비벼 초점을 찾으며 묵직함의 근원에 시선을 옮기니 기절이라도 한듯 반쯤 엎드려 잠든 너의 모습이 보였다. 간호가 아니라 제 휴식을위한 핑계거리로 날 여기에 데려다 놨고만..? 나쁜 새끼. 권순영의 어깨를 툭툭 밀어도 좀처럼 깨어날 생각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그에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 나와 한 발짝 때자 내 손목을 움켜쥔 권순영에 화들짝 몸을 들썩였다.
"아, 깜짝이야!"
"다 잤냐? 뭘 또 이렇게 오래 자. 열은, 이마 대봐"
나 환자, 네가 오늘 약봉지도 쥐어줬는데 뭘 또 이렇게 거칠게 손목을 잡아채 당기는지. 이마 위에 올라간 너의 손은 내 뜨끈한 이마 덮어졌고 이내 손을 내 양 볼에 갖다대고 내 온도를 확인했다. "아직도 안 내렸네" 한 마디와 너의 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침대 위 수건을 챙긴 뒤 권순영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침대 밑칸에 던져두었던 내 가방을 제 왼쪽 어깨에 둘러맨 뒤 보건실을 나갔다. 밖은 컴컴했고, 야자가 없는 날이므로 학교는 조용했다. 순식간에 열을 식히는 찬바람만 두어개 열어 젖힌 셔츠 속속이 들어갔다 다시 나가며 부풀렸고 운동화를 구겨신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너의 뒤를 나는 총총이 따라 걸었다.
함께 들어온 집 안은 유독 오늘따라 싸한 느낌이었다. 꺼진 불빛과 따뜻한 온기가 나돌지 않는 이 집 안은 그 어느때보다 침묵에 절어 있었다. 내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 내 품에 안기고 조였던 넥타이를 푸른 뒤 거실 불을 켜며 권순영은 자연스레 저의 방으로 향했다.
"이모랑 아저씨 오늘 동반 모임 가셨데"
"언제?!"
"삼일 전에도 말했거든? 나 씻는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스케줄은 나만 모르나 보오... 셔츠 단추를 풀러내리며 저의 방으로 쏙 들어가버린 권순영에 나 역시 이층으로 향했다. 기침이 끊이질 않아 거친 기침 소리가 복도를 웅웅 울렸고 대충 교복을 벗어 걸어둔 뒤 나 역시 욕실로 향했다.
막 샴푸범벅이 되어 눈이 따갑게 아려와 물을 켜니, 졸졸 거리며 흐르는 물. 가뜩이나 저하된 기분에 스트레스를 얹어주는 너의 행동 덕에 목청 껏 일층을 향해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선수를 친 건 권순영 이 새끼였다.
"야 ㅇㅇㅇ!! 물 안 나오잖아!! 안 꺼?!!!!"
"아, 너 오늘 왜 이렇게 오래 씻는데!!! 대충 닦고 나가!! 나 눈에 샴푸 들어갔다고!!!!!"
"아..이 쓸모없는 기집애 진짜... 아 빨리 씻어!!!!"
"아 닥쳐!!!!"
어느 집 안이건 양 쪽으로 수도를 쓰게 되면 나누어 물이 흘러 수압이 현저히 저하되므로 계단을 사이에 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우리는 나의 거센 기침으로 막을 내림과 동시에 샤워기에선 다시 폭포수처럼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덜덜 떨며 물기 뚝 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둘둘 말은 채 일층으로 재빨리 내려가 욕실문을 걷어차자 시원한 욕지기와 물소리가 다시끔 들리기 시작했다. 동반모임이라면 새벽녘에 문을 쾅쾅 거리며 술에 거나하게 취해 들어오실 두 분의 모습이 뻔하다, 소파에 몸을 뉘이고 tv를 켜자마자 권순영은 욕실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28번 영화 예약했다. 딴 데 돌리면 죽어"
"꺼져, 드라마 봐야 돼"
"너 인터넷으로 보던 가. 야, 소파에 물기 떨어져서 다 젖잖아. 내려오던가, 수건을 새로 쓰던가. 아님 머리를 확 자르던가"
"야 너 진짜 환자한테, 죽을래?!"
우리는 여직 온화한 대화법을 모르는 미성숙한 미성년자임이 오늘로써 확인 되었다. 목소리를 가로막는 잦은 기침에 미간을 찌푸리자 너는 다 씻었는지 흰 반팔에 수건을 목에 걸고 내게 다가와 새로 꺼낸 수건을 내 머리 위에 덮어준 뒤 제 방으로 다시 쏙 들어가 버려 혼자가 된 거실 소파에 드라마가 시작되기 한 시간이나 남아 채널을 돌리며 프로그램을 살펴도 도통 시선을 끌어당기는 프로그램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흥미가 떨어지고 오늘따라 낯선 집 안 분위기가 싫어 권순영의 방문을 벌컥 열자 그는 놀랐는지 손에 든 파스를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제 가슴을 쓸었다.
"아 놀랐잖아. 왜"
"심심해"
"네 방에 휴대폰이 없어 노트북이 없어 뭐가 없어. 아, 내가 없구나?"
"죽여버린다. 진짜"
"나가. 파스 냄새 쩌니까"
그러게 누가 농구를 존나게 열정적으로 하시래. 궁싯거리며 문을 닫은 후 카펫 위에 쓰러지듯 누운 나는 도저히 할 거라곤 휴대폰 밖에 촉감으로 잡히지 않아 십여분의 시간을 휴대폰에 부여 하였을까, 권순영은 발목보호대를 찬 채 다가와 내 앞에 쭈그려 앉아 나를 건들기 시작했다. 툭툭, 툭툭, 툭툭툭
시발놈.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감정장애야 뭐야, 무반응으로 대응하는 나의 행동에 결국 내 양 팔을 힘껏 잡아당긴 너에 힘에 벌떡 일어나자 오늘 새벽 가깝게 마주했던 다락에서와 같게 입술 사이 몇 센티미터만 남기고 흔들거리는 몸이 겨우 멈춘 나는 깜짝 놀라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고, 장난스레 내 팔을 잡아당긴 권순영도 놀란 듯 눈을 동공이 확장 되고 내 팔을 놓아버렸다.
"....."
"...."
정적은 길었다. 내 사고회로는 정지되었고 권순영은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 중인지 알턱이 없었다. 흔들흔들 거리며 제 자리를 찾지 못하던 눈동자는 어느새 제정신을 다잡아 돌아왔고 먼저 움직인 건 권순영이였다. 네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나는 기침을 콜록 거렸고 너는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죽 해줄게. 기다려"
어색함을 무마시키려 한 마디 내뱉은 너는 부엌으로 향했고 나는 오묘한 기분을 떨쳐내고 네게 다가가 냉장고 한 켠에 기대 불린 쌀을 끓이는 네 등에 기대 얼굴을 묻었다. 특유의 시원하고 부드러운 향이 끼쳐오고 권순영은 내 머리를 톡톡 건들였다.
아마 이 순간에 나는 너를 다시 한번 다른 감정으로 네 옆에 서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그 언젠가 확실히 느꼈던 설명 불가한 감정으로 말이다.
**************
Bohemian Heal입니다. 불금을 즐겁게 즐기시라고 미흡하지만 열심히 써서 달려왔습니다! 여전히 순영이와 여주는 투닥투닥.. 9년지기다 보니 자주 틱틱거려 다소 거친 언행이 있어도 조금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저희 지역에는 비가 왔는데 어떠셨는지..ㅠㅠㅠ 감기가 다시 유행해여, 감기 조심하시구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