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속 안 좋아도 좀 먹지, 빵 있으니까 먹어"
"야 부승관 이 호빵맨 새끼야아아아아ㅏㅏ!!!!!!!!!!!"
"아 좀만 먹는다고! 진짜 남자숙소까지 기어 들어오냐?!!"
"닥쳐, 그거 당장 안 내놔?!!"
"....빵 어디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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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소녀
"아 짜증나! 어떻게 왔는데 일정취소야, 취소는!!"
-"비와서 그렇데잖아, 짐 다싸면 엘레베이터 앞에서 기다려"
"아무리 비가 와도 그렇지, 이게 뭐야"
권순영이 건네준 이어폰 덕에 늦게나마 잠들어버렸다 아침 깨 몸을 일으키니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오지 않았고, 대충 아침과 점심을 숙소 내에서 때운 뒤 한참을 회의와 전화를 반복하던 선생님들은 결국 일정취소를 내린 후 복귀를 결정해버렸다. 자유를 달콤히 맛본 게 이틀도 되지 않았건만 아쉬움에 옷가지를 천천히 개어 가방에 넣고 엘레베이터로 향하니 벌써 권순영은 복도에 기대 누군가와 통화 중이였다.
"네, 이모. 일기예보 떴는데 내일은 더 심해진다고 선생님들이 취소하셨어요. 네, 네. ㅇㅇ가요? 아마 배터리 없어서 꺼진 거 같아요, 술이요? 안 마셨어요. 그냥 잤데요. 네, 지금 여덟시니까... 근처 가면 제가 잘 데리고 갈게요. 네, 먼저 주무세요"
"엄마야?'
"어. 넌 이모가 전화를 주구장창 하셨다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받냐?"
"아 자면서 음악 듣느라 배터리 다 썼어. 그러니까 나 휴대폰 좀"
"아 싫어. 이어폰이나 내놔"
"아 권순여어어엉!!!!!"
앙탈이라 하기엔 좀 혐오적인 앙탈을 부리자 한숨을 내쉬며 내 가방을 채가 제 어깨에 맨 뒤 엘레베이터로 올라타 버리는 권순영에 등을 한대 치니 그제서야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네는 너였다. 낑겨탄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 차차 탑승을 시착한 반 무리들에 로비는 혼잡했다. 다들 아쉬운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고 북적한 로비의 사람들에 앞선 너를 따라가다 천천히 뒤처지니 어느새 몇번 까치발을 들어 너의 위치를 확인해야만 겨우 보일정도로 앞서버렸다. 키크다고 자랑하나 이 새끼.. 정문으로 거의 다 향할 때쯤 다시 네가 보이지 않아 까치발을 들고 기웃거리다 웅웅 울리는 휴대폰에 화면을 집중하고 들여다보다 갑작스레 앞으로 당겨지는 악력에 휘정이며 급하게 위를 올려다 보니 어느새 다시 너는 내 손목을 쥐고 앞에 서 있었다.
"성큼성큼 그렇게 걸어가면 내가 어떻게 따라가"
"깜빡했어, 너 다리 짧은 거"
"정신 가출하셨어요?"
"아 빨리 따라와"
우산이 없던 터라 버스가 서 있는 곳까지 어찌 가리, 마구 머리를 돌리며 하필 후드없는 옷을 입은 나를 자책하던 차 손목을 쥔 권순영은 내 머리 위로 조금 떨어져 손을 펴 비를 막아주며 나를 끌었다. 소매가 걷어올라간 내 손목을 잡은 네 손은 추운 바깥공기와 달리 따뜻했다. 참 뜬끔없는 일이였다.
언제나 잡았던 손인데 익숙한 촉감인데 네 손이, 내 머리 위 비를 막기 위해 손을 펼친 네가 나는 왜 다르게 순간을 느꼈을까. 그렇게 네가 이끌어 넋 놓고 발걸음을 재촉해 함께 버스에 올라탔을때, 나는 머릿속이 멍했다.
"하루종일 부승관이랑 뛰느라 졸릴텐데. 빨리 눈 감아, 한참 가야하니까"
"...."
"..야", 야 ㅇㅇㅇ"
"..응?"
"..자라고"
- 권순영 시점 -
유독 잠에 들지 못하고 오늘따라 눈을 부비며 뒤척거리는 너에 조용히 버스 환한 조명을 내리고 어둑하게 만들어도 차가운 창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일뿐 졸립지 않은 듯 했다. 자리가 불편한가, 비내리는 고속도로 위험성에 결국 맨 끝자리를 막아버려 비좁은 앞자리에 앉으려니 나 역시 여간 불편한게 아니였다. 어깨를 ㅇㅇㅇ 쪽으로 움직여 턱을 톡톡 두드리니 눈을 가렸던 소매를 떼어내고 날 흘끔 바라본 뒤 어깨에 기대는 ㅇㅇㅇ 전과 다르게 급히 숨을 멈추었다 작게 쉬어냈다.
".....자?"
어깨에 기댄지 몇분, 잠에 들었는지 답이 없었다. 괜히 ㅇㅇㅇ의 머리칼을 흩뜨렸다, 반응이 정말 없는 거 보니 진짜 자나보네. 창가를 거세게 때리는 빗소리가 버스를 메우는데 너는 들리지 않나보다. 아홉시를 넘어가자 버스 조명은 최소화 되었고 거의 모두 숙면모드였다, 아주 희미한 조명이 창가에 비추어 창을 보니 내 어깨에 기댄 네가 곤히 잠들어 새근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강제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은 채 조용히 네 이마에 아주 살짝 입맞췄다.
복잡한 감정과 잠든 졸업여행 끄트머리 순간은 어느새 흘러온 시간 위에 겹쳐 사라졌고 일상으로 돌아온 시간은 무료하기만 했다. 그렇게 모든 건 정상적으로 시계바늘 일분 일초 흐르듯 반듯히 그런 나날들로 달력의 숫자를 지워가고 있었다.
"무료하다"
"시간 비는데 지금 체육복 갈아입어"
"아 그래야겠네"
다시 돌아온 일상은 여전히 평범했고 여전히 다퉜고 여전히 아무 일이 없었다. 낙엽이 부스럭부스럭 밟히며 모두 명을 다해 길거리에 포개어졌고, 버스 안에서의 감정은 묻어버리기로 결정했다.
고삼이 기피하는 과목 중 가장 밉상인 과목을 하나 뽑아 합창하자면 단연 '체육'이다. 겨우 한 달 남은 이 고등학교의 시간 속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란 추운 바람 숭숭 들어오는 방 안에서 아침을 맞는 것과 맞먹게 싫었고 온몸으로 선생님께 완강한 거부를 부승관과 행위예술로 표현해보아도 선생님은 흔들림이 없으셨다. 추워 곧 얼어죽겠네, 더 궁싯거리기조차 질리는 터 강당으로 들어서자 냉기가 손을 꽁꽁 얼려왔다. 그리고 앞서 들어간 남정네들에게 누가 공을 던졌는가, 신발 밑창에 용수철이라도 달아 놓았는지 강당을 이리저리 뛰기 시작한 이들, 아주 살판났네.
"집합!!"
공기빠진 농구공에 멍멍이처럼 뛰어다니던 이들은 선생님의 호루라기에 달려오고 나역시 찬 바닥에 앉으니 타이밍 참 좋게 빵빵한 피구공 하나 던지며 다시끔 호루라기를 불었다. 이거 뭐 똥개훈련이여, 뭐시여. 무거운 몸을 일으켜 공간 안으로 들어가니 언제 귀찮아 했냐는 듯 공을 쥐고 신나게 날라다니는 부승관은 나를 손가락으로 정확히 짚으며 깐죽거리기 시작했다.
"저거저거 무거워서 움직이지도 못하네!! 으핰ㅋ하앜카핰핰"
"으그리 득츠"
"이리온! 오빠가 맞춰줄게!!"
제 얼굴만큼이나 빵빵한 볼은 꽤나 빠른속도로 나에게 날아왔지만 부승관과 도토리키제기 격인 체육실력이므로 절대 그의 공을 맞고 아웃될 확률이란 내가 권순영을 좋아할 확률보다 적었다. 한 발자국 옆으로 움직여 가뿐히 그의 공을 피하자 부승관은 제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통키의 영혼을 강당 한 가운데에 무릎 꿇은채 소환하기 시작했다. 쯧쯔, 고등학교 졸업하고 유치원입학할 놈일세. 한참을 설쳐대는 부승관을 무시하고 다시 시작된 경기, 생각보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니 열기는 뜨겁게 오르기 시작했다. 엎치락 뒤치락 전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호루라기 소리, 홀짝 피구는 짝피구로 바뀌며 짝선정부터 하라며 경기를 중지시켜버린 선생님이었다.
"손"
"선택 받은 거야? 나? 헐"
"그러게, 존나 헐이다. 헐, 야 최승철 딴 애로 해. 쟨..쟨 좀 그래"
"안물안궁. 그 주둥이 바늘로 한땀씩 정성껏 꿰어서 리본 묶기전에 닥쳐"
"어머 말이 심해"
부승관이 저짝 가서 날뛰니 네가 말처럼 달려오는구나, 어느새 곁에 다가와 속을 숟갈로 벅벅 긁는 이석민에 등 돌리니 시야에 들어온 건 아대를 차고 작은 키를 가진 저의 파트너와 웃으며 집업을 들고있는 권순영이었다. 작은 아이가 이야기를 하자 허리를 숙인 뒤 끄덕이는 권순영과 순식간 눈이 마주쳤을때 나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잠시 네가 앞에 서 있는 이 상황이 곧바로 눈을 피할만큼 또 한번 이상하게 나의 감정을 건들였다.
매번 갈라져 다투던 열기 가득한 피구경기가 다시 진행을 시작하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공은 이석민 손에 쥐어졌고 개손개발이라는 별명 값을 역시 톡톡히 해주며 손쉽게 상대편에 공을 기부하다 싶이 던진 너에 조소를 건네곤 다시 경기에 집중을 시작했다. 공은 권순영의 파트너에게 쥐어졌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체구에서 나오는 파워는 상상이상으로 재빠르게 나를 향해 날아왔고 피할새도 없이 몸은 움찔했다.
"아, 늦었음 맞을뻔했네.."
"..어?
머리쪽으로 향해 날아오던 공에 움찔한 몸이 한박자 느리게 피하려던 순간 길쭉한 팔로 공을 쳐내고 얼굴을 반쯤, 차마 덮진 못하고 앞을 가린 뒤 들리우는 저음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다름아닌 최승철이 놀란 눈치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어깨를 한번 쓸어 놀란 나를 진정시키며 저의 등뒤로 숨긴 채 손목을 꽉 붙잡은 최승철에을 따라다니며 다시 정신을 뒤늦게 차리기 시작한 나였다.
"부승관 야, 너 나와!!! 너 맞았거든?"
"아니거든? 여기 비디오 판독 해주세요!!! 아 나 아니라고!!!"
"너는 강당에서 경기하는데 카메라설치하고 그 앞에서 경기해? 여기가 무슨 올림픽, 아육대인줄 알아. 나가!"
"선생님 이건 좀 아닌것 같습니다."
"제가 파트너인데, 부승관 맞았어요. 야, 나가자"
"아 진짜!!!! 억울해! 점 찍고 부승순으로 나타날거야! 두고 봐!!!"
"어 그래. 승순아 기대할게"
부승관이 경기장을 나감으로 어느새 과열된 경기장 안, 역시나 권순영과 나는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팀씩 남겨놓은 상황이 마치 월드컵 4강전 관람처럼 시끌했고 집중되자 공은 내 옆을 순식간에 몇번이나 지나갔고 우연찮게 들어온 공을 들어올려 상대편에게 던지자 정확히 권순영은 작은 저의 파트너를 약간 저의 품으로 당겨 안으며 어깨로 막아냈다. 입안에서 쓴 카카오초콜릿을 문 듯 쌉싸름한 맛이 퍼졌다, 그동안 어쩌면 미루었을지 모를 변화가 또렷히 느껴지는 순간이였다.
다시 공을 쥔 권순영은 거침없이 우리쪽으로 공을 던졌다. 승부욕이였을까, 오기였을까. 가까스로 막은 권순영의 공은 내 손가락을 스치며 수어번 부딪혀도 멀쩡하기만 하던 손가락은 제대로 꺾여 큰 고통을 맛보았다.
"..아!"
네번째 손가락을 쥐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자 최승철은 거칠게 나를 돌려세워 손을 가져갔다. 마치 바닷가에서, 내 손이 뜨거움에 데여 기억조차 얼얼하게 남아버린 그 때처럼. 곧바로 억눌린 신음이 꾹꾹 닫힌 입술 새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였지만 마음이 뭉글뭉글 딱 마법에 걸린 날처럼 기분은 저하되고 괜시리 머리 위에 먹구름이 피어났다.
결국 무승부로 흐물흐물 끝나버린 경기, 복합적으로 마음이 땅바닥에 떨어져 걷어차인 딱 그 기분으로 벽에 기대어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는 네번째 손가락만 쥐고 벽에 기대앉자 최승철은 내 앞, 다가와 제 손에 들린 딸기우유를 열어 빨대를 꽂은 뒤 내밀었다.
"마셔"
"독탔냐"
"내가 부승관이냐?"
하긴, 그 놈과 많이 다른 놈이지. 팔 떨어지겠다며 강제적으로 손을 겹쳐 딸기우유를 손에 쥐어준 그는 내가 빨대를 무는 것을 보고나서야 손을 떼었다. 권순영이랑 비스무리하게 손의 온도는 약간 미적지근한 감이있었지만 따스했고, 권순영처럼 내 머리칼을 매만졌으며, 권순영의 버릇처럼 집업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주었다. 수업을 마무리하는 종이 울리고 학생들은 우르르 강당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 무리에 섞여 교실로 향하던 차 내 팔을 잡고 돌려세우는 힘에 위로 고개를 올리니 보이는 건 권순영이었다.
"손 좀 봐"
"많이 안 다쳤어, 팔 놔"
"보자고"
"놓으라고 했다"
"손!!"
"하지말라고!!!"
너도 나도 대체 왜이리 날선 목소리로 서로를 거부했는가, 정확하며 타당한 상황의 이유를 알아채기 힘들었다. 강제로 손목을 쥔 너를 뿌리치고 지나쳐 걸을 때, 그리고 내 옆을 지나쳐 걸어 너에게로 간 체육시간 내내 함께 있었던 그 아이에 나는 좀 더 걸음을 빨리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변화가 두려웠다.
What do I say We didn’t have to play no games
I should've took that chance I should've asked for u to stay
And it gets me down the unsaid words that still remain
- f(x) Goodby summ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