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안녕."
"오늘도 있네?"
"학원끝나면 이 시간이야. 집가려면 이 버스 타야되고."
"열심히 공부하네."
"못하니까 열심히 해야지. 오빠는 오늘도 훈련?"
"어. 매일 훈련이지, 뭐."
간만에 꾼 꿈이 옛날에 있었던 일이라니. 이제 이대훈은 기억도 못하겠지? 유명해졌으니까.
"이제 일어났어?"
"응. 근데 엄마 뭐해?"
"너 영국 간다며. 짐 챙겨야지."
"엄마 나 잠깐 놀러가는거지 거기에 살러가는거 아니야."
엄마는 김치에 뭐에 엄마가 싼 짐만으로 이민캐리어를 채우고 있다.
"괜찮아. 옷만 챙기고, 컵라면만 챙기면 되."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러네. 나 돈 조금밖에 없어서 딱 일주일 다녀오거든요?"
"그래 알았어."
"그리고 나 저 20인치짜리 가지고 갈거니까. 내가 알아서 짐쌀게 엄마. 응?"
"알았다."
혼자가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걱정이신가 보다. 캐리어에 옷 몇 벌, 컵라면 열개정도 넣으니 꽉 찼다. 신발도 한 켤레 넣어야지.
"엄마 저 다녀올게요."
"그래. 이상한사람 쫓아가지말고, 잘생긴 사람있다고 헬렐레 따라가지 말고."
"아우, 엄마. 나 20살이야."
"그러니까 걱정이지. 차조심, 물조심, 불조심, 사람조심. 알겠지?"
"네, 잘 알겠습니다."
친구랑 나는 우리엄마의 딸걱정을 듣고 비행기를 타러 들어갔다.
"우와, 확실히 면세점이..."
"빨리가자. 우리 엄마땜에 시간이 좀 빡빡해."
"그래. 가자."
13시간동안 몸을 이리뒤척이고 저리뒤척이다 도착했다.
"아, 진짜 지겨웠다."
"그러게 몸이 완전 찌푸둥해."
영국은... 우중충하고 냄새도 좀 나는 것 같고... 상상했던 유럽은 이런 곳이 아닌데...
"빨리 숙소 잡아둔데 가자. 피곤해 죽을 것 같아."
"그래, 가자."
예약해둔 유스호스텔은 생각보다 있을만 했다. 일층에는 펍처럼 해 둬서 저녁마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논다고도 한다는데.
"ㅇㅇ아 빨리와봐. 한국사람들끼리 모여서 한 잔 한다는데 우리도 끼자."
"넌 벌써 사람들하고 친해진거야?"
"내가 좀 붙임성이 좋지않니. 빨리."
친구를 따라간 테이블엔 세사람이 있다.
"어, 왔네?"
"네. 벌써 사람이 그리워져서요."
"하긴 그래. 다들 언제들 왔어?"
"저희는 오늘 도착했어요. 대략 세시간전?"
"나는 오늘 아침에. 그래서 경기도 하나 보고 왔지."
"아 경기보는게 문제가 아니라 돈이."
"아, 학생이니까? 둘 다."
"네. 알바를 얼마나 뛰었던지."
그렇게 낯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런상황에서 저렇게 잘 얘기하는 저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어느 경기보러가?"
"축구랑 태권도요."
"그것만?"
"다른거 보려고해도 이미 늦게 왔고, 이친구가 죽어도 태권도는 봐야된다고 해서 이렇게 된거죠."
"누구? 이대훈?"
"네..."
"어렸을적 첫사랑이라나 뭐라나."
"아는사이야?"
"아는사이라기보다는... 그냥 혼자 좋아한거예요."
"서로 얼굴은 알고?"
"인사정도 하고 그랬는데 제가 중학교때 일이라 다 잊어먹었을 걸요."
"오오, 그래도 의리있네 경기도 보러가네?"
"지금은 그냥 팬이예요."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피곤해져서 우리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며칠간 올림픽도 보고, 관광을 하면서 보냈다. 물론 이대훈의 경기도 봤다. 은메달은 안타까웠지만 멋있었다.
"이렇게 힘든데 뭐가 좋다고 왔을까."
"원래 여행은 계획짤 때랑 추억되새길 때만 좋은거야."
"아, 몰라. 다시 집 갈 생각하니까 비행기가 또 걱정이네."
"넉살 좋아서 별로 예민할 것 같지 않은 애가 잠자리는 또 예민해서는."
"어쩔 수 없어."
서로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하고도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왔다. 한국가면 한 번 보자는 말이지만 그게 다들 빈말인건 아니까. 뭐, 만난다면 좋겠지만...
이라고 생각했던게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길에서 만날줄이야. 진짜 우리들 인연이긴 한가봐."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너네 둘은 또 붙어있네. 많이 친한가봐?"
"그냥 고등학교 같은 곳 나오고 대학도 같은데 가다보니까 더 친해져서요."
올림픽보러 가서 만난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올림픽이 끝난 지금도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자연스레 또 내 얘기가 나왔다.
"진짜로 한 번 만나면 대박일텐데. 그래도 서로 인사도 하고 했으면 기억할거 아냐."
"한 두,세 달 정도만 그러고, 제가 중간에 학원 바꿔서 그 이후로는 못 만났어요. 그 오빠야 워낙 유명하니까 소문으로만 듣고, 티비로만 보고 한 거죠."
"혹시라도 친해지면 우리 소개시켜줘야 한다."
"그럴일 없으니까 빨리 밥이나 드세요."
거기다 이대훈은 나를 안다고 해도 내가 좋아한것도 모를텐데.
"ㅇㅇ이 너무 마시는거 아니야?"
"갈증나서요."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난 집까지 데려다주는 취미 없다."
"걱정마세요."
취기가 오르니 기분도 좋아진다. 살짝 어지러운 것만 빼면 딱 좋은데.
"그럼 연락들 하고."
"네. 가세요."
"바이바이."
혼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다보니 옛날 생각난다. 아, 이게 다 그 사람때문이야. 그러면서 내 발은 그 때 항상 타던 정류장으로.
"여긴 아직도 공사중이네. 언제 공사 끝나냐."
5분 정도 우중충하게 있으니까 버스가 온다.
-띡
옛날엔 띠딕이나 학생입니다. 였는데 내가 스물이 된게 또 새삼느껴지네. 이렇게 학원앞에서 타면 세정거장 뒤에 이대훈이 타곤했었는데... 창 밖은 그 때랑 별로 달라질 것 없는 배경이 지나가고, 아직 깊은 밤은 아니라 사람들이 몇몇이 있다.
"어?"
지나가는 사람을 보다 뒤통수부터 왠지 닮았네 하는 사람이 옆모습도 비슷하다. 설마... 그 사람보다 빠르게 지나간 버스는 정류장에 서고, 다시 그 사람이 보이기도 전에 출발해버렸다. 그래, 이대훈이라고 해도 설마 버스를 타고 다니겠어?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시간이 남으면 한번씩은 이 버스를 탄다. 이 시간이면 옛날에 그 때도 지금도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럼 난 항상 앉았던 내리는 문 뒤에 두자리가 있는 창가자리에 앉았다. 그냥 빨리 내리려고 앉았던 자리였는데 어느새 지정석이 되버려서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으면
오늘은 그 자리에 안 앉아있네?
하는 소리에 그 다음부터는 꼬박꼬박 그 자리에만 앉았던 것 같다. 그 학원을 끊은 이후에도.
-띡
오늘도 띡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오늘도 사람은 별로 없었고, 주택가가 가까운 다음 정류장에서 그나마 있던 몇몇 사람도 내려버린다. 처음에 이 상황에서 별별 생각을 다 했었는데... 혹시나 버스기사 아저씨가 이상한 사람이였다던가, 갑자기 사고가 일어난다든가.
평소에는 창문 밖의 익숙해져버린 배경을 보고, 또 보는게 일이였는데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지면서 친구들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늘 그 때 그 버스탔다
또?
왜?
그냥 옛날생각이나 할겸
올림픽 보고 오니까 옛날생각이 나서
궁상떨지말고 집이나 들어가
뭐가 궁상이냐?
이게 궁상이지 뭐냐
맞어 첫사랑님이 갑자기 나타나서 안녕? 이라고
"안녕?"
내 옆자리를 보더니 앉아버린다.
"어..."
"너무 오랜만이라서 안녕은 아닌가? 그럼 오랜만이다?"
"아..."
날보고 씩웃는 이대훈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버스에서 졸아서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건가?
"진짜 오빠야?"
"내가 가짜는 아니니까."
"헐."
헐이라는 내 한마디에 또 씩웃는다.
"왜 버스타고 다녀?"
"그냥... 너는? 이쪽에 볼 일 있었어?"
"뭐... 나도 그냥..."
어찌어찌 대화가 이어져가고 있지만 이상하다. 내가 이대훈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몇년만이냐?"
"4년만이네."
"그때는 꼬꼬마 중딩이였는데."
"꼬마는 아니였어."
"말투는 하나도 안 변했네."
"변할 것도 없지."
둘이 조용해져버렸다. 옛날엔 그렇게 할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이렇게나 할말이 없네.
"아."
나의 감탄사에 집중을 한다. 이대훈이.
"나 런던에 갔었어."
"진짜?"
"응. 그리고 태권도 경기도 봤어."
"결승도?"
"응. 다 봤어."
"은메달 딴것도 봤겠네?"
"집에 카메라에 오빠 사진 많은데 거기서 찍은거."
"사진도 찍었어?"
"뭐, 일단은 거기갔으니까..."
"꼭 보여줘."
"응?"
"사진. 보고싶다."
"알았어."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으면.
"그런 의미로."
내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가더니 나한테 내 핸드폰을 내민다.
뭐?
"번호. 적어야 다시보지."
"아."
다시 핸드폰을 쥐고 잠금을 풀고 다이얼을 열어두니 알아서 번호를 적고 저장을 한다. 그리고는 전화를 건다.
"시간 나면 전화해."
"어?"
"그 때는 카메라 가지고 나오고."
"어..."
또 씩웃는다. 내가 이대훈을 좋아했던 이유가 바로 이 씩웃는 모습. 밝게 웃는 사람은 웃을 때 빛이난다. 물론 외모는 플러스.
"나 먼저 내린다."
"응. 잘가."
어색하게 들은 손을 들어 인사를 했고, 내리면서도 내리고 나서도 이대훈은 계속 손을 흔든다. 혼자 이상황이 뭔가하고 멍때리고 있으니까 손에 진동이 느껴진다.
왜 답이없음?
헐
뭐가 헐이야?
나 이대훈만났다
뻥치지마
그짓말
이것들이 한순간의 망설임없이 거짓말이라고 하다니.
진짜야ㅠㅠ
인증샷이 필요해
인증샷ㄱㄱ
야 버스에서 뭔 인증샷이야
그리고 내렸어
이게 벌써 노망이들었나
보이지도 않는걸 봤다고 하다니
허언증은 병원에 꼭 가봐야해
됐음 니네 필요없음 가버려
ㅇㅇ나도
매정한 것들. 진짜 허언증이라도 걸린건 아닐까하고 기록을 봤다. 맨 위에
태권도남신
이 있다. 태권도남신이 도대체 누구지? 설마 지 손으로 자기를 태권도남신이라고 쓴거야? 사람들이 잘생겼다고 오냐오냐해주니까 정신을 놨구나.
태권도남신이 누구죠?
사실 진짜 이대훈의 번호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누구겠어?
답장은 바로왔다. 진짠가봐.
설마 오빠라고는...
나지 당연히
헐 왜그러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렸어?
응 이제 집으로 걸어가는 중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기길은 무섭다...ㄷㄷ
데려다줄걸 그랬나?
아 됐어 뭘 데려다줘 오글아들어
데려다주는게 뭐가 오글아들어
집에 가는 내내 영양가는 없지만 새삼 내가 이대훈과 친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다. 다들 설마 했던게 진짜라고 증명이 된거잖아. 아 이거 진짜 맞지?
나 집에 도착ㅋㅋㅋㅋ 오빠도 쉬어
그랭 꼭 연락해라
오빠가 해 오빠가 연락하면 없는 시간도 만들테니까~
ㅋㅋㅋㅋㅋ진짜다? 진짜지?
난 착해서 거짓말 못해
ㅡㅡ그래 다음에 보자
와ㅡㅡ 나빴다
문자를 마치고 씻고 이불을 덮고 누우니까 실감했다. 아, 내가 이대훈하고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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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망상글로는 누가 좋겠냐고 물어봐 놓고서는 혼자 그냥 정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이대훈선수가 저희 집 뒤에 있는 고개 너머에 있는 중, 고등학교 다녀서 그 김에 한번 적어보았어요
전 한번도 이대훈선수를 본 적 없는 잉여이므로 글으로 나마ㅠㅠ
왜 가까이 살았는데 몰랐던거니!!!!!ㅠㅠ
모든 글은 즉석에서 써서 그런지 뭔가 되게 미흡하고 연결이 잘 안될테지만 그냥 그러려니하고 봐주세요~
스릉흡느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