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관두기 프로젝트 성공편 <2>
사랑은 잠도 이겨낼 수 있... 아니. 좀 졸리긴 하지만... 아니 취소. 겁나 졸려.
하품하면서 나오다 익숙한 차에 내일치 미소까지 끌어다 웃었다. 아침 거르고 잠까지도 거르고 왔는데도 좋네... 조수석 문을 열면 김선호가 옆을 돌아보면서 웃는다. 귀엽다. 아침에 나오면 좀 어떱니까. 이렇게 좋구만.
"왔어?"
"응. 언제 왔어? 빨리 왔네."
"한... 세 시간 전?"
"세 시간??!"
"농담농담. 귀엽게."
"... 아, 농담."
그걸 믿은 나도 참... 김선호 말이라면 아주 덥석덥석 믿지. 미끼를 그냥 왁왁 잘도 물어요.
"배고프지. 앞에 샌드위치 넣어놨어. 꺼내먹어."
"오... 배고픈 거 어떻게 알았어?"
"딱 알지. 우리가 얼마나 보고 지냈는데."
"치즈 샌드위치 대박. 결혼하까?"
"결혼...? 샌드위치 하나에 결혼까지 하는 거야?"
"에이. 샌드위치만 보고 하게? 다~ 보고 하는 거지. 다."
"으음~"
"반응이 뭐 그래?!?"
"고백도 네가 했는데, 청혼도 네가 하게? 양보 좀 해주라."
"... 아 뭐야. 내가 좀 할 수도 있지..."
"안 돼 안 돼. 그 기회는 나한테 줘."
"그래. 나 준비 됐다 선호야."
사실 김선호가 뭐라 반응하든 나도 농담이었다고 하려 그랬는데. 농담 아니게 됐네. 치즈 샌드위치도 무릎에 내려놓고 경건한 자세로 앉아있으니 옆을 힐끗 본 선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ㅋㅋㅋㅋㅋ아직 아니야."
"아... 아니야? 아직 아니구나... 응..."
"근데 이름. 우리 어디 가냐고 안 물어?"
"캠핑. 아니야?"
"왜 가는지는 알고?"
"... 왜 가는데?"
"우리 오늘 백일이거든."
"뭐뭐?"
뒷통수가 한 대 얻어맞은듯이 얼얼했다. 얼른 핸드폰 켜서 확인하니 진짜네... 난 바보야. 멍청이야. 어떻게 그걸 잊어?
"왜이렇게 울상이야ㅋㅋㅋㅋㅋ"
"갑자기 속상해졌어... 미안해. 아 나 진짜 하루하루 다 세고있었거든."
"알지. 잘 알지."
"나한테는 오늘이 1200일 정도 된 거 같거든. 너 좋아한 날까지 다 합... 아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니야~ 나도 어, 어제 알았어. 어제."
"정말?"
"그렇다니깐. 이제 일년 단위로만 챙기자."
"그럴까... 아냐, 나 이백일도 삼백일도 꼭 챙길 거야."
"그래, 그럼.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고. 너 오늘 그 표정 짓지 않기."
"... 오키."
시무룩한 얼굴 보내고 다시 샌드위치 집어먹기나 했다. 아 김선호 달아. 너무 달아.
*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내가 뭐 한 게 없다. 데리러 온 것도 김선호고, 배고플까봐 샌드위치 싸온 것도 김선호고, 식당에 데려간 것도. 하다못해 캠핑도 다 김선호가 계획한 거야. 기억 못 한 것도 서러운데 계속 편히 있으라고만 하고 혼자 잘 하는 김선호를 보고있자니 미안한 마음 반, 나도 뭔가 해주고 싶은 오기나 치기어린 마음 반이었다.
"이거 먹고 여기 앞에 잠깐 걸을까? 진~짜 예쁜 곳 있대."
"그래? 응, 가자."
"뜨거우니까 불어서 먹어."
"선호야. 내가 구울까? 나 고기 굽기 1급 자격증 있어."
"돼써어~ 그냥 먹기만 해."
"아니 그래두... 네가 오늘 다 했잖아. 내가 이거라도 해야겠어."
집게 내놓으라고 달려드니까 뒤로 물러난 김선호가 집게랑 가위로 챙 소리를 냈다. 하루종일 웃기만하다가 왠지 사뭇 진지한, 아니, 화난? 정색한 건가.
"왜 갚으려고 하지?"
"왜냐니. 그냥,"
"그렇게따지면 네가 이태껏 나한테 해준 게 얼만데."
"내가 뭘 했다고..."
"삼년동안 멍청이 짓 해대도 꿋꿋히 좋아해줬지, 고백도 여러번 해줬지. 갚는다고 생각하면 내가 갚아야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우리 사이가 지금 뭐 갚고 말고 할 사이야?"
"그건 또... 아니지."
"그냥 오늘은 너한테 좋은 날이었으면 해.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고."
아무래도 나 김선호랑 결혼까지 가야할 것 같애... 말 다 마치고 집게로 의자를 콕 찝는 선호에 한 번 고개 끄덕이고 도로 얌전히 앉았다. 고기 먹다 결혼하자고 하면 무드 없으려나. 아 완전 하고 싶은데... 참는다 진짜.
선호가 이제 그만 쉬자고했어도 좀만 걷자고 찡찡댔을 게 분명하다. 틈만나면 입에 고기며 소시지며 뭐 다 밀어넣어주니까 주는 족족 받아먹다 이 꼴 났다. 배불러. 선호가 가자던 산책로는 정말 예뻤다. 웬 알전구들이 줄줄이 달려있고 저기 보이는 바닷가도 예뻤다. 무엇보다 옆에 손 꼭 잡고 걷는 김선호가 좋아.
"나 너한테 물어볼 거 있는데."
"뭔데? 다 물어봐. 뭐든지 다 말 해줄게."
"음, 진짜다?"
"응, 진짜."
"내가 왜 좋은 거야?"
"..."
혈액형부터 시작해서 세세한 정보 뭐든 말해줄 준비가 돼있었는데 왜 좋냐니. 그 질문이 왜 여기서 나와...? 이건 뭐 답하기 좀 민망한데.
"... 패스! 다음 질문!"
"다음 질문?"
"응, 이번엔 진짜 말 해줄게."
"내가 좋아진 이유가 뭐야?"
"아니 아씨..."
"ㅋㅋㅋㅋㅋ말 해주면 안 돼?"
"꼭 들어야 되겠어?"
"듣고 싶은데. 네가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고."
"너 알고 그러지."
"뭘...?"
"그 얼굴 그 표정으로 말 하는데 어떻게 무시해 내가!"
"무시 못 할 얼굴이야?"
"질문이라고 하는 거니? 알았어. 말 해줄게."
말 해준다니까 좋다고 아싸! 하는 김선호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귀여워서 봐준다.
"그냥. 별 이유 없는데... 우리 동아리 같이 들었었잖아."
"아, 그, 영화!"
"응, 그거. 그 동아리 진짜 재미없었는데."
"...진짜?"
"근데도 끝까지 너랑 나는 남아있었잖아. 넌 부장이라 그런 거고 난 왜 그런지 알아? 그 때부터 네가 좋았거든."
"진짜 삼 년 된 거네."
"그치. 네가 나보고 감상문 쓰라고 종이 줄 때부터야, 난."
"완전 감동인데?"
"이제 내 차례. 넌 내가 왜 좋아졌어?"
"왜 좋아졌냐고?"
"아니, 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친구 하자고 막 울 땐 언제,"
"야아... 그 얘긴 하지말자... 나 그 때만 생각하면 너한테 미안해서 미쳐."
"ㅋㅋㅋㅋㅋㅋㅋㅋ종종 놀려야겠네. 그래서 왜인데?"
"글쎄... 생각해보면 나도 얼마 안 된 건 아니야."
"오 그래?"
"난 항상 널 조금 다르게 생각했었거든. 다른 친구들보다 더 소중하고, 애정이 가고. 난 그게 네가 나한테 좋은 친구라서 그런 줄 알았어."
"그랬어?"
"근데 아니던데? 그냥 네가 좋은 거였어. 다른 친구보다 더 좋은 친구가 아니라, 그냥. 그냥 네가 좋은 거였더라고."
"... 혹시 이거 청혼이야? 나 마음의 준비 좀 하게."
"아 성이름ㅋㅋㅋㅋㅋ"
"이것도 아니었구나. 난 또 너무 막 그래서... 지금 식장이라도 잡자는 줄 알았지."
"그럴까?"
"뭐?"
"식장 잡아? 지금?"
"아...아니... 왜 이래 갑자기..."
"이런 건 다음에 할게. 각 잡고 제대로. 오늘은 그냥 커플해."
"응. 그게 낫겠다."
김선호가 그럴까? 할 때 증말 덜컥했네요. 얘가 이렇게 나오니까 뭐 할 말이 없어져...
"그치. 그게 낫겠지?"
"내가 미안..."
"이제 슬슬 들어갈까? 좀 추운 거 같은데."
"그러자."
"내일 아침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너 술 좀 마셨으니까 콩나물국?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그거 해줄까? 불고기. 재료 다 사왔으니까 말만 해."
내일 아침밥까지 내 생각하면서 정하네. 그 생각에 괜히 막 간질거리고, 예쁘고, 좋아서.
"선호야."
"응?"
덜컥 뽀뽀를 저질렀네. 넵. 핑계입니다... 몰라 나 김선호랑 이렇게 연애할래. 서로 좋아죽는 그런 연애 할래.
그 시간들이 아깝지않게,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그러니까 나랑 계속 만나주라, 선호야.
친구같은 거 말고. 애인으로.
*
사족 |
회원입니다:) 이번 외전을 끝으로 친관프를 정말 완결냈네용... 그동안 독자님들께서 친관프에 보내주신 애정과 댓글들 너무 감사했습니다. 댓글 하나 달릴 때마다 서너 번씩 읽곤 했어요ㅎㅎㅎ 감사합니다ㅜㅜ🤍 또, 혹시라도 궁금한 점 있으시거나 다음 작품으로 보고 싶으신 소재 있으시면 말씀 해주세요! 친관프가 끝났으니 셰어하우스 마저 연재하다 다른 거 연재할 거 같아요. 동시에 할 수도 있고 셰어 먼저 할 수도 있고... 어쨌든 연재 내내 감사했습니다! 또 뵀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