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오랜만에 만나도 말 거친 건 여전하네."
상상도 못 했고 반갑지고 않은 그의 얼굴에 주리는 혼잣말로 욕을 하면, 놓치지 않고 그걸 듣는 재욱이었다.
주리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주머니에 있던 이어폰을 꺼내 귀를 막았고 재욱 역시 물러나지 않고 주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주리는 자신에게 말을 걸진 않지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에 결국 이어폰을 빼고 재욱을 째려봤다.
" 아는 척하지 말고 꺼지라고. 안 그래도 기분 좆같은데."
"그러고 싶은데 거기가 내 자린데?"
"뭐?"
"너가 앉아있는 자리. 내 자리라고."
재욱의 마지막 말에 아까 앞자리의 여자애가 하려던 말이 생각나서 시선을 잠깐 앞으로 돌리면,
재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리의 머리를 헝클이며 "그냥 너 앉아."라고 말한 뒤 교실을 나갔다.
1교시가 시작되고 재욱은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2교시, 3교시, 4교시 모두 주리의 옆자리는 빈자리였다.
점심시간이 되고 주리는 점심을 먹으러 갈까 고민하다가 친구도 없고 귀찮아서 이어폰을 끼고 책상에 엎드렸다.
한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누군가 교실에 들어와 주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주리는 계속 엎드려 있다가 허기가 져 매점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면
옆자리에서 자신을 빤히 보고 있던 재욱과 눈이 마주쳤다. 주리는 한쪽 이어폰을 뺀 채 "존나 놀랐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너 뭐냐?"
"너 이러고 있을까 봐. 이거나 먹어."
주리의 책상 위에 올려진 것은 그녀가 좋아했던 크림빵과 포도 주스였다. 우유는 못 마시는 그녀였기에 항상 주스를 마셨던 주리는 이걸 기억하고 있는 재욱에 한숨을 쉬었다.
"야."
"그냥 매점 간 김에 산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먹어."
"혹시나 말하는데 나 남친 있다."
"누가 뭐래? 굶고 있을까 봐 걱정해줘도 지랄."
그 순간 주리의 핸드폰에서 재생되고 있던 노래가 끊겼고, 그녀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자 도현에게 오고 있는 전화에 나머지 한쪽 이어폰도 빼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주리야 수업은 잘 들었어?
"몰라. 첫날부터 짜증 나는 놈 하나 꼬여서."
주리는 재욱을 째려보며 말을 했고 재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라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 왜? 누가 너한테 뭐라 했어?
"아니야. 신경 쓰지 마."
- 걱정되게... 밥은 먹었어?
"아니 아직. 너는?"
- 나도 아직. 학생회 회의 때문에 이제 먹으려고. 끝나고 너희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갈까?
"됐어. 여기랑 거기랑 존ㄴ..., 아니 엄청 멀잖아. 그냥 동네에서 만나자."
- 그래. 남은 시간도 잘 보내고, 밥도 꼭 챙겨 먹어.
전화를 끊자 기다렸다는 듯이 "남친이냐?"라고 묻는 재욱에 주리는 핸드폰을 보며 "신경 꺼."라고 말하자 재욱은 주리의 대답은 무시하고 말을 이어왔다.
"언제부터 만났냐? 내가 아는 애야?"
"아 시발 좀! 하... 그래 남친 맞고 누군지 알려줄 생각 없으니까 제발 좀 꺼져. 수업은 들어오지도 않더니."
"그래. 뭐 내가 알아내면 되지."
주리가 그의 말에 대답하려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을 나가려는 재욱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빵은 버리지 말고 꼭 먹어라."라고 말하며 나간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주리는 택시를 탈까 하다가 아침에도 택시를 탔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 오는 핸드폰을 보다가 '너희 집 앞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도현에게 온 문자를 보고 주리는 오늘 하루 중 가장 밝은 미소를 지었다.
주리는 공원에 도착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벤치에 앉아있는 익숙한 뒷모습에 다가가 "야."라고 불렀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진 않았지만,
목소리로 상대를 알아챈 도현은 웃으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았고 역시나 처음 보는 교복을 입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리가 있었다.
"교복, 예쁘네."
"참나. 그럼 너도 여기로 전학 오든지."
도현은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주리에 웃으며 그녀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도현에 주리의 눈에는 왠지 모를 눈물이 맺혔다.
아무 대답이 없는 주리에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도현은 그녀를 품에서 떼고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울어?"
"큼...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래."
"ㅋㅋㅋ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너?"
"아 뭐래. 그런 거 말고."
주리의 이런 드립에 부끄러운 듯 귀가 붉어진 도현에 주리는 귀엽다는 듯 도현의 볼을 꼬집었다.
"오랜만에 떡볶이 먹으러 가자. 나 매운 거 먹고 싶어."
떡볶이를 다 먹고 나온 뒤, 전보다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도현과 주리는 손을 잡았다.
아까부터 옆에서 계속 작은 한숨을 쉬던 주리에 도현은 걱정돼서 바라보면 시선을 느낀 주리는 입을 열었다.
"아니... 그냥 학교 가기 싫어서."
"누가 너 괴롭혀?"
"ㅋㅋㅋ 아니 미쳤냐? 내가 괴롭힘당할 것처럼 보여?"
"ㅋㅋㅋ 그러네. 그럼 왜 계속 그렇게 한숨을 쉬어? 아까 말했던 짜증 나는 애 때문에?"
"뭐. 이것 저것... 나 그냥 일본 갈 걸 그랬나?"
"음... 그럼 내가 좀 슬플 거 같은데?"
"그건 그렇네. 아 몰라! 될 대로 되는 거지 뭐. 신경 안 쓸래."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도현에 주리는 뭐지 싶어 그를 쳐다보면 도현은 주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주리야, 나 너 남자친구잖아. 속상한 일 있으면 나한테도 좀 털어놔도 돼. 너가 너무 혼자서만 힘들어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울어도 되고."
"..."
"그냥... 너가 그때 그 여자애 왜 때렸는지 이유는 말 안 해줘도 돼. 무슨 이유든 너가 일부러 사람 때릴 애는 아닌 걸 아니까.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너 혼자 앓고 힘들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위로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알겠지?
주리는 도현의 말에 눈물이 조금 맺힌 게 부끄러워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도현은 웃으며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 시간, 주리의 핸드폰은 여전히 무음상태였고 주리의 주머니 속 핸드폰 화면엔 문자 한 통이 남겨져 있었다.
'번호 아직 안 바뀐 거 같길래. 내 번호야 저장해. -이재욱-'
안녕하세요. 김덕심입니다😊 처음으로 이렇게 글을 써보는데 전편에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기다린다는 댓글도 남겨주셔서 예정보다 일찍 1편을 갖고 왔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글 실력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2편으로 찾아뵐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