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그럼 전학 가."
"아빠!"
"그러게 얌전히 학교 좀 다녔으면 좀 좋아? 내가 너 때문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생겼어."
"그년이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 그럼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어?"
"그렇다고 학교에서 애를 그렇게 패는 게 말이 돼? 됐고 유학 싫으면 전학 가. 대신 그 학교에서도 또 사고 치면 그땐 정말 일본으로 보내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아빠 믿고 존나 나대는 년. 쟤 남친은 도대체 쟤랑 왜 사귀는 거야? 설마 몸이라도 대줬나?' 이 한마디가 결국 주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이수고등학교로 가주세요." 낯설고 불편한 새 교복과 평소 가던 길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택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교장 선생님께 잘 말해놨으니까 사고 치지 말고 행실 똑바로 해.' 집에서 나오기 전 아빠에게 들은 말을 떠올리며 창문 밖을 보던 중 주머니에 넣어놨던 핸드폰이 울렸다.
주리는 무음으로 해놓는 걸 깜빡했다는 생각과 함께 누군지 확인하고 '도현'이라는 이름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주리야 택시 탔어?
"응. 가는 중이야."
- 너무 긴장하지 말고. 뭐 너가 긴장할 애는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가서 잘 지내. 공부도 열심히 하면 더 좋고.
"됐어. 내가 너 딸이냐?"
- ㅋㅋㅋ 걱정돼서 그러지. 그래도 이사는 안 가서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냐. 아 그 썅년만 아니었어도. 너 그리고 나 없다고 딴 년 만나면 죽는다."
- 내가 널 두고 누굴 만나. 난 너가 더 걱정인데. 그리고 말 예쁘게! 거기서도 그런 말 쓰면 안 된다.
"년이 무슨 욕이냐? 넌 애가 너무 착해서 문제야. 뭐 그래서 너랑 사귀는 거지만. 야 나 이제 곧 내린다. 끊어!"
- 그래. 이따 또 전화할게.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니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떠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주리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곳을 벗어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일본으로 보내진다는 더 큰 두려움에 결국 학교 안으로 향했다.
교무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2학년이니까 2층일 거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올라가니 역시나 교무실이 바로 보였다.
주리가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복도에 있던 몇몇 아이들은 처음 보는 얼굴에 신기해서 쳐다보기도 하였지만 주리에겐 그저 귀찮은 눈길들이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반기는 한 남자에 약간 당황하였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그는 곧바로 말을 걸어왔다.
"김주리 맞지? 난 너 담임 맡은 김남희라고 해.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와서 물어보고. 참고로 선생님은 국어 가르친다. 국어 좋아하니?"
"..."
"하하...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가 보네. 괜찮아. 이제 곧 조회 시간이네! 바로 가자. 맞다, 넌 4반이야."
손으로 숫자 4 모양을 하며 장난스레 웃는 그의 모습에 주리는 언짢은 듯 표정을 짓고 그를 따라갔다.
'귀찮은 담임이 걸렸네.'라고 생각하던 주리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걷다가 4반 앞으로 도착하자 약간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담임은 주리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이며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말을 마친 뒤 교실 문을 열었다.
담임이 들어옴에도 조금은 소란스러웠던 교실이 주리의 등장으로 조용해졌다.
"자, 우리 반에 새로 전학 온 김주리 친구다. 주리야 인사할래?"
"... 김주리라고 해."
"우리 학교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을 거니까 잘 챙겨주고 잘 지내라. 주리는 저기 창가 쪽 맨 뒷자리로 가면 돼."
인사를 딱히 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 시선들이 부담스러워 빨리 끝내고 싶었던 주리는 짧게 이름만 뱉어냈고
지정된 자리로 가는 중에도 끊이질 않는 시선들에 부담스러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정된 자리에는 짝도 없고 두 자리 모두 비어있었다.
주리는 창가와 가장 가까운 왼쪽 자리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두고 앉았다.
담임이 전달사항을 말하고 나가자 앞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애 하나가 등을 돌려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저기... 그 자리 주인이 있어서 그 옆에 앉는 게 좋을 거 같아..."
"주인? 이 자리 아무도 안 앉는 거 아니야?"
"어? 아니 그게... 재욱이라고 아...."
말을 하다가 내 자리 쪽으로 걸어오는 누군가에 눈이 커진 여자애는 바로 등을 돌려 앞을 봤고
뭐지 싶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주리는 그 누군가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김주리, 오랜만이다? 너 우리 학교로 전학 온다길래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
그 누군가는 내 전남친 이재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