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주말이다. 주리는 오늘 하루는 푹 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불을 둘러싸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으면 눈치 없이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렸다.
주리는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확인했고 '강민아'라는 이름에 "이년은 아침부터 전화하고 지랄이야."라고 중얼거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야야야 뭐해?
"그냥 누워있는데. 왜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 아니... 주말이니까 놀자고! 우리 얼굴 본지도 벌써 2주 전이다? 너 전학 썰도 풀어줘야징~
"아. 오늘은 진짜 안 나가려고 했는데--;; 어디서 만나게?"
- 두 시에 스벅으로 오셈! 이따 봥~
주리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는 민아에 어이가 없고 웃겨서 "참나."하고 웃다가 시간을 보면 12:54라고 적혀있는 숫자에
주리는 아침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잠깐 당황하고 약 한 시간 후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약속 시각에 맞춰 도착한 주리는 카페에 들어가면서 민아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리를 잡아놓은 민아는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는 주리를 발견하고
"김주리!"하고 불렀다. 주리는 웃으며 민아가 있는 자리로 갔고 미리 주문했는지 테이블에는 음료 두 잔이 있었다.
"넌 자몽티 시켰어. 또 우유 들어간 거 잘못 먹고 배탈 나면 이따 족발 못 먹잖아.^^"
"역시 강민아~ 근데 갑자기 무슨 족발?"
"이따 족발 먹어야지! 아 전화할 때 말 안 했나? 새로 생긴 족발집 있는데 존맛이래. 내가 자몽티 샀으니까 넌 나랑 거기 가줘야 돼."
"ㅋㅋㅋ 그러든가."
"자, 이제 한번 썰 좀 풀어봐. 전학 간 학교는 어떠셨나요?"
"그게... 야, 너 이재욱 무슨고 갔는지 기억나?"
"음... 몰라? 근데 갑자기 그 질문은 왜...? 설마..."
"어. 이수고. 내가 전학 간 학교에 그 새끼 있더라."
"와... 미친 거 아니야? 설마 직접 마주친 건 아니지?"
"같은 반에 심지어 짝꿍이야. 이게 말이 되냐?"
"와... 좆됐네... 야 그런 놈 신경 쓰지 마. 뭐 그게 말이 쉽긴 하지만... 그래도 너 이번에 사고치면 알지?"
"알아. 그래서 최대한 접촉 안 하려고 하는데 걔가 존나 거슬리게 하잖아. 짜증나게."
"헐~ 설마 걔, 너한테 아직 마음 있는 거 아니겠지?"
"말이 되냐? 헤어진 지가 얼마나 지났는데."
민아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다 돼갔고, 약속대로 족발을 먹으러 자리를 옮겼다.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동네에 자리한 족발집임에도 꽤 북적거리는 사람들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보다가 도현에게 '뭐해?'라고 온 문자에 주리는 '친구랑 족발 먹으러 왔어.'라고 보내면 도현에게 '다 먹고 나오면 연락해. 데리러 갈게.'라며 바로 답장이 왔다.
실실거리며 핸드폰을 보고 웃는 주리에 민아는 옆에서 "남친~?"하며 물었고 때마침 "두 분 자리로 안내해드릴게요."라는 직원의 말에 주리는 대답대신 고개로 매장 안을 까딱하며 들어가 버렸다.
"아, 배부르다. 너무 많이 먹었나?"
"어. 누가 보면 며칠 굶은 줄 알겠더라."
"--;; 너 바로 집 가?"
"아마도? 근데 도현이 잠깐 만나기로 해서."
"와. 존나 부럽당... 남친 없는 나는 살겠냐?"
"그러게, 연애 좀 하지? 아무리 여고여도 너 이러다 대학 갈 때까지 남자 못 만난다?"
"야! 소름 끼치는 말 하지 마! 난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거든?"
"ㅋㅋㅋ 그래~ 야 신호등 바뀜 빨리 가라."
"어? 어 야 잘 가! 연락도 좀 하고!"
민아와 헤어지고 주리는 바로 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현이 연락을 기다린 듯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바로 연결됐다.
"뭐야? 바로 받네 ㅋㅋㅋ"
- ㅋㅋㅋ 족발은 맛있게 먹었어?
"응. 맛있더라. 나중에 너랑도 한번 가줄게^^"
- ㅋㅋㅋ그래. 주리야, 뒤돌아봐.
"응? 어? 뭐야. 언제부터 나 따라왔어? --"
"너가 다 먹었다고 문자 보내자마자 바로 이쪽으로 왔지. 독서실이랑 가깝더라고."
"오~ 밥은 먹었어?"
"응. 친구랑 주변에서 간단하게 먹었어.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나왔어?"
"이게? 파데랑 틴트만 바른 건데 ㅋㅋㅋ"
"아닌가? 그냥 너가 예쁜 건가?"
"참나. 많이 컸네 이도현? 이제 이런 말도 하고."
도현은 웃으며 "예쁜 걸 예쁘다 하지 그럼?" 이라며 능글맞게 말했고, 주리는 이런 도현의 말이 부끄러운지 잡고 있던 도현의 손을 찰싹 때렸다.
도현은 이에 아프다며 엄살을 부렸고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주리의 집과 가까워졌다.
"아... 학교에서도 이제 못 보니까 항상 너랑 어두워질 때만 보는 거 같다?"
"그러게. 그럼 우리 내일은 일찍 만날까?"
"진짜? 뭐 너가 그렇게 날 만나고 싶다면 만나줄게."
"ㅋㅋㅋ 그럼 내일 오랜만에 데이트하자. 너희 집 앞으로 데리러 올게."
그렇게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데이튼지. 주리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어제 미리 골라둔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평소에 잘 뿌리지 않는 향수도 뿌렸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나니 타이밍 좋게 도현에게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고, 주리는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거울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열리는 문을 보고 있는 도현이 있었고 그는 평소보다 더 꾸민 모습의 주리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향수도 뿌렸어?"
"큼... 그냥 샀는데 아직 안 써봐서 한번 뿌려본 거야."
"ㅋㅋㅋ 어디 갈까?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음... 영화 보러 갈래?"
"영화? 좋지."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영화관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무슨 영화 볼래?" 도현이 묻자, 주리는 고민하다가 최근에 개봉한 액션 영화를 말했고,
도현은 잠시만 기다리라며 표를 끊으러 갔다. 혼자 남겨진 주리는 팝콘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기면 누군가 "김주리?"하며 불러왔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서 있는 재욱이 있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주리는 정신을 차려보면 옆에 있던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제 앞에 서 있는 재욱이었다.
"여기서 너를 다 만나네."
"그러게. 여기까지 와서 아는 척하고 싶냐?"
"그냥 같은 반 친구가 아는 척하는 것도 안 되냐?"
표를 다 예매한 도현은 주리를 찾다가 굳은 표정으로 어떤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에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고,
다가오는 도현을 발견하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리와 그 둘을 번갈아 보던 재욱이 도현에게 "남친?"이라며 물었다.
도현은 대답 대신 주리를 바라봤고 주리는 "가자."하며 도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느 정도 재욱과 멀어졌을 때쯤, 도현은 무슨 일이냐며 주리를 보았고, 주리는 그냥 중학교 때 싸웠건 애라고 둘러댔다. 영화 시간이 다가와서 도현과 주리는 극장 안으로 들어갔고
영화를 보는 내내 도현은 기분이 좋진 않아 보이는 주리의 손을 잡으며 영화보다는 주리의 감정을 살피기 바빴다. 영화가 끝나자 다행히도 전보다는 좋아진 듯한 주리의 기분에 도현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웃었고,
배고프다는 주리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묻자 또 장난으로 "너?"하는 그녀에 어이없다는 듯 웃던 도현이 잠시 생각하다가 따라오라며 어딘가로 향했다.
"뭐야? 너 이런 취향이었어?"
도현이 데리고 온 곳은 다름 아닌 엄청 맵기로 유명한 돈가스집이었고 도현은 웃으며 "가자."라며 문을 열었다.
"야, 이걸 어떻게 먹어..."
주리와 도현 앞에 놓인 검붉은 색의 돈가스 두 접시에 주리는 무서운 듯 도현을 바라보았고,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며 포크와 칼을 들고 돈가스를 써는 도현이었다.
주리는 그런 도현을 잠깐 보다가 긴장되는 듯 숨을 잠깐 내쉬고 돈가스를 썰었다. 다 썰어진 돈가스를 바라보며 도현은 "내가 먼저 먹어볼까?"하면 주리는 같이 먹자며 포크에 콕 찍고는
도현이 하나, 둘, 셋을 하자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느껴지는 매운맛에 주리는 물을 들이켰고, 도현은 매우면서도 귀여운 주리의 모습에 소리까지 내서 웃으며 바라보았다.
"야... 존나 매워. 아 죽겠다. 넌 안 매워?"
"ㅋㅋㅋ 맵긴 한데 너가 너무 웃겨서 돈가스 맛이 안 느껴져."
"하씨... 뭔가 자존심 상하네. 하나 더 먹어본다."
말을 끝으로 하나 더 입에 넣은 주리는 음? 안 매운데 하더니 바로 매운맛이 느껴진 듯 또 물을 들이켰다. 도현은 이제 돈가스는 뒷전인 듯 핸드폰을 꺼내
주리의 모습을 찍느라 바빴고 주리는 이런 도현이 얄미운지 눈물을 흘리며 째려봤다.
그렇게 재밌게(?)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도현은 "집에 갈까?"라고 물었고 손을 잡고 주리의 집으로 향했다.
"기분은 이제 괜찮아?"
"응?"
"아까 영화관에서, 기분 좀 안 좋았던 것 같길래."
"지금은 뭐... 너랑 있으니까...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매운 거 먹으면 스트레스 좀 풀린다잖아. 효과가 있었나 보네. 다행이다."
"참나. 그래서 먹자고 했냐? 큼... 뭐 나름 재밌었어. 덕분에 진짜 스트레스 좀 풀린 듯?"
"ㅋㅋㅋ 역시 김주리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이제 다 왔네. 들어가. 내일 학교 잘 가고."
"그래. 너도 조심해서 가."
"아 맞다."
주리가 들어가려고 할 때 도현이 갑자기 주리를 불렀고, 그녀가 뒤를 돌아 도현을 바라보면 주리의 볼에 무언가가 닿았다가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