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못본 적은 처음인 듯했다. 아이들은 중간고사때문에 서로를 못본지 대략 1주일 가량 됐고, 이에 아이들의 카톡방은 틈만 나면 불이났다.
승철오빠 - 진짜 싫다.
승철오빠 - 중간고사 진짜 싫다.
지훈오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훈오빠 - 모두가 같은 생각일 걸.
정한오빠 - 여주랑 옆집에 사는데도 못봤어.
정한오빠 -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민규 - 우리 마음 알겠지? 우린 매일 그렇게! 자주 못 본다고!
석민 - 그래! 이제 좀 이해가 가!?
지수오빠 - 시험 누가 제일 먼저 끝나?
승관이 - 아마도 나랑 명호?
명호 - 맞을 걸.
여주) ........
집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다 밀려오는 피로감에 잠시 카톡방을 보던 여주가 작게 미소를 지어보이고, 곧 다시금 공부를 하려던 찰나에 하나의 메시지가 여주를 반겼다.
아빠야. 내일 잠깐 볼 수 있니.
여주) ........
모르는 번호에, 자신을 아빠라고 말하는 문자는 여주의 손을 떨게하기 충분했다.
정한) 어떻게 됐어?
지훈) 빚이 있었대. 아버지랑 이혼하고 만난 남자한테 보증 서줬나봐. 그 돈 갚으려고 재결합 하려던 거였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운 둘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지훈은 덤덤한 듯 아버지에게서 온 문자에 대한 내용을 말해줬다. 정한은 지훈의 말에 어둠 속에서 눈을 깜박거렸고, 지훈은 마저 말을 이었다.
지훈) 어머니 가셨으니까 집에 들어와도 된다고 그러더라.
아직까지도 자기 잘못은 인정 못하는거지.
정한) 아버지도 참. 그래서?
지훈) 답장 안했어.
정한) 잘했어. 너 내일 시험 하나 남았지?
지훈) 응. 너도 하나 남지 않았어?
정한) 난 두개. 잘보고, 내일 끝나면 밥이나 먹자.
지훈) 그래.
대화가 끝나고, 피곤했던 아이들의 숨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민규) 이상해.
석민) 완전.
명호) 이상하긴 해.
지수) 아무도 못봤지?
원우) 내가 거의 동아리 실에서 살았는데도 못봤어.
승관) 나도.
시험이 끝나고 동아리 실에 모인 아이들의 대화주제는 시험이 끝난지 4일 정도가 지났음에도 마주치지 못한 여주였다. 무언가 걱정스러운 메시지를 보내면 또 답장은 제 때 돌아왔지만, 어째 꼭, 일부러 피하는 느낌이 강했던 아이들은 생각에 빠졌다.
정한) 무슨 일 있는거 아냐?
지훈) 근데 또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면 피곤해서 집에만 있다고 답장하니까, 더 물어볼 수가 없잖아.
정한) 뭐 아는 거 없어?
민규) 우리도 똑같아. 뭐 잡히는 것도 없어.
석민) 뭐하냐고 물어보면 잘거라고 그러고. 하 진짜.
승관) 학교도 넓고 건물도 다르니까 마주치지도 못하고, 동아리 실은 오지도 않고.
원우)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정한) ..일단 마주치려고 노력 좀 해보자. 걱정되니까.
지수) 그래, 서로 봤으면 연락 좀 주고.
원우) 그게 제일 낫겠다. 혼자 있고싶을 수도 있는거니까.
석민) .........
민규) 안되는데.
지훈) 뭐라고?
민규) ...김여주,
민현) 무슨 일 있는거 아냐? 연락 잘 받길래 너희랑 안마주치는 줄은 몰랐지.
승철) 연락은 계속 되는 건 맞아?
정한) 연락은 계속 해.
지훈) 근데 시험 끝나고 보지를 못한거지.
찬) 혼자 있고싶은가?
정한) ..모르겠어 아예. 워낙 자주 보고 연락도 자주하고 그랬는데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니까.
정한과 지훈은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시간이 나자 셋의 대학교 근처로 향했고, 커피를 마시던 아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정한과 지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무언가 감도 잡히지 않자 대화의 흐름이 멈추고, 다들 생각에 잠긴 듯 해보였다.
민현) 집에 있는 건 맞아? 초인종이라도 눌러봤어?
정한) ..아니. 안열어줄 것 같아서 안눌러봤어. 근데 집에 있다고는 하니까.
지훈) 솔직히 거짓말 할 이유도 없잖아.
승철) 답장은 바로바로 와?
정한) 바로 올 때도 있고, 몇시간 지나서 올 때도 있고.
민현)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봐야할 것 같은데.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솔직히 확실한 건 아니잖아.
정한) 그건 그렇지.
찬) 좀 그러면 한 번이라도 초인종 눌러봐. 있으면 그래도 목소리라도 들려주지 않을까?
정한) 진짜 그렇게 해야하나.
민현) 일단 보는대로 연락 줘.
지훈) 그래.
민현) 전화는 받아?
정한) 전화는 잘 안받아. 메시지만 답장하고.
승철) 전화도 좀 자주 해봐. 어쩔 수없지.
카페를 빠져나와 다시 학교로 가는 셋과 반대로 집으로 향하는 정한과 지훈은 아이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이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둘은 헤어지자마자 휴대폰을 꺼내들고, 여주와의 메시지창을 켰다.
지훈) 너무 계속 연락하는 것도 좀 그런가.
진짜 혼자 있고 싶은 거면 어떡해.
정한) ...그건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얼굴을 안보는 건 이해가 좀 안가지않아? 얼굴보고 연락 하면서도 혼자 있을 수 있잖아. 안그래도 혼자사는데.
지훈) 그건 그래.
일단 계속 연락 해보자.
학교 스튜디오에 늦은 오후까지 틀어박혀있던 여주는 아이들에게 온 연락을 담담하게 답장하며 아무도 없는 동아리 실로 향했다. 늦은 시각엔 아무도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
은은한 노을이 동아리 방을 가득 채우고, 그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있는 여주의 눈동자에 묽은 물방울들이 노을을 흡수했다. 부모라는 작자와의 만남을 가진 뒤 지속적으로 오는 연락에 제 우울을 감추려 아이들을 속속히 피해다녔지만, 결국 자신이 돌아온 곳은 동아리 방이었다.
“........”
탁, 탁, 탁,
제 분신과도 같았던 검은 가디건 소매를 걷은 뒤 가방에선 커터칼을 꺼내 천천히 날을 들어올렸다. 여주의 공허한 눈에서 묽은 눈물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마룻바닥을 적셨다. 떨리는 손으로 눈물 범벅인 제 얼굴을 쓸어내린 뒤,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운 칼날을 흉터가 가득한 제 손목에 가져다댔다.
철컥-!
“.........”
“...여주야.”
여주의 칼날이 움직이려던 순간 동아리 방 문이 열리고 정한이 들어왔다. 오랜만에 본 얼굴이 너무 수척해서, 그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라서, 그 아이가 손에 칼들 들고있어서 정한은 발걸음을 멈췄고,
“...살려줘.”
“..여주야.”
“나 좀,”
살려주라.
소탈한 웃음을 터뜨림과 동시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더니, 날카로운 소리가 동아리 실에 울려퍼졌다. 붉게 물든 여주의 손목, 동시에 힘이 빠져 쓰러짐과 동시에 같이 떨어진 칼, 그리고 쓰러진 여주를 향해 울부짖으며 달려가는 정한은, 창 밖에 지고있는 노을과는 꽤나 이질적이었다.
민현) .......
정한) .......
지훈) ...하아
삐, 삐, 삐, 삐....
일정한 소리와 병원의 냄새. 그 사이에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여주와 그런 여주를 바라보고 있는 민현과 정한의 표정은 착잡했다. 제 얼굴을 쓸어내리는 지훈과 정한에 민현은 나지막이 말했다.
민현) 너희 탓 아니야.
지훈) .........
정한) ..옆집 살면 뭐하냐. 중요한 순간에만 없었는데.
민현) 아무도 잘못한 거 없어. 잘못된 어른이 존재했던거지.
드르륵-!
순영) .......
민규) ...여주,
민현) 잠들었어. 저기 앉아서 진정해.
눈물을 가득 담은 채 달려온 순영이 흥분한듯 숨을 불규칙적으로 내쉬었고 뒤를 이어 들어오던 민규가 여주를 나지막이 불렀다. 민현은 그런 순영과 민규에게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은 곧 착잡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순영) ...어떻게 된거야.
민현) 휴대폰보니까 우리랑 못 본 동안 계속 부모님한테 연락이 왔던 모양이야.
민현) 하필 정한이랑 지훈이 없을 시간에만 자취집 찾아가기도 한 것 같고.. 메시지보니까 가관이더라. 말끝마다 애 갉아먹는 말만 잔뜩 해놨던데.
민현의 말을 끝으로 아이들은 말이 없었고, 여주의 규칙적인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지훈) 뭐 때문에 연락이 온건데.
민현) 돈. 돈이 필요한데 빌릴 데가 더이상 없었나봐.
순영) 근데 그걸 왜 여주한테 빌려.
정한) 자기 자식이었으니까. 부모한테 돈도 못주냐 그런 심리였던거지.
순영) 미친놈들이네.
민현) 혼자두면 안돼.
순영) 여주?
민현) 응.
여주 혼자두면 안돼.
그 일이 있고난 뒤, 일상은 신기하게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러나 조금은 차분해진 여주에 아이들은 단 한 번이라도 여주의 텐션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아무렇지 않은 듯 굴었다. 물론 석민이는 매순간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느라 바쁘지만.
오랜만에 민현의 호출로 아이들이 전부 모였고, 뷔페에서 식사를 하며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훈) 아 볶음밥이 다 나갔어.
정한) 나 갈 때까지만 해도 있었는뎈ㅋㅋㅋ 이따 채워놓겠지.
순영) 와 근데 맛있다. 뷔페는 잘 안갔는데 겁나 오랜만.
석민) 저기 이따가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먹어야지.
명호) 맛있는게 많네. 홍차도 맛있고.
승철) 근데 왜 갑자기 뷔페?
민현) 먹이고 싶어서.
찬) 저 주어 없는거 우리는 아니지?
승관) 우리겠냐.
정한) 니가 사는거야?
민현) 내가 불렀으니까 내가 사지.
지수) 뭔데? 진짜 왜 부른거야?
민현) 시험도 다 끝났고, 다같이 밥이나 먹으려고 불렀지.
지훈) 진짜 그거 뿐이야?
지훈의 진짜 그것 뿐이냐는 말에 민현은 웃음기를 머금으며 제 가방에서 파일 하나와 볼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곧 제 옆에 앉은 준휘에게 내밀며 자신은 여유로이 스프를 떠먹었고, 준휘는 이게 뭐야? 하고 중얼거렸다. 아이들이 뭔데? 읽어봐! 하고 준휘를 향해 말하자 준휘는 종이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준휘) ..하숙생을 모집합니다.
지훈) ...뭔소리야?
승관) 하숙생? 그 하숙집 하숙생?
준휘) 마당 포함 200평에 다다르는 주택..
하숙비는 매달 모으고 있는 회비를 제외하곤 없습니다. 통금은 열시이며 앞으로의 규칙은 하숙생들과 정할 예정입니다. 함께하실 분들은 명단에 동그라미를 써서 황민현에게 제출을-....
찬) 와!!!! 뭐야!?!?!?
승철) 나 기숙사 나올 수 있는거야!?!?!??!?
정한) 뭐야 이거? 진짜야?
지수) 너 무슨 일이야?
지훈) 아 쟤 그거네! 혼자 막 계획 세우고 있던 그거아냐?
석민) 형!!! 이거 때문에 뷔페로 부른거야!?!?!!
순영) 야이쒸! 우리 이제 다같이 사는거야!?!?!?
민현) 같이 살 애들은 동그라미 치고 아닌 애들은 엑스 치고 돌려.
준휘) 이걸 안 할 애들이 있어? 난 우선 동그라미.
지훈) 그냥 한 명이 다 쳐주면 되는거 아냐?ㅋㅋㅋㅋㅋㅋㅋ 통학도 엄청 편해졌는데.
여주) ...뭐야? 난 이미 동그라미가 인쇄되어있는데?
민현) 여주는 선택권 없어.
여주는 무조건 같이 살아야돼.
Epilogue 1
“전부 여주가 한 건 아니고, 맞은 것도 있어.”
늦은 저녁, 아이들이 집으로 전부 돌아가고 혼자 남은 정한이 자신의 이모인 미도와 함께 여주 병실에서 빠져나와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민현의 말에 미도는 병실 문에 달린 조그마한 창문 사이로 보이는 여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민현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해를 저 정도로 해왔고, 했다는 건 사실 상 심각한거야.”
“...우울증은 같이 살면서 고쳐줄 수 있어?”
“..어떤 식으로?”
“사실 애들이랑 다같이 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근데 그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혼자 두면 계속 늪에 빠질 것 같고, 옆에서 우리가 계속 밝은 분위기로 주도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뭐, 혼자 두는 것보단 훨씬 좋지. 자해도 저지하는데에 좋고. 근데 너, 집에서 나올 수나 있어? 언니가 가만 두지 않을텐데.”
“할아버지가 있잖아.”
“...그래.”
Epilogue 2
“이게 뭐냐?”
“저 거기 살아요 할아버지.”
민현은 시험이 끝나고 나서 할아버지를 찾았다. 5월 초에서 중순으로 넘어가는 시점, 마당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담소를 나누다 에이 쁠이 가득한 성적표를 가장 먼저 보여준 민현이 다음으론 현재 정한이 살고 있는 자취방을 보여줬고, 그 순간 할아버지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 좁은 곳에 혼자 산다고?”
“집에 있으면 자꾸 의대 보내려하시고 부담을 주셔서 자취하는데, 좀 부족해서요..”
“아직도 그 난리들이냐? 애 하나 잡으려고 난리구나.”
“어쩔 수 없죠 뭐.”
“학교 근처에 집 하나 해줘?”
“근처 말고,”
**
오늘 올지 내일 올지 모르겠다더니 오늘 와버리기 ㅋㅋㅋㅋ
쥬니의 아픔이 끝나자 여주의 아픔이 다가오고... 여주의 아픔이 끝나자 민현의 계획이 만천하에 공개가 됐군요!!!!! 얘들아 내가 미안해 우리 행복하자...(사실 모름 아직 ㅎ) 오늘은 날씨가 좀 좋았어요, 그쵸? 다들 남은 하루 푹 쉬시고 내일 하루만 더 버티면 주말! 오늘도 예쁜 꿈 꾸시고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
어느덧 세븐틴이 된 넉점반의 소중한 암호닉💛
[호시탐탐] [파란하트] [0846] [세봉해] [봉봉] [대장] [토끼][너누] [하늘] [인절미] [겸절미] [콩콩] [슈슈] [시소] [하마] [알콩] [명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