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붉은 참혹상
written by: 규피덴셜
state: 공유, 배포 xX
nick: 테라규, 감성, 씨규빠, 타라, 베긔, 체리펀치, 소라빵, 코알라, 모닝콜, 찹쌀떡, 뚜러뻥
붉은 참혹상 -13-
“모두 집합 했는가?”
“예!”
벨름 제국에서 유일하게 하나 내세울 것이 하나 있다면 유일하게도 군부대가 있기에 우리 벨름 제국 남쪽에는 그들을 위한 추모관이 하나 만들어져 있다. 모든 군인들의 시신이나 화장 가루가 그 곳에 보관되는데 당연 이번 김명근 대령의 시신 또한 추모관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이번 훈련병들 중에서 가장 성적이 우수한 자 50명을 모아서 추모관에서 식을 열기로 했다. 대체로 성적이 좋다는 것의 의미는 김명근 대령이나 이상민 대령과의 깊은 인연으로부터 시작해서 인정을 받고 훈련병들 사이에서 그나마 입소문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좋은 소문을 끌고 다니는 인물들을 말한다. 물론 그 사이에 성규가 껴 있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글라디우스의 윤두준 중령이다. 스쿠툼 부대에 소속되어 있는 훈련병들은 얼굴을 익혀 놓도록.”
추모관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까만색 옷으로 차려입은 명수가 무표정으로 김명근 대령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훈련병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한 후에 허리를 펴고서는 추모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김명수 외에도 김명수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시신이 보관되어 있는 관을 꼭 붙잡고 울고 있었다. 가족을 잃었을 때의 아픔은 저런 것이구나. 성규는 문득 할머니가 생각남에 코 끝이 찡해지려다가 말았다. 이미 잊은 지 오래라고 생각했건만 역시 가족이란 존재는 잊을 수가 없는 건가보다. 우리 엄마랑 아빠는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상. 추모곡은 끝났다. 더 남아있던지 가던지 글라디우스 훈련병들은 7시부터 있을 훈련 준비하고 스쿠툼 훈련병들은 각자 알아서 효율적으로 시간 보내도록.”
모두들 돌아가는 분위기에서 성규만 홀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가만히 바닥에 붙혀놓고 명수를 쳐다보았다. 눈물도 없이 가만히 무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명수를 보고 있자니 성규는 괜히 마음이 아파져왔다. 가족 앞에서도 눈물이 없는 강인한 놈이구나. 순간 생각이 들면서 할머니 시신 앞에서 엉엉 울어재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면 세월 때문인 걸까? 열 다섯과 열 여덟, 그 사이 삼 년이라는 세월이 그토록 우리를 바꿔놓은 것인가?
“힘내라.”
“니가 뭘 안다고 힘을 내라고 해? 가족도 없는 게.”
요 근래 친근하게 대하고 깐족거리던 김명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아마도 4년 전 중학교 시절 때의 방황하던 명수의 눈빛이었다. 그런 명수의 행동이었고, 그런 명수의 말투였다. 성규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질 뻔한 것을 붙잡고 명수를 계속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았다. 어릴 적부터 그런 말을 들어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므로 성규는 아무렇지 않게 명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에 빠져버렸다. 그렇지, 나는 가족이 없지. 그런데 정작 가족이 있는 명수가 더 슬퍼보이는 건 왜일까? 성규는 뭔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것이 아마 질투라고 해야할까?
“나도 할머니 돌아가셨었잖아. 그래서 알아. 가족이 없지는 않아.”
성규는 아무렇지 않게 할머니 얘기를 할 수 있는 자신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어쩌면 한 편으로는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명수는 꼬박꼬박 말에 대꾸를 해가면서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성규가 싫었는지 온갖 인상을 쓴 채로 관을 꼭 붙잡았다. 열고 싶어도 열 수가 없었다. 내가 보고 싶은 삼촌의 얼굴도 이제 함부로 볼 수가 없다. 그저 명수의 가슴 속에, 벨름 제국의 역사 속에만 남아 있을 얼굴을 머릿 속에 기억해두고만 살아야 된다는 건 무척이나 잔인한 경우였다. 명수는 끝끝내 벌떡 일어나서 관을 무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닥쳐, 김성규. 너랑 나랑 같은 취급 하려고 들지 마.”
“뭐?”
“가족도 없고 좃나 가난한 새끼가 좃나 나대기는.”
“김명수, 나 옛날처럼 당하고 있지만은 않아.”
“그래봤자 고아는 고아지.”
명수의 말에 발끈한 성규는 꼭 쥐고 있던 주먹에 피가 안 통해 붉다 못해 점점 하얘지는 것을 보고서는 명수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주먹이 막 올라가는 찰나 명수의 얼굴은 구겨진 지 오래였고 주먹을 꽂으려던 팔은 누군가에게 잡혀 있었다. 성규는 고개를 들어올려 제 팔을 저지한 사람을 보고서는 그게 윤두준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글라디우스 중령에게까지 이렇게 눈독에 들려서는 다니다니. 성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윤두준 얼굴을 보니 괜히 마음이 착잡해지기까지 했다.
“진정한 군인들은 쓸데 없는 곳에 주먹을 쓰지 않는다. 명심하도록.”
“네.”
“얘기 끝나면 나와라.”
당연 자신은 어떤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지 않은 그저 열 아홉의 훈련병에 못 미쳤기 때문에 더 이상 윤두준의 말에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김명수 앞에서 보였다는 사실만으로 치욕스러움에 날카로워진 눈매에 힘을 풀 수가 없었다. 씩씩거리면서 김명수를 노려보던 시선을 돌려내고서는 성규는 나갈 채비를 했다. 그렇게 군화의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가면서 밖으로 나왔을 때는 윤두준이 가만히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허리를 굽혀 윤두준 중령에게 인사를 했다.
“자네가 김성규라고?”
성규의 군복 그 가슴팍 부근에 새겨져 있는 성규의 이름을 빤히 뚫어져라 쳐다보는 윤두준 중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함부로 주먹을 든 행동에 대해서 충분히 반성하는 자태로 나왔으나 그것에 대해서 윤두준 중령이 자신에게 경고를 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성규는 가만히 고개를 푹 내려숙이고서는 두준의 군화 끝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느껴져 온 건 두준의 목소리가 아닌 두준의 손이었다. 두준의 큰 손은 성규의 머리 위로 얹어져서는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들을 끼워넣은 채로 쓰다듬어주었다. 성규는 가만히 두준을 쳐다보았고 두준은 머쓱한 듯 손을 내렸다.
“실제로 보니까 연예인 보는 느낌이네.”
“…예?”
두준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성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4년 전 자신이 사관학교에 겨우 입학해 훈련병 합격 통지서를 받고 좋아하던 때에 뉴스를 보다가 봤던 성규의 어리숙한 모습이 떠오름에 두준은 살짝 웃으면서 성규를 다시 한 번 마주보며 그 때의 성규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는 몇 살 차이가 안 남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기같은 느낌, 왜일까. 침묵을 사이에 두고 뒤를 돌아 가려던 두준의 걸음을 멈춘 성규의 음성에 두준은 다시 뒤를 돌아 성규를 쳐다보았다.
“지, 질문 있습니다.”
“…뭐지?”
“이번 일이 이상민 대령님과 관련이 있습니까?”
“…….”
두준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방금 애기처럼 보이던 성규의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정말 아무것도 모를 것처럼 순수하고 우발적인 행동을 하던 성규의 모습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본다는 내용이 하필 저런 정확한 소문이었을까. 두준은 당연히 성규가 어디선가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소문을 듣는 속도조차도 엄청나게 빠름에 약간 위험한 인물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서도 두준은 그저 웃으면서 성규를 대했다. 아직까지는 그런 쪽으로 성규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그런 소문을 들었지?”
“제가 예측해낸 상황입니다만.”
“어떻게 그런 예측이 나올 수가 있지?”
두준의 말에 성규는 대답을 하려고 잔뜩 벌렸던 입을 다시 오므렸다. 입술이 살짝 말랐다. 두준의 표정만 봐서는 도무지 두준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계속 웃으면서 쳐다보는 저 표정은 나에게 아직까지 호의가 있다는 뜻인가? 혹은 엄청난 포커페이스인가? 성규는 혼란에 빠졌다. 아무래도 글라디우스의 대령 바로 밑의 중령이 윤두준이다보니 성규가 어떻게 더 노골적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이상민 대령님도 윤두준 중령님도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성규는 그 사실을 계속 끝까지 믿고 싶었다.
“나에게 말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는 왠만해서 하지 마.”
“네…”
“너가 생각한 그대로야. 이상민이 김명근 죽였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지나가다가 본 건데. 성규 군이 얼마나 입이 무거운 지 알아보려고 말해주는거야. 알았지?”
성규는 막대한 임무를 맡은 것마냥 입술을 꾹 다물고 꽤 비장한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그것마저도 귀여운지 두준이 끄덕이면서 뒤돌아 성규를 등지고 발걸음을 옮겼다.
*
“대령님! 큰일 났습니다!”
“뭔가.”
김명근이 죽었음에도 불구 추모관에 한 번 가보지 않고 여유롭게 무거운 눈꺼풀을 느긋하게 껌뻑거리면서 흥분되어 있는 서인국의 행동을 보면서 눈동자를 서인국의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슥 훑었다. 그 와중에도 서인국의 몸매를 대충 훑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인국은 영문을 모른 채로 상민을 쳐다보았다. 상민이 이어서 말하라는 듯 팔을 뻗어 손으로 까닥거리자마자 인국이 흥분한 상태로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상민에게 꺼낸 말은,
“지금 남쪽 부근 해안 쪽에 벌써 퓨르 제국의 군부대가 침입했다고 합니다.”
“훈련병 풀어.”
인국은 답답한 듯이 상민에게 호소했다. 현재 벨름 제국에서는 대륙과 대륙 사이의 전쟁이 많았기에 함대 쪽으로는 전혀 군대를 만들어놓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을 알고 아무래도 무역 쪽으로 많이 활성화 되어 있는 퓨르 제국에서는 일부러 해안 쪽으로 돌아서 공격해온 것임이 틀림 없었다. 상민은 느긋하게 말하다가 방법이 없는 것 같자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답답한 지 인국을 째려보듯 쳐다보았다. 그에 인국은 가만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 느긋한 분위기를 참고 있었다. 당장에 다른 제국이 벨름 제국을 침입했는데도 그런 여유로운 대답이 나오다니 인국은 답답함에 미칠 지경이었다.
“뭐해, 훈련병 풀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대장이 먼저 나서길 바랄거야.”
인국은 끄덕이고서는 밖으로 나와 훈련병들을 모아서 해안가 쪽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상민 대령을 제외한 스쿠툼 부대와 글라디우스 부대의 중령 대령도 나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김명근 대령이 당장에 돌아가신 마당에 제국의 침입이 들어오다니. 인국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껏 몇 년동안 저런 인물을 대령이라고 떠받을어 왔다니.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는데도 아무 일도 안 하잖아. 치가 떨리는 것을 인국은 꾸욱 참아대며 주먹을 불끈 쥐어대었다.
퓨르 제국은 어느새 해안가를 지나서 슬슬 제국의 남부 지방 곳곳에 숨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무역을 잘 하는 나라인만큼 무기도 생각보다 튼튼하고 좋았으며, 전쟁에서 공격하는 머릿수도 적지 않았고 그 방법이 정말이지 탁월하고 뛰어났다. 뭉쳐있기보다는 다 흩어져 샅샅히 숨어 있으면서 몰래 공격하는 방식이었는데 당연하면서도 공격할 때의 그 명중률이 대단했다. 당연 해안가 쪽을 전혀 생각을 못한 벨름 제국의 훈련병들이 그 많은 나무들과 질퍽한 땅을 밟은 채로 공격하고 수비하기에는 가혹했다.
“아윽!”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성규가 재빨리 그 소리를 찾아 달려가보았지만 결국엔 찾을 수가 없엇다.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뒤로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싶어 누가 어디 다쳤나 괜히 모르는 척 지나가면서 보려던 차에 그 이와 눈이 마주쳤다. 딱 보니 여자 치고 골격이 큰 게 남정네였다. 성규는 가만히 모르는 척 지나가면서 명찰을 보았다. 그 이름이 이성종이었는데 성규는 자신도 목숨을 지키기에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성종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가만히 지나쳤다.
“저기요!”
성규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나무 뒤로 숨어 퓨르 제국의 군부대들을 향해 활을 쏴대었다. 훈련병이 되고 나서 활 쏘는 거 하나는 점수를 잘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계속 대접전이 일어나던 와중 성종이 있었던 곳을 훑어보자 그 곳에는 키 큰 사내가 있었다. 그에 성규는 다행이다 싶어 자리를 옮겼다.
성열이 바위 뒤로 간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몸을 피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곳에 성종이 피를 철철 흘려대는 다리를 붙잡고 식은 땀을 흘리고 있기에 당장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상 손수건을 꺼내들어 길게 북북 찢어대 밧줄처럼 연결 시킨 것을 성종의 다리에 꽉 묶어 일단간에 지혈을 해두었다. 하지만 이미 피가 많이 흘렀는지 바닥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성종은 피가 다량으로 빠져 나가자 머리가 어지러운지 눈에 힘이 풀리려는 것을 겨우 떠냈다. 그렇게 성열을 보면서 시선을 돌려대었다.